과거의 저우 싱츠(周星馳)가 컬트(cult)소수 관객들의 열렬한 숭배대상였다면 지금의 저우 싱츠는 홍콩영화계의 대표 아이콘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소림축구(少林足球)〉(2001)와 〈쿵푸허슬Kung Fu Hustle〉(2005)을 통해 중화권을 아우르는 스타로 떠올랐다. 지난 세기 전 세계를 휩쓸었던 홍콩느와르의 장르적 관습과 그 잔재 뒤에서 살아남은 영화적 흐름이 그리 많지는 않다. 그 가운데 저우 싱츠만이 왕 쟈웨이(王家衛)와 함께 꾸준히 영화를 만들며 ‘홍콩’을 넘어 중국영화의 세계화를 보여주고 있다. 패러디영화에서 시작한 그의 영화적 이력과 생명력은 놀라울 정도다. 하긴 이미 〈와호장룡(臥虎藏龍)〉(2000)이나 〈영웅(英雄)〉(2002)의 성공에서 보듯 중국영화는 일찌감치 세계시장에서 일본영화와 함께 다문화혼종이라는 글로벌 이미지로서 각인되어 왔던 것이 사실이다. 심지어 쿠엔틴 타란티노(Quentin Tarantino)의 〈킬빌Kill Bill〉 시리즈(2003~2004)는 일본영화에 대한 오마주를 넘어 그 장르적 관습을 역이용해 할리우드 버전의 ‘리 샤오롱(李小龍) 대 사무라이 액션활극’을 보여주었다.

저우 싱츠에게도 이러한 중국무협 혹은 중국을 대표하는 이미지로서의 리 샤오롱(李小龍, 1940~1973)은 매우 중요한 영화적 자산이다. 그가 손오공으로 분했던 〈서유기(西遊記)〉(1994)나 〈지존무상(至尊無上)〉(1989), 〈영웅본색(英雄本色)〉(1986~1989) 그리고 〈007〉 시리즈를 패러디하던 시절, 그는 단지 패러디라는 원본 없는 그림자놀이에 몰두했다. 그러나 반복적인 뒤틀기 속에서도 영화적 맥락을 놓치지 않았고 그러한 무한반복의 경지에서 때로는 포스트모던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물론 당사자는 이를 과잉해석으로 보는 듯하지만 그의 패러디가 할리우드의 그것에 비해 독특한 것은 사실이다. 할리우드 패러디물이 맥락에 구애받지 않는 ‘끼워 넣기식’이라면 저우 싱츠의 패러디는 영화를 관통하는 컨텍스트를 탄탄하게 구축하면서 변용하는 비틀기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저우 싱츠 영화의 힘은 사실 그가 연기하는 인물이 매우 구조화된 요인들의 결합이라는 측면과 모순적인 요소들의 총체라는 점에 기인한다. 그 안에는 무협으로서의 ‘리 샤오롱’, 중화민족주의, 가난과 소탈, 소년 같은 성적 결백 등의 요소가 짜깁기되어 있다. 이러한 잠재의식적 요소들은 저우 싱츠라는 배우의 비틀린 패러디 공간 속에서 변용되어 관객들에게 하나의 코드 혹은 스타의 이미지가 지배적인 영화로 받아들여진다. 저우 싱츠는 손오공으로 분했던 초창기부터 이전의 홍콩영화들과 당시의 시대상황을 반영하는 장면들을 곳곳에 숨겨두었고 이러한 무의식적 패러디들을 확인하는 순간이 팬들에겐 즐거운 놀이가 되었다. 관객을 상대로 한 이 ‘은밀한 말 걸기’가 그를 숭배대상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코딩(coding)기호 부여하기과 디코딩(decoding), 기호 풀기 은밀한 속삭임과 해독의 과정 속에서 저우 싱츠는 독특한 캐릭터가 되었다.

그러던 중 〈소림축구〉와 〈쿵푸허슬〉의 대대적인 성공은 그를 B급영화 배우에서 대중스타로 발돋움하게 했다. 그가 21세기 들어 대중문화 아이콘으로 자리 잡은 이유는 복합적이다. 패러디 미학은 패러디하는 대상의 ‘의미’에 대한 변주와 이야기(혹은 신화)의 ‘키치적 변용’에 그 핵심이 있다. 그는 주로 ‘화장실 유머’를 통해 ‘거지’처럼 친숙하고 서민적인 캐릭터를 만들어냈는데, 그것은 넓은 의미에서 홍콩의 중국반환(1997)과 세기말의 ‘불안’을 달래주는 디아스포라(diaspora)적 이미지다. 미라맥스영화사가 판권을 사들여 전 세계에 배급한 최초의 홍콩영화 〈소림축구〉는, 비록 〈영웅〉이 거두었던 성공에 비할 바는 아니나, 저우 싱츠식 패러디왕국의 확장으로 거의 ‘원본’에 가까운 아우라(aura)를 풍긴다.

저우 싱츠 영화가 지닌 쾌락의 급소는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최악의 요리를 천연덕스레 내놓으며 세상 사람들의 허위의식을 조롱하거나〈식신(食神)〉(1996) 평범한 사람들의 위대함을 축구를 통해 대변하고,〈소림축구〉(2001) 최고의 무공을 자랑하는 악당이 몇 가닥 남지 않은 머리카락에 늘어진 러닝셔츠 차림의 노인으로 등장한다.〈쿵푸허슬〉(2005) 저우 싱츠는 비루함 속에 깃든 비범함을 드러냄으로써 판타지를 창조한다. 홍콩느와르의 총격전을 서로에게 침을 뱉는 배틀로 치환하고 의외의 상황 속에 웃음의 코드를 몰아넣는다. 〈희극지왕〉에서는 말도 안 되는 3류 연기지도를 해주면서도 진지함을 잃지 않는 상황들을 꾸준히 엮어낸다. 특히 그의 코미디에서 가장 돋보이는 부분은 우 멍다(吳孟達)를 비롯한 소위 저우 싱츠 사단 배우들의 앙상블에 있다. 황당한 상황들과 철저하게 망가진 루저(looser)들의 규합은 저우 싱츠 영화만이 가진 특별한 매력이다. 그들의 표정에서 진지함이 빛날 때 관객들은 가장 흥겹다.

그런데 저우 싱츠는 모든 패러디 대상들을 중국적 이미지로 변용한다. 그의 영화들은 즉, 내셔널시네마로 기능하는데, 〈쿵푸허슬〉에 등장하는 청킹맨션(中慶大廈)빈민들이 사는 대형 다세대 건물은 홍콩영화에서 수없이 등장했던 쥬롱반도(九龍半島)의 오래된 가옥들을 상징하는 것이었고 동시에 중국 무협영화에 등장하는 객잔(客棧)중국식 숙박시설의 모습이기도 하다. 〈식신〉의 중국요리 대결 역시 중화의 오랜 음식문화와 관련 깊다. 그것은 자주 외국문화와의 대결이나 이질적인 문화를 한데 섞어 버무려내는 능숙한 솜씨로 완성된다. 무협과 축구, 도박과 초능력 혹은 매트릭스(matrix)와 무협을 통해 선한 의지를 가진 중국인으로서 외세 혹은 자본 그리고 야비한 술수 등을 넘어선다. 이것은 아시아의 보편적 가치로 장려되었지만 잊혀져가는 것들이었다가 저우 싱츠의 영화에서 판타지로 현실화한다. 저우 싱츠는 그 속에서 범아시아적 영화의 민족적 전통들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매개이자 그 자신이 이미 또 하나의 글로벌한 ‘아이콘’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