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개봉한 할리우드 무협영화 〈포비든 킹덤Forbidden Kingdom〉에는 리 샤오롱(李小龍, 1940~1973)을 숭배하는 평범한 미국인 소년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와호장룡(臥虎藏龍)〉(2000)의 촬영감독 바오 더시(鮑德熹), 〈매트릭스The Matrix〉(1999), 〈킬빌Kill Bill〉(2003)의 무술감독 위앤 허핑(袁和平)이 참여하고 한국의 컴퓨터그래픽 기술진이 가세한 이 글로벌 블록버스터가 리 샤오롱 향수를 바탕에 깔고 있는 것이다. 할리우드 영화계의 ‘오리엔트 특급’ 기관사로 이만한 안성맞춤이 또 있을까?

리 샤오롱의 이미지는 ‘동양’적이면서도 ‘서양’적이다. 동시에 ‘동양’적이지도 않고 ‘서양’적이지도 않다. 그는 샌프란시스코 차이나타운에서 중국인 아버지와 독일계 혼혈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삶이 그랬던 것처럼 그의 영화들도 미국과 이탈리아, 홍콩, 일본, 한국, 타일랜드 등을 넘나들며 만들어졌다. 그는 미국화교 출신 영화배우 브루스 리(Bruce Lee)이자 절권도(截拳道)를 창시한 중국인 무술가 리 샤오롱이며, 1970년대 한국 영화팬들의 우상 이소룡이었다.

쿠엔틴 타란티노(Quentin J. Tarantino)가 우마 써먼(Uma K. Thurman)을 기용해 〈사망유희(死亡遊戱)〉(1978) 촬영 당시(1972)의 리 샤오롱 캐릭터를 재현하고,〈킬빌〉 한국의 유하가 쌍절곤을 든 권상우를 등장시켜 노골적인 오마주〈말죽거리잔혹사〉(2004)를 선보인 이듬해, 탄생 65주년(2005)을 맞은 그는 다시 한번 세계적인 화제가 되었다. 보스니아(Bosnia)내전(1992~1995) 당시 최대격전지였던 고도(古都) 모스타르(Mostar)와 무협영화의 본향 홍콩에서 그를 추모하는 동상이 각각 제막된 것이다. ‘왜 홍콩일까’를 의심하는 경우는 없었지만 ‘왜 모스타르일까’를 궁금해 하는 사람들은 많았다. ‘모스타르도시청년운동’ 측의 설명에 따르면 그것은 ‘인종청소’의 상처를 치유하는 ‘민족화해의 상징’이다. “그는 영화 속에서 언제나 불의와 인종차별에 맞서 싸운 인물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조선일보〉(2005.11.28) 그는 정말 인종차별에 맞서 싸웠던 걸까? 그렇다고 하더라도 인종차별에 저항한 인물이 어디 그뿐이었겠는가. 한 외신은 그 이유를 이렇게 부연한다. “옛 유고슬라비아연방에서는 70,80년대에 브루스 리의 영화가 대유행이었다.”〈아사히신문(朝日新聞)〉(2005.11.28) 네레트바(Neretva)강보스니아와 크로아티아를 가르는 강 양안을 넘나드는 인기가 아니었다면 그도 살아 움직이는 스타리 모스트(Stari Most)오스만투르크의 점령 이래 네레트바강 양안을 잇는 다리가 되진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선량한 의도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결국 정치적 동원에 지나지 않는다. 상하이를 배경으로 훠 위앤쟈(?元甲, 1868~1910)근대 애국무술인, 정무체육회의 설립자 문하의 제자들이 외세에 맞서 싸운다는 내용을 그린 〈정무문(精武門)〉(1972)을 보라. 알다시피 훠 위앤자는 쑨 원(孫文, 1866~1925)에게 대협(大俠) 칭호를 얻은 반청(反淸)파 근대 무술인이다. 난징조약(南京條約, 1842) 이래 열강의 각축장이 되어버린 상하이에서 중국을 ‘동아시아의 병자(東亞病夫)’라 조롱하는 서양 역사(力士)들을 차례로 물리친 훠 위앤쟈의 일화는 이 영화의 핵심 삽화로 차용되기도 했으니, 보스니아인들은 그의 영화들 내면에 흐르는 중화민족주의를 부러 간과한 것이다.

그런데 리 샤오롱 영화에 잔뜩 충전된 저 살기등등한 에너지를 몽땅 중화민족주의의 소산으로 몰아세우는 것은 상투적일 뿐만 아니라 부당하기까지 하다. 〈정무문〉의 중화민족주의는 주제가 아니라 비장미의 고양을 위한 임의적 배경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 영화의 영문제목이  Fist of Fury 즉, ‘분노의 주먹’이라는 데에 유의하자. 이 분노는 무엇을 향한 것인가? 표면적으로는 스승을 독살한 일제침략자들에 대한 것이었지만, 러시아와 일본의 최고수를 제압한 뒤 서양관원들의 총구를 향해 힘껏 날아오르는 마지막 정지화면에서 알 수 있듯 그것은 그를 둘러싼 세계 전체에 대한 분노다. 타일랜드를 배경으로 한 전작 〈당산대형(唐山大兄)〉(1971)이나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한 후속작 〈맹룡과강(猛龍過江)〉(1972)에서도 마찬가지지만 그의 영화에 등장하는 중국인들은 언제나 속수무책으로 우두커니 서있는 무력한 구경꾼들이다. 그는 늘 ‘혼자’ 싸운다. 그리고 그 싸움이 끝나면 그는 잡혀가거나,〈당산대형〉 죽거나,〈정무문〉 떠난다.〈맹룡과강〉 미국에서 건너온 〈그린 호넷Green Hornet〉(1966)1의 ‘얼굴 없는’ 스타 리 샤오롱이 홍콩의 골든하베스트(Golden Harvest)사와 손잡고 만든 초기 세 작품에서 주인공이 모두 하층계급 출신의 떠돌이 외방인라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그에게는 언제든 되돌아가 자신을 조회할 수 있는 ‘중화민족공동체’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이 정처 없는 디아스포라(diaspora)에게 남은 것은 ‘나와 나를 둘러싼 세계 전체와의 대결’이라는 울분에 찬 나르시시즘뿐이다.

그런데 리 샤오롱이 세계적 스타가 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는 예의 그 분노와 울분을 개인적 삶이나 민족적 맥락으로 해소하지 않는다. 그것들은 다만 장식에 불과하다. 그는 오히려 맥락 없는 ‘순수 분노’를 추구한다. 리 샤오롱의 영화를 보고난 뒤 관객의 뇌리에 남는 것은 플롯이나 미장센, 역사나 미학 따위가 아니라 분노로 일그러진 그의 얼굴과 살기어린 눈빛, 그리고 죽음의 포효인 것이다. 이 ‘순수 분노’를 가장 잘 보여주는 요소가 극도로 절제된 무술동작이다. 고도의 응축과 찰나적 폭발을 구조적으로 반복하는 그의 신체는 ‘폭력의 미학화’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예컨대, 영화 속에서 그는 언제나 참고 또 참는다. 내면에서 끓어오르던 분노가 최대치로 고양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그는 폭발한다. 이 정점에서 리 샤오롱이 내지르는 최후의 일격에 관객들 또한 저마다의 울분을 싣는 것이다.

리 샤오롱 신화가 만들어진 1960~1970년대는 동아시아자본주의가 전후복구기를 넘어 이미 고도성장시대로 접어든 때였다. 산업화와 도시화 속에 전통사회는 빠르게 해체되었고 도시로 흘러든 이 ‘맨발의 청춘’들을 지배한 것은 이른바 떠돌이의식이었다. 낯선 세상과 홀로 싸우는 이 떠돌이들의 시대는 ‘떠돌이 무협서사’의 온상이 되었다. 쿠로사와 아키라(黑澤明, 1910~1998)의 〈요짐보오(用心棒)〉(1961), 카쓰 신타로오(勝新太郞, 1933~1997) 주연의 〈자토이치(座頭市)〉(1965), 후 진취앤(胡金銓, 1931 ~1997)의 〈용문객잔〉(1966), 장 처(張徹, 1923~2002)의 〈외팔이 검객〉(1968), 정창화(鄭昌和, 1928~ )의 〈황혼의 검객〉(1967)과 같은 동아시아의 무협영화들은 이 떠돌이들의 ‘나그네 설움’ 없인 아마도 존재할 수 없었을지 모른다. 이들은 다시 미국의 서부영화들, 특히 개척정신의 타락을 주제로 하는 마카로니웨스턴(macaroni western) 계열과 활발히 교섭했다. 동서를 넘나드는 이 문화혼종의 장(場)이 리 샤오롱의 영화적 성장배경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1960년대의 대표적인 서부극 감독이자 ‘폭력 미학’의 완성자로 평가받는 샘 페킨파(Sam Peckinpah, 1925~1984)는 스티브 맥퀸(T. Steven McQueen, 1930~1980), 제임스 코번(James Coburn, 1928~2002) 등의 배우와 함께 작업하곤 했는데, 리 샤오롱은 바로 이들의 무술코치이기도 했다. 리 샤오롱이 보여준 폭력의 미학이 무국적의 ‘순수 분노’를 향하게 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미완성작인 〈사망유희〉를 제외한다면 리 샤오롱의 마지막 작품은 〈용쟁호투(龍爭虎鬪)〉(1973)이다. ‘순수 분노’는 여기서 철학적 차원에 이르거니와, 수련을 끝내고 떠나려는 주인공에게 그의 노(老)스승은 말한다. “자고로 적이란 허상에 불과한 것이다. 적은 허상 안에 자신을 숨긴다. 그 허상을 깨부수는 것만이 곧 적을 소멸시키는 것이다.” 폐쇄공간인 ‘한(Han)악당두목의 이름의 섬’에 모여 무술시합을 펼치는 온갖 인종의 고수들이 그에겐 한낱 허상들일 뿐이다. 이 허상들이 모두 소멸하자 그는 ‘최후의 적’ 한과 함께 ‘거울 방’에 들어선다. 그곳의 거울들을 모조리 깨부수고 드디어 한을 무찌른 그는 거기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나와 나를 둘러싼 세계 전체와의 대결’이 실은 허깨비와의 싸움에 불과한 것이었다면 남은 것은 자기 자신과의 투쟁뿐일 것이다. 그러나 그 ‘나’란 존재조차 “추상적인 존재에 불과”하다고 고백함으로써 그는 그의 모든 싸움을 아포리아 속으로 던져버렸다. 그는 가고 우리는 남았다. 그런데 그의 죽음(1973)과 함께 그의 ‘분노’도 사라진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왜 아직도 리 샤오롱의 넋이 우리 시대 주변을 떠도는 것일까? 갈 곳 모르는 떠돌이의 울분은 이제 사라졌는가? 우리는 아직도 ‘혼자’ 싸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