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나는 야스쿠니신사(靖国神社)에 호의적이지 않다. 60여 년 전까지의 일본 외교정책, 예전 육해군의 행동, 한반도나 근접 아시아 국가들이 가지고 있는 일본에 대한 기억을 생각해 볼 때, 결국 전전(戰前)의 근대 일본에 좋은 인상을 갖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그런 신사, 없애버리면 된다고 생각하는가?’라고 묻는다면, 수긍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다. 나의 할아버지는 이 신사에 모셔져 있다. 할머니는 때마다 참배하러 가셔서는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추억을 떠올리고, 우리들에게 남편을 이 신사에서 모시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말해 왔었다. 이렇게 전쟁이나 전몰자(戰沒者)를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이나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 모두에게, 야스쿠니신사는 복잡한 생각을 품게 하는 장소다. 메이지(明治) 2년 보신전쟁(戊辰, 1868~1869)왕정복고로 성립된 메이지 신정부가 에도바쿠후 세력을 일소한 일본의 내전의 조정(朝廷) 쪽 전사자를 위령하기 위해 야스쿠니신사의 전신인 도쿄쇼오콘샤(東京招魂社)가 창립된 이래, 야스쿠니신사는 조정 및 일본정부 쪽 전몰자를 기려왔다. 이것이 태평양전쟁 패전 이후에도 일본제국 당시와 마찬가지로 존속하고 또 전쟁에 대한 아시아 각국의 인식이 서로 엇갈리면서 야스쿠니신사는 논란의 대상이 되어왔다. 리 잉(李纓)감독의 영화 <야스쿠니Yasukuni (靖国Yasukuni)>는 그런 야스쿠니신사의 역사적 경위와 8월 15일1 신사 경내(境內)의 광경 그리고 야스쿠니도(靖国刀)를 만든 장인의 영상으로 구성된 다큐멘터리영화다.
대부분의 일본인들은 지금까지 야스쿠니를 방문한 적도 없고, 앞으로도 갈 기회가 없지 않을까. 어떻게 이 신사가 외국에 소개되고 보도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1960년대 일본에서 태어난 사람들 가운데 대부분은 전쟁의 기억이나 기록과 거리를 둔 생활을 하고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 작품에 경악할지도 모른다. 8월 15일의 야스쿠니신사, 그곳은 기묘한 축제의 공간이다. 예전 전우와 함께 옛 일본군 군복을 입고 경내를 행진하는 나이 든 남자들, 역시 군복을 몸에 휘감고 격하게 참배하는 젊은이들, 전통의상 차림으로 큰 일장기를 쳐들고 있는 남자들, ‘천황폐하만세’의 의미를 설명해 주는 사람 등 보통은 볼 수 없는 상황이 전개된다. 광신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런 사람들의 모습은 현대 일본인이 봐도 이상하다.

하지만 이곳에는 조용한 신사의 분위기도 있다. 거나하게 취해 그 시절 이야기를 해주는 아저씨나 잡담하는 아주머니의 모습은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들르는 선술집이나 슈퍼마켓 모습과 겹쳐진다. 그리고 이 영화는 야스쿠니신사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생각을 가지고 있음을 가르쳐준다. 일본의 식민지였던 타이완이나 한반도의 전몰자 중에는 유족의 승낙도 없이 야스쿠니에 합사(合祀)된 사람들도 있다. 일본정부에게 ‘멋대로 합사한 영혼을 돌려 달라’며 몰아세우는 타이완과 한국, 그리고 불교신자 유족들. 수 년 전에 본 한일합작영화 〈안녕, 사요나라(あんにょん·サヨナラ)〉(2005)가 생각났다. 이 영화 역시 동의 없이 가족을 야스쿠니에 합사하게 된 이희자와 그녀를 지원하는 일본인 모임을 통해, 지금까지의 아시아 평화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큰 작품이었다. 이 작품과 <야스쿠니>의 합사반대에 얽힌 에피소드는 지금은 고인이 된 할머니의 추억과 비교된다. 또한 경내에서 개최된 추모집회에 항의하며 참례자를 비난하던 젊은이들. ‘중국인은 돌아가라’며 노성을 퍼붓던 남자를 보면서 중국인인 리 잉감독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이런 영상을 리 잉감독이나 제작 스탭들은 10년이라는 세월을 들여 남겼다. 영상에 내레이션은 들어가 있지 않다. 그래서 이 기록은 아시아의 전쟁 기억에 안이한 회답을 내놓는 대신, 더 많은 의문을 제시한다.

‘실록 야스쿠니신사 8.15’와 대조를 이루는 것이 칼을 만드는 장인, 카리야 나오지(刈谷直治)의 영상이다. 영화의 앞부분에 오른손부터 등장하여 발도술(抜刀術)칼을 칼집에서 빼는 동작으로, 일격을 가하거나 상대의 공격을 막는 등의 기술을 중심으로 하는 검술을 보여주는 이 남자는, 예전 야스쿠니신사 경내에서 야스쿠니도(刀) 제작에 관련했던 사람이다. 그의 일하는 모습과 인터뷰가 이 작품의 또 하나의 핵심이다. 그러나 이와 관련해서 충격적인 내용은 없다. 실제로 그의 일은 오로지 철을 단련하는 일에 전념하는 것이다. 그 표정이나 손을 보면, ‘이 사람은 정말 오로지 이 길만을 살아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전부터 장인에 흥미를 가지고 있던 나에게는 이것도 꽤 볼만한 기록이었다. 인터뷰 장면도 흥미로웠다. 다른 장르의 많은 장인들이 그렇듯, 그도 그다지 말이 많은 사람은 아니었다. 리 잉감독과 함께 오래된 앨범을 보면서 띄엄띄엄 이야기하는 카리야씨. 야스쿠니도에 얽힌 기억과 당시 제작현장에 대해 묻는 감독에게 미소를 띠며 차분하게 대답하는 그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런 카리야씨가 문득 리 잉감독에게 ‘코이즈미(小泉)수상의 야스쿠니 참배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며 질문하는 장면이 있다. 카리야씨는 웃으면서 질문했고, 감독은 그에 대답하지 않았다. 카리야씨는 무슨 생각으로 물었을까. 그리고 감독의 대응을 어떻게 생각했을까. 리 잉감독은 카리야씨의 질문에 왜 대답하지 않았을까. 많은 의문이 떠올랐다. 두 사람의 대화를 보고 있으면, 그다지 의미가 없는 질문이자 대응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장면은 중요한 장면이었다. 영화에서 카리야씨가 등장하는 장면은 이상하게도 조용하다. 앞에서 이야기한 야스쿠니신사의 광경과는 많이 다르다. 그리고 이 대비가 있기에, 영화는 단순한 야스쿠니 비판도, 야스쿠니 찬미도 아닌 다양한 접근이 가능한 작품으로 성립한다.

<야스쿠니>는 올해 상반기 일본영화계를 가장 시끄럽게 만든 작품 중 하나다. 발단은 주간지에서 낸 ‘중국인 감독이 만든 반일영화에 문화청이 조성금을 지원’했다는 기사였다. 이에 보수 국회의원들이 반응하고, 전 국회의원을 대상으로 한 시사회가 열렸다. 그 후 우익단체의 항의로 영화 개봉이 중지되었고, 결국 도쿄 개봉은 당초보다 3주간 늦어졌다. 그 사이 ‘표현의 자유’, ‘군국주의 부활 우려’, 또 ‘프라이버시 침해’, ‘문화청 조성금의 타당성’ 등 많은 문제들이 제기되었다. 그러나 이런 논의는 잠시 제쳐 두고, 나는 영화를 본 감상에 주목하고 싶다. 사전 시사회를 요청한 보수계 국회의원들과 혹은 야스쿠니 부정을 기대했던, 형식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급진주의자들의 감상은 어땠을까. 물론 장면에 따라 화를 내기도, 동조하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영화만 봤을 때, 그렇게 단순한 작품은 아니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가장 흥미로웠던 에피소드가 있다. 8월 15일 야스쿠니신사를 찍은 영상 중에 자칭 미국인이라는 백인 남자가 등장한다. 미국에서 부동산사업을 한다는 그의 한 손에는 ‘코이즈미 총리를 지지합니다’라는 플래카드가, 다른 한 손에는 미국 국기가 들려 있었다. 처음에는 상냥한 미소를 띠며 그에게 다가가 감사의 뜻을 전하고 그가 가져온 광고지를 같이 나눠주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조금씩 그의 주변에 불온한 공기가 떠돌기 시작했다. 선그라스를 쓴 미국 남자 역시 불안한 듯했다. 그리고 영어로 그에게 항의하는 일본인도 서서히 늘어갔다. 곧이어 나타난 경관에 이끌려 미국인은 신사를 뒤로 한다. 생각해 보자. 야스쿠니는 주로 근대 이후 일본의 조정 또는 정부를 위해 전쟁에 나가 전몰한 일본 군인을 모시는 신사다. 이 야스쿠니신사의 제신(祭神) 중 대부분이 태평양전쟁의 전몰자다. 당시 일본의 주요 적군은 미국이었다. 그 미국 국기를 손에 든 자가 60여 년이 지난 지금 야스쿠니에 있다. 그런 그에게 우호적으로 다가가 협력하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다. 미국인에게 호통치는 사람들에 동조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그 모습을 혹시 태평양전쟁의 전몰자가 본다면 어떻게 생각할까. 이 또한 현재 일본이 안고 있는 당혹감의 상징일지도 모른다.
1945년 패전부터 연합국 최고사령관 총사령부의 간접통치와 고도경제성장을 거쳐 20세기 후반 세계 유수의 경제대국이 된 일본. 친서방 진영으로서 보수정당인 자유민주당정권이 냉전기에도 계속되었던 일본. 초강대국 미국과의 협력을 최우선으로 삼아왔던 일본. 그런 일본이 버블경제를 지나 1990년대 이후 앞이 보이지 않는 불안감 속에서 꿈틀거리고 있다. 무엇이 옳은가,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가. 판단기준도, 방향도 모호하다. 야스쿠니의 친미파들을 비웃는 것은 간단하다. 그러나 그들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은 우리 자신의 거울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면 비웃던 얼굴이 굳어버린다.
영화는 밤하늘에서 야스쿠니신사의 전경과 그 뒤로 펼쳐진 도쿄의 모습을 비추며 끝난다. 제2차세계대전의 모습과 겹쳐, 변하지 않는 위용을 자랑하는 야스쿠니신사와 불타버린 들판에서 재생한 듯한 대도시의 거리. 어두컴컴한 신사와 불야성 같은 거리의 불빛. 이 두 모습 사이로 우리들의 일상과 역사가 가로놓인다. 지평선까지 이어지는 도쿄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번역_ 康惠林 인천문화재단 전문위원

주)
1 1945년 8월 15일 정오, 쇼오와(昭和)천황의 종전조서가 라디오로 방송되었다.

 1968년 도쿄생. 니이가타 씨네윈드 부 매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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