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의 위기

  모든 인간적인 것이 몰락의 징후를 보이는 시기에, 그 어느 언저리쯤에 있는 비평의 위기를 언급하는 것은 사실 그렇게 부산을 떨며 이야기할 사안처럼 보이진 않는다. 근대문학을 비롯하여 비평의 주요한 대상이 되었던 다양한 예술현상들이 이미 종언을 맞이하였다는 절망적인 선고들에 비한다면 그에 수반하는 비평의 위기는 오히려 너무 늦게 말해진 건지도 모른다. 이에 더해 비평이 보유하는 사회적 기능이 무언가를 생산하는 수단이 아니라, 생산된 어떤 것에 기생한다는 지겹도록 끈질긴 혐의가 부착된다면 현대의 비평이 겪는 위기는 필연적으로 거쳐야 할 현상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아니 어쩌면 비평은 애초부터 위기가 아닌 적이 없었던 건지도 모른다. 고뇌의 순간에 행해지는 ‘판단(krinein)’이 ‘비평(criticism)’과 ‘위기(crisis)’의 공통된 어원으로 자리한 것이 언어학적 우연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 그러므로 기존의 지배적 담론을 위기상황으로 규정하고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사유하기를 요구하는 비평은 생래적으로 시스템의 중심에서 벗어나 유령처럼 주변부를 배회하는 존재가 되기 마련이다. 어떠한 생산적 활동도 하지 않으면서 시대를 지배하는 시스템에 부정성의 담론을 끊임없이 형성하는 이러한 자들을 사람들이 환영하리라는 상상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비평은 시대를 막론하고 그 자체로 언제나 위기상황에 있다.

  “침체된 문화비평계에 활력을 불어넣고자” 제정된 <플랫폼 문화비평상>이 “탈(脫)중심의 문화비평을 지향”한다는 것은 이런 맥락에서 현대의 비평이 겪는 위기상황에 대한 적확한 진단과 처방으로 보인다. 다르게 사유하기를 금기시하는 시대에 이미 주어진 것의 수용을 거부하고 다시 근원에서부터 새로운 사유를 요구함으로써 지금 여기의 문화비평이 천착해야 할 지점이 어디인지를 정확히 포착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것이 서울의 주변부에 위치해 도시 자체로 탈중심적 지역성을 가지는 인천에서 요구되었다는 것도 특기할 만하다.

  미술, 공연, 음악, 미디어 등 4개 부문에 걸쳐 총 6회 진행된 <플랫폼 문화비평상>의 역대 수상작들은 이렇게 중심에서 벗어나 다르게 사유하기를 통해 산출된 매력적인 결과물들이다. 흥미로운 것은 각각의 수상작들이 서로 다른 갈래의 예술과 문화현상을 통해 사유하지만 특정한 지점에서는 그들의 시선이 서로 교차한다는 점에 있다. 이는 그들의 사유가 근본적인 지점에서 연동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동시에 <플랫폼 문화비평상>이 지향하는 바를 충실히 이행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이하에서는 수상작들의 일부를 개인적으로 정한 몇 가지 기준에 맞추어 간단히 읽어보고 정리해 볼 것이다. 역대 수상작 전부를 언급하지 못하는 것이 아쉽긴 하지만 지면상의 한계와 더불어 주된 관심분야가 아닌 부분의 전문적인 글들에 대한 필자의 역량부족으로 독해에 한계가 있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나마 위안을 주는 것은 여기에 언급할 글들과 언급되지 않은 글들이 모두 클릭 한 번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점이다. 다른 수상작들을 살피고 싶거나, 언급한 수상작들에 대해 행여 오도된 관점이 있다 하더라도 최소한의 수고만으로도 즉각적으로 확인하여 수정할 수 있을 것이다. 디지털 시대에 웹진이 가지는 가장 큰 장점을 활용하지 않는 것도 이상한 일이다.

그들이 말하게 하라

  누구나 자신에 대해 이야기할 권리를 가진다. 하지만 그 권리가 시스템 속에서 제대로 작동하는지 여부는 전혀 다른 문제다. 소통에 있어 가끔 후자의 문제는 생략되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순수한 소통을 행한다고 착각하지만 그 상당수는 이미 가공되어 오염된 소리를 듣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박병규는「히키코모리, 우로보로스가 되다」를 통해 평범한 공동체의 구성원이 어느 순간 타자로 전환되는 과정을 지적한다. 현대에 나타난 새로운 인간상인 ‘히키코모리’는 모든 것을 물화시키는 자본의 압력에 지쳐 소통의 꿈을 깨끗이 포기한 상태의 사람들을 의미한다. 그들은 누구의 접촉도 요하지 않는 다락방에 자신을 유폐한다. 그들은 소통 없이도 그 안에서 평온하다. 욕망이 부재한 자에게 불만이란 애초부터 있을 수 없는 것이다. 문제는 이들의 존재가 소통이라는 불가능한 욕망을 꿈꾸는 다수의 사람들을 자극한다는 점에 있다. 소통을 하지 않고도 평온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은 역으로 소통이 꼭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와 동일하다. 때문에 사람들은 단지 자신들과는 다른 소통의 기준을 가진 것에 불과한 ‘히키코모리’를 이해할 수 없는 존재로 조롱하고 때론 동정함으로써 그들을 공동체에서 분리해 타자화한다. 사실은 아무런 문제도 가지지 않는 히키코모리들은 그들을 문제화하고 싶은 사람들의 독단적 기준에 의해 문제적 인물로 전환된다. 타자가 생산되는 원인은 타자에 내재하는 것이 아니라 타자를 생성해내고 싶은 자들의 굴절된 욕망인 것이다.

  해방 후 기지촌 여성들이 겪은 수난의 역사를 담은 연극 <일곱집매> 에 대한 이주영의「왜곡된 역사, 기록의 윤리」또한 위의 비평과 유사한 층위의 문제의식을 가진다. 제국주의와 전쟁은 해당지의 여성의 몸에 갖가지 방식으로 깊은 상흔을 새겨 놓는다. 그녀들은 제국이라는 거시적인 적과 음지에서 그들에 가려진 채 자신들을 매춘의 길로 몰았던 가족들 사이에서 생성된 이중의 억압을 부여안고 살아간다. 그리고 다시 문제는 그녀들의 삶을 기록하고 재현하려는 사람들이 등장하는 순간에 발생한다. 자신의 의견을 전달할 수단을 가지지 못한 하위주체에 대한 연민을 가진 이 현명한 기록자들은 그녀들의 지난 삶을 양지에 드러내기를 희망한다. 수난을 겪은 여성의 몸이 대문자 역사 속에서 개인이 겪는 고난을 기술하는데 적합한 소재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는 그들은 동시에, 그녀들의 굴곡진 삶이 불가항력에 의한 것으로서 결코 수치스러운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입증하려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기록이 과연 기록의 윤리에 위배되지 않는 정당한 것인가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스스로 말하지 못하는 자를 대신하여 재현하려는 지식인의 태도는 관찰자의 관찰행위 자체가 대상에 효과기로 작용하는 양자측정과 같아 어떠한 방식으로든 왜곡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위의 비평들과 동일한 맥락에서 남웅의「동성애자 에이즈 재현에 관한 논의-에이즈위기부터 오늘의 한국사회까지」는 공동체 내부의 소수자, 그 중에서도 더욱 특별한 소수자인 에이즈 양성보균자들을 대상으로 공동체 안의 타자들이 어떤 방식으로 재현되는지에 대해 세밀하게 분할하여 논증한다. 초기의 에이즈 환자들이 재현되는 방식은 ‘히키코모리’들이 타자화되는 방식과 동일하다. 애초에 동성애는 타자의 것이므로 그로 인한 질병도 타자의 것임은 분명하다. 그러므로 최초의 재현은 그들의 기괴하게 변형된 신체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이러한 “저널리즘적 재현”은 에이즈 환자들이 공동체의 취약계층이라는 것을 이미지화함으로써 그들을 타자화 시키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기지촌 여성의 기록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그들을 이해하는(또는 이해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 또한 곧 등장하기 마련이다. 대체로 사려 깊은 이들은 에이즈 환자들이 공동체 내부의 타자가 아니라 우리와 동일한 층위에 자리한 사람으로서 단지 운이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이러한 “휴머니즘적 재현”은 주로 가족에 둘러싸인 환자의 모습을 재현하는 형태로 나타난다. 하지만 상술한 바와 같이 이러한 재현이 그들 자신의 목소리가 아님은 또한 명백하다. 동정심이란 편견과 다를 바 없는 또 다른 타자화의 수단과 다르지 않은 것이다. 그렇게 해서 나타난 재현의 방식이 바로 감염자 스스로가 자신을 재현하는 것이다. 어떤 감염인들은 이제 편견이나 동정심에 기대지 않고 질병당사자로서 스스로를 노출하는 방식으로 자기 자신을 재현한다.

  물론 이러한 재현이 타인이 가지는 혐오나 동정심과 같은 편견을 해소할 수 있으리라는 실질적인 보증은 없다. 다만 이러한 선택이 그들로 하여금 재현의 대상이 아니라 재현의 주체로서 그들 스스로 말하게 한다는 점에서 더욱 윤리적이라는 것은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진화하는 형식

  비평에 대하여 대중에게 가장 광범위하게 퍼진 오해 중 하나는 비평이 개별적 예술작품이나 문화현상에 담긴 전언을 해독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라 생각하는 데 있다. 하지만 작품의 내용이나 현상에 대한 피상적인 관찰수준에서 단순히 내부의 전언을 감상자들에게 전달하는 자를 좋은 비평가라고 하긴 어려운 일이다. 현대적 의미에서 좋은 비평은 바르트가 지적한 바와 같이 내용의 독해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전언이 담긴 형식이 궁극적으로 어떻게 생성되어졌는가를 탐색하는 것에 있다. 전언이 의식 속에서 성립하여 비교적 그 기원이 명료하게 파악될 수 있는 것이라면, 형식이란 서로 다른 정치적 욕망들이 무의식 속에서 상보적으로 작용하여 생성된 복잡한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형식에 의문을 품지 않고 주어진 것으로 간주함으로써 전언에 몰두하는 자는 근원에서 사고하지 않는다는 말과 같다.

  이민희의 「무키무키만만수와 새로운 시대의 민중가요, 그 둘 모두의 탄생」은 이전의 시대에 저항하며 투쟁하는 사람들의 든든한 동지가 되어왔던 민중가요의 형식이 지금에 이르러 어떻게 변화되었는지를 주의 깊게 탐색한다. 철권의 독재자가 지휘하던 가혹한 정치적 억압의 시기의 민중가요는 그 내부에 다른 화음을 결코 허용하지 않는다. 힘을 모아 상대해도 버거운 민중의 적 앞에서 무심코 새어나오는 다른 소리는 적전분열을 꾀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그 시기의 민중가요는 전선을 명료하게 인식하고 있는 소수에 의해 만들어진 후 민중에 대량으로 분배되어야 했다. 그것이 개개인의 목적과 취향에 맞는 것인지 살피는 것은 불필요하다. 정의가 실현되는 순간에 미적 취향을 따지는 것은 그리 가치 있는 일처럼 보이진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형식적 민주주의의 완성은 이런 이분법적인 진영대립을 해체시킨다. 이와 함께 정치적 문제로 일원화되었던 것들 또한 점차 각 계층 사이의 다양한 문제들로 분화된다. 이런 과정에서 민중가요의 형식이 진화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이전까지 ‘구국의 강철대오’라는 명분하에 동일성의 폭력에 매몰되었던 각 소수자들은 이제 자신 고유의 방언으로 스스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자신의 목소리를 찾은 그들에게 집회현장은 이제 투쟁과 동시에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축제가 된다. 거리를 점유하는 새로운 시대의 민중가요가 탄생하는 순간이다.

  이정희의 「누난 너무 이뻐-아이돌에 빠지는 누님들」은 연상의 여인을 찬양하는 젊고 귀여운 남성 아이돌의 등장과 그들에 열광하는 소위 ‘이모팬’들에 대해 진단한다. 가족의 성공을 위해 자신들의 삶을 포기한 어머니들의 반작용으로 등장한 골드미스 세대는 반전된 성취 욕구를 위해 그녀 자신을 제외한 다른 것들을 그들의 삶에서 배제시킨다. 하지만 진화적 욕망에 따른 번식의 본능은 반드시 인생의 어느 순간에 그녀들에게 내재된 원초적인 모성성을 작동시키게 한다. 문제는 부재하는 가정에 대한 모성의 발현이 원초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점에 있다. 하지만 무엇을 걱정할 것인가. 돈 앞에선 불가능이 없는 자본의 명민한 후각은 그녀들의 불가능한 욕망을 손쉽게 접수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바로 그녀들을 직접적으로 누나라 부르는 젊은 미남들의 모임이다. 그러므로 이들은 이전의 가수와 팬의 관계가 가지는 양상과는 전혀 다르다. 이전의 가수들이 노래를 중심으로 팬과의 거리에서 균형을 잡았다면 이들은 노래가 아닌 사람과 사람이 직접적으로 관계를 가지는 의사가족의 형태를 가진다. 자신을 누나라고 부르는 가수 앞에서 팬은 단순히 가수의 노래를 감상하는 청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가수를 직접적으로 관리 감독하는 가상의 보호자가 되며 그녀의 모성을 소비한다. 물론 그 과정에 가끔은 과다할 정도의 양육비가 지출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자신이 쇼의 진행자가 되어 프로그램의 서사를 지배하고 싶다는 시청자의 욕망을 진단한 졸고,「디지털 시대의 콜로세움-리얼리티 프로그램의 진화」또한 작금에 성행하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만들어낸 형식의 근원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찰한다. 정보처리 기술이 미숙하던 시대의 방송은 평균적 대중의 의사를 추정하여 그들을 만족시키는 선형적 서사를 가진 프로그램이 주종을 이룬다. 온전히 프로듀서가 지배하는 서사의 진행에서 대중은 소외감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기술의 발달은 대중이 방송에 참여하는 형식을 변형시킨다. 실시간 쌍방향으로 전달되는 대중의 의견은 시청자들로 하여금 그들이 더 이상 서사의 관찰자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서사에 영향을 미치는 효과자로 자리매김하게 한다. 시청자는 자신의 선택에 의해 서바이벌 참가자들에게 표를 주거나 주지 않음으로써 프로그램의 서사에 자신의 영향력을 행사한다. 자신의 의견이 프로그램에 반영되는 과정에서 시청자들은 자신의 권력이 미디어 세상에 실존한다는 것을 체감한다.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까닭이다.

진단과 개입

  심층에서 상호 충돌하는 욕망들의 탐색을 통해 형식의 분석이 완료되었다면 그를 바탕으로 그러한 형식을 만들어낸 현실에 개입하여 현실을 개선시키려는 노력 또한 비평이 수행해야 할 정당한 몫이다. 비평행위는 현상과 감상자사이에 단순한 정보 전달의 매개자 역할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자신의 사유를 전개하고 끊임없이 그를 실천하는 행위인 것이다.

  김홍기는「다원예술에 온전히 침묵하기 위하여」를 통해 2000년대 이후 예술 현장이 아닌 정책집단에서 유래한 이른바 ‘다원예술’이라는 문제적인 개념에 대해 비판한다. 정책집단이 내세우는 개념의 정의를 따를 때 ‘다원예술’은 예술이 기존의 장르와 특정한 방식으로 대결을 수행함으로써 탈장르. 복합장르 또는 새로운 장르의 예술로 파악된다. 하지만 이러한 정의는 2000년대 이전에도 수없이 행해진 탈장르적 또는 협업을 통한 복합장르적 예술행위들을 무가치한 행위로 축소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 정책집단은 한국적 관점과 세계적 관점의 분리를 통해 극복하려 하나, 판단의 이중기준은 하나의 모순을 두 개의 모순으로 늘린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모순점에도 불구하고 왜 다원예술이라는 개념은 끈질기게 살아남는가? 그것은 다원예술이라는 단어가 애초에 정책의 편의를 위한 범주화에 최적화된 용어라는 점에 있다. 그럼으로써 다원예술은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것 또는 감당할 수 없는 것을 다원예술이라는 모호한 개념 속으로 포괄한다. 동시에 다원예술에 포섭된 소수자들은 일탈자가 보유하는 특유의 에너지를 상실하고 제도에 포획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를 개선하기 위한 진지한 비평적 실천은 다원예술이라는 불가능한 개념에 대해 침묵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근욱 또한 “도시의 비극적 성장을 보완하는 효과적인 장치로서” ‘공공미술’이라는 개념이 정책집단에 의해 오염될 때 어떠한 현상이 나타나는지를「풍경의 미술, 랜드마크에서 마인드 마크로」를 통해 진단한다. 태초에 풍경은 인간에게 감상의 대상이 아니라 경외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기술의 발전은 어느새 인간으로 하여금 두려움을 잊게 하였고 공포의 지위에서 추락한 자연은 인간에게 풍경으로 재발견되기에 이른다. 풍경이 된 자연은 어느새 인간의 친구가 되어 도시의 삭막함을 보완하는 ‘공공미술’로 전화한다. 문제는 이러한 공공미술이라는 개념이 정책집단에 의해 전유되는 순간이다. 예술성의 논리가 아닌 효율성의 논리가 지배하는 정책집단을 통해 공공미술은 필연적으로 전시적 효과를 중시하게 되고 이는 전언보다 그 크기를 강조하는 스펙터클의 형식을 가지게 된다. 그럼으로써 공공미술은 더 이상 미술작품이 아니라 랜드마크의 성질을 가지게 됨으로써 전도된 가치를 부여받는다. 그러므로 공공미술이 지향해야 할 것은 전언이 부재하는 스펙터클이 아니라 사람의 삶 속으로 직접 작용하는 마인드마크여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김우필 또한「너무나 무겁거나 혹은 가벼운 책읽기의 강요-EBS 책 읽어주는 라디오」를 통해 정책집단이 생성해낸 무가치한 문화적 병리현상을 절개하고 진단한다. 성인들의 평생교육이라는 근대적 계몽주의 사고에서 출발한 ‘책 읽어주는 라디오’는 보는 것으로서의 책을 듣는 것으로의 전환을 시도했지만 철저한 실패를 겪는다. 이는 보는 책에서 듣는 책으로의 전환이라는 것이 소설이 영화로 전환되는 것처럼 원천 텍스트에 대한 어떤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다준 것이 아니라, 하나의 동일한 소스를 시각에서 청각으로 전환하는 것에 불과한 단순한 트랜스미디어 현상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하나의 소스를 다양한 미디어에서 구현한다는 트랜스미디어는 그 기저에 이윤이 되는 것이라면 지속적으로 우려낸다는 자본의 논리를 따르기 마련이다. 때문에 본디 계몽적 사고에서 출발한 이 프로그램은 다시 유명작가의 책을 선별하여 읽어주는 상업성의 표지를 따르게 된다. 그리고 계몽과 상업이라는 상충된 두 이념의 어설픈 결합은 독서라는 비판적 행위의 주체인 독자를 유명작가를 따라다니는 팬덤으로 전락시킴으로써 방송의 소비자들을 비판이 거세된 들러리로 전환시킨다. 그러므로 공익을 위해 방송이 먼저 수행해야 할 것은 청취자들을 수동적으로 행위하는 존재로 여기는 책읽기의 강요가 아니라 적극적 행위자로서의 글쓰기여야 한다는 것이 이 평문의 핵심적인 내용이다.

플랫폼 문화비평상의 부활을 꿈꾸며

  <플랫폼 문화비평상>은 2008년 제 1회를 시작으로 2013년 제 6회에 이르기까지 모두 스무 편의 수상작과 새로운 문화비평가들을 탄생시켰다. 스무 편의 수상작들은 각각의 평문이 내포하고 있는 고유의 주장과 함께 존재 그 자체로서 현대의 문화비평이 겪는 위기에 대한 귀중한 반론의 형식을 가진다. 이들의 비평을 통해 현실 속에서 은폐되었거나 삭제된 무언가가 구제되며 그로 인해 당연한 것으로만 여겨졌던 피상적인 현실이 재구성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들의 평문을 충실히 독해한다면 서두에 언급한 비평이 받는 오해의 상당수는 아마도 저절로 해명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분발에도 불구하고 <플랫폼 문화비평상>은 예산상의 문제로 6회를 마지막으로 잠정적으로 중단되어 있는 형편이다. 현실이 위기에 처할 때야말로 오히려 현실의 모순을 직시하는 비평이 적극적으로 요청되는 순간이라는 것을 고려한다면 안타까운 정황이 아닐 수 없다. <플랫폼 문화비평상>이 한시라도 빨리 정상화되어 근원에서부터 사유하는 새로운 문화비평가들을 맞이할 수 있게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해 본다.

1) 박병규.「히키코모리, 우로보로스가 되다」(사카테 요지 작·연출, <다락방>) 2009. 제 2회 공연비평 수상작 http://platform.ifac.or.kr/webzine/view.php?cat=&sq=604&page=&mod=last&Q=3&S=%C8%F7%C5%B0%C4%DA%B8%F0%B8%AE&sort=
2) 이주영.「왜곡된 역사, 기록의 윤리」(<일곱집매>)  2013. 제 6회 공연비평 수상작 http://platform.ifac.or.kr/webzine/view.php?cat=&sq=1176&page=&mod=last&Q=2&S=%C0%CC%C1%D6%BF%B5&sort=
3) 남웅.「동성애자 에이즈 재현에 대한 논의-에이즈위기부터 오늘의 한국사회까지」2011. 제 4회 미술비평 수상작 http://platform.ifac.or.kr/webzine/view.php?cat=&sq=908&page=1&Q=w_no&S=31&sort=
4) 이민희. 「무키무키만만수와 새로운 시대의 민중가요, 그 둘 모두의 탄생」2012 제 5회 음악비평 수상작 http://platform.ifac.or.kr/webzine/view.php?cat=&sq=1046&page=&mod=last&Q=2&S=%C0%CC%B9%CE%C8%F1&sort=
5) 이정희. 「누난 너무 이뻐-아이돌에 빠지는 누님들」2008 제1회 미디어비평 수상작 http://platform.ifac.or.kr/webzine/view.php?cat=&sq=420&page=2&mod=last&Q=2&S=%C0%CC%C1%A4%C8%F1&sort=
6) 김대현.  「디지털시대의 콜로세움-리얼리티 프로그램의 진화」2011 제4회 미디어비평 수상작 http://platform.ifac.or.kr/webzine/view.php?cat=&sq=905&page=5&mod=last&Q=1&S=%B5%F0%C1%F6%C5%D0&sort=
7) 김홍기. 「다원예술에 온전히 침묵하기 위하여」.2012 제5회 미술비평 수상작. http://platform.ifac.or.kr/webzine/view.php?cat=&sq=1045&page=&mod=last&Q=1&S=%B4%D9%BF%F8%BF%B9%BC%FA&sort=
8) 이근욱. 「풍경의 미술, 랜드마크에서 마인드마크로」.2013 제6회 미술비평 수상작 http://platform.ifac.or.kr/webzine/view.php?cat=&sq=1174&page=&mod=last&Q=1&S=%B0%F8%B0%F8%B9%CC%BC%FA&sort=
9) 김우필. 「너무나 무겁거나 혹은 가벼운 책읽기의 강요-EBS 책 읽어주는 라디오」2013 제 6회 미디어비평 수상작 http://platform.ifac.or.kr/webzine/view.php?cat=&sq=1177&page=&mod=last&Q=1&S=%B6%F3%B5%F0%BF%C0&so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