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포시장은 내게 고향과 같은 곳이다. 국민학교라 불리던 시절, 학교를 다닐 때 어머니 손을 잡고 그곳을 찾곤 했다. 미군부대에서 나온 M&M초콜릿과 식빵에 발라 먹는 땅콩버터가 너무 먹고 싶었지만 그냥 구경만 할 수밖에 없던 가슴 아픈 추억이 남아있는 곳이기도 하다. 고등학교 무렵부터는 칼국수 골목과 튀김집을 드나들었고, 이따금 신포 우리만두에서 만두를 사먹고, 대성제과점에서 미팅을 했었다. 대학 때는 서울 사는 친구들을 불러 시장의 좌판에서 홍합 국물에 소주잔을 기울이던가 아니면 신포순대를 썰어 놓고 소주를 마셨다. 신포동에만 나가면 고등학교 때 그립던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고, 초등학교 시절 얼굴 예뻤던 여자아이들이 대학생이 되어 거리를 활보하고 다녔다.

그런데 대학원에 진학하고 주된 활동 근거지가 서울이 된 이후 가끔 찾는 신포동은 예전의 신포동이 아니었다. 나 또한 주안역 근처나 인하대 후문, 혹은 부평 사는 친구들과 어울릴 때는 부평시장 근처, 나중에는 구월동에서 모임이 부쩍 많아졌다. 신포동으로 나갈 일은 점차 줄었다. 내 발걸음이 뜸해서 그런 건 아니었겠지만 신포동은 쇠락에 쇠락을 거듭했다. 신포시장 역시 대형마트가 활개치고 주변 인구가 줄면서 그렇고 그런 작은 시장으로 전락했다. 칼국수 골목은 을씨년스런 도시의 뒷골목으로 변했다. 유명브랜드의 옷가게는 썰물처럼 빠져나갔고 자주 드나들던 커피숍은 빈 점포가 되었다. 그런 신포동 거리를 걸을 때마다 이제는 나이가 들어 주름만 늘어나고 고왔던 젊은 시절의 자태를 잃어가는 어머니를 보는 것 같은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몇 년 전 직장을 신포동 근처로 옮기고부터 출근길이 즐거워졌다. 비록 옛날의 젊고 아름다운 어머니는 아니지만 어머니는 언제나 우리의 어머니일 수밖에 없듯이 신포동은 내게 늘 신포동일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출근길이 고향을 찾는 길이었으므로 신포동 시장통을 걷는 것은 항상 가슴 설레는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복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고향을 떠나지 않고 평생을 이곳 인천에서 살아가면서 직장마저 어린 시절 뛰놀던 신포동에 있으니 항상 옛 추억을 손에 간직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랬던 신포시장이 조금씩 살아나는 걸 확연히 느끼게 된다. 주말이면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건 이제 예사로운 일이 되었다. 신포 닭 강정을 비롯해 시장통을 따라 늘어선 가게들마다 사람들로 와글거린다. 반가운 일이다. 그런데 그런 시장통 한구석에 내가 자주 찾는 좌판 술집이 있다. 술집으로서는 이름이 어색한 ‘정식당’이 그곳이다. 그런데 여기에서는 이름과 달리 밥을 팔지는 않는다. 순대와 머리고기, 빈대떡과 전, 두부부침이나 두부데침 같은 술안주만 판다. 값도 싸서 대부분 안주는 오천 원을 넘지 않는다. 시장통에 좌판을 놓고 거기에서 음식을 만든다. 좌판 안쪽으로 테이블이 세 개쯤 놓인 작은 홀이 따로 있다. 그렇지만 정식당은 뭐니 뭐니 해도 좌판에서 술을 마시는 게 제격이다.

봄볕이 따스하고 노곤한 날 퇴근길에 정식당 좌판에 앉아 출출한 배를 달래려 순대와 전을 시키면 아주머니는 내가 보는 앞에서 순대를 썰어 좌판 탁자 위에 놓아주신다. 그리고는 생선전이며 호박전, 동그랑땡을 구워낸다. 정식당은 손님이 안주를 주문하면 그때부터 만들어내기 때문에 시간이 지난 안주를 다시 데워내는 경우가 없다. 동태 살을 얇게 썬 것에 밀가루를 바르고 달걀 푼 물에 담갔다 프라이팬에 옮기면 기분 좋은 소리를 내며 동태전이 익어간다. 다음엔 돼지고기를 갈아 파와 당근, 밀가루, 그리고 달걀을 풀어 버무린 동그랑땡을 프라이팬에 먹기 좋은 크기로 조금씩 덜어낸다. 동그랑땡이 기름을 두른 프라이팬에서 지글지글 익어가는 것을 보는 재미는 오로지 정식당에서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명절 전날 어머님 곁에서 익어가는 전을 앗 뜨거 하면서 손으로 날름날름 주워 먹던 추억을 정식당에서는 느끼게 만드는 것이다.

넓적한 프라이팬에서 노릇노릇 익어가는 전을 바라보며 순대에 약주를 따라 마신다. 내가 정식당을 애용하는 이유가 바로 이 약주 때문이기도 하다. 다른 곳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김포 약주를 이곳에서 팔고 있다. 달콤해서 목 넘김이 좋은 약주는 예전부터 내가 좋아하는 술이었다. 어릴 때는 늘 이 약주를 제사용 술로 사용했었다. 약주를 마실 때마다 달콤해서 어른들께 재미 삼아 받아마시던 추억이 새록새록 솟아난다. 그래서인지 대학 때도 약주를 파는 곳이 있으면 다른 술보다 약주를 먼저 시키곤 했었다.

순대를 안주 삼아 술이 몇 잔 들어가면 프라이팬에서 갓 구워낸 전들이 좌판 위에 오른다. 맛이 없다면 이상하다. 전들은 술을 부르고 좀 부족하다 싶으면 두부부침을 시킨다. 정식당 두부부침은 노릇노릇 적당하게 부쳐져서 그 부드럽고 고소한 두부 특유의 맛을 잘 살려낸다는 점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너무 살짝 부치면 물기가 많아 맛이 없고 너무 바싹 부쳐도 딱딱해져서 두부 특유의 부드러움이 없어진다. 정식당의 두부부침은 그 담백함과 고소함, 부드러움이 어우러져 저절로 손이 가게 만든다.

좌판이 주는 매력은 혼자이거나 친구와 함께이거나 부담이 없다는 점에 있다. 때로는 옆에 앉아 있는 낯선 이가 친구가 되기도 한다. 술을 마시다 입이 텁텁해지면 옆의 과일가게에서 제철 과일을 사서 아주머니에게 깎아달라고 하면 그 또한 불만 없이 깎아주신다. 옆 사람과도 나눠먹고 주인아주머니와도 과일을 나눠먹는 즐거움이 있다.

그렇지만 불만이 없는 건 아니다. 가끔 술안주로 라면이 먹고 싶어 끓여 달라 하면 다른 요구는 들어줘도 그건 안 들어주신다. 저녁때는 바쁘니 점심때 오면 끓여준다고 하지만 직장에 매인 몸이 낮술을 마시기는 어려운 일이다. 정식당은 정작 밥은 팔지 않아도 낮부터 술손님이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아마도 연세 지긋한 어르신들이 소일거리 삼아 낮술을 즐기시는 것 같다. 술을 팔면서도 아홉시만 되면 문을 닫는 것도 그런 이유가 크다. 저녁 늦게까지 손님을 받아야 할 이유가 없는 시장 통의 좌판 술집이니 이치를 따져보면 그도 그럴 법하다. 퇴근길에 한 잔 걸치기 좋은 곳, 시장의 인심이 여전히 살아있는 곳, 어린 시절 신포동의 추억이 그대로 묻어나는 곳, 정식당을 내가 즐겨 찾는 이유이다.

이제 봄이다. 좌판으로 나가 다시 술을 마실 수 있는 계절이 오고 있다(겨울에는 날씨 탓에 홀에서만 손님을 받는다). 올 봄에는 아주머니에게 라면을 끓여달라고 다시 졸라봐야겠다. 과일가게에서 딸기라도 사서 들이 밀면 혹시 들어주실까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