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평등은 뜨거운 감자이자 짚고 넘어가야 할 현안이다. 그것을 감내하고 용인하기는 어렵다. 이러한 불평등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차별이 존재하는, 평등하지 않은 상태를 묘사한다. 사람들은 왜 차별과 불평등함을 느낄까. 우선 차별과 불평등의 인지에 전제가 되는 것이 있다. ‘동일성’이다. ‘왜 내가 옆 사람보다 적은 임금을 받아야만 하는가?’의 문제의식이 차별과 불평등의 인지라면, 그 전제조건으로 내가 한 일과 옆 사람이 한 일이 사실은 동일하다는 인식이 있어야 한다. 내가 한 일과 옆 사람이 한 일이 동일함에도 내가 100원을 받고 옆 사람이 200원을 받으면 불평등한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그리고 그 상황 속에서 나는 경제적으로 차별받고 있다.

동일성과 평등, 그리고 불평등이라는 관념들은 노동이라는 ‘경제적’ 영역에서만 작동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그 관념들은 ‘정치적·사회적’ 영역으로 확장될 수 있다. 그러니까 모두 다 동일한 인간들인데 왜 유색인들과 여성들, 그리고 특정 지역 출신사람들만이 정부로부터 정치적으로 혹은 사회적으로 다른 대우를 받는가 하는 따위의 문제의식으로 발전될 수 있다. 즉 백인 남성인 나와 흑인인 그, 백인인 그녀가 모두 정치적·사회적으로 동일한 인간이라는 인식이 있고, 그러한 인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다른 대우를 받는 경우 정치적·사회적 불평등 개념이 성립될 수 있다. 이런 개념은 지금에야 당연해 보이지만 역사를 돌이켜 보면 항상 그래왔던 것은 아니다. 16세기의 유럽에서 사람들은 흑인들과 (인디언이라 불리는)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인간’인지에 대해 이견들을 가졌다. 흑인들과 아메리카 원주민들을 인간으로 보지 않았던 사람들은 그들을 유럽의 백인들과 달리 대우해도 불평등한 상황이 발생했다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음악의 영역에서도 이렇게 경제적 불평등과 정치적·사회적 불평등이 존재할까. 우선 사회적 불평등을 생각해보자. 세계 최고의 오케스트라 중 하나인 비엔나 필하모니 오케스트라는 한때 여성 단원들을 받지 않았었다. 지금은 그런 불문율이 사라졌지만, 이것은 분명 오케스트라라는 직장의 구인 시장에 명백히 존재했던 사회적 차별이었다. 20세기 중반 이전까지만 해도 유럽과 미국의 유명 오케스트라라는 구인 시장에서 이런 사회적 불평등을 느낄 수 있었던 사람들은 아마 여성들과 유대인들뿐이었을 것이다. 지금은 아시아인들과 흑인들이 이런 불평등을 느끼기 시작할 것이다.

아시아인들, 특히 일본인들과 한국인들은 최근 눈부신 기량의 진전을 보였다. 그럼에도 이들이 세계 오케스트라 시장에서 차별을 받는다면 이유가 있을 것이다. 오케스트라 단원이 되기 위해서는 오디션을 보아야 하는데, 음악에서의 오디션은 다른 분야에서의 시험과 달리 명시적이며 객관적인 평가기준이 없이 치러지는 경우가 많다. 많은 독자들은 김연아 선수를 통해 피겨라는 경기의 세계대회에서 나름의 평가항목과 기준이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종 승복할 수 없는 경기결과가 있다는 것을 목격했을 것이다. 음악에서는 피겨 경기대회에서조차 확인되는 배점항목들, 점수산정의 기준들이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런 상황은 실력 있는 아시아인들과 흑인들이 유명 오케스트라 단원이 되는 데에 분명 우호적이지 않아 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흑백을 불문하고 기량만으로 축구 대표팀을 구성한다면, 분명 결과가 좋을 것이다. 축구 경기는 이기고 지는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베를린 필 오케스트라가 비엔나 필 하모니 오케스트라보다 더 훌륭한 연주를 하는지는 분명한 것이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유명 오케스트라의 단원들이 실력만으로 뽑히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해도 전혀 틀린 것이 아니다.

이런 상황은 선진국의 오케스트라 구인 시장에서의 사회적 불평등만을 초래하지 않는다. 국내로 시야를 돌려보자. 여기서 필자의 개인적 경험을 이야기해본다. 필자가 아는 한 대학 후배는 서울의 유명 교향악단의 단원으로 활동 중이다. 필자가 평가하기에 그의 연주 실력은 사실 대단하지 않았었다. 그는 대학 졸업 직전에도 충분한 연습을 하지 않았고, 편한 마음을 가지고 살았다. 그렇게 편안한 삶을 살던 그에게 나는 다분히 조롱 섞인 질문을 했던 기억이 있다. “졸업하고 뭘 할 거니?” 그가 했던 다음과 같은 답변이 지금까지도 기억난다. “우리 어머니가 모 교향악단 단원인데, 몇 년 후 퇴임하시면 그 자리에 내가 들어갈 수 있어요.” 이 교향악단은 기악연주자들의 꿈의 직장 중 하나이다. 지금도 25년 전의 상황과 같은지 궁금하다.

오케스트라가 아니더라도, 오디션과 연주를 통해 실력과 능력을 확인받는 곳이 음악계다. 오디션과 연주에서 객관적이며 명시적인 점수 항목들과 그 항목들에서 작동하는, 높고 낮은 점수를 차별적으로 산정하게 해주는 기준들이 없다는 것은 불평등한 상황이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점수 항목들과 산정 기준들이 명시화되지 않는다는 것은 좋은 연주의 상像에 대해 개인적으로 예측하기 어렵고, 그래서 좋은 연주를 준비하기 어려우며, 좋은 연주에 대한 대강의 공감대가 없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결과에 대해 이의제기를 하더라도 수긍할 만한 답변을 줄 수 없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이의제기가 무력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구조적으로 발생될 수밖에 없다. 구인 시장에서 불평등을 막기 위한 가장 중요한 조치가 구직 과정의 투명성이 아닐까? 결과에 대한 이의제기가 자유롭게 개진되고, 그에 대해 심사위원들이 설득력 있는 답변을 반드시 하도록 강제하는 것을 통해 심사위원들의 주관적 전횡과 담합이 견제될 수 있지 않을까?

매년 가을과 겨울에 필자는 필자가 소속되어 있는 안동대와 그 밖의 여러 대학교에 가서 입시 채점을 한다. 이것은 수십 명의 입시생들 중 누구를 불합격시키고 누구를 합격시킬지를 결정하는 중요한 일이다. 십 년째 이 일을 하지만 필자와 같이 채점을 하는 교수님들 누구도 상술한 배점항목들과 점수산정의 기준들을 명시적으로 가지고 있지 않은 채 채점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다른 과 교수님들의 경우도 거의 같다. (이 점에 대해서는 필자가 지도했고 안동대학교 음악과 대학원생이었던 권진영의 석사학위청구논문 「한국 음악대학 교수들의 입시 곡 채점에 관한 인식 연구」를 참조할 것.)

교육부는 이러한 상황을 오히려 장려한다. 그 이유는 놀랍게도 음악계에서 끊이질 않는 입시부정 때문이란다. 담합을 피하기 위해서 채점교수들은 사전에 어떤 대화도 하지 않도록 주문받는다. 이런 상황이 배점항목들과 점수산정의 기준들을 명시화하지 않은 채로 채점해야 하는 상황이 된다. 하지만 담합을 할 마음을 먹는다면 배점 항목들과 점수 산정 기준들이 있는 경우보다는 없는 경우가 훨씬 유리하다. 특히 심사위원들 중 적지 않은 교수들이 불법적으로 공공연하게 입시레슨을 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자신의 제자를 확인하여 고득점을 부여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이 상황은 다시 새로운 불평등을 야기한다. 입시생들 중에서 대학교수에게 고액의 개인레슨을 받는 학생들이 대학에 합격할 가능성이 높다는 불평등말이다.

사실 어떤 연주의 공정한 평가를 위한 배점항목들과 점수산정의 기준들을 만들어서 명시화하라고 한다면,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예술(?)’이라고 불리는 음악을 평가해서 석차를 매기는 것부터가 잘못된 일일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궁극적이며 철학적인 차원에서 그렇고, 현실에서는 이론적으로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이 일은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이다. 가장 큰 이유는 음악가들, 특히 한국의 음악대학 교수들이 그것들을 만들어낼 능력과 의지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한국의 음악대학 교수들에게 물어보라. 그들이 어떤 연주를 평가하는 이론적 틀과 그에 따른 정량적 평가항목들을 가지고 있는지, 그것을 조리 있게 말할 수 있는지 확인해보라. 필자가 보기엔 대부분의 교수들에게 그런 능력이 결여되어 있다. 그런 능력은 음악을 ‘학문적’으로 연구한 사람들이 가질 수 있다. 어떤 연주의 현상학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그것을 적당한 단어들을 통해 묘사하는 능력, 그 단어들을 꿰어서 논리적으로 문장을 만들어내는 능력. 문장들을 엮어서 논지가 있는 담론을 만들어내는 능력을 한국의 연주가들은 대부분 가지고 있지 않아 보인다. 그들은 그런 이론적 능력을 키우도록 교육받지 않았으며, 자신들의 제자들도 그렇게 교육시키지 않는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에도 좋은 연주와 좋지 않은 연주에 대한 논리적 담론을 펼칠 수 있는 연주자들이 한국에는 매우 적다.

지금까지 음악의 영역에서 확인되는 사회적 불평등에 대해 이야기해보았다. 이제 경제적 불평등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이 교향악단(오케스트라)의 비정규직 단원들의 처우 문제일 것 같다. 오늘날 한국의 대부분의 교향악단 단원들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구분되어 있다. 마치 오늘날 한국의 경제적 상황을 빼닮은 것 같다. 비정규직 단원들이 정규직 단원들과 같거나 유사한, 혹은 더 나은 음악적 능력을 발휘함에도 그들이 더 적은 임금을 받는다면 이 경우는 경제적으로 불평등한 상태이다. 사실 많은 국내의 교향악단들은 이렇게 불평등한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음악계에서 ‘엑스트라’라고 불리는 비정규직 연주자들이 급히 꾸려져 연주회가 조직된다. 엑스트라 연주자들의 임금은 높지 않으며 해당 연주회가 끝나면 그들은 다시 비고용 상태에 처하게 된다. 엄밀히 말하면 엑스트라 연주자들은 비정규직이기보다는 일용직에 더 걸맞아 보인다.

그렇다면 모든 교향악단이 정규직 단원들로만 구성되어야 할까. 모든 단원들을 평등하게 대우해야 할까. 그렇게 되려면 모든 교향악단이 충분한 예산을 확보하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모든 교향악단이 스스로 충분한 수익을 내거나, 모든 교향악단이 국·공영화되어야 할 것이다. 첫 번째는 가능하지 않다. 그것은 자본주의사회에서 모든 사업체가 수익을 낼 수 없는 것과 같다. 두 번째도 가능해 보이지 않는다. 가능하지 않은 이유의 기저에는 한국에 존재하는 모든 교향악단들을 국영화 혹은 공영화시킬 사회적 필요가 있는가, 하는 문제의식이 있다. 그럴 필요도 이유도 없어 보인다.

음악대학에는 교향악단에 취직할 수 없는 학생들이 있다. 작곡과와 피아노과, 음악학과의 학생들이 그렇다. 많은 교향악단들을 국·공영화한다면, 그 교향악단 단원이 될 수 없는 이들 피아노, 작곡, 음악학 전공자들을 불평등하게 대우하는 일이 된다. 사실 지금과 같이 국·공영화된 교향악단의 수가 그리 많지 않은 상황조차도 이미 불평등한 상황이라 볼 수도 있다. 서울시를 놓고 보자. 서울시향, 서울시 국악 관현악단, 서울시립합창단은 있다. 서울시의 지원을 받는 피아니스트들과 작곡가들은 왜 없는가? 서울시는 인문학적으로 음악을 연구하는 학자들을 왜 지원하지 않는가? 더 나아가 서울시는 왜 비 클래식 음악가들을 지원하지 않는가? 죽은 지 수백 년이 넘은 외국의 작곡가들의 관현악 작품들과 성악작품들만을 연주하는 교향악단과 합창단에 대해서만 서울시의 지원이 있어야 할 이유가 있는가? 수백 년 전 조선시대에 향유되던 음악들을 연주하는 국악관현악단에 대해서만 서울시의 지원이 있어야 하는가? 이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 사실 서울시민들은 동의하였는가?   

불평등은 정치적·사회적 영역과 경제적 영역에서 발생한다. 즉 불평등은 인간사회의 문제이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좀 황당해 보이는 질문을 던져보자. 나와 길거리 고양이, 우리에서 사육되는 돼지는 모두 이 지구 위에서 생존하는, 생명체라는 동일성을 가지는데, 왜 고양이는 길거리를 헤매야 하고 돼지는 나에게 먹혀야 하는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이 질문은 우스워 보일 것이다. 불평등의 개념은 인간사회에서 작동되는, 인간적 개념이기 때문이다. 불평등에 대한 지금까지의 문제의식은 필자가 보기에 생태계를 고려하지 않고 있다. 지구라는 유한한 자원을 고려한다면 불평등 의식은 생태적이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인류가 평등한 상태에 도달하기도 전에 그 평등한 상태의 무대인 지구가 황폐하게 되어 인류의 지속가능한 존속이 불가능할 수도 있다. 그러니까 우리는 불평등에 대한 문제의식이 어느 수준 혹은 어떤 계界와 관련된 것인지에 대해 의식하여야 하고, 그 계가 포함된 상위 계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생태계는 불평등 문제의식이 작동되어야 할 최상위 계일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음악계의 불평등 문제는 음악계만을 따로 독립시켜 살펴볼 문제가 아니다. 음악계를 포함한 상위 계인 사회 및 국가, 인류사회, 생태계 등을 두루 고려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균형 잡힌 시각으로 음악계를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음악은 사회에서 존재하고, 인간사회는 생태계의 하위 계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음악가들은 내가 불평등하게 대우받고 있는 것은 아닌지를 고민하여야 하지만, 더 나아가 이 사회에서, 이 생태계에서 사실은 무용한 일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럼에도 대우 받고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즉 음악가들로 인해 이 사회의 다른 시민들이, 사회적 약자들이 불평등하게 대우 받고 있는 것은 아닌지 성찰하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