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재물에는 반드시 큰 불평등이 따른다. 큰 부자 한 명이 있으려면 적어도 오백 명의 가난뱅이가 필요하다.

—아담스미스

1.

불평등은 사실 인간 사회의 공리와도 같다. 모든 인간이 평등한 사회는 존재하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존재하지 않을 공산이 크다. 불평등은 어디에나 있으며, 그렇기에 무척이나 자연스러워 보인다. 가령 인간 사회의 불평등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이를 크게 정치적 불평등, 경제적 불평등, 사회적 불평등으로 나눌 수 있을 듯싶다. 힘을 가진 집단이 힘이 약한 집단을 지배함으로써 발생하는 정치적 불평등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법무부의 정당해산신청으로 인해 2014년 말 대법원이 통합진보당이라는 진보정당을 해산시켜버린 일은 가장 최근의 정치적 불평등 사례일 것이다. 대한항공 부사장이 잘못된 트집을 잡아 사무장을 하차시키고 출항하던 비행기를 회항시킨 일 역시 마찬가지다. 재화를 가진 집단이 재화를 가지지 못한 집단에 비해 월등하게 많은 힘을 갖는 경제적 불평등은 줄어들기보다 날로 커지는 중이다. 소위 ‘빈부격차’ 혹은 ‘소득격차’라는 말로 불리는 이 경제적 불평등은 상층, 중층, 하층으로 나뉘어 생겼던 전통적 방식을 넘어 이제는 아예 극소수의 상층부와 절대다수의 하층부 사이의 넘을 수 없는 격차를 지칭한다. 이것은 비단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며 전 세계의 문제다. 2000년 현재 전 세계 성인 인구 중 최상위 부자 1퍼센트가 전 세계 자산의 40퍼센트를 소유하고 상위10퍼센트의 부자가 전 세계부의 85퍼센트를 차지하는 반면, 하위 50퍼센트는 전 세계 부의 1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다. 성, 인종, 나이, 장애 유무 등에 따른 권리의 제한과 일상적 차별을 의미하는 사회적 불평등 역시 과거의 문제가 아닌 현재진행형의 문제다. 최근 동성애자의 인권보장선언을 추진했던 이들이 겪었던 엄청난 반대의 목소리를 상기해보라. 백인과 선진국 출연자 일색인<비정상회담>은 어떤가. 여성에게 일상적으로 가해지는 성폭력의 문제는 또 어떤가. 21세기 한국에서 불평등은 어디에나 존재하며, 그것도 엄청나게 존재한다.

이러한 불평등 문제에 접근하는 방식에 따라 크게 두 개의 입장이 있다. 하나는 불평등이 개인의 근본적 차이에 근거한 자연스러운 원리라며 받아들이거나 심지어 긍정하는 입장이고, 다른 하나는 불평등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문제이므로 개선하거나 없앨 수 있다면서 이를 부정하는 입장이다. 전자를 개인주의적(individualist) 입장, 후자를 집단주의적(collectivist) 입장이라고 이른다. 개인주의적 입장은 불평등을 사회적 차원에서 제거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며 그런 시도는 대개 더 나쁜 사회를 낳게 된다고 말한다. 개인의 능력 차이에 대한 불평등은 그것이 적절하게 제어된다면 오히려 자유로운 경쟁을 통해 혁신을 만들어내어 궁극적으로는 사회 전체를 이롭게 한다고 주장한다. 집단주의적 입장은 이러한 자유로운 경쟁 자체를 하나의 픽션으로 보면서, 이 자유라는 것은 이미 특정한 계급과 집단에게만 이로우며 다른 이들에게는 넘을 수 없는 제약에 불과하다고 판단한다. 불평등을 개인의 능력 차이로 치환하는 대신 집단주의적 입장은 사회 전체적 차원에서의 여러 장치를 통해 불평등을 없애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야말로 혁신이라고 믿는다.

이러한 두 입장 차이가 격돌한 것이 최근 불거진 정명훈 논란이다. 서울시향 상임지휘자인 정명훈의 고액 연봉 및 여러 특혜성 권한들을 두고 한 쪽에서는 세계적 예술가이자 지휘자에게 걸맞는 대우이니 문제 삼아선 안 된다고 주장하고, 다른 한 쪽에서는 시민의 세금으로 나가는 돈이 ‘세계적 지휘자’라고 해서 아무렇게나 쓰여서는 안 되며 시민의 적절한 통제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전자는 한 개인의 뛰어난 능력을 기준으로 삼고, 후자는 그 뛰어난 능력에 가려지는 여러 실태들에 주목한다. 비록 ‘예술 밖에 모르는’ 정명훈은 논란 속에서도 다시 계약을 1년 연장했지만, 이러한 논란은 이미 2011년에도 그랬듯 앞으로도 계속 되살아날 가능성이 높다. 능력과 불평등에 관한 기본적인 인식 차이는 앞으로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술의 영역만큼 능력과 불평등의 관계가 문제가 되지 않았던 영역도 없지 않았나 싶다. 출판자본주의가 번성하고, 미술상이 작품을 사고 팔기 시작하던 18세기 무렵부터, 즉 자본주의적인 논리가 문학, 미술, 음악 등 예술의 생산 한가운데로 뚫고 들어와 작가들의 생계를 좌지우지하기 시작하던 그 무렵부터 예술은 불평등의 온상이었다. 대중의 사랑을 받는 작품은 잘 팔리는 것이고, 그렇지 못한 작품은 팔리지 않는 것이다. 잘 팔리는 작가는 부자가 되고 명예를 얻지만, 그렇지 않은 작가는 폐병에 걸려 무명으로 죽어간다. 이 극심한 불평등은 단 하나의 원리로 회귀한다. 능력. 위대한 작품을 생산할 능력이 있는 자와 평범한 작품 밖에는 생산하지 못하는 자의 차이. 이 능력에 따른 부와 명예의 차등적 보상에 누가 뭐랄 수 있을까. 오직 ‘내 작품이 위대하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평론가와 대중의 저급한 눈’에 대한 한탄 외에는. 요컨대, 애초부터 1인 작가의 능력 하나로 모든 것이 시작되는 예술의 영역에서 능력에 따른 불평등한 대우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예술은 공장보다 훨씬 불평등한 곳이었고, 또 그 불평등이 자연스러운 곳이었다. 예술의 영역, 그곳은 메리토크라시(meritocracy)의 본산이다.

2.

예술 영역에서 용인되는 불평등은 예술이 기본적으로 ‘이윤 창출을 위한 노동’이 아닌 ‘창조를 위한 작업’이라는 인식에서 기인한다. 예술은 노동이 아니고, 개인의 고독 속에서 뮤즈의 영감을 통해 실현되는 어떤 독창적인 작업이다. 따라서 상품이 똑같이 찍어낸 몰개성적인 물건일 뿐인 반면, 예술작품 하나하나는 ‘아우라’라는 것이, 작가의 영혼이라는 것이 기입되어 있는 유일무이한 품목이다. 이러한 위대하고 창조적인 작품에는 그 어떤 가치로도 매길 수 없는 무언가가 담겨 있다. 같은 논리로 개성과 독창성과 창조성이 없다고 여겨지는 작품에는 슈퍼마켓 진열대의 상품만도 못한 대우 역시 가능해진다. 상품 생산과 유통이 이윤의 논리 속에서 측정된다면, 예술작품의 생산과 유통은 안목, 평가, 취향의 논리 속에서 평가된다. 안목, 평가, 취향의 논리는 기본적으로 이윤의 논리, 자본의 논리와는 작동방식이 다르다. 자본의 논리가 자본의 무한 축적이라는 어떤 몰개인적인, 자본 자체의 법칙과 연관되어 있다면, 안목, 평가, 취향의 논리는 다분히 개인적이고, 개성적이며, 독립적이다. 따라서 예술은 그것이 어쩔 수 없이 생산, 유통, 소비라는 자본주의적인 사이클 속에서 운용된다고 하더라도, 평가의 논리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자본을 비판할 수 있었으며, 그로부터 독자적인 목소리를 낼 수도 있었다. 창조의 작업은 신의 작업이고, 신의 작업을 하는 이들은 결코 자본주의 사회의 몰개성, 집단성, 추악함을 용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오늘날 자본주의가 과거의 자본주의와 다른 방식으로 형질 변환을 겪고 있다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자본주의의 헤게모니는 대량생산과 대량소비가 중심이 되었던 공장제 산업자본주의에서 서비스, 정보, 금융상품 등 정동과 지식, 숫자에서 이윤을 뽑아내는 방식의 탈산업자본주의로 옮겨 가는 중이다. 인지자본주의든 서비스자본주의든 포스트산업자본주의든 포스트포드주의자본주의든 금융자본주의든, 그 이름이 무엇이든 간에 자본주의 자체의 이윤추구 방식 변화는 이미 기정사실이 되었다. 이제 자본주의는 공장보다는 인간의 인식능력과 정동능력 자체에서, 노동자의 기계화된 동작보다 대중의 일상생활에서, 상품보다는 아이디어와 정보에서 이윤을 뽑아내려 한다. 공장도 기계도 상품도 없이,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을 퍼 나르고 자신의 아이디어를 검색하고 공유하는 플랫폼을 구축함으로써 이미 가장 글로벌한 자본의 선두주자가 된 구글, 페이스북,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 기업은 대표적인 사례다.

이러한 탈산업자본주의 시대가 요구하는 주체는 공장노동자들처럼 딱딱하고 정형화되고 규격화된 주체가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모습을 바꾸며 자신을 계발하고 경영하고 자신의 정동과 아이디어를 공유할 수 있는 ‘유연한 주체’다. 자본가의 탐욕보다 자유로운 개인의 ‘아이디어’가 강조되며, 경계나 규제나 훈육은 그러한 아이디어를 구속하는 몹쓸 ‘암 덩어리’로 묘사된다. 마크 저커버그에게서 우리는 자본가의 냄새를 맡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구글의 노동자들에게서 우리는 노동자의 이미지를 볼 수 없다. 자본가와 노동자의 이미지가 변모했고, 이렇게 변모한 자본의 성격 속에서 우리에게 요청되는 주체의 이미지가 역시 변모했다. 자본이 더 이상 ‘자본’이 아니라 일종의 ‘플랫폼’이 되었듯이(그렇다고 자본의 속성 자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노동 역시 더 이상 ‘노동’이 아니다.

탈산업자본주의 시대의 노동자에게는 이제 규격화된 전통적 의미의 노동이 아닌, 자기 자신의 정동과 지식과 아이디어가 모두 결합되어 완전히 새로운 영역을 만들어내어야 하는 활동이 요구된다. 노동, 이제 그것은 새로운 가치를 만드는 창조적 활동, 즉 ‘예술’이 된다. 김대중 정부의 ‘신지식인’에서부터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에 이르기까지, 노동자의 예술가화는 이제 정부가 가장 반복해서 외치는 슬로건이 되었다. 창조경제란 무엇인가? 예술의 영역인 ‘창조’를 자본의 영역인 ‘경제’와 결합시켜야 한다는 말이다. 지금껏 모든 것을 다 해보고 그것들을 모조리 소진시켜왔던 자본주의는 이제 드디어 ‘창조’의 영역, 예술의 영역으로 넘어온 것이다.

노동이 예술이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노동에게 독립적이고 독자적이고 개성적인 성격을 부여해주지만, 그것이 ‘반드시’ 가치를 창출해야만 함을 뜻한다. 구글이나 페이스북이나 애플의 노동자들은 유니폼도 업무시간도 없으며 최고의 대우를 받고 자유롭게 일하지만, 기대했던 성과를 올리지 못하면 바로 해고되는 ‘자유’ 역시 극도로 누리고 있다. 마치 과거의 예술가들이 그랬듯, 이제 노동자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역량을 동원해 새로운 아이디어로 새로운 상품의 영역을 개척해야 한다. 그랬을 때 그는 과거의 노동자가 꿈도 꾸지 못했던 인센티브를 받을 수 있다. 그리고 창조성이 고갈되었을 때, 그는 바로 짐을 싸야만 한다. 이러한 작업방식, 곧 예술가의 작업방식이 자본의 노동자 관리로 전유되는 것이 곧 노동의 예술화다. 우리 모두는 이제 예술가처럼 상상하고, 꿈꾸고, 창조해야 하고, 무엇보다 그것을 통해 ‘반드시’ 부가가치를 창출해야만 한다. 요컨대, 예술가의 이름이 하나의 브랜드가 되고, 그의 작품이 하나의 스타일이 되듯, 이제 자본, 상품, 노동은 모두 이런 식의 예술이 된다. 애플의 아이패드나 보워스앤윌킨스 스피커의 디스플레이 사진을 보라. 기술과 미학이 접목된 이 상품들은 현대미술관에서나 볼 수 있음직한 미학적 완성을 추구하고, 바로 그럼으로써 엄청난 팔로워를 끌고 다닌다. 자본, 상품, 노동이 예술화되고 미학화되듯이, 이제 소비자 역시 추종자가 되고 팬덤이 된다. 창조와 아름다움과 영감—예술의 핵심 가치들은 이렇게 자본에 의해 완벽히 전유되는 중이다.

3.

노동은 이처럼 예술이 되지만, 예술은 반대로 노동이 되지 못한다. 예술은 여전히 ‘예술’로 남아 있는데, 그렇다고 해서 예술이 과거 독립적이던 시절의 비판적 성격을 유지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대학의 인문학이 그렇듯, 예술은 상품가치, 부가가치를 창조하지 못하는 영역이 되어 급격하게 퇴화되고 있는 중이다. 인문학은 살아남기 위해 ‘컨텐츠’와 ‘지식상품’, ‘스타강사’와 다양한 방식으로 결합하고 있고, 예술 역시 잘 팔리는 전시, 상품화되는 음악, 브랜드화된 아티스트의 스타일, 자본과 결합된 상품미학 등으로 옮겨가고 있다.

모든 것이 더욱 더 불평등해지는 사회 속에서 예술 본연의 메리토크라시적인 성격은 더욱 더 강화된다. 사회 전체가 능력에 따른 불평등을 자연스러움으로 인식하고 있는 상황 속에서 예술의 불평등, 예술가의 불평등은 의제가 될 수도 없다. 자본의 불평등은 예술의 불평등마저도 완전히 자신의 영역 안으로 흡수했는데, 그나마 과거 전통적인 예술의 불평등이 취향, 안목, 평가의 잣대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라면, 오늘날 예술의 불평등은 거의 온전히 상품성의 잣대 속에서 이루어진다. 그가 ‘얼마나 세계적인지’, 그의 ‘티켓파워가 얼마나 큰지’, 그가 ‘얼마나 탈 정치적인지’, 즉 ‘얼마나 예술 밖에 모르는지’ 등이 하나의 잣대이고, 이런 잣대에 의해 하나의 예술가가 얻어 가는 부는 수백의 가난한 예술가의 부를 합친 것보다 커진다. 몇 명의 베스트셀러 작가, 몇 명의 대중영화 감독, 몇 명의 미술가, 몇 명의 지휘자가 각 영역의 가장 큰 파이를 가지고, 그것이 다시 미디어와 평단과 대중에 의해 용인된다. 당연히 주변화되고 소수화된 이야기를 하거나 비주류적이고 급진적인 담론을 만들어내는 아티스트들의 창작 공간은 사라진다. 그런 공간이 사라지고 그런 담론이 들리지 않으니 사회 전체의 문화적 ‘수준’ 역시 높아질 리가 없다. 평가와 다양성이 사라지고 상품가치만이 남은 메리토크라시가 만들어놓는 사회의 문화는 황폐해진다.

그렇다면 이제 필요한 것은, 예술을 여전히 ‘예술’로 남아 있게 하면서도 자본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하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질문하는 일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해야 예술은 ‘창조’를 다시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내고, 이 능력주의와 불평등의 악순환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을까.

그 한 방법은 예술이 자신의 가장 전통적인 존재 방식, 곧 독립적 일인 작가의 고독한 창조라는 낭만주의적 방식으로부터 탈피하는 데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러한 방식을 고수하고 있는 한 예술이 가는 길은 두 가지다. 자본과 손을 잡거나, 독방에서 굶어 죽거나. 오히려 예술은 현재의 자본주의를 만들어낸 지배적 상황에 저항하면서도 그것을 타고 넘어가야 한다. 다시 말해, 이미 네트워크화된 사회, 정보화된 사회, 지식의 소유 개념이 사라진 사회, 정보와 아이디어의 공유가 일상화된 사회라는 지배적 상황 ‘속에서’ 예술이 이런 상황을 어떻게 전유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한다. ‘독립적 일인 작가의 고독한 창조’가 아니라 ‘네트워크화된 다중의 집단적 창조’로의 변화. 폐쇄적인 작업실 밖으로 나가 모순과 불평등이 넘실거리는 거리 위에서 그 거리 속의 사람들과 접합하고, 그 접합 속에서 이들의 정동과 아이디어를 포착하고 담아내어 이를 하나의 작품으로 만들어내는 작업을 해야 한다. 바로 이럴 때 비로소 ‘창조’는 자본만의 것이 아니라 다시 다중의 이름으로 예술에게로 돌아올 것이고, ‘작품’이 예술가의 소유가 아니라 모두의 공유재로 변모할 수 있다. ‘세월호’ 참사를 겪은 이후 행해졌던 문인들의 작업, 예술가들의 여러 작업은 이런 점에서 그런 새로운 방식의 예술적 창조 작업으로 참조할 만한 가치가 있다. 예술가들이 자신의 머리 바깥으로 나와 대중의 생각과 열정을 공유하면서 그것을 바탕으로 작업을 만들어갈 때, 우리는 이제 완전히 상식이 되어버린 ‘개인주의’적 사고에 맞서는 또 하나의 ‘집단주의’를 벼려내고,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예술의 개념, 탈산업자본주의시대에 걸맞는 예술의 의미를 창출해낼 수 있을 것이다.

소설가 존 쿳시는 <어느 운 나쁜 해의 일기>에서 이런 말을 한다.

“우리의 세계가 원래부터 서로 경쟁하는 경제 주체들로 갈라지도록 만들어져 있다는 주장은 궤변이다. 경쟁적 경제는 우리가 그것을 만들기로 결정했기 때문에 출현한 것이다. 경쟁은 전쟁의 순화된 대체물이다. 전쟁은 결코 피할 수 없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전쟁을 원하면 전쟁을 선택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평화를 원하면 평화를 선택할 수 있다. 만일 우리가 경쟁을 원한다면, 우리는 경쟁을 선택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경쟁 대신에 우호적 협력을 하기로 결정할 수 있다.”

모든 것이 이윤과 능력과 불평등의 카테고리 속으로 환원되고 이로 인해 무한한 경쟁과 갈등과 허무를 유발하는 이 사회 속에서, 우리가, 예술이 할 수 있는 단 한 가지 일이 있다면 그것은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뭔가를 “원하”고, 그것을 “하기로 결정”하는 일이다. 예술은 결코 세상을 바꿀 수 없으며, 불평등한 현실을 바꿀 수 없다. 예술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지금의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꿈을 주는 일이고, 그것을 직접 실험하는 일, 곧 “결정”하는 일이다. 바로 그 순간만큼 우리는 자본으로부터 완벽히 독립해 있으며, 불평등으로부터 완벽히 물러날 수 있다. 오늘 예술은 그렇게, 새로운 종류의 창조를 결정하는 행동에서부터 새롭게 쓰여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