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하나의 전시인데, 제목은 두 개다. 하나는 ‘불안, 불-안’이고, 또 다른 하나는 ‘A Pleasant Day’이다. 한글과 영문 제목을 병행하는 것이 관례처럼 되어있는 미술계에서 어쩌면 당연한 표기법이다. 대체로 한글과 영문은 같은 의미를 다른 언어로 대체하는 번역 관계이다. 그러기에 이들은 둘이지만 최종적으로는 하나이다. 그러나 정주하가 제시하고 있는 두 개의 전시제목은 일반적인 한글-영문의 체계에서 벗어나 있다. 그들은 서로를 대체하지 못한다. 오히려 대립적 예각을 세우고 충돌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낯선 제목을 제시했다는 것이 아니라, 그 제목들이 만들어낸 충돌의 지점을 통해 정주하의 작업을 되새겨볼 수 있다는 점이다.
일견, 그의 사진은 단순해 보인다. 해변에서 여가를 즐기고 있는 사람들 혹은 자신의 삶을 묵묵히 살아가는 사람들을 단순히 기록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전시에 출품된 작품의 제목은 45점 모두 특정 지명으로 되어 있다. 사람들이 가득하거나 혹은 사람이 중심에 서 있는 작품들이지만 정작 제목은 지명이다. 그리고 45개의 지명은 전남 영광군 홍농읍, 부산광역시 기장군 장안읍, 경북 울진군, 전남 고창군 상하면, 경북 월성군 양북면 등으로 범주화되어 있다. 사람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지만, 정작 작가가 담아내는 것은 범주화된 지역들이다. 왜 그 지역이어야 했을까? 지명을 추적해보면 공통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원자력발전소’이다.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전면에 부각되고 있는 사진 속에서 작가 자신이 정작 담고자 했던 원자력발전소는 어떤 층위에 놓여 있는가이다.
 

이런 관점에 따라 그의 작업은 크게 원자력발전소가 화면에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으로 구분된다. 먼저, 원자력 발전소가 보이는 작업에는 바닷가에서 물놀이를 즐기고 있는 남녀노소들이 사진 전면에 위치하고 있다. 그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A Pleasant Day(어느 좋은 날)’를 마음껏 즐기고 있다. 뒤편에는 그들의 놀이를 무심히 바라보고 있는 풍경이 저 멀리에 있다. 푸른 산과 그곳에 듬성듬성 놓여 있는 건물들, 그리고 높게 솟아 있는 송수신 탑. 이러한 요소들이 전형적인 풍경을 이룬다. 돔(dome)형태를 하고 있는 원자력발전소 또한 하나의 풍경으로 위치하고 있다. 분명 그것은 자연풍경과 다른 초현실적 형태를 띤다. 그렇다고 은폐되어 있지는 않다. 떳떳하게 자신의 자리에 놓여 있다. 원자력발전소가 자신의 풍경에 개입할 당시에는 원전(原電)에 대한 불안도 있었을 것이며, 혹은 원전 특수에 대한 기대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어느 좋은 날’을 즐기고 있는 사람들에게서는 그러한 모습을 찾을 수 없다. 이제 원자력발전소는 낯선 것이 아닌 친숙한 풍경으로 변모한다. 원자력발전소가 가지고 들어온 불안과 기대가 해소되어서가 아니라 사람들의 시선이 무감각해졌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불안, 불-안’의 실체는 보이지 않지만, 사람들과 그 공간에 내밀하게 존재한다. 이는 원자력발전소가 보이지 않는 사진, 즉 주민들이 삶의 장소에서 공허하게 카메라를 응시하는 인물들의 표정에서 감지된다.
이번 전시의 백미(白眉)는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바다사진이다. 등대가 있고, 파도가 바다의 표면을 어루만지고 있으며, 노을이 바다를 물들이고 있는 사진. 여기에는 다른 작품들과는 달리 원자력발전소에 대한 ‘불안’이 직접적으로 제시되지 않는다. 단지 아름다운 바다풍경만 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을 구성하는 요소는 원자력발전소가 쏟아낸 뜨거운 물로 수온이 높아진 바닷물이 차가운 공기와 만나 생겨난 현상들이다. 이렇듯 우리를 위협하는 불안은 단순히 심리적인 것이 아니라, 그것을 평범하거나 아름답게 은폐하여 본질적 문제로부터 무감각하게 만드는 사회적 체계가 생산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감각해진 촉수를 세워 ‘어느 좋은 날’을 직시하는 것이 이번 전시가 우리에게 던진 과제가 아닐까.
이미지 제공_ 아트선재센터

李大範 1974년 서울생. 미술평론가. 최근 글로 「가만… 나는 어디에 있지? : 김학량展 문자와 미술展」, 「발견하여 마주봄 : 염중호展」 등. criticism74@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