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말에는 한 지인의 소개와 권유로 아이들을 데리고 국립중앙박물관에 놀러갔다. 한동안 타지에서 생활한 덕분에, 이촌역 주변에 새로 단장한 국립중앙박물관은 아이들이나 아빠나 할 것 없이 모두 초행길이었다. 입구부터 탁 트인 공간과 곳곳에 조성된 조경시설이 보는 이의 마음을 설레게 한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다만 상설전시관 입구의 계단 너머로 보이는 미군기지 골프연습장이 국립중앙박물관과 어울리지는 않았는데, 그것도 ‘역사적’ 현실의 일부라고 위로하며 상설전시관 내부로 들어섰다. 상설전시관의 아시아관 인도·동남아시아실에서는 2008년 3월 11일부터 ‘베트남, 삶과 문화’라는 주제로 전시가 열리고 있었다. 1992년 한국과 베트남의 수교 이래 처음으로 행해지는 대대적인 교류전시라고 한다. 작년 2월부터 준비에 들어간 이번 전시회는 베트남국립역사박물관, 민족학박물관, 미술관 등의 대여품 132점,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 14점, 모형 2점 등의 총 148점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전시품들은 ‘베트남 사람들과 공예’, ‘고대 베트남의 문화’, ‘베트남의 도자기’ 등의 대주제로 분류되어 있고, 각각의 소주제를 갖고 있었다. ‘베트남 사람들과 공예’는 비엣-므엉(Viet-Muong)사람들, 몬-크메르(Mon-Khmer)사람들, 동북부 산악지대의 타이-카다이(Tai-Kadai) 사람들, 어망, 목공예 등을 소개하고 있었다. 그리고 고대 베트남의 문화는 청동, 장식품, 토기를 통해 살펴볼 수 있게 했다. 베트남의 도자기는 11~14세기 도자기문화의 번영, 15~16세기 베트남 청화의 절정, 봉헌도자기, 17~19세기 베트남 도자기의 신시대, 꾸 라오 짬(Cu Lao Cham) 섬 침몰선의 출토품 등 소주제로 적지 않은 유물들을 전시해 놓았다.
입구에서 출구에 이르기까지 배치된 각종의 전시품들이 시기별로 다소 산만하게 배치되어 있지만, 협소해 보이는 답답한 전시공간을 고려해보면 큐레이터의 고민도 아울러 이해할 만하다. ‘여유로운’ 베트남의 삶과 문화를 넉넉한 공간과 어울려야만 하는 ‘동남아시아적’ 조화로 담아내지는 못했지만, ‘빡빡하게’ 들어 찬 작품들을 통해 베트남문화의 다양성을 재확인하고 엄숙함과 거리를 두고 있는 그 정겨움에 저절로 친근감을 느끼게 된다. 전통시대부터 주변 지역과의 교류가 한국보다 왕성했던 베트남에서는 문화적 다양성이 저변에 깊게 스며들어 있다. 베트남 ‘고유의’ 문화에 대한 자긍심을 가지면서도 이질적인 문화와의 공존 가능성을 항상 열어놓고 있었기 때문이다. 베트남에서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낀(Kinh)족이 소수민족을 동등하게 생각하고 있진 않지만, 적어도 그들과 함께 살아가면서 새로운 베트남의 정체성을 만들어가야 한다는 것에는 모두가 동의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민족이나 외부 지역과의 갈등을 겪지 않았던 나라는 거의 없겠지만, 베트남인들은 오랜 역사를 통해 소위 똘레랑스(tol럕ance)특정 이념을 강조하기보다는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고 관용하는 정신라는 관념을 어쩌면 자연스럽게 체득하게 된 것은 아닐까? 일상생활에서 베트남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공예품 중 인상적인 것은 바로 대나무로 된 제품들이었다. 각종의 바구니와 용기를 제작하는 데 이용되었던 대나무는 주거생활과 식생활에도 크게 영향을 주었다. 건축자재로서의 활용도도 매우 높은 대나무는 돗자리의 주재료이기도 하다. 줄기차게 흐르는 땀을 흡수하는 대자리는 정겨운 식사가 유쾌하게 이루어지는 공간이기도 하며, 부부 간의 애정을 거침없이 그리고 묵묵히 확인하는 사적인 의식의 장이기도 하다. 죽순을 다양한 방식으로 즐기기도 하는 베트남인들에게 대나무는 또한 다양한 무기로도 사용되지 않았던가?
자연산 재료를 교묘하게 가공한 도자기에서도 베트남의 삶과 문화는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무엇보다도 다양한 형태, 눈에 낯설기만 한 여러 종류의 빛깔, 일상생활을 반영하는 각종의 문양이나 그림 등은 베트남 문화가 귀족성과 민중성 사이를 자유롭게 넘나들고 있었다는 인상을 강하게 풍긴다. 특히, 홍강델타(Red River Delta)베트남 북부지방의 대표적인 곡창지대를 근거지로 국가를 건설해 나갔던 베트남인들이 강 연안에서 손쉽게 잡을 수 있는 어류들을 도자기에 그려놓은 것을 보면, 지금과 마찬가지로 오랜 옛날에도 생선을 상당히 즐기지 않았을까 한다. 작년에 하노이(Hanoi)를 방문했을 때, 어떤 베트남 아줌마가 ‘까 메(ca me)’라는 민물생선으로 탕을 해준 적이 있는데, 그 맛과 향이 간절해진다. 1996년 한국에 잠시 들렀던 어떤 베트남 형님에게 인사동에서 구입한 연적을 선물한 적이 있었다. 공교롭게도 도자기류에 많은 흥미를 가지고 있던 사람이어서 내 작은 호의에 무척이나 고마워했었다. 작년에 하노이에 있는 그 형님의 집을 방문했을 때는 그간 수집해 놓은 각종 도자기를 내게 보여주었는데, 13~15세기의 작품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세인(世人)들처럼 거품으로 뒤죽박죽되어 있는 베트남펀드에 관심을 갖기보다는, 근엄하지 않은 베트남 도자기를 부담없이 구경하면서 미래의 학문에 투자하는 것도 괜찮을 성 싶어 보였다. 사진제공_ 국립중앙박물관
尹大榮 1970년 서울생. 인하대 한국학연구소 HK연구원. 최근 글로 「20세기 초 베트남 지식인들의 동아시아 인식」 등. vinhsinh98@hanmail.net
지난 4월 말에는 한 지인의 소개와 권유로 아이들을 데리고 국립중앙박물관에 놀러갔다. 한동안 타지에서 생활한 덕분에, 이촌역 주변에 새로 단장한 국립중앙박물관은 아이들이나 아빠나 할 것 없이 모두 초행길이었다. 입구부터 탁 트인 공간과 곳곳에 조성된 조경시설이 보는 이의 마음을 설레게 한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다만 상설전시관 입구의 계단 너머로 보이는 미군기지 골프연습장이 국립중앙박물관과 어울리지는 않았는데, 그것도 ‘역사적’ 현실의 일부라고 위로하며 상설전시관 내부로 들어섰다. 
입구에서 출구에 이르기까지 배치된 각종의 전시품들이 시기별로 다소 산만하게 배치되어 있지만, 협소해 보이는 답답한 전시공간을 고려해보면 큐레이터의 고민도 아울러 이해할 만하다. ‘여유로운’ 베트남의 삶과 문화를 넉넉한 공간과 어울려야만 하는 ‘동남아시아적’ 조화로 담아내지는 못했지만, ‘빡빡하게’ 들어 찬 작품들을 통해 베트남문화의 다양성을 재확인하고 엄숙함과 거리를 두고 있는 그 정겨움에 저절로 친근감을 느끼게 된다. 
자연산 재료를 교묘하게 가공한 도자기에서도 베트남의 삶과 문화는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무엇보다도 다양한 형태, 눈에 낯설기만 한 여러 종류의 빛깔, 일상생활을 반영하는 각종의 문양이나 그림 등은 베트남 문화가 귀족성과 민중성 사이를 자유롭게 넘나들고 있었다는 인상을 강하게 풍긴다. 특히, 홍강델타(Red River Delta)베트남 북부지방의 대표적인 곡창지대를 근거지로 국가를 건설해 나갔던 베트남인들이 강 연안에서 손쉽게 잡을 수 있는 어류들을 도자기에 그려놓은 것을 보면, 지금과 마찬가지로 오랜 옛날에도 생선을 상당히 즐기지 않았을까 한다. 작년에 하노이(Hanoi)를 방문했을 때, 어떤 베트남 아줌마가 ‘까 메(ca me)’라는 민물생선으로 탕을 해준 적이 있는데, 그 맛과 향이 간절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