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부터 지중해에 이르는 드넓은 유라시아대륙을 가로지르는 길을 실크로드라고 한다. 페르시아는 그 길의 꼭 중간에 있다. 그런 지정학적 관점에서 페르시아는 세계의 중심에 놓여 있다. 페르시아는 오랫동안 동쪽으로는 중국과 인도를, 서쪽으로는 그리스와 로마 유럽을 직접 보고 아는 유일한 문명이었다. 이런 까닭에 오랜 세월 동안 페르시아만이 전 세계에 대한 직접적이고 정확한 정보를 누릴 수 있었다. 중국과 인도는 서양에 대한 지식을, 또 서양은 중국과 인도에 대한 정보를 페르시아를 통해 간접적으로 얻을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정보를 독점한 페르시아가 동서양 양방향에 때로는 의도적으로, 또 때로는 본의 아니게 왜곡된 정보를 흘려 적잖은 이득을 취했으리라는 것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이렇게 왜곡된 사실들을 바로잡으려면 페르시아 자체를 알아야 한다. 다시 말해 동서양에 대해 페르시아가 누렸던 독점적인 지식과 정보를 직접 우리 눈으로 확인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4월 22일부터 오는 8월 31일까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는 <황금의 제국 페르시아展>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아주 귀중한 기회다. 이 특별전에는 페르시아와 관련된 유물 204점이 역사의 여명기에서부터 이슬람 이전까지의 역사적 순서에 따라 전시되고 있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처음으로 우리를 맞는 것은 페르시아 전쟁을 일으킨 장본인으로 유명한 아케메네스 왕조(Achaemenian dynasty, BC 559~BC 330)시대의 황금 유물들이다. 그 가운데에서도 특히 눈길을 강하게 끌어당기는 유물은 우리나라의 금관 같은 이란의 대표적 유물 ‘날개 달린 사자 장식 뿔잔’이다. 오늘날 금주(禁酒)의 나라로 유명한 이란의 대표적 상징물이 술을 담는 뿔잔이라는 것은 무척 아이러니컬하게 느껴지지만, 작품의 아름다움에는 자신도 모르는 탄성이 나온다. 황금 전시관을 지나면 이란의 다양한 유물들이 역사적 순서에 따라 전시되어 있다. 현대미술을 방불케 하는 단순하고도 추상적인 문양들이 그려진 선사시대의 토기들과 혹 달린 소 모양의 주자(注子),물을 따르는 용기 숫양머리 장식의 뿔잔과 물고기 모양의 그릇은 당시 이란인들의 상상력이 얼마나 수준 높고 다양했는지를 보여 준다. 다음 방은 의례에 쓰이던 제기(祭器)들과 장신구들이 전시되어 있다. 사자와 황소, 가젤(gazelle) 영양과 숫양, 그리핀(griffin)과 스핑크스(sphinx)와 같은 상상의 동물들로 장식된 그릇들, 다양한 재료로 만들어진 다양한 모양의 목걸이들이 숫자는 적지만 페르시아 문화의 특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런 조형적 특성은 청동기 전시실에까지 그대로 이어진다. 청동기 유물에는 전사(戰士)를 조각한 작품이 인상적이다. 그 다음은 이란 땅에서 최초의 문명을 이룬 엘람(Elam, BC 2700년경~BC 539년)에서부터 페르시아 대제국을 이루기 직전의 왕국인 메디아(Media, BC 1000년경)까지의 유물들이 시작된다. 이때부터는 선사시대를 지나 유사시대가 시작하는데, 그것을 상징적으로 알리려는 듯 바빌로니아(Babylonia)시대의 쐐기 문자가 새겨져 있는 경계석이 맨 처음에 놓여 있다. 사냥이나 종교제전을 주제로 한 문양이 들어간 유물들은 이 시대에 확립된 권력의 절대화와 계급의 분화를 암시한다. 또 고대의 권력과 권위의 상징인 인장들이 이어 전시되어 있는데, 이런 인장을 우리나라에서 직접 볼 수 있다는 점만으로도 이 전시회에 가볼 가치는 충분하다. 인장 안의 문양들은 신화적 주제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유물 해설에서 연회 장면이나 사냥 장면의 인장 속에 스며있는 종교성을 애써 외면하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아마도 교조적이고 맹신적이기까지 한 이란 시아파(Shiah)1의 종교적 편협성 때문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페르세폴리스(Persepolis)! 페르시아 제국의 영광과 위엄의 상징이었건만 알렉산드로스대왕(Alexandros the Great)이 불을 질러 하룻밤 사이에 폐허가 된 도시! 이란에 가서 그 잔해를 보았던 일은 가슴 아프면서도 또 한편으로 권력의 허무함을 느끼게 하는 경험이었다. 몇 점 되지는 않지만 슬픈 도시 페르세폴리스로부터 가져온 유물들은 그때 내가 느꼈던 슬픔과 허무를 다시 생각나게 해 주었다. 그리스의 영향이 물씬 느껴지는 헬레니즘(Hellenism)시대 셀레우코스왕조(Seleukos dynasty, BC 312~BC 64)의 유물과 정복자인 그리스인들을 몰아내고 세운 새로운 페르시아인들의 제국 파르티아(Parthia, BC 247∼AD 226)의 유물들에서는 고대 문명의 쇠퇴기를 휩쓴 권태감 또는 매너리즘이 물씬 풍겼지만, 그 시대의 특성이 배어난다는 점에서 역시 좋았다. 진정한 의미에서 그리스의 영향을 극복하고 새로운 페르시아의 전통을 세운 사산왕조(Sassanian Dynasty, 226~651)의 유물들에서는 다시금 고대 메소포타미아(Mesopotamia) 양식이 드러나지만, 비교적 저렴하고 질이 낮은 재료인 스투코(stucco)2때문에 작품들이 왠지 조잡해 보였다. 그러나 금속공예는 세련되고 우아했다. 사산왕조의 유리공예는 독창적이고 독보적이기에 보는 기쁨이 있었을 뿐 아니라 신라 고분에서 발견된 유리그릇이나 유리구슬과의 관련성 때문에 가장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유물들이었다. 그 다음 방은 페르시아 각 시대의 주화들을 모아 놓았는데, 솔직히 내가 박물관에서 가장 무지를 느낀, 따라서 흥미를 못 느끼는 방이 주화 전시실이기에 이번에도 어김없이 슬쩍 스쳐 지나갔다. 더구나 그 다음 방에는 신라 때 실크로드를 통해 페르시아에서부터 우리나라에 들어온 유리그릇과 유리목걸이, 서역풍의 신발, 동물무늬 잔, 장식보검과 각배(角杯), 서역인 토용(土俑)3 등이 전시되어 있었기에 발길은 저절로 그쪽을 향했다. 이런 문명교류사의 직접적인 확인을 통해 우리나라가 은둔의 나라도, 고요한 아침의 나라도 아니고 항상 열려 있고 세계와 교류하는 진취적이고 개방적인 나라였음을 알아내는 것이 이런 특별전의 의미이리라. 함께 간 정수일(鄭守一) 교수가 오랜 세월 동안 누누이, 그리고 어쩌면 외로이 강조한 사실을 이 방에서 우리는 두 눈으로 똑똑히 보게 된다. 끝으로 세세한 데까지 신경을 쓴 전시의 기획이 돋보인다. 시대별로 유물을 정리해서 보는 이들로 하여금 이해가 쉽도록 한 점이나 전시의 끝부분에 신라에서 발견된 서역의 물건들을 전시해 우리와 페르시아 사이에 있었던 문명교류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게 한 점, 최첨단 기술로 재현된 페르세폴리스의 궁전 복원 영상자료, 시간마다 관람객을 위해 전문가들이 해주는 유물해설, 모든 점이 많은 정성과 배려를 느끼게 한다. 이런 점에서 이번 전시는 우리 전시문화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미지 제공_ 국립중앙박물관
주) 1 이슬람교의 2대 종파의 하나. 마호메트 사위인 알리(Ali)가 마호메트의 정통 후계자가 되어 세운 교파. 반대는 수니파. 2 벽돌이나 목조 건축물 벽면에 바르는 미장 재료. 3 순장할 때에 사람 대신으로 무덤 속에 함께 묻던 흙으로 만든 허수아비.
劉載源 1950년 서울생. 한국외대 그리스-발칸어과 교수. 최근 저술로 『그리스: 유재원 교수의 그리스, 그리스 신화』, 「만화풍의 오리엔탈리즘」 등. jwon1yu@naver.com
#저자 약력
1950년 서울생. 한국외대 그리스발칸어과 교수. 저서로
『그리스-유재원 교수의 그리스, 그리스신화』등. jwon1yu@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