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1871년 신미양요 당시 장수(將帥)의 상징이었던 어재연(魚在淵, 1823~1871)장군의 ‘수(帥)’자 기(旗)1가 태평양을 건너왔다. 미국과의 꾸준한 교섭 끝에 136년의 오랜 세월을 기다려 결국 고국으로 돌아온 것이다.
전시실에 들어서니 마치 신미양요 당시 상황 속으로 들어와있는 느낌이 든다. 우선 수자기가 어떤 의미를 갖는 문화재인지 『속병장도설(續兵將圖說)』과 <임진전란도(壬辰戰亂圖)> 등 옛 기록과 그림을 통해 확인하면서, 신미양요 발발의 정황과 처절했던 현장을 실감하게 된다. 그곳에는 초지진, 광성보 등 강화도의 군사방어시설과 어재연 장군 휘하 군사들이 당시 사용했던 대완구(大碗口),2 불랑기(佛狼機)3 등 조선의 화포와 조총, 갑옷이 놓여있다. 그리고 여러 종류의 군기(軍旗)들 속에 이윽고 대형 수자기를 만난다. 마치 ‘수(帥)’라는 한 글자를 화두로 던져놓은 듯한 모습에, 근접할 수 없는 엄숙함과 왠지 모를 낯설음으로 많은 생각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현존하고 있는 유일의 조선시대 장군 깃발이자 삼베로 제작된 가로 4.13미터, 세로 4.30미터의 이 대형 수자기는 그동안 미국 아나폴리스(Annapolis)의 해군사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었다. 수자기는 통상 깃발 한가운데 장수를 뜻하는 수(帥)자가 적혀있고 총지휘관이 있는 본영에 꽂는 깃발로, 조선시대에는 중앙을 비롯한 지방 각 군영마다 있었다. 이번에 전시된 수자기는 원래 강화도 진무영(鎭撫營)에 있었던 것인데 신미양요 때 어재연 장군이 광성보를 본진으로 하여 이 수자기를 걸고 싸웠던 역사적 증거이자 희귀한 군사자료이다.
알려져 있다시피 신미양요는 미국 상선 제너럴셔먼호 사건(1866)에 대한 문책과 조선과의 통상체결을 도모하는 과정에서 발발하였다. 당시 통상체결 요구에 조선정부의 답변이 없자 미국은 소함정 4척을 보내 손돌목을 지나 광성보로 진입했고, 이를 저지하려는 조선군의 포격을 받아 퇴각했다가 곧이어 초지진, 덕진진과 광성보를 점령하기에 이르렀던 사건이다.
강력한 화력을 갖춘 미군의 공격에 조선군은 백병전(白兵戰)으로 맞섰지만 어재연과 아우 어재순(魚在淳) 등 350여 명은 장렬한 최후를 맞이했다. 살아남은 일부 군사들도 자결하거나 강화해협에 몸을 던져 목숨을 끊었으며 중상자 20여 명만이 미군의 포로가 되었다. 반면에 미군은 맥키(Hugh W. McKee) 중위 이하 3명의 전사자와 10여 명의 부상자만을 내었다. 미군은 수자기를 내리고 성조기를 게양했다. 수자기 오른쪽 아래 천을 덧댄 부분은 수자기가 내려질 때 일부가 찢어진 흔적이다. 미국의 전쟁사에는‘48시간 전쟁’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미군 역시 조선군의 투쟁정신에 커다란 충격을 받았던 전투였다.
이 사건을 계기로 전국의 교통요지에는 척화비가 증설되었고, 강화도의 방위력을 증강시키는 조치도 강구되었다. 광성보를 죽음으로 지키고자 했던 순무중군(巡撫中軍) 어재연에게는 충장공(忠壯公)이란 시호가 내려지고 병조판서 겸 삼군부지사(三軍府知事)가 추증(推贈)되었다. 현재 인천광역시 강화군 충렬사(忠烈祠)에는 어재연, 어재순 형제가 함께 배향되어 있으며, 광성보에는 형제의 쌍충비각(雙忠碑閣)이 세워져 역사의 현장으로 보존되고 있다.
19세기 서구열강의 동점(東漸)은 조선의 문호를 개방시키고 인천에도 영향을 주었는데, 당시 여러 사건들이 인천과 관련되어 전개된 것은 인천이 갖는 지리적, 공간적 중요성 때문이었다. 병인양요(1866), 신미양요, 운요오호(雲揚號)사건(1875)에서부터 조미수호조약(1882) 등 열강과의 조약 체결, 또 임오군란(1882), 갑신정변(1884), 청일전쟁(1894), 러일전쟁(1904)에 이르기까지 인천 개항(1883)을 전후로 진행된 일련의 사건 속에서 인천은 최전방에 위치한 호국(護國)의 선구지(先驅地)로서 그 역사적 시련을 감당해왔다. 그런 의미에서 국립고궁박물관 특별전시에 이어 인천시립박물관과 강화역사박물관의 수자기 전시는 인천시민들이 인천의 역사적 역할을 확인하는 소중한 계기가 될 것이다.
1871년 급변하는 국제정세의 흐름 속에서 어재연 장군이 광성보에 수자기를 걸고 나라를 지키기 위해 싸웠던 바탕에는 투철한 국가관과 자존적 신념이 내재되어 있었다. 2008년 오늘, 우리는 여전히 세계화와 국제화라는 도그마속에 도전적 과제들을 경험하고 있다. ‘수자기의 귀향’을 통해 우리가 무엇을 지향하고 있는지,우리의 정체성은 무엇인지, 역사가 주는 의미와 과제를 다시 한 번 생각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또 다른 문화재의 귀향을 생각해본다.

주)
1 진중(陣中)이나 영문(營門)의 뜰에 세우던 대장의 군기(軍旗).
2 조선 후기에 사용된 것으로, 불씨를 손으로 선혈(線穴)에 점화하여 발사하는 유통식 청동제 화기.
3 임진왜란 때 명나라 원군(援軍)이 가져와 전투에 사용한 대포.

姜玉葉 1960년 부산생. 인천 역사자료관 전문위원. 최근 저술로 『외국인의 기록으로 보는 인천근대』(역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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