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혁명 40주년을 맞아 이를 반추하는 작업이 간헐적으로 국내외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68혁명은 프랑스와 독일에서는 루디 두츠케(Rudi Dutschke, 1940~1979)당시 독일 학생운동 지도자와 다니엘 꽁-방디(Daniel M. Cohn-Bendit)당시 프랑스 학생운동 지도자, 현 유럽의회 의원라는 이름으로 남아있고 일본에서는 전학련(全日本學生自治會總聯合), 전공투(全學共鬪會議), 적군파(赤軍派) 그리고 야스다(安田)강당 사건으로 남아있다. 미국에서는 블랙 팬더(Black Panther)미국의 흑인 극좌파 과격단체와 에스디에스(Students for a Democratic Society)미국의 신좌파 학생운동 단체의 추억, 그리고 켄트(Kent)주립대학교의 사살사건(1970)연방군의 발포로 시위학생 네 명이 사망한 사건으로 남아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이와 유사한 사건이나 이름을 떠 올릴 수 없다. 1960년 4월혁명 이래 1990년대에 이르기까지 수없는 시위와 사건으로 점철되어 있는 한국 민주화운동, 학생운동에 있어서 1968년은 이례적으로 평온한 해였다. 정치적으로 1968년은 1965년에 종료된 ‘한일회담 반대운동’과 이제 닥쳐올 1969년의 ‘3선 개헌 반대운동’의 중간에 처해있었으며 당시의 세계적 추세와는 다르게 월남전 반대운동은 한국에서 전혀 눈에 띄지 않았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한국사회가 문화적으로 외부세계와 단절되어 있었고 1950~1960년대의 냉전체제는 아직도 대학과 지식인의 귀와 눈을 막고 있었다는 것이다.
68혁명이 미국과 서방세계에서 문화적·이념적으로 냉전체제의 종식을 선도하고 있었던 것에 반해 1968년 한국은 김신조(金新朝)가 포함된 북한 특수부대의 청와대 습격 기도사건과 삼척, 울진 간첩 침투사건으로 냉전과 열전의 경계점을 오가고 있었다. 또한 유럽의 68혁명이 1960년대 고도성장 복지자본주의의 정점에서 발생한 것에 비해 한국에서는 아직 전태일 분신사건을 2년 앞두고 있는 초기자본주의적 야만이 청계천 일대의 봉제공장에서 횡행하고 있었다.
이 시기 대중운동이 비교적 잠잠한 가운데 발생한 비합법조직운동으로서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킨 이른바 통일혁명당(統一革命黨) 사건1968년의 대규모 간첩단 조작사건이 있다. 이 사건은 이후 1980년대에 다양한 형태로 터져 나온 운동론과 사상론의 한 전범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운동이 지닌 문제의식의 시대적 타당성 여부가 어떻든 이를 한국판 68혁명으로 볼 수는 없다. 이는 반제민족해방운동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으로, 반권위주의적 신사회운동으로서의 68운동과는 여러 점에서 상치하며 무엇보다 68운동의 배경과 당시의 남한 상황은 너무나 상이했다. 또한 당시의 상황은 68운동을 촉발시킨 베트남 민족해방전쟁과 체 게바라(Che Guevara, 1928~1967)의 무장투쟁 무대였던 베트남, 라틴아메리카, 아프리카와도 기본적으로 상이했다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당시 한국은 두 자리 수 고도성장의 단계에 이미 진입해 있었기에 오히려 본격적 산업자본주의 시대의 계급문제를 눈앞에 두고 있었다.
그러나 비록 냉전과 반공, 파월 용사의 무용담이라는 시대 흐름의 벽을 뚫지는 못했다 할지라도 버클리와 소르본느 그리고 베를린 학생운동은 간헐적으로 한국지성의 벽을 두드리고 있었다.
이 점에서 특히 주목되는 것은 1960년대 후반기에 지성적 계몽시대가 싹트는 것이 간헐적으로 보였다는 것이다. 1970~1980년대의 민중운동과 대중적 민주화운동이 엄청난 힘으로 전개되기 이전에 비록 영세한 형태이기는 했어도 새로운 지성이 싹트고 있었으며 이는 68혁명을 배태한 외부의 새로운 지성사적 움직임과 무관하지 않다. 구체적 사례로서는 무엇보다 1966년 1월 백낙청, 김윤수, 염무웅 등이 주도한 <창작과비평>의 창간이다. 백낙청은 창간호에서 “새로운 비평과 새로운 창작”을 들고 나왔는데 이는 순수주의로 표방되는 냉전적이고 무기력한 당시의 지적 풍토에 대한 치열한 문제제기였다고 볼 수 있다. 여기에서 그 후 아놀드 하우저(Arnold Hauser, 1888~1966)와 같은 역사적 관점에서의 예술비평이 소개된 것은 1970년대 민중문학과 민중예술이 태동하고 발전하는 데 중요한 지적 자극이었다. 일본에서의 68혁명을 주도한 좌익 지식인들에게 1956년의 헝가리 사태가 일본공산당과 현실사회주의에 대한 심각한 자성의 계기가 되었는데 이는 대안적 좌익, 대안적 혁명을 추구하는 유럽 신좌파의 움직임과 맥을 공유한다.
1968년에는 프랑스 5월혁명으로 나타나는 서구에서의 혁명적 움직임과 아울러 8월에 현실사회주의 소련에 의한 동구 체코슬로바키아의 두브체크(Alexander Dubček, 1921~1992) 정권이 시도한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에 대한 무력진압이 있었다. 파리 소르본느의 학생봉기와 체코 프라하에서의 두브체크 사회주의에 대한 실험은 조직적 연관이 전혀 없는 별개의 사건이었으나 이는 동시대성의 두 가지 표현이었다고 할 수 있다.
미국과 소련은 어찌 보면 냉전시대의 쌍생아였으며 이에 대한 반발과 비판은 혁명적 대안으로서 체 게바라와 호 찌 민(胡志明, 1890~1969)을 이상적인 혁명의 사도로 보게 하였다.
1974년에 초판이 나온 리영희의 『전환시대의 논리』는 매우 영향력이 컸던 학생운동의 교과서로서 냉전의식의 계몽적 해체를 의도한 것이었다. 여기에서 역시 소련을 위시한 동구라파 현실사회주의에 대하여 침묵하고 베트남 해방전선과 마오 쩌동(毛澤東, 1893~1976)의 문화혁명을 주류적 시각과 전혀 다르게 묘사한 것은 역시 68혁명적 시각이 한국에 미친 영향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한국지식인들은 독일의 프랑크푸르트학파(Frankfurter Schule)1가 68혁명의 이념적 원천이었다고 간혹 생각하는데 이에 대해선 보다 심도 있는 토론이 필요하다. 1960년대의 척박한 지적 풍토에서 당시 대학생들은 ‘비판적 지성’, ‘계몽의 변증법’ 등 낯설지만 매혹적인 개념들을 해설해줄 선생과 선배를 찾아다녔다. 그러나 초보적 형태의 당시 이념서클에서 후기자본주의사회에 대한 비판이론은 아직 낯설었고 한국의 정치, 사회현실과도 큰 거리를 지니고 있었다. 이들보다는 마오 쩌동의 ‘실천론’, ‘모순론’ 같은 팸플릿 해설서가 당시의 이른바 ‘의식화’한 학생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고 할 수 있다(대학노트에 필사본으로 돌아다닌 이 팸플릿은 소지자에게 실형을 선고하게 할 수 있는 효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1970년대 민주화운동이 반공, 냉전, 분단의 굳은 벽을 넘어 마오 쩌동 사상, 게오르그 루카치(Georg Lukacs, 1885~1971), 프란츠 파농(Frantz O. Fanon, 1925~1961)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진 기저에는 68운동의 사상적, 문화적 충격이 놓여 있다.
1960년대의 비합법운동이나 1980년대의 자주파, 평등파 운동은 다 같이 권위주의적 구사회운동을 더 닮았다고 할 수 있다. 이런 면에서 68운동은 아직도 한국사회에 도래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 청계천 광장에서 전개되고 있는 쇠고기 협상 반대 촛불문화제는 혹시 한국판 68운동의 단초를 열지도 모른다는 점에서 주의 깊은 관찰이 필요하다. 이념과 조직의 틀을 갖춘 구사회운동의 잔재가 아니라 전혀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세대가 조직한 항의와 ‘반란’이라는 점에서 이는 기성세대를 당혹과 무기력으로 몰아넣고 있다. 이는 1980년 광주항쟁 이래의 민중운동이나 1987년 6월항쟁의 시민과도 또 다른 무엇이다.

대중의 자발성과 순수성의 발현으로서의 촛불운동이 한국사회의 기성체제 전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수준으로 발전해 나간다면 이는 그간의 어떤 운동보다도 오히려 68운동의 정신과 문화에 근접할 수 있다. 68운동이 자유, 해방 그리고 발랄함으로 차있었다면 이제 한국의 촛불운동은 그에 가장 근사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다. 누구도 예상 못한 시점에 터져 나온 이 촛불운동이 한국사회에서 진정으로 새로운 진보를 선도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인지를 기대와 호기심으로 관찰하며 이에 가까이 가야하겠다.

주)
1 프랑크푸르트사회연구소를 배경으로 M. 호르크하이머, T. W. 아도르노가 주도한 신좌파 지식인 그룹. 철학, 사회학, 미학 등의 분야에서 대중문화산업 비판이론과 반파시즘이론을 주로 연구했다.

李鍾旿 1948년 서울생. 명지대 기초교육대 교수. 저서로 『한국의 개혁과 민주주의』, 역서로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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