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질녘 소양로성당 강원도 춘천시 소양로2가에 소재 에서 서쪽으로 눈을 돌리면 넘실거리는 소양강이 고스란히 눈앞에 다가온다. 마치 지평선처럼 다가와 있는 하늘 끝에 외진 산들이 병풍처럼 둘러서 있는 광경은 산과 강 그리고 하늘이 어우러져 빚어내는 삼중주처럼 아름답다.
1994년 소양로성당에서 영세를 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십 수년이 흘렀다. 초등학교 때도 봉의산 강원도 춘천시 소양동에 소재 밑 파란색 지붕의 원형성당은 풍경화처럼 정이 가는 곳이었는데, 내가 이 성당의 가족이 된 것은 자그마치 40여 년의 세월이 흐른 뒤였다. 내가 영세를 받던 날도 하늘은 그림처럼 아름다웠고, 봉의산 중턱에 우뚝 선 성당이 어머니의 품처럼 고단한 내 인생의 마지막 보루가 되어 주었다.
아직도 소양로성당에는 궁핍했던 시절 맨몸으로 성당 건립에 나섰던 어른들이 생존해 계시다. 전쟁 직후라 모든 것이 부족했던 시절, 그분들의 땀과 기도가 없었더라면 이렇게 아름다운 성당을 태동시킬 수 없었을 것이다. 더구나 특이한 양식의 성당이 벽안(碧眼)의 사제인 부 야고버 한국명. 본명은 James Buckley 신부1의 진두지휘로 지어졌으니, 그리스도를 위한 헌신적인 사랑과 삶이 아름다운 결실을 거둔 것 같다.
전국에 근대문화유산으로 등록된 가톨릭문화재는 17개뿐이다. 가톨릭문화재는 불교나 기독교에 비해 상대적으로 열세인데, 17개의 가톨릭문화재 중 2005년 4월 15일 문화재청에서 등록문화재 제161호로 지정한 곳이 춘천소양로성당이다. 2005년부터 근대문화유산 등록심사를 위해 정밀검사가 시작되었는데, 소양로성당은 고전적 요소와 현대적 요소가 적절하게 혼합된 건축기법이라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성당의 아치형 버팀벽과 천정몰딩천장의 테두리를 장식하는 방법은 교회건축에서 흔히 사용되는 건축공법이지만, 외형을 반원형 평면으로 처리하고 실내외 의장과 제단 주변을 소박하게 처리하여 고전적 스타일과 현대적 건축양식이 추구하는 단아함과 단순함을 잘 조화시킨 데서 심사위원들의 관심을 이끌어내었다. 아울러 원형의 창유리 역시 제단 십자가 조형과 일치하는 데다 보존상태가 양호해 성당이 문화재로 지정되는 데 한몫했다. 심사를 맡았던 대부분의 문화재위원들은 “당시 강원도에서 지어진 교회건축물과 비교해 이곳은 특이한 점이 많아 보존가치가 높다”는 선정이유를 밝혔다. 그럴 수밖에, 우선 성당 전면은 반원형 평면 양식이라 밖에서 보면 마치 원을 반으로 잘라놓은 듯한 반달형이다. 높은 첨탑이 솟아있는 직사각형 종탑의 근엄한 고딕양식을 연상하는 사람들의 눈으로 본다면, 이 건축양식은 당시 파격적인 스타일이었다.
그런데 이런 독특한 성당이 지어진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이 성당은 순교자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지어진 곳이라 제단의 배치며 중앙의 십자고상(十字苦像)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의 수난을 그린 그림이나 새긴 형상 그리고 14처2의 위치 하나하나가 경건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
소양로성당이 춘천교구 죽림동 주교좌본당에서 분리된 것은 1949년 1월이었다. 첫 사제로 부임한 고 안토니오 한국명. 본명은 Anthony Collier, 아일랜드 성골롬반 외방선교회 소속 신부는 신자들에게 여러모로 존경받는 벽안의 사제였다. 6·25가 발발한 1950년 6월 27일, 이미 도피하라는 교구장의 권유가 전달된 후였지만, 그는 성당에 남아 신자와 부상병을 돌보다 인민군에 체포되었다. 복음과 사랑을 실천하다 순교한 첫 사제로 기억되는 그가 죽은 것은 6·25 발발 이틀 후였다. 안타까운 일이다.
그의 순교는 오늘날까지도 남다른 감동을 전하고 있다. 고 안토니오 신부는 피랍 당시 집사 겸 복사(服事)였던 김 가브리엘과 함께 밧줄에 묶여 끌려갔다. 그는 가브리엘에게 “가브리엘 자네는 처자식이 있으니 살아야 하네. 저들이 총을 쏘기 시작하면 재빨리 쓰러지게. 그러면 내가 쓰러지면서 자네를 덮치겠네”라고 말했다. 예상대로 인민군 병사는 한마디 경고도 없이 무차별 사격을 가했고 고 안토니오 신부는 총소리와 함께 가브리엘 위에 엎드렸다. 그 결과 고 안토니오 신부는 순교했지만 가브리엘은 목과 어깨에 가벼운 총상만 입었을 뿐이다. 그는 훗날 고 안토니오 신부의 순교를 생생하게 증언하는 증언자가 되었다.
전쟁이 끝난 후 당시 춘천교구장 구 인란한국명. 본명은 Thomas F. Quinlan 신부와 소양로성당 사제로 임명된 부 야고버 신부는 고 안토니오 신부의 순교를 기리기 위해, 당시로는 흔치 않은 반원형 평면양식을 택해 제단 사방에서 일직선으로 보이는 부채꼴 모양의 성당을 건축하기로 했다. 무엇보다 순교혼을 강조한 성당이라 지금도 들어서면 숙연함에 젖게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성당이 착공된 지 3년이 지난 1956년 9월 3일, 드디어 소양로성당이 완공되었다. 아직도 성당 교우들 중에는 당시 축성식을 기억하는 신자들이 계시다. 대부분 연로하셔서 80대를 바라보는 분들이다. 그렇지만 아직도 그들의 뇌리에는 땀범벅이 된 채 대야로 돌을 나르던 신자들의 허기진 배를 옥수수죽을 쑤어 채워주시던 부 야고버 신부에 대한 기억이 뚜렷하다. “살기는 예전보다 좋아졌지만 그때만큼 신앙생활을 못해 죄송하다”는 나이든 신자들의 고백처럼 요즘 우리가 누리는 풍요가 어느덧 영혼을 옥죄는 방해물이 되는지 모르겠다.

춘천에서 가장 공기가 맑은 곳에 자리잡고 있는 소양로성당도 어느덧 춘천에서 가장 나이든 성당이 되었다. 성당의 신자 역시 대부분 고령의 노인들이다. 그러한 성당에 최근 활력이 찾아들고 있다. 2005년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후 문화재청과 강원도 그리고 춘천시의 지원으로 보수공사가 활발해졌다. 또한 창건 당시의 원형을 보존하기 위해 옛날 성당을 지키던 분들의 고증이 필요해짐에 따라, 젊은 시절을 이곳에서 보냈던 분들의 발걸음이 분주해졌다. 2006년 지붕을 동으로 완전히 교체해 창건 당시 중후했던 외형을 되찾았다. 창틀과 문은 아프리카산 홍목으로 손질해 정갈한 분위기를 찾았다. 그리고 유리는 복층으로, 스테인드글라스는 인보성체(隣保聖體)수도회3의 김 안셀모 수녀의 작업으로 완성되어 중후하면서도 경건한 성당의 분위기로 바뀌었다. 특히 스테인드글라스는 순교자의 넋이 어우러진 성당의 내부를 장엄하면서도 은은하게 꾸며주어 교회예술의 아름다움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신자가 아니더라도 성당의 건축양식을 감상하기 위해 사람들의 발길이 잦아지고 있는 요즘, 성당을 지키는 신자들은 새삼스레 격세지감을 느끼고 있다. 수많은 이들의 땀과 피 그리고 헌신으로 반세기를 넘긴 소양로성당이 문화유산으로 인정받게 된 데는 노사제의 끝없는 수고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전세권 신부(세례명 바오로)의 궤적찾기가 결국은 성당을 명소로 만들었으며, 살아있는 이들에겐 삶의 중요성과 신앙에 대한 질문을 다시 반추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소양로성당은 건축 가치뿐 아니라 양떼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내놓은 벽안의 선교사의 순교혼이 서려있어 온전히 보존해야 하며, 성당의 보존은 민족 분단의 아픔과 궁핍했던 시절의 신앙을 느끼고 배울 수 있어 앞으로 교육장소로도 가치가 있다”는 노사제의 말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소양로성당에서 영세한 뒤 얼마 되지 않아 이사한 나는 지금은 다른 성당엘 나가고 있다. 그렇지만 직장이 소양로성당과 가까워, 살면서 팍팍한 느낌이 찾아들면 어린 병아리가 어미닭을 찾아나서듯 성당의 제단 앞으로 달려간다.
그곳에 위로가 있다. 그곳에 평화가 있다. 그곳에 가면 한없이 자애로웠던 순교자의 영혼을 통해 인생의 의미를 찾고 모든 것에 감사할 수 있다. 

주)
1 아일랜드 성골롬반 외방선교회 소속. 성골롬반 외방선교회는 1916년 에드워드 갈빈(Edward Galvin. 1882~ 1956) 신부와 존 블로윅 (John Blowick, 1888~1972) 신부에게서 시작했다. 성골롬반(St.Columban, 543~615)은 외방선교회의 주보성인(主保聖人)이다.
2 예수가 빌라도 앞에서 사형 선고를 받은 사건을 시작으로 십자가를 지고 해골산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 묻히기까지 일어났던 사건들을 기념하며, 예수가 고난을 당하는 장면을 14개의 성화나 조각으로 표현.
3 1956년 11월 19일, 윤을수(尹乙洙, 라우렌시오, 1907~ 1971) 신부가 교회와 세상의 어려운 사람을 돕는 사회사업과 복음 선포에 협력함으로써 인보(隣保)의 덕을 실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사업에 한몫하고자 설립한 수녀회. 총본부는 전주시 완산구에 있다.

李姬秀 1953년 강원도 춘천생. 수필가. 최근 글로 『가슴으로 흐르는 강』, 『나무는 뿌리만큼 자란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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