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말 현재 중국 쓰촨(四川)대지진2008년 5월 12일 유라시아판과 인도판이 충돌, 강진 발생에 의한 사망자 수가 6만 8천 명을 넘어섰다. 돌발적 상황이 없는 한 앞으로 사망자 수의 급속한 증가는 없겠지만 이번 대지진에 따른 인명손실과 재산 피해, 그리고 살아남은 이들을 기다리고 있는 심리적 충격과 고단한 삶 등 재난이 남긴 상처가 치유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따라서 대지진의 직접적 충격이 서서히 가라앉아가면서 중국인들이 이 고통스런 과정을 어떻게 새로운 희망의 발견으로 그리고 사회의 성숙도를 높이는 것으로 승화시킬지가 새로운 관심사가 되고 있다.

유례없는 자발적 지원활동의 출현
이와 관련하여 대지진에 대한 대응과정에서 나타났던 중국시민들의 자발적 지원활동과 그 경험이 앞으로 중국의 사회변화에 미칠 영향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사실 지진 발생 직후 먼저 해외언론의 관심을 끈 것은 원 쟈바오(溫家寶) 총리 등 국가지도자들이 지진에 대해 신속하게 대응하고, 재난현장에서 현지인들과 아픔을 같이 하며 구조활동을 독려하는 장면이었다. 이는 티베트사태1로 훼손된 중국정부의 이미지를 개선하는 데 커다란 효과를 발휘하였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재난에 대한 초기대응에서 이에 못지않은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 시민들의 자발적 지원활동이다.
우선 기자들과 네티즌들은 정부의 언론관리체제의 여과를 거치지 않고 사태를 정확하게 알려 초기부터 정부, 시민 그리고 국제사회가 사태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대처하는 데 커다란 도움을 주었다. 인터넷에 동영상을 올려 생생하게 현장 상황을 전달한 일반 시민들의 역할은 재난 초기부터 널리 알려진 바 있다. 기자들의 역할도 컸다. 재난 발생 직후 중국공산당 선전부는 재난 관련 보도를 정부의 통제 아래 두고자 하였다. 상하이(上海) 기자들의 증언에 의하면 허가를 받지 않은 현지 취재를 금지하는 선전부의 지시로 취재를 위해 공항에서 대기 중이다 탑승을 포기한 기자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수십 명의 기자들이 이러한 통제에도 불구하고 현지로 달려가 재해 상황을 송고하기 시작하였다.
자발적 행동은 사실 전달 차원에 머무르지 않고 다양한 지원활동으로 이어졌다. 먼저 현지에서 신속한 대응에 민간조직들이 앞장섰다. 지진 피해 지역의 하나인 몐양시(綿陽市)의 한 무선통신동우회는 지진 발생 직후 이번 지진으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베이촨현(北川縣)과의 통신을 회복하여 지원이 효과적으로 이루어지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 그밖에 택시기사, 의료인, 심지어 일용건설노동자도 구조활동에 자발적으로 나섰다. 시간이 흐르면서 전국각지에서 자원봉사를 지원하는 사람들과 지원성금이 쓰촨 지역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지진 발생 후 일주일 만에 13억 달러 규모의 성금이 답지하였고, 자원봉사자 수가 20만 명을 넘어섰다는 소식도 들려왔다.

시민사회가 등장하고 있는가?
중국에서 계층과 지역을 뛰어넘어 같은 목표를 위하여 자발적 지원활동이 전개된 것은 유례를 찾기 어려운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활동은 자연스럽게 중국의 시민사회 형성이라는 화두로 이어지고 있다.
여전히 중국의 시민사회 발전에 회의적인 시각이 적지 않다. 중국에서는 민간조직의 결성 및 활동에 커다란 제약이 존재한다. 민간조직의 결성은 관련 기관의 허가를 받아야 가능하며, 지역과 활동영역을 벗어난 연대활동은 사실상 금지되고 있다. 이는 중국의 민간조직이 정부가 인정하는 매우 제한된 영역에서만 생존이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건전한 시민사회의 발전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번과 같은 시민들의 자발적 활동은 비상한 상황에서나 가능한 것이고 그 활동의 성과를 조직적 혹은 제도적으로 남기기 힘든 일회적인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사태는 그리 간단하지 않을 것이다. 체험을 통해 얻은 인식은 글로 얻은 지식과는 달리 사람들의 사고와 행동에 오랜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면 지난 1998년 창쟝(長江)대홍수2는 중국인들에게 환경문제의 심각성을 보여주었고, 그 집단적 경험은 중국 내에서 환경운동과 환경NGO들이 발전할 수 있는 정서적 기초가 되었다. 2000년대 들어 중국에서도 환경NGO를 중심으로 NGO들이 빠르게 증가하였고, 이들이 이번 구재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중국의 NGO들은 비록 정치적 선명성을 갖기는 어렵지만 환경, 빈곤극복과 같은 주요한 사회 의제를 적극적으로 제기하고 활동하고 있다. 특히 환경운동 영역에서 최근 몇 차례 정부의 주요 건설프로젝트를 백지화하는 성과를 거두기도 하였다. 그 주요 성과 중 하나가 (2003년 8월 바로 이번 대지진으로 커다란 피해를 입은) 전국시대(戰國時代)에 건설된 관개시설 두장옌(都江堰)3을 지방정부의 수리사업계획으로부터 보호한 것이다. 두장옌 유적이 이번 대지진으로 파괴되었으니 환경NGO들은 다른 감회를 갖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지진 발생 다음 날인 5월 13일 57개의 NGO들이 구재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을 호소하는 성명서를 발표하였고, 5월 14일에는 NGO쓰촨지역구재연합사무실(NGO四川地區救災聯合辦公室)을 쓰촨의 청두(成都)시에 설치하여 NGO를 통한 지원 성금과 물품 수집 및 배포활동을 체계적으로 전개하기 시작하였다. 물론 이번 대지진의 피해규모를 생각하면 이들을 통해 전달된 자금, 물품의 규모(매일 약 7만 달러)는 조족지혈(鳥足之血)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시민들의 자원봉사활동과 NGO들의 적극적인 활동은 효과적인 대응체제가 갖추어지지 못한 초기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데 커다란 정신적·실질적 도움을 주었다. 그리고 NGO들 역시 자신의 활동이 갖는 한계를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어 5월 21일 초기 긴급구재활동의 필요성이 줄어들고 정부의 지원, 구재체제가 안정되어가는 현실을 고려하여 5월 30일까지 초기 지원활동사업을 정리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이후의 재난극복활동에서 NGO들이 철수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오히려 NGO들은 앞으로 자신들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질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중국에서 최초로 조직된 환경NGO인 ‘자연의 벗(自然之友)’의 주요 활동가인 량 샤오옌(梁曉燕)은 한 인터뷰에서 “NGO는 초기 대응보다는 심리적 상처의 치유, 자립 활동의 지원 등에서 더욱 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지적하였다. 이번 지원활동에 참가한 NGO들은 이후 복구활동을 더욱 지속적이고 체계적으로 지원하는 새로운 연합조직의 결성을 모색하고 있다.

남은 문제점
이후 상황이 NGO의 계획대로 전개될지는 미지수이다. 가장 커다란 문제는 비상한 상황에서 NGO들의 활동을 관용한 중국정부의 태도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인가이다. 중국정부는 NGO들 사이의 연합활동에 상당히 민감한 반응을 보여왔기 때문에 현재 NGO들이 계획하고 있는, 재난극복을 상시적으로 지원하는 연합조직이 정부의 허가를 받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이후의 재난극복활동에서 NGO와 정부가 어떤 방법으로 협력관계를 유지할지는 중국 시민사회의 발전 속도를 판단할 수 있게 해주는 주요 시금석이 될 것이다.
문제는 정부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민간차원의 재난대응 과정에서 종종 과도한 애국주의, 민족주의적 정서가 표출하고 있다. 재난구호기금을 전달한 기업 등에 대해 그 액수를 문제 삼고, 누가 많이 냈는지 적게 냈는지를 평가하는 식의 일부 중국인들의 맹목적인 행동은 자기중심적 사고를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 과정에서 청두시의 맥도날드 매장이 성금을 내지 않았다는 유언비어의 희생양이 되기도 하였다.
국가라는 프리즘에 갇히지 않고 세계시민이라는 지평에서 소통을 추구하는 중국 NGO들도 이러한 맹목적 민족주의의 피해자가 되기 쉽다. 중국 NGO들이 이러한 맹목적 애국주의를 극복하고, 이번 재난 대응과정에서 보여준 연대의식으로 중국이라는 경계를 넘어서는 공명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면, 그것은 중국 시민사회의 발전뿐 아니라 세계의 평화적 공존이라는 면에서도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주)
1 2008년 3월 10일부터 수일간 시짱(西藏)자치구의 라싸(拉薩)지역과 쓰촨성 등 티베트인들의 거주지역에서 시위가 일어나자 중국 정부가 강경진압에 나섰다.
2 1998년 7월 2억 명 정도의 사람들이 피해를 입고, 250억 달러 가량의 재산피해가 발생한 재해로, 무분별한 산림 채벌과 개발이 홍수의 원인 중 하나였다.
3 쓰촨성 청두시(成都市) 서쪽에 위치한 수리관개시설로, 기원전 256년 촉(蜀)의 태수이자 천문지리에 능통했던 이빙(李氷)이 민쟝(岷江)의 물줄기를 조절하기 위해 건설하였다. 2000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으나, 이번 지진 때 파괴되었다.

李南周 1965년 서울생. 성공회대 중국학과 부교수, 계간 <창작과비평> 상임편집위원. 최근 저술로 「중국 물권법 통과가 뜻하는 것」, 『중국 시민사회의 형성과 특징』 등. lee87@mail.skh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