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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년 타이완(台灣) 대통령선거(이하, 대선) TV광고의 한 장면.
어린이 1: “너희 집 생활형편은 언제 나아질 것 같니?”
어린이 2: “마상(馬上, 금세), 쥬후이하오(就會好, 좋아질 거야)”
본래 ‘곧바로’라는 의미를 가진 중국어 마상(馬上)을 ‘마(馬) 잉쥬가 대통령타이완에서는 총통(總統)이라 일컬음직에 오르게(上) 되면’으로 읽을 수 있게 배치하는 재치가 돋보였던 선거광고대로 중국국민당(이하 국민당) 후보 마 잉쥬(馬英九)가 대선에서 승리함으로써 타이완사회는 천 수이볜(陳水扁)의 과거 8년과는 다른 국면을 맞게 되었다. 타이완 대선결과의 배경에 대해서는 이미 비교적 상세한 분석이 있었고,혼다 요시히코, 「타이완, 두 번째 정권교체」, <플랫폼> 제9호 또 모든 일간지마다 나름의 분석을 싣고 있어 이것들을 챙겨보면 마 잉쥬 당선의 배경과 의미, 그리고 향후 전망도 어느 정도 가능하다. 다만 타이완 역사를 비교적 오랫동안 관찰해온 역사학도로서 이미 다루어졌던 것과는 다른 관심과 시각에서 타이완 대선을 점검해볼 필요를 느낀다. 우선 주목하고 싶은 것은 타이완의 정치지형을 국민당≒통일/친중(親中), 민주진보당(이하 민진당)≒독립/반중(反中)의 이분법으로 인식하는 경향이다.
국민당≒통일/친중 vs. 민진당≒독립/반중?
쟝 졔스(蔣介石, 1887~1975)가 이끄는 국민당은 1949년 중국공산당과의 내전에서 패퇴하여 일종의 ‘외래정권(immigrant state)’으로서 타이완에 중화민국(中華民國)을 수립한 이래, 정치적으로는 대륙의 수복(소위 ‘反攻大陸’), 문화적으로는 중국 전통문화의 수호(소위 ‘文化中國’)를 표방하며 1980년대 말까지 계엄령 하의 일당독재체제를 굳건히 유지했다. 이 과정에서 국민당과 함께 타이완에 이주한 대륙인, 즉 외성인(外省人)이 타이완사회의 정치· 경제 자원을 독점하다시피 하며, 그 이전부터 타이완에 거주해온 본성인(本省人)의 정치참여 열망을 억눌렀다. 때문에 타이완의 민주화운동1은 자연스럽게 본성인의 정체성을 강조하는 ‘타이완 민족주의’와 긴밀히 연결되었다. 또 민주화운동의 구체적 결실로서 창당된 민진당이대륙으로부터의 독립을 표방한 것도 자연스러웠다.
하지만 국민당 역시 본성인의 민주화운동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상당한 변모를 겪게 된다. 그 결정적인 계기는 1971년의 미·중 수교와 미·타이완 단교였다. 대내적으로는 항일정권이라는 것에, 대외적으로는 미국과의 군사적·외교적 유대에 타이완 통치의 정당성을 구했던 국민당은 그 한 축인 미국과의 동맹을 상실하면서 새로운 통치의 정당성을 찾았고, 그것이 소위 본토화(本土化)였다. 아버지를 대신해 실질적으로 정치권력을 장악한 쟝 징궈(蔣經國, 1906~1988)의 주도 하에 본성인 출신을 국민당의 핵심 요직에 등용하면서 외성인과 본성인의 ‘공존’을 적극 모색한 것이다. 본성인 출신의 리 덩후이(李登輝)1988~2000년 국민당 주석이자 타이완 대통령가 쟝 징궈 사후 국민당 주석과 총통에까지 오를 수 있었던 것도 본토화의 흐름을 배경으로 한 것이지만, 이러한 정치권력의 토착화 노력은 국민당으로 하여금 마냥 ‘통일’만을 강조할 수는 없게 만들었다. 마 잉쥬가 대선 공약의 하나로 내건 ‘삼불(三不, 대륙과 통일하지도 않고, 독립하지도 않으며, 무력도 사용하지 않는다)’ 정책은 1971년 이래 국민당의 변화를 집약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민진당 역시 ‘타이완 민족주의’에 편승해 최대 야당으로 성장하고 결국 대권까지 장악할 수 있었지만, 이들이 과연 문자 그대로 타이완의 ‘독립’을 희망한 것일까. 양안관계와 관련한 중국정부의 비타협적 노선과 미국의 현상유지 전략을 고려할 때, 타이완의 독립이 실현될 가능성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진당이 언필칭 ‘독립’ 또는 ‘타이완 민족주의’를 내세우는 것은 무슨 이유에서일까? 필자가 보기에 민진당의 ‘독립’ 주장은 그동안 국민당과 외성인 위주로 편성된 타이완사회의 정치· 경제적 자원의 재분배를 위한 명분으로서의 성격이 강하다. 다시 말해 ‘독립’ 주장은 대(對)중국 선언이라기보다는 타이완사회의 정치· 경제 개혁을 위한 대(對)외성인 선언의 성격이 강하다는 것이다. 천 수이볜이 민진당 후보 셰 창팅(謝長廷)의 선거를 지원하기 위해 쟝 제스의 본명을 따서 명명한 ‘중정공항(中正空港)’과 중정기념관의 현판 ‘다중즈정(大中至正)’2을 각각 타오위앤(桃園)공항과 쯔여우광장(自由廣場)으로 개명하는 소위 정명(正名)운동을 벌여 죽은 쟝 졔스를 ‘환기하려’ 한 것도 위의 맥락에서 보면 더 잘 이해된다.
이렇게 보면 국민당과 민진당의 통일/독립 및 친중/반중을 둘러싼 차이는 생각보다 크지 않다. 왜 이런 변화가 생겼을까? 그것은 타이완사회의 여론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통일/독립 문제가 불거져 나온 1990년대 이래의 어떠한 여론조사에서도 (통일도 독립도 아닌) 현상유지를 지지하는 비율이 80% 이하로 내려가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은 타이완 주민의 의사가 어디에 있는지를 웅변해준다. 통일이냐 독립이냐라는, 지극히 예민한 문제에서 한발 비켜서서 (한 타이완 역사학자의 지적대로) ‘국가와 비국가(非國家)의 경계’에 서 있는 타이완의 현상을 가능한 한 길게 끌고가고 싶어 하는 것이 타이완 주민의 공감대인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과거 대륙수복을 꿈꾸었던 국민당도, 타이완의 독립을 열망하던 민진당도 과거처럼 선명하게 통일이나 독립을 말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러한 ‘중간지대’로의 수렴은 당분간 계속될 것이다. 마 잉쥬가 당선 직후의 기자회견에서 통(일)· 독(립)의 문제는 50년, 아니 100년 후의 문제로 미루어 두자고 호소한 것도 타이완 주민의 현실감각을 존중한 결과라고 읽어야 할 것이다.
 익숙한 과거로의 회귀: 양안 경제의 역사와 ‘양안공동시장’의 창설
마 잉쥬의 당선을 가능케 한 핵심공약 중 하나가 중국과 타이완의 대외관세를 일치시키고 양안 간 노동력, 자본 등 각종 생산요소를 자유롭게 이동케 하여, 궁극적으로는 유럽연합처럼 경제공동체를 형성하자는 ‘양안공동시장’ 창설의 주장이었다. 이것은 지난 8년간 양안 간의 인적·물적 교류를 가능한 한 차단하려 애썼던 민진당 정권의 그것으로부터 크게 일탈한 것이기에 과감하고도 충격적인 제안으로 비친다. 하지만 양안 경제의 오랜 역사를 관찰할 경우, 이는 ‘익숙한 과거’로 되돌아가는 것이기도 하다.
청(淸, 1636∼1912)이 타이완을 제국 판도에 편입한 1683년 이래 대륙과 타이완 간의 양안무역은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그 주된 원인은 대륙과 타이완 간에 지역적 분업체계가 강하게 형성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즉 타이완은 대륙에 쌀, 설탕 등 농산물을 수출하고 대륙으로부터 면방직품이나 도자기 등 거의 모든 일상용품(수공업제품)을 수입했다. 1860년의 개항타이완은 제2차 중영전쟁의 결과로 개항되어 대륙에 비해 약간 늦음 이후로도 서양자본의 침투가 있긴 했지만 대륙과 타이완의 경제관계는 쇠퇴하지 않고 오히려 강화되었다. 1895년에 시작된 일제시대에 일본자본의 독점구조가 성립하기는 했지만, 적어도 양안무역에 관한 한 타이완 토착자본은 활발하게 활동했다. 특히 일제시대에 타이완과 대륙은 서로 다른 정치공간이었지만 타이완의 상대적으로 앞선 자본축적과 기술력이 대륙을 지원하고 대륙 또한 타이완에 노동력과 수공업제품을 제공하는 관계였다. 이러한 지역적 분업을 통해 양안의 무역과 투자가 모두 성장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이 양안무역을 기반으로 성장한 타이완 토착자본은 1945년 이후 타이완 내에서 큰 영향력을 가진 경제세력이 되었다.3 17세기말 대륙의 한인(漢人)들이 타이완에 이민 온 이래 400년간 정치적 측면에서 양안이 통합된 기간은 228년, 분열된 기간은 144년으로 분열된 기간 또한 짧지 않았다. 하지만 경제적 측면에서의 결합은(일제시대를 포함하여) 364년이나 된다. 1949년 이후의 전면적인 경제적 단절은 오히려 예외적 현상이었던 셈이다. 요컨대 정치적 분열기라고 하더라도 양안은 경제·무역에서만큼은 상호의존적이었고, 또 그랬을 때 양안 경제가 모두 활성화되었다. 따라서 양안의 정치적 통합 여부와 관계없이 양안간의 활발한 경제적 교류는 역사적으로도 가능했고 앞으로도 가능할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다만 마 잉쥬의 당선을 계기로 한 양안 경제관계의 심화는 타이완사회에 모종의 정치적 선택을 압박할 가능성이 크다. 마 잉쥬와 국민당에 주어진 과제는, 양안경제의 활성화를 통한 타이완 경제의 ‘부흥’과 경제체(economic entity)로서의 타이완의 ‘독립’, 이 양자 간의 균형을 적절하게 유지하는 것이 될 것 같다. 당장 현실화되지는 않겠지만, ‘양안공동시장’의 결과로 파생하게 될 다양한 측면에서의 대륙 발(發) 충격을 타이완사회가 어떻게 흡수하는가(또는 흡수하지 못하는가)를 지켜보는 것은, 타이완이라는 ‘상상의 공동체’의 성립 여부와도 직결된다는 면에서 흥미로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주)
1 국민당이 자신 외의 어떠한 정당도 불법화했기 때문에 ‘당외운동(黨外運動)’이라 칭한다.
2 그 어디에도 치우침이 없고 지극히 바른 상태를 뜻하는 말로, 여기서는 “무슨 일에도 중용을 지키는 것이 가장 올바르다”란 장개석의 가르침을 뜻한다.
3 타이완의 10대 재벌 중 하나이자 타이완 해협교류기금회 이사장으로서 1990년대 양안관계 조율에 공헌한 구 전푸(辜振甫) 가문 역시 일제시대에 발흥한 대표적인 타이완 자본이다.
文明基 1968년 경북 상주생. 인하대 한국학연구소 HK연구원. 최근 글로 「청말 대만의 번지개발과 족국정치의 종언」, 「‘사회주의 시장경제’라는 형용모순」 등. moonster090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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