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은 목소리다. 발화하는 순간 적은 정해진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 혁명의 적은 누구인가. 벌써 40년이 된 프랑스의 1968년 5월 혁명, 보통 ‘68년 5월(Mai 68)’로 불리는 학생주도 혁명이 알려주는 것은, 그 적이 또한 ‘나’라는 것이다. 혁명의 적은 저만치 있지 않다. 내 목소리를 살찌운 나의 이력. 자본주의 대한민국 국민인 내 주민번호 자체가 그 적이다. 내 안에는 그 둘이 다 있다. 혁명의 목소리. 그리고 혁명의 적인 바코드. 몸은 숨기지 않고 모든 것을 요구한다. 아니 욕망한다. 몸은 몸을 원한다. 차라리 그 몸을 장려하는 순간, 내 목소리는 혁명의 목소리가 된다. 나는 연루되어 있다.
40년 전으로 되돌아가 보자. 또 21년 전으로. 1968년 5월의 프랑스 파리. 그리고 1987년 6월의 서울. 1968년 5월, 그들은 프랑스 파리에 있었다. 경찰들이 점령한 낭테르(Nanterre) 대학이 폐쇄되자 분노는 더 커졌다. 수많은 학생들은 결국 소르본(Sorbonne) 대학 구내에 진입하여 그곳을 해방구로 선포했다. 학생들의 시위는 전국 총파업으로 이어졌다. 프랑스 전체 노동자의 3분의 2에 해당하는 2천만 명이 파업에 동참했다. 드골(Charles. De Gaulle, 1890~1970)당시의 대통령은 쫓겨 나갔다. 승리가 눈앞에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승리라는 것은 언제나 순간적인가. 6월이 되자 노동자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일터로 복귀하기 시작했다. 6월 23일의 선거에서는 아이러니컬하게도 우파가 승리했다. 혁명은 어쩌면 일상의 정지, 큰 파티가 아닐까. 해결된 것은 적고 자본은 폭식상태에서도 배고픔을 감추지 않았고 제3세계는 여전히 제3세계였다. 그러나 사람들은 기억한다. 1968년 5월, 해방의 시간을. 그것은 차라리 오르가즘에 대한 추억에 가까울 정도로 아스라하고 절박하다. 그 기억은 현재진행형이다. 그래서 혁명은 계속된다. 최소한 그렇게 믿는다.

1987년 6월 10일, 나는 명동에 있었다. 사실 나는 운동권 학생이 아니었다. 6월 10일 오후, 내가 어디에 있었는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나 불현듯, 그 날 5시 경에는 명동에 있었다. 마치 잠을 자고 있다가 퍼뜩 깨어난 사람처럼 나는 긴장상태 속에서 거리에 나와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6시 무렵, 사람들은 파도를 타듯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떨림을 기억하면 아직도 소름이 돋는다. 수많은 사람들의 열망이 만들어내는 구체적인 물결, 오랫동안 바람을 기다려왔지만 오지 않는 바람 때문에 침묵해야 했던 그 물결. 잠잠했던 그 물결이 만난 바람, 일순 일렁이며 흔들리는 대기. 나는 사람들의 파도에 몸을 실었다. 현기증 나도록 높고 집채만큼 큰 그 파도의 작은 물방울이 되어 저 쪽 어두컴컴하고 두터운 방탄옷을 입은 방독면의 군단, 전경들의 바위를 향해 용솟음치며 쏟아질 때의 벅찬 느낌은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나는 뛰었다. 한 번도 말해본 적 없지만 진정 가슴에 담아두었던 사람에게 어느 날 갑자기 사랑한다고 울먹이며 고백하듯, 사람들은 북받쳐서 구호를 외쳤다. 호헌철폐. 독재타도. 구호는 명확했고 훌륭했다. 그렇게 그해 6월은 시작됐다. 차들만 다니던 미도파백화점 앞의 대로에 발을 디디니 이 길이 이렇게 넓었나 싶었다.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사람들이 점령한 길 위로 하릴없이 신호등은 빨간불, 노란불, 파란불을 번갈아 켜고 있었다. 제도는 어느 순간 그렇게 무기력했다. 아무도 신호등을 거들떠보지 않았다. 2002년 월드컵 때 거리의 신호등은 한 번 더 그렇게 무장해제된 적이 있다.
그리고 6·29선언. 아이러니컬하게도 그해 겨울의 대선에서 노태우가 대통령이 됐다. 그때 나는 서울 중림동에서 공정선거감시단원으로 투표소를 감시했다. 명백한 부정선거였다. 표가 나오지 않은 전라도 할아버지가 울부짖었다. 연좌했고, 경찰이 왔고 투표함은 그들의 물리력으로 어디론가 실려 갔다. 그리고 끝이었고 다시 긴 시작이었다. 실어증 상태 비슷한 느낌으로 그해 겨울을 났다. 나는 여전히 운동권이 아니었다. 1988년 봄이 오자 후배들이 입학했고 그들은 자유롭게 해방을 노래했다. 골리앗 크레인, 노동자들의 춘투(春鬪)는 계속되었고 뚫린 88도로로 외국 손님들이 들어왔고 올림픽 공원 아파트는 비싸게 팔릴 준비를 하고 있었고 올림픽의 가을이 다가오자 휴교령이 내려졌다. 그동안 내 청춘은 착잡하게 흘러갔다. 친구들은 군대에 갔고 1988년 가을, 잠실에서 성화를 점화할 때 비둘기 몇 마리가 탔고 하늘은 드높았다.
다시 40년 전 파리, 1968년 5월. 사람들의 생각은 저마다 달랐다. 너무도 당연히, 그 생각이라는 것은 그렇게 다른 것이다. 그걸 몰랐던가. 68혁명은 세대혁명이었다. 한 세대가 자기 세대의 욕망을 과시한 전시장이었다. 학생들은 마오(毛澤東, 1893~1976)의 꿈을 꾸었고 구름처럼 생긴 체 게바라(Che Guevara, 1928~1967))의 턱수염에서 희망의 꽃을 피웠다 지웠다. 노동자들은 총파업을 통해 35% 임금 인상을 요구했고 정부가 25%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하자 협상은 결렬되었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여전히 제국주의 프랑스의 위대함을 목젖 깊이 숨겨두고 있었고 쫓겨 가는 레지스탕스(r럖istance) 지도자 드골의 뒷모습을 안타까워했고 학생들은 제국주의 프랑스의 완전한 해체를 꿈꾸었다. 상황주의자1들은 “일하지 말라(Ne Travaillez Pas)”라는 구호를 벽에 새기면서 검은 깃발을 가슴에 숨겼고 어른들은 버르장머리 없는 전후세대를 책망했다. 세르쥬 갱스부르(Serge Gainsbourg, 1928~1991)로 대표되는 프랑스의 록큰롤 파, 예예족 음악과 춤에 미친 전후세대의 젊은 남녀들은 싸이키델릭(psychedelic)한 캘리포니아를 동경했고 섹스의 문은 열렸고 어른들은 시끄러워서 못살겠다고 했으며 여전히 이브 몽땅(Yves Montand, 1921~1991)이나 샤를 아즈나부르(Charles Aznavour)가수, 영화배우의 드라마틱한 캬바레공연을 추억했다.

1987년. 그해에 사람들은 깨달았다. 혁명은 하나의 마침표가 아니라 긴 성장소설의 마지막 장이라는 것을. 루카치(Georg Lukacs, 1885~1971)가 얘기했듯 소설은 끝났고 나는 타락했으며 작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그것은 긴 시작의 첫 마디였다. 1990년대, 인디(indie)라는 개념이 등장했다. 나는 인디의 배에 몸을 실었다. 공룡 틈에서 노는 쥐, 자본주의의 완전한 해체가 아니라 그 속에서 생쥐처럼 사는 일종의 자그마한 해체의 엔지니어가 되기로 결심했다. 나는 시를 썼고 밴드를 했다. 욕망은 인정되었고 장려되었으며 나는 차라리 순진한 꿈꾸는 나비들의 아름다운 빛깔을 그려 나갔다. 노래를 만들었다.
상황주의자 기 드 보르(Guy E. Debord, 1931~ 1994)는 1970년대 초, 68의 장면들을 콜라쥬(collage)한 전위영화를 만들었다. 비틀즈는 화이트 앨범백색의 앨범자켓에서 유래에서 <레볼루션Revolution>이라는 노래로 68을 추억했다. 영국의 말콤 맥러렌(Malcolm McLaren)은 1970년대 말 섹스피스톨즈(Sex Pistols)의 매니저가 된다. 펑크의 검은 깃발 일부는 68에 뿌리를 두고 있다. 들뢰즈(Gilles Deleuze, 1925~1995)와 가타리(F럏ix Guattari)는 68의 허무 속에서 리좀(Rhizome)이라는 개념을 길어낸다. 뿌리 없는 뿌리의 수염뿌리. 줄기들의 뿌리. 다양하게, 우발적으로 가지를 치는 운동. 68 이후 운동은 그렇게 자라났다. 노동, 풍속, 여성, 표현. 운동과 혁명의 다양한 가지들은 거대한 결말을 버리고 현재형으로 끝없이 운동하는 방식을 취했다. 그래야 마땅했다.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는 ‘정의’라는 개념 자체를 해체하고 끝없이 갱신되는 법의 운동성을 택했다.
그리고 2008년 6월.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촛불 문화제가 열린다. 한국은 디지털 시대, 온오프라인을 아우르는 혁명을 경험한다. 경찰의 과잉진압이 있긴 했지만, 하기가 무섭게 사과한다. 과잉진압해서 미안하다고. 아, 혁명은 즐겁다. 젊은이들은 이 혁명의 시기를 겪고 위장취업을 택하지는 않을 것이다. 대신 7월 8월에 있을 페스티벌에 참가할 것이다. 욕망의 연장선상에서의 운동. 혁명은 레저의 일부이기도 하다. 촛불문화제는 싸움과 놀이의 구분을 해체한다. 심지어 적들도 함께 와서 논다. 미군철수 같은 구호를 외치는 사람은 없다. 그렇다고 가이드라인이 사라지지도 않는다. 미국은 여전히 신자유주의 괴물, 미국이다. 우리도 미국의 욕망을 나눠가진다. 이 시위에 외국인 노동자들은 참가하지 않는다.
다시 68. 그리고 87. 우리는 여러 겹의 말들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발화되는 순간, 한 목소리 안에 여러 겹의 화성이 들어 있다. ‘도’라는 하나의 음정을 노래하는 순간 수많은 배음들이 함께 울린다. 그렇게 이념은 해체된다. 현재진행형으로 발화되는 여러 겹의 문장이 노이즈의 상태에서 의미의 지평으로 떠오르는 순간을 해방구는 포착한다. 그러나 그림은 쉽게 그려지지 않는다. 잘 그린 그림은 그림일 뿐이다. 혁명의 그림을 그려 시간의 갤러리에 전시하는 시대는 철거됐다. 대신 혁명은 다음 문장이 나오도록 하나의 문장을 꺼내는 일, 대화 상대의 목소리가 트이도록 머뭇거리며 말을 시작하는 일이라는 것을 우리는 잊지 않는다. 동지들 내부의 발화의 복수성(複數性)을 이해하는 과정은 혁명의 상호텍스트성, 기나긴 문화적 대화의 과정을 요구한다. 물음표는 하루아침에 지워지지 않는다. 그래서 68이나 87은 여전히 현재형이다.

주)
1 상황주의(situationalism) : 현대 자본주의가 스펙터클의 생산을 통해 대중을 수동적 구경꾼으로 만들기 때문에 적극적인 ‘상황’ 창조를 통해 능동성을 회복하자고 주창한 운동.

成耆完 1967년 서울생. 시인, 밴드 3호선버터플라이 멤버. 최근 글로 「펜타포트, 축제세대의 장」, 시집으로 『유리이야기』 등. kiwansung@par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