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때다. 하루에 무협지 한 권을 꼭 읽어내던 시절이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왜 그렇게 무협에 빠져 있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물론 복합적인 이유들이 있겠지만 그때만 하더라도 무협의 주인공을 통한 대리만족이겠거니 했다. 아! 공부하는 척하며 읽을 수 있어서 부모님에게 혼이 덜나기도 했으니 접근의 용이성도 한몫했으리라 본다. 무엇이 나로 하여금 무협지에 혹하게 만들었는가?
<플랫폼>의 표지에서 특집 ‘무협의 재발견’을 보는 순간 나름대로 위 질문에 대한 답이 있을까 기대하였다. 무엇이 우리로 하여금 무협을 다시 보게 하는가에 대한 답은 위의 질문에 대한 답과 같을 것이라 예상했다. 또 무협이라는 동아시아의 특수한 문화 현상에 대한 비평적 안목이 함께 펼쳐질 것이라 내심 기대하였다. 그러나 초점은 무협이 영화와 소설, 게임에 어떻게 접목되어 나타나는지 또는 역사적 차원에서 어떻게 발전되어 왔는지에 대한 글뿐이었다. 문화비평적 안목은 있으나 ‘무협의 재발견’이라는 주제에 부합되는 것인지 의문이 간다. 그나마 「아이콘으로서의 주성치」는 흥미 있는 글이었다. 주성치 영화의 힘이 어디에서 오는지 보여주는 대목은 특히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아쉬운 점이 남는 것이 사실이다. 우리가 현 시점에서 무협에 다시 매력을 느끼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필두로 특집을 꾸렸으면 더욱 좋았으리라 본다.
이런 아쉬움을 뒤로 하고 이번 호에서 가장 반갑고 재미있었던 글은 송인상의 「복원된 신화, 그 속에서 만난 아시아」이다. 요즘 역사와 신화를 주제로 하는 출판물들이 범람하고 있는 시점에서 나름대로 그 이유를 찾아 헤매고 있던 차였기에 더욱 반가웠다. 글에서는 신화가 인도의 현대미술에 생명력을 부여하고 있다고 보는데, 미술의 차원을 넘어서 신화가 다양한 문화공간에서 폭넓게 사용되는 것을 볼 수 있다. “20세기 후반을 주도해 온 포스트모더니즘이 20세기 말을 전후하여 퇴조해감에 따라 그동안 비합리적인 사고의 산물이라는 오명 속에 배척되었던 신화의 가치가 미래의 예술을 불 지필 새로운 키워드로 부상하고 있다.” 요즘의 신화 복고 현상에 대한 명확한 하나의 답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이번 호에서 처음으로 <플랫폼>과 만났다. 내 인생의 여정에서 얼마나 많은 플랫폼과 만날지 모르겠지만 내가 만난 <플랫폼>에서는 나를 다시 돌아볼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한다. 또한 다음 여행을 할 수 있는 힘을 안고 지나가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