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전 이곳에 조선최고의 미항(米港)이 있었다. 쌀가마를 탑처럼 세워두었던 부두와 담 하나를 두고 세워진 세관의 망루엔 조선 인부들을 감시하던 번뜩이는 눈이 있었을 것이다. 1,300리 끌고 오던 금강이 서해바다를 만나 몸을 푸는 곳, 멀리 뵈는 장항제련소1 굴뚝이 세월을 넘겨보는 망원경 같다.

여객터미널이 이사간 후, 군산 내항2은 적요해졌다. 가끔 장항까지 오고가는 배에서 대여섯 명의 승객이 타고 내릴 뿐, 아이를 갓 낳은 여인처럼 금강의 탯줄을 다 풀어놓은 째보선창 조선시대부터 발달한 군산의 포구 중 하나, 일제강점기 때 발달한 선창이 갈증이 난 듯 자꾸 짠 물결만 들이킨다. 채만식의 『탁류』에서 정주사가 건너온 뱃길이다.

올해로 군산세관 건물은 건립한 지 꼭 100년을 맞는다. 해관에서 1907년 군산세관으로 개칭되면서 이듬해 새 건물에 입주하게 된 것. 당시는 전국적으로 국채보상운동이 들불처럼 번졌던 애국계몽기였다. 나라를 망하게 한 매국노 탓에 1,300만원의 나라 빚을 갚지 않고선 외세에 휘둘릴 수밖에 없다며 민중들이 너도나도 가락지를 내놓던…십년 전 재현되던 그 풍경…. 일본인들은 86,000원이라는 거금을 대한제국 금고에서 빼내 군산세관 건축경비로 썼다.

1908년 독일인의 설계를 바탕으로 탁지부건축사무소 총감부 산하 토목공사를 도맡아 하던 곳에서 공사한 세관건물이 화려한 외양을 자랑하며 준공식을 마친다. 세 개의 첨탑은 8월의 햇빛에 사무라이의 투구처럼 빛난다. 화강석으로 마감한 중앙의 출입구를 제외한 바깥벽은 벨기에산 붉은 벽돌을 썼다. 고딕양식의 건물 지붕과 로마네스크 양식의 아치형 창문은 고풍적이다. 물고기 비늘모양으로 슬레이트를 일일이 오려 붙인 지붕은 군산항을 한 마리 물고기로 그려냈다. 근대의 부두 위에서 퍼덕이던 한 마리 물고기. 숨이 가쁘던 조선의 근대풍경.

아기자기한 건물외양에 넋을 놓고 있을 무렵 건물담당인 나영구(45세) 반장이 말을 건다. 1993년까지 90여 년 간 세관 본청으로 쓰였던 마지막을 그는 기억하고 있었다. 얼마 전까지 경비실로 쓰인 이곳을 기념관으로 조성할 당시, 근대 유물의 대부분은 소실되고 역대 지서장 명부와 1931년부터 쓰였던 독일제 금고가 창고에 방치되어 있었다고.

문득, 소설가 박경리(朴景利, 1926~2008) 선생이 작고하기 얼마 전 방송에 나와 한국과 일본의 멋을 비교한 말이 생각났다. 일본인은 내향적이고 땅을 지향해서 자료수집과 정리에 능한 반면 한국인은 외향적이고 하늘 지향적이라는 것. 한국인이 과거의 것을 쉽게 잊는 것은 새롭고 창의적인 것에 더 관심이 많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아마도 기와지붕의 추녀와 버선코의 의미를 설명한 말이었을 것이다. 너무 쉽게 잊는다는 말이 가슴에 오래 남았다. 아마도 바꿔야 살아남는다는 ‘빨리빨리’ 습성도 근대문화의 유산일 터. 세관 관계자들도 그랬으리라. 구질구질한 것들, 잊고 싶은 기억들을 쓰레기장으로, 고물장수에게로 줘버렸으리라. 그래서 지난한 역사는 반복되는 게 아닐까? 갈대와 진흙을 반죽했다는 회벽에 기대어 함부로 버렸던 것들에 대해 잠시 생각한다.

1994년 8월 전라북도 기념물 제87호로 지정된 세관건물은 2006년 일부 복원공사를 거쳐 호남관세전시관으로 재단장을 마치고 일반인에게 공개되었다. 난방용 벽난로와 마루가 시공 당시의 상태를 유지하고 있어 보수기간은 3개월 정도였다고. 전시관 내부공간은 효율성을 생각한 탓인지 대칭으로 이루어져 있다. 좁은 복도를 경계로 사무공간으로 쓰였을 중앙의 홀은 관세전시실로, 70년대 이후 개발독재시절의 밀수품 등을 진열해놓았다. 복도 양쪽에 문서보관 및 숙직실로 쓰였을 작은방이 각각 한 개씩 2개가 있으며, 건물의 크기에 비해 지나치게 넓은 세관장실 창문너머엔 일제강점기 쌀 창고가 보인다. 세관건물이 지어졌을 무렵 같이 세워진 이곳을 직원들은 운동경기장으로 쓰는 듯 했다. 근대문화유산을 보여주는 역사전시실은 사진자료가 대부분이다. 군산개항 당시의 자료사진을 보고 있으려니 문화해설사 정숙희(55세)씨가 인사를 건넨다. 군산시는 근대문화 유산이 밀집한 이곳 장미동 일대를 근대문화의 거리로 조성할 계획을 세우고, 2008년 6월 20일 군산세관 100주년 기념행사 후에 문화해설사를 배치했다고 한다.

“관람객은 얼마나?”

“평일엔 열댓 명, 주말엔 단체관람객을 포함해서 쉰 명 정도에요. 건축전공하는 학생도 오구 촬영장소 헌팅하는 분도 종종 오죠. 일본인도 가끔 들리죠.”

“일본인이요?”

“네, 60대 이상 된 분들이 가족단위로도 오고, 개별적으로 통역을 대동하고 오세요. 어렸을 때 살았던 기억을 더듬어 왔다고 해요.”

군산에 근대의 바람이 몰아친 것은 19세기가 저물 무렵이다. 1899년 청일전쟁이 끝난 후 개항하여 조차지에 가까울 정도로 독점성, 배타성을 지닌 일본인거류지가 본정통, 명치통, 소화통(현 영화동 일대)을 중심으로 생겨났고, 식량수탈의 전진기지였던 이곳에 옛 조선은행과 18은행을 비롯하여 식산은행, 산업은행 등이 속속 들어섰다. 은행은 일본인들이 부(富)를 쌓을 수 있도록 낮은 금리로 기업자금을 지원한 반면, 민족자본의 형성을 방해하는 역할을 했다. 『탁류』에서 은행원인 고태수가 슬리퍼를 끌며 지나다녔을 미두장 앞거리가 세관 옆으로 난 길이다.

낮은 금리로 대규모의 자금을 끌어 모을 수 있었던 일본인 중에는 조정래의 소설 『아리랑』에도 나오는 악질 대지주 구마모토가 있었다. 게이오(慶應)대학생이었던 그는 일본보다 농토가 10배 싸고 쌀금은 4배가 헐한 이곳의 무한한 시장성에 주목하고 은행의 지원을 받아 여의도의 10배가 넘는 농장에 소작인 3천 세대, 2만 명을 거느리게 된다. 일본인들에게 기회의 땅이었던 군산은 1919년에는 거주 일본인이 조선인의 수를 추월할 정도였다. 그때 어린 시절을 보냈던 일본인들이 최근 군산에 자주 들리는 것은 어린 시절의 회상일까? 사라진 영화의 아쉬움일까?

건물의 외벽을 만지며 나는 근대의 상처를 만진다. 한때 전조선의 부의 30%가 넘치던 곳, 짐꾼과 미두꾼과 기생들이 도박장으로 몰려다니던 이곳에 최근 새만금 개발공사로 건설 붐이 한창이다. 군산시민은 100년 만에 찾아온 기회라며 기대에 부풀어 있다. 관세전시관 주변을 공원화하는 사업에 직도사격장 보상금이 포함되어 있다는 말은 왜 이리 쓸쓸히 들리는 것일까.3 100년 전의 근대를 빠져나오는 길은 아직 오전인데도 지열이 아지랑이로 오른다. 현기(眩氣).

문화해설사가 세관기념관 관람과 함께 꼭 봐야 한다던 뜬다리 부두(부잔교)에는 진포해양공원 조성공사가 한창이다. 군함과 탱크가 팔월의 태양을 향해 포신을 들고 있었다. 단체로 벌을 서는 것 같다. 그 너머로 조선은행 지붕이 퇴역 쇼군(將軍)처럼 고개를 내민다. 군산의 근대화는 진행 중이다.

이미지 제공_ 필자

주)

1      충청남도 서천군 장항읍 장암리에 있는 제련소. 1936년 조선제련주식회사로 설립, 국내 비철금속산업의 중심이 됨.

2      전북 군산시에 있는 금강(錦江) 하구부의 하항(河港). 1899년 5월 1일 개항하여, 쌀의 대(對)일본수출항으로 유명.

3      2005년 매향리 사격장이 폐지되고 대체 사격장으로 군산 앞바다의 직도가 선택됨. 인근의 미공군기지에서 하루에도 수십 차례 뜨고 내리는 전투기들의 공습훈련 이후 어족자원고갈과 생태계 피해가 확산되고 있음.

朴泰健 1971년 전북 익산생. 시인, 원광대 강사. 저서로 『나그네는 바람의 마을로』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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