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들이 거리로 나온 까닭은?

지난 3월, 티베트 독립시위가 발생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약자인 티베트인들을 동정한 것은 자연스런 일이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티베트 독립시위를 중국정부가 단호히 진압한 것에 항의하여 베이징올림픽 성화봉송을 저지하려는 시위가 런던, 파리, 샌프란시스코 등에서 유행처럼 번졌다. 이러한 소식이 릴레이 하듯 신속하게 주류 언론매체를 장식하더니 급기야 서울에서 중국유학생들의 폭력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이를 기화로 반(反)중국 정서가 들끓었고 대국적 풍모에 걸맞지 않게 협애한 중국의 민족주의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중국의 반응은 전혀 달랐다. 티베트사태는 외부세력과 연계한 소수 분열주의자들의 책동이며 주권과 영토에 관한한 분리·독립시위를 진압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는 것이다. 대다수 피해자가 무고한 상인들(한족과 회족)이라는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이 와중에 중국인을 비하한 CNN방송은 중국인들을 격노시켰다. 화교나 중국유학생들은 오성홍기를 흔들며 성화봉송을 보호하는 행동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본래 구경꾼이기를 좋아하는 중국인들이 국외에서 이렇게 적극적인 행동에 나선 것은 초유의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서방이 이렇게 사태를 왜곡하는 배후에는 중국의 ‘대국굴기(大國起)’를 견제하려는 심리와 서구의 반중국적 종족주의가 자리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티베트사태와 성화봉송 과정에서의 마찰, 쓰촨(四川)대지진, 그리고 산동의 열차 전복사고 등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결국 베이징올림픽은 열렸다. 특히 개막식은 장 이머우(張藝謀) 감독이 연출한 지상최대의 ‘블록버스터’였다. 타이완의 한 언론에서는 이러한 개막식을 강국으로 부상한 현대중국의 ‘대관식(戴冠式)’으로 표현하기도 하였다. 베이징올림픽 개막식은 중국이 생각하는 자신의 이미지가 크게 달라져 있음을 보여주었다. 세계인들의 중국에 대한 이미지도 크게 달라질 것이다. 이제 올림픽과 관련한 그간의 감정싸움에서 벗어나 티베트사태가 던진 문제를 차분히 돌아볼 필요가 있다.

편견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세 가지 각도에서 접근해볼 수 있겠는데 우선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동양에 대한 서구적 편견의 문제이다. 약자인 티베트를 동정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는 하지만 세계의 수많은 분쟁지역 가운데 티베트처럼 서구의 많은 관심과 동정을 불러일으키는 곳은 거의 없다. 올림픽을 앞두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티베트에 대한 관심은 특별한 구석이 있다. 어떤 경우엔 거의 히스테리에 가깝게 민감한 것처럼 보인다. 왜 그럴까? 서구가 티베트에 대한 환상을 품기 시작한 역사는 유구하다. 일찍이 13세기 중엽부터 초기 선교사들이 티베트를 탐험하기 시작했는데 그 이유는 티베트인들이 소아시아, 중앙아시아, 그리고 중국에 기독교의 복음을 전파한 기독교도의 후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이폴리트 데시데리(Ippolito Desideri, 1684~1733)처럼 교황을 설득하고 원정대를 꾸려 라싸를 직접 방문한 사제도 있었다. 그는 티베트에서 5년 동안 생활한 이후 선교를 목적으로 티베트어 저작을 남기기도 했다. 그는 당시 선교사들 사이에서 떠돌던 티베트에 관한 편견이나 오해와 싸우면서 티베트에 관한 생생한 정보를 제공했다. 하지만 그가 티베트에 대해 내린 결론은 티베트가 평화의 땅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그의 관점은 그후 서양의 티베트 이미지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평화의 땅 티베트, 포악한 점령군 중국’으로 선명하게 대조시키고 있는 <티베트에서의 7년Seven Years In Tibet>(1997)이라는 영화를 보아도 이러한 관점의 영향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영화는 원래 오스트리아의 산악인 하인리히 하러(Heinrich Harrer, 1912~ 2006)가 남긴 동명의 자전적 기록물(1953)을 장 자끄 아노(Jean-Jacques Annaud)가 영화화한 것이다.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하인리히 하러는 아이거(Eiger)스위스 중부 베른오벌란트 연봉에 위치(3,970m) 북벽 등정 당시 그는 이미 나치친위대 소속이었다. 그는 나중에 낭가파르바트(Nanga Parbat)파키스탄 북부 펀자브히말라야에 위치(8,125m) 정복이라는 독일의 국가 프로젝트에 참여하였다가 2차대전 발발 직후 인도에서 영국군에 체포되는데 이유는 그가 나치 당원이었기 때문이었다. 영화에서는 이러한 사실이 은폐되어 있다. 역설적이지만 이 영화를 계기로 그의 나치 부역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그러나 이런 사실과 상관없이 <티베트에서의 7년>은 대중들의 뇌리 속에 ‘신비롭고 평온한 영혼의 나라’ 티베트의 인상을 깊이 각인시켰다. 이는 사실 역사와 현실 속에 존재하는 티베트라기보다는 자신들의 환상을 타자에 투영한 것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겉보기엔 티베트를 찬미하는 것 같지만 이면에는 서양의 선진적이고 과학적인 문명 바깥의 존재로 격하하는 오리엔탈리리즘이 숨어 있다. 영화에서도 하인리히 하러 브래드 피트(Brad Pitt) 분가 달라이 라마에게 과학을 가르쳐주고 있지 않은가. 이외에도 제임스 힐튼(James Hilton, 1900~1954)의 『잃어버린 지평선Lost Horizon』(1933)과 같은 대중문학 작품이 티베트의 낭만화에 크게 기여하였다.

민족주의에 가려진 중국

두번째로 생각해봐야 할 점은 민족문제이다. 알다시피 중국은 56개에 달하는 민족이 다원적인 가운데 일체를 이룬 매우 독특한 나라이다. 그리고 그것은 과거 청나라의 변화로 이룩된 나라이다. 사실 민족을 기준으로 생각하면 만주족에 의해 건립된 청나라는 중국의 왕조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청왕조는 어떤 이유에서 중국의 왕조라고 할 수 있는가. 유학이라고 하는 일종의 합법적 지식을 통해 의식적으로 중국 역대 왕조의 계보에 편입된 것이다. 여러 차례의 혁명과 전쟁이라는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청제국은 자신의 판도와 인구, 그리고 행정구획 등을 거의 그대로 유지한 채 ‘자기전환’을 거쳐 현대중국이 되었다. 서양의 경우 대개가 민족 단위로 재편되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중국의 경우는 예외였다. 이렇게 많은 민족이 어우러져 사는 나라는 거의 없다. 다민족 제국이었던 소련은 지난 세기 말에 소멸되었다. 따라서 중국에 대한 서양의 오래된 편견은 중국이 현대적 민족국가를 가장한 ‘제국’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정상적인 현대적 민족국가가 아니라는 것이다. 신성로마제국으로부터 상대적으로 단일한 민족국가로 분열되었던 서구의 역사에 비추어볼 때 중국은 마땅히 민족 단위로 분리되어야 한다. 더구나 티베트와 같이 매우 특색 있는 문명을 가진 민족은 분리 독립되어야 한다고 전제한다. 1930년대의 일본제국주의가 동북지역에 만주국이라는 괴뢰정부를 건설하려고 했던 것도 이런 시각에 기초한 것이었다. 처음에는 청제국이 현대적 민족국가로 변모하는 과정에서 중국의 혁명가들조차 한족중심주의에 기울어 만주족을 몰아내고자 한 일이 있었다.

  위,아래_샌프란시스코에서의 성화봉송 저지  

그러나 이러한 시도는 신해혁명(辛亥革命, 1911)으로 청왕조를 전복한 직후 이내 중단되었다. 그러지 않으면 몽고족, 회족, 티베트족 등이 모두 분리되어 서구 열강에 의해 중국이 와해되어 버릴 것이기 때문이었다. 쑨 원(孫文, 1866~1925)이 한족, 만주족, 몽고족, 회족, 티베트족이 연합해서 중국을 건설해야 한다는 오족공화(五族共和)론을 제기한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였다. 쑨 원은 레닌(Vladimir I. Lenin, 1870~1924)의 ‘민족자결권 테제’1에 영향을 받아 5·4운동(1919) 이후에는 입장을 바꿔 각 민족이 자유롭게 연합한 중국을 건립할 것을 주장하기도 하였다. 중국공산당도 이런 사상에 따르려는 시도를 한 적이 있었지만 신중국 중화인민공화국 건립(1949) 이후 자치구 제도로 입장을 바꾼다. 여기에는 장정(長征)2에서의 경험도 작용했다. 당시 중국공산당은 국민당에 쫓기면서 소수민족들이 잡거하는 지역을 경과한 적이 있었는데 그 때 깨달은 점은 소수민족들 간의 민족모순이 그다지 크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중국은 각 민족이 뒤섞여 산 역사가 오래되었다. 이러한 현실 하에서 민족단위로 재편한 뒤 연방제를 시행하려고 한다면 오히려 민족모순을 악화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이러한 현실이나 역사를 무시하고 서구의 민족주의적 관점으로 바라본다면 중국의 민족자치구 제도는 이해하기 어렵고 나아가 중국을 이해할 수도 없게 된다.

 

페이 샤오통   다람살라에서의 티베트 독립시위

여럿이면서 하나인 중화민족

마지막으로 언급하고 싶은 것은 중화민족에 관해서다. 흔히들 중화민족을 중국정부가 억지로 내세우는 인공적인 민족개념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또한 중화민족을 한족의 다른 이름이라고 오해하기 쉽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한족중심의 역사서술에 반감을 가졌던 사회학자 페이 샤오통(費孝通, 1910~2005)은 1988년 홍콩의 중원(中文)대학 강연에서 중화민족은 다원적이면서도 일체를 이루었다는 ‘중화민족다원일체(中華民族多元一體) 구조설’을 발표하였다. 그에 따르면 중화민족은 근 100년 동안 서양 열강에 저항하면서 출현한 자각적 민족 실체이지만 그것은 수천 년에 걸친 역사과정에서 점차 형성되어온 자생적 민족 실체라는 것이다. 고립적으로 존재하는 여러 단위민족들이 서로 접촉, 혼합, 연결, 융합하는 동시에 분열과 소멸을 겪기도 하면서 다원적 통일체로 형성되었다는 주장이다. 이 다원적 통일체의 형성에 한족이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고는 할 수 있지만 한족이 곧 중화민족인 것은 아니다. 중화민족과 한족, 그리고 소수민족은 층위가 다른 실체이다. 비판자들에게는 이러한 다원적 일체화 과정이 한족으로의 동화과정으로 보이겠지만 꼭 그렇게 볼 것만도 아니다. 한족 자체가 혈연적인 민족개념이 아니거니와 중국정부는 소수민족에게 다양한 우대정책을 펼치고 있다. 가령 한족의 경우는 한 가구당 한 자녀만 가질 수 있는데 비해 소수민족에 대해서는 두 자녀 이상을 허용한다든지 대입 시 가산점을 부여한다든지 하는 제도가 있다. 물론 민족갈등이 없다거나 소수민족 정책에 문제가 없다고 할 수는 없다. 지난 1980년대의 티베트 소요사태가 라싸에 국한되었던 것과는 달리 이번에는 라싸뿐만 아니라 쓰촨성(四川省)의 아바(阿)나 간쑤성(甘肅省)의 란저우(蘭州) 등지로 확대되어 발생했다. 티베트처럼 종교적 응집력이 크고 집단거주성이 높은 지역에서 다원적 조화가 말처럼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만큼 다양한 민족이 모여 사는 나라에서 민족갈등이 크게 부각되는 경우가 많지 않은 점을 볼 때 그동안의 중국 소수민족 정책을 비판적으로 볼 것은 아니다.

 

  2008년 4월, 베이징올림픽 성화봉송때 서울에서 일어난 폭력사태  

이상에서 언급한 것을 간단하게 정리해보자. 티베트를 신비적이고 평화로운 영혼의 땅으로 표상한 것은 서구의 오리엔탈리즘이었다. 민족문제에 주목하여 티베트와 같은 곳은 암암리에 분리되어야 한다는 발상은 서구의 민족국가 형성의 역사를 기준으로 한 것이다. 청 왕조로부터 자기 전환을 거쳐 이룩한 현대적 국민국가 혹은 민족국가로서의 중국을 말할 때 그 민족 혹은 국민은 중화민족이다. 그리고 그것은 여러 민족이 다원적인 가운데 일체를 이루어 형성한 것이다. 물론 이러한 주장들은 중국 편향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겠다. 하지만 그동안의 중국비판이 ‘서구적’ 편견으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에 균형을 잡을 필요는 있다. 티베트사태를 두고 중국을 무조건적으로 비판하기 전에 사태의 실상을 냉정하게 진단할 필요가 있다. 중국도 티베트사태를 확산시킨 것이 중국의 부상을 경계하는 정치세력과 이에 부화뇌동하는 언론 때문이라고 분노할 것만은 아니다. 그들이 왜, 하고 많은 문제 중에 티베트 문제를 즐겨 이용하는지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아마도 영혼의 귀의처를 상실한 서구인들에 대한 티베트의 어떤 흡인력 때문일 것이다. 그것은 티베트의 실상이 아니라 그들 스스로 만들어낸 환상 때문이지만 이러한 환상이 엄연히 현실에서 작동하고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그래야 불필요한 분노나 오해도 줄어들 것이다. 물론 서구가 지난 세기 중국에 안겨준 고난과 굴욕을 생각한다면 이는 쉬운 일이 아니다.

주)

1       자기 민족의 장래를 결정하는 데에 있어 다른 민족의 간섭을 받지 않을 권리.

2       중국공산당군이 9천6백 킬로미터를 걸어서 국민당군의 포위를 뚫고 탈출한 사건.

黃熙景 1959년 강화생. 영산대 학부대학 교수(중국철학). 최근 글로 「‘묵’과 ‘공’의 딜레마」, 「팡 칭윈은 명장인가」 등. hkhwang@ys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