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은 대한민국 건국 60주년이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건국 60주년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두 나라는 아직 휴전 상태이며, 현실과는 상관없이 명목상 서로의 정통성을 인정할 수 없는 사이이다. 양측 모두 그 탄생 과정에서 두 ‘괴뢰’ 중 하나가 없어져야만 온전한 하나의 국가가 성립되는, 상호 간의 부정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다행히 동구권 붕괴 이후 두 나라는 서로의 현실적 필요에 의해 6·15 정상회담이나 남북경협 등을 통해 그 괴리를 줄여오고 있었지만, 최근 이명박 정부의 등장 이후 남북관계는 다시 경색되어 가고 있다. 햇볕정책을 고수해온 이전 정부들과 달리 남북 간 상호주의를 천명한 현 정부의 노선은 그 자체만으로도 북한정권의 위협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현실에 맞물려 건국 60주년을 맞아 다시 남북한의 정통성 문제가 거론되고 있다. 비록 해묵은 논쟁이지만 다시 긴장감이 감도는 남북관계에서 정통성 문제는 가장 본질적이며 핵심적이기 때문이다. 『평양의 소련군정』은 그 정통성 논쟁의 대표적인 책이다. 조선일보 방일영문화재단의 후원을 받아 제작된 이 책에서 저자는 그동안 발표되지 않았던 구소련의 방대한 비밀문서들을 통해 북한의 정통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결국 북한의 정통성을 훼손하여 남한의 정통성을 세우자는 것이다.

저자가 새로 밝힌 구소련 비밀문서의 내용은 단 한마디로 요약될 수 있다. 바로 북한이 전적으로 소련군정에 의해 탄생되었다는 것이다. 한반도에 민주기지로서 위성국을 세우고자 했던 소련은 이를 위해 당시 ‘당 중앙’으로서의 명망을 지니고 있던 박헌영(朴憲永, 1900~ 1955) 대신 소련에 충실한 김일성(金日成, 1912 ~1994)을 선택하여 제88정찰여단을 통해 교육시켰으며, 북한 단독정부의 정당성을 위해 김구(金九, 1876~1949), 김규식(金奎植, 1881~ 1950)이 참가했던 남북연석회의를 기획하고, 궁극적으로 북한 헌법이나 내각 역시도 그들의 뜻대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물론 현재의 필요에 의해 의도적으로 역사를 왜곡하는 북한의 역사서술을 감안할 때, 구소련의 방대한 자료를 해석하여 많은 사실을 그대로 기록하려는 저자의 노력은 존중되어야 한다. 그러나 당시 한반도 이북의 모든 상황을 구소련의 자료에 근거하여 소련의 의중대로 이루어졌다고 평가하는 저자의 주장은 근본적인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 비록 해방정국 소련의 힘이 절대적으로 컸다고 할지라도 강대국 중심의 역사해석은 실제로 역사를 만들어간 북한 내부의 에너지를 간과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소련의 북한 건국 계획이 용의주도했다한들, 광범위한 민중의 지지 없이 건국이 가능하겠는가. 물론 지금보다 그 시대의 민의가 호도될 가능성이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 엄연히 북한이라는 하나의 국가가 건립되는데 그 모든 것이 소련의 기획이었다는 주장은 과도한 사대주의적 사고일 수밖에 없다.

해방 이후 한반도 이북 지역에 김일성 정권이 쉽게 들어설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보다 광범위한 민중들의 지지 때문이었다. 아직도 논란이 되고 있는 김일성의 항일운동에 대한 진위는 차치하더라도 당시 민중들의 성향이 사회주의에 가까웠다는 것은 이미 이전 연구1들을 통해 알려진 바, 특히 북한의 전격적인 토지개혁은 90% 이상이 농민이었던 당시의 민중들이 북한을 지지할 수밖에 없었던 가장 큰 이유가 되었을 것이다. 또한 북한의 전격적인 토지개혁과 공산화는 당시 이북에 남아있던 지주층이나 종교인, 자본가 등을 월남하게끔 만들었는데 이로 인해 북한의 정책은 더 급진적이고 철저하게 진행되었고, 그만큼 북한의 건국은 쉽게 이루어질 수 있었다. 일제시대 때부터 각 정치세력이 할거했던 서울과 달리, 평양은 ‘붉은 군대’의 진출 이후 쉽게 균질성을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이다.

『평양의 소련군정』은 남북분단으로 인해 자료가 태부족한 해방정국의 북한 실상을 추측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그 한계 역시 분명한 이상 연구자는 자료 참조 시 좀 더 많은 비교를 해야 할 것이다.

주)

1      전상인, 『고개숙인 수정주의』(서울: 전통과 현대, 2001) 등.

李熙東 1978년 서울생. 동부익스프레스 사원. 최근 글로 「낯선 북한의 일상과 소통하기」, 「북한의 국민정체성과 한국전쟁」 등.

all3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