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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통부정에서 전통부활로
통권 : 11 / 년월 : 2008년09.10월 / 조회수 : 2624
 

올림픽 개막식을 보기가 이렇게 힘들 줄이야. 연구년으로 7월말부터 미국 보스턴에서 지내고 있다. 개막식을 보려고 미국 시간으로 8일 새벽 6시부터 일어나 설쳤다. 개막 두 시간 전이었다. 그런데 아무리 채널을 돌려도 특집방송만 나올 뿐 생중계를 하지 않는다. 8시가 되어도 마찬가지였다. CNN에서 베이징올림픽이 드디어 시작되었다는 뉴스만 나올 뿐 어디에서도 생중계를 하지 않는다. 혼자 열을 내다가 결국, 인터넷으로 한국 라디오중계를 들었고, 저녁 8시에야 겨우 김빠진 녹화방송을 보았다. 최근 들어 베이징올림픽에 재를 뿌리는 보도가 미국언론을 도배하고 있어 일부러 김 빼려는 의도인가 싶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올림픽 개막식 독점중계권을 가진 NBC에서 중간 중간에 광고를 집어넣으려고 녹화중계를 한 것이었다. 미국 네티즌들도 난리인 것을 보니, 나만 열 받은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좌)개막식의 마지막 성화장면 
 
우)개막식 공연 중 요정 압사라가 날아다니는 모습. 압사라는
중국 깐수성 둔황의 막고굴 벽화에 등장하는 구름과 물의 여신이다.
 
 
개막식 공연 중 중국 4대 발명품 중 인쇄
 
 

어렵사리 보게 되어서일까, 개막식 공연은 더없이 화려하고 환상적이었다. 중국문화의 힘을 유감없이 보여주기에 손색이 없었다. 어김없는 장 이머우(張藝謀)의 작품이었다. 화려한 색채, 거대한 스케일, 그리고 중국적인 구성과 상상력이라는 장 이머우 영화 특유의 장점이 개막공연에도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지구 위를 걷는 사람들, 경기장을 공중에서 한 바퀴 돈 마지막 성화봉송 주자 리 닝(李寧)이 성화를 채화하는 장면 등 중국 밖에서 그가 관방파로 변절했다고, 이제 ‘맛이 갔다’고 아무리 욕을 하더라도 역시 장 이머우는 장 이머우였다.

2008년 8월 8일은 베이징올림픽이 열린 날이기도 하지만, 아편전쟁(1840~1842) 이래 중국전통이 처음으로 제대로 된 대접을, 가장 화려한 대접을 받은 날로 기억되어야 한다. 아편전쟁 이후 중국인들은 중화민족과 중국이 지구상에서 사라질 위기에 처하게 만든 원흉으로 중국전통문화를 지목했다. 전통을 버리는 것이 중화민족을 되살리고 세계와 함께 호흡하는 길이라고 여겼다. 공자를 죽이는 것이 중화민족이 사는 길이고 현대화하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루 쉰(魯迅, 1881~1936)도 그렇게 생각했고, 마오 쩌동(毛澤東, 1893~1976)도 그렇게 생각했고, 1989년 톈안먼(天安門) 사태의 주역들도 그렇게 생각했다. 물론 장 이머우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의 초기 영화들을 보라. 그의 영화 속에서 중국전통은 매매혼과 축첩 등 억압과 비인간성의 상징이지 않은가. 어둠과 억압의 이미지 일색 아니던가. 전통을 부정하는 데서 중국의 미래를 찾고 중국인의 정체성을 찾는 것, 그것이 중국 근현대의 시대정신이자 민족적 위기의 상처 속에서 중국인들 내면에 깊이 뿌리박힌 트라우마(trauma)였다. 빛나는 전통문화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빛나는 것으로 인식하지 못했던 것이다.

 

장이머우가 감독한 베이징올림픽개막식공연
 

그런데 베이징올림픽 개막식에서 장 이머우는 4대 발명품 종이, 나침반, 화약, 활판인쇄술을 비롯하여 공자, 〈청명상하도(淸明上河圖)〉청명절 도성 내외의 번화한 정경을 묘사한 그림에 이르기까지 중국의 찬란한 전통문화를, 중국 고대의 찬란한 두 시대인 한나라와 당나라 시대를  더없이 화려하고 매혹적으로 복원시켰다. 8월 8일의 올림픽 개막식 공연은 아편전쟁 이후 중국인들이 지니고 있던 트라우마가 이제 치유되고 있다는 것을 세계에 알린 것이다. 이제 중국인들은 전통문화와 사상을 마주하면서 문화적, 민족적 정체성을 수립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장 이머우를 포함한 근현대 중국인들뿐만 아니라 중국 근현대사 전체가 반(反)전통에서 정체성을 찾았지만, 중국은 이제 전통계승을 통해 정체성과 미래의 길을 모색하겠다는 메시지를 세계에 던진 것이다. 올해부터 중국정부가 추석이나 청명절 같은 전통명절을 공휴일로 지정했듯 중국은 이제 전통문화의 가치를 복원시키고 세계에 전파하는 데 주력할 것이다. 인권억압, 티베트사태 진압, 언론탄압, 군사대국화 등 하드파워 위주의 중국 이미지를 공자와 태극권, 쿵푸, 경극을 앞세운 소프트파워로 만회할 것이다. 중국에서만이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중국전통에 대한 재발견, 나아가 중국의 전통적 가치관에 대한 재발견과 부활 움직임은 더욱 빨라지고 크게 확대될 것이다. 이 흐름이 상당 기간 지속될 것이므로 이제 세계는 중국문화의 소프트파워 시대를 대비해야 한다.

중국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풍부한 문화콘텐츠를 가지고 있는 나라다. 그것이 경제력과 정부지원, 그리고 민간의 응원에 힘입어 디지털의 새 옷을 입고 중국 내는 물론이고 세계로 퍼져나갈 것이다. 전통문화를 활용한 갖가지 문화콘텐츠들이 쏟아져 나올 것이고, 영화 <적벽(赤壁)>(2008)이 보여준 것처럼 중국 전통문화 유산을 바탕으로 한 동아시아 공동의 영화, 문학창작이 더욱 탄력을 받을 것이다. 적어도 21세기 초반 동안 중국 전통문화는 위대한 부활의 시대를 맞을 것이고, 그것이 중국문화의 발전을 추동하는 강력한 힘이 될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중국 전통문화의 부활시대는 문화적인 의미만이 아니라 경제적, 정치적 의미를 동시에 갖는다. 전통문화의 부활은 중국인들에게 새로운 문화상품으로서 경제적 부를 가져다 줄 뿐만 아니라 민족적 자부심과 구심력을 제공하는 정치적 의미도 지닌다. 최근 중국 정부가 전통문화 부활을 정책적으로 추진하면서 ‘민족응집’과 ‘구심력’, ‘중화민족의 정신적 유대’를 위한 수단으로서 전통문화의 기능과 역할을 강조하는 것은 바로 정치적 의도 때문이다. 따라서 중국 전통문화 부활의 흐름이 방향을 제대로 잡아야 할 필요성은 더 절박해진다. 자칫하면 폐쇄적 민족주의나 중화민족 우월주의의 신화를 생산하는 기제로 작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중국 전통문화의 부활을 주목해야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중국은 사실, 전통문화의 부활 자체를 염원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하나의 경로로 삼아 궁극적으로는 문화대국 건설을 꿈꾼다. 장 이머우가 개막식에서 보여준 과거의 중국은 기실 문화대국으로서의 중국이다. 하지만 중국이 올림픽 개막식에서 재현한 것과 같은 찬란한 문화대국이 되려 한다면 중국인들이 진정으로 복원해야 할 것은 전통문화의 양식이나 콘텐츠가 아니라, 중국 역사상 가장 찬란했던 문화제국 당나라를 가능하게 했던, 혼종을 숭상하는 개방의 정신이다. 몇 년 전부터 중국정부가 이른바 ‘문화안보’론을 내세우면서 서구문화와 한류(韓流) 등의 유입에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인 것처럼 한족 중심의 전통문화만 부활시켜서는 문화대국의 길이 더 아득해질 뿐이다. 한족중심주의 문화관에서 벗어나 중국문화란 원래 혼성문화라는 사실을, 저 찬란했던 문화제국 당나라가 바로 서역문화와 신라문화까지 껴안은 과거 장안(長安)의 혼성문화 때문에 가능했다는 사실을 중국정부는 물론, 중국인들 모두가 절실히 깨달아야 한다.

올림픽 개막식에서 장 이머우는 성당(盛唐)시대 당나라의 문예부흥기의 재현을 한 콘셉트로 잡았다. 하지만 그러한 성당시대는 문화적으로 뿐만이 아니라 정치적으로 개방과 혼종성이 보장될 때 열린다는 것을, 그는 알았을까? 그의 화려한 개막식 영상이 당겨올 전통문화 부활시대의 정치적 의미를 얼마나 헤아렸을까?





李旭淵 1963년 광주생. 서강대 중국문화 전공교수. 저서로 『중국이 내게 말을 걸다』, 역서로 『아침꽃을 저녁에 줍다』 등. gomexico@sogang.ac.kr



글쓴이 : 이욱연
작성일 : 2008/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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