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국립현대미술관은 과천에 있다. 서울랜드라는 놀이공원이 있는 곳이기도 하고, 또 많은 사람들이 울고 웃는 경마장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서울 시내에서 지하철로 가자면 다소 난감한 곳에 있는데, 미술관 역에 내려서 걸어가기는 멀고 셔틀버스를 타기도 불편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찾아가는 대부분의 관람객은 아주 작정을 하고 가는 경우거나, 아니면 단체로 가는 경우다. 고요한 산속에 있기에 가기만 하면 공기도 좋고 풍광도 좋아 김밥 먹으며 산책하고 스트레스 풀기에는 그만이다. 그곳에 우리나라 국립현대미술관이 있다.

이번 <한국현대사진60년(1948~2008)展>은 바로 이곳에서 열렸다. 자그마치 106명 사진가의 작품 수백 점이 전시되고 있다. 1946년을 필두로 현재에 이르기까지 62년간 이 땅에 있었던 사진 역사를 한 곳에 모아, 미술관 1층 회랑과 좌우의 전시장을 가득 메우고 있다. 한국사진 역사상 가장 많은 작가가 한꺼번에 참석한 전시가 아닌가 싶다. 그것도 작가에게 주어지는 한 푼의 작품제작 지원비 없이 말이다. 경이롭다.

우리나라에 사진이 도입된 것은 대략 1880년경이다. 그 정확한 시점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대체로 그렇게 인정한다. 그리고 우리 손으로 사진을 찍고 만들고 남기는 일을 한 것은 일정(日政)시대의 일이며, 1945년 이후 본격적인 작품들이 등장한다. 여전히 서양에 비해 사진의 시대적 본질을 채 파악하지 못한 부분은 있으나, 나름의 의도가 드러나기도 한다. 특히 한국전쟁 직후 서울의 모습을 기록한 성두경(成斗慶, 1915∼1986)의 작업이나, 이해선(李海善, 1905~1983)과 정범태(鄭範泰) 등의 사진들은 바로 코앞에 역사의 거울을 들이대는 것 마냥 생생하며 정겹고 슬프기까지 하다.

이해선<서울1><1950년대/1990년대 초>

사실 사진은 우리의 언술체계가 아니다. 정확히는 프랑스와 영국에서 그리고 개략적으로는 유럽의 합리주의 전통 위에서 만들어진 언어다. 그 때문에 우리나라의 사진 도입은 종주 지역에 비해 50~60년 늦을 뿐만 아니라 그 발전, 변화의 속도 또한 더딜 수밖에 없다. 게다가 ‘사진 언어’의 바탕을 이루는 철학적 근거가 여전히 서양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것 또한 사실이다. 하지만 모든 다른 문화가 그런 것처럼, 우리의 사진 또한 단지 서양문화에 종속된 것만은 아니다. 1950년대와 1960년대 서양의 영향이 일본의 영향보다 사뭇 적었을 때, 좌표는 희미했을망정 나름대로 당시의 사회를 기록하려는 노력이 돋보였다. 그러나 1970년대를 지나 1980년대 중반에 이르면 일군의 젊은 작가들이 서양 유학에서 돌아오면서 한국사진의 향방은 그들이 수입한 양식에 의해 매우 혼돈스러워진다. 이미 서양의 사진은 그 중심이 유럽에서 미국으로 이동하면서(1930년대 말 이후)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프랑스, 영국, 독일, 러시아를 중심으로 진행되던 모더니즘(modernism)운동 1920년대 일어난 근대적인 감각을 나타내는 예술상의 여러 경향이 제2차세계대전(1939~1945)을 기점으로 모두 수그러들고 미국의 팝아트(popart) 대중문화적 시각이미지를 미술의 영역 속에 수용하고자 했던 구상미술의 한 경향에 문을 열어준다.

이해선<서울1><1950년대/1990년대 초>

(1959년 이후). 이 지점에서 사진은 여타 다른 장르의 예술과 섞이거나 연대를 모색하며 예술의 선두로 부상하게 된다. 1950년대 말 미국에서 로버트 프랭크(Robert Frank)와 윌리엄 클라인(William Klein) 등이 보여준 전통은 ‘사진으로서의 사진’일 뿐, 이후 팝아티스트인 앤디 워홀(Andrew Warhola, 1928~1987) 등이 사진을 끌어들여 보여준 실크스크린 작업들은 그것이 사진인지 회화인지를 모호하게 한다. 그리고 이제 사진은 자신의 정체성을 해체하면서 예술을 가로지르기 시작한다. 이러한 서양과 30여 년의 편차를 두고 우리의 사진 또한 변화한다. 기록과 예술의 사이에서 숙명적인 줄타기를 하는 모습은 지금도 마찬가지이나,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에 광풍과 같은 서양 사진의 도입은 우리 사진의 정체성 확립에 커다란 어려움을 남긴 시기라 하겠다. 지금은 의미조차 희미해진 ‘만드는 사진’에 대한 추종은 언제고 진지한 반성이 필요하다 하겠다. 지금 이 전시장에서 볼 수 있는 것만이라도.

이번 국립현대미술관의 전시는 두 가지 모호한 점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한국현대사진’이 무엇인지에 대한 근거가 없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제목에서 나타나는 한국현대사진 ‘60년’의 정체이다. 첫번째 물음은 사실 답을 말하기 어렵다. 사진에서 현대라는 개념을 구획하기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한국사진에 있어서 현대의 개념을 또 어떻게 부여해야 하는지도 많은 논의가 필요하기에 그렇다. 적어도 지금 이 자리에서 정확한 가늠은 어렵다. 하지만 두번째 의문인 한국현대사진 ‘60’년은 사정이 다르다. 왜 지금 이 시기에 우리의 현대사진의 시작점을 1948부터 가지려했는가 궁금하다. 전시와 도록을 열심히 들여다보아도 1948년에 제작된 사진은 없다. 오히려 그보다 두 해가 이른 임석재의 1946년도 작품이 있다. 1940년대 후반이라 표기한 사진은 있으나, 1948년으로 정확히 표기한 작업은 없다. 무엇으로부터 기점의 근거를 삼았는지가 궁금한 동시에 정치적인 냄새를 지울 수가 없다. 지금 너무도 예민한 시기가 아닐까? 불과 얼마 전 새로운 정부가 들어섰고 ‘8월 15일’ 행사에 ‘광복63주년’으로 하느냐, 혹은 ‘건국 60주년’으로 하느냐를 가지고 온 나라가 시끄러웠다. 단지 시기의 선정이 문제였던 것이 아니다. 8·15행사를 일제에서 해방된 날이 아닌, 1948년 정부수립의 해로 기념하게 되면 그 이전의 역사는 나라 없는 시절의 시간/사건에 불과해질 것이다. 친일문제 역시도 그 뒤에 숨어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가게 될 것이고 말이다.

정범태<결정적순간, 서울경기고등군법재판소>

이 문제가 관심을 끄는 것은 단지 정치적인 이슈여서만이 아니다. 자신의 영욕을 위해 민족과 민중을 파는 정치 철새들이 이 <한국현대사진60년展>의 전시장 위를 배회하고 있지 않나 하는 걱정 때문이다. 나만의 기우이기를 바라지만.

이미지 제공_ 국립현대미술관

鄭周河 1958년 인천생. 사진가, 백제예술대 교수. 최근 글로 「시대적 진실과 여성-사진 속의 여성展」, 「카메라, 관찰에서 개입으로」 등. chuha123@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