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고양미술창작스튜디오의 오픈 스튜디오 관람모습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관산동에 위치한 국립고양미술창작스튜디오(이하 고양스튜디오). 9월 26일 갑자기 차가워진 날씨에도 불구하고 500여 명의 사람들이 이곳을 다녀갔다. 이날은 작가들의 작업실을 개방하는 ‘오픈 스튜디오(open studio)’ 행사가 있던 날이었다. 보통 접근성이 좋은 서울의 주요 갤러리 전시 개막행사에 200~ 300여 명이 온다고 봤을 때, 대규모 주택단지와 전철도 없는 이곳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인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이 스튜디오에 작가로 입주하기 위해선 높은 경쟁률을 뚫어야 한다. 올해 장기입주 프로그램의 경쟁률이 약 12대 1 정도였다고 하니 알 만하다. 사실 고양스튜디오만 인기가 높은 것은 아니다. 창동스튜디오, 쌈지스튜디오, 영은스튜디오, 난지스튜디오 모두 상한가이다. 왜 작가들은 그곳에 입주하려 하고, 사람들은 왜 창작스튜디오에 방문하고자 하는가?

  국립고양미술창작스튜디오의오픈 스튜디오 관람모습    

국내 레지던스 프로그램(residence program)이 활성화된 것은 단지 작가에게 작업실을 내주기 때문만은 아니다. 오히려 신진작가의 발굴과 성장이라는 특수한 한국적 상황이 만들어낸 것이라고 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 즉 작가는 자신의 경력을 높이고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레지던스 프로그램의 문을 두드리는 것이다. 신진작가의 미술계 진입방식은 시대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변모해 왔는데, 우리나라에선 대체로 미술대전1이란 공모전으로 오랫동안 진행되어 왔다. 그러나 1990년대 말 IMF경제위기를 계기로 미술경기가 침체하면서 신진작가의 등용이 색다른 방식으로 전개되었다. 그것은 ‘대안공간’의 등장이었다. 비영리 기조를 바탕으로 실험미술을 적극 수용한 대안공간은 젊고 역량있는 작가에게 작품발표의 장을 제공함으로써 신진작가를 발굴할 뿐만 아니라 새로운 담론을 생성하는 데 기여하였다. 그 결과 2000년 이후로는 젊은 작가들이 첫 개인전을 당연히 대안공간에서 해야 한다고 생각할 정도로 대안공간은 질적, 양적으로 크게 팽창했다. 하지만 대안공간도 약점은 있었다. 고질적인 재정불안에다 성격이 불분명한 대안공간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는가 하면 최근 미술경기의 상승으로 갤러리 여건이 좋아지면서 젊은 작가 발굴의 주도권을 다시 갤러리가 넘겨받는 양상으로 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갤러리의 작가 발굴은 상업적인 측면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어 모든 장르의 미술을 폭넓게 수용하기는 어려웠다. 이렇게 급변하는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부상한 것이 레지던스 프로그램이다.

레지던스 프로그램은 미술전문가가 입주할 작가를 결정하는 선정방식에 있어서는 미술대전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작품 응모료가 없고 장르 구분도 없으며 심사위원이 다소 젊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일회적 수상과 전시에 기뻐하던 작가들에게 1년 동안 작업실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은 매력적인 일이다. 경제적 이익뿐 아니라 1년 동안 미술계 사람들에게 주목받을 수 있는 기회를 얻기 때문이다. 보다 젊은 심사위원이 선정한 입주작가에게 평론가, 큐레이터, 화랑종사자, 작가 등이 관심을 갖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다. 또 한국을 방문한 외국 큐레이터들이 한꺼번에 많은 작가를 만나기 위해 우선적으로 창작스튜디오를 찾는다 하니 경쟁률이 올라갈 수밖에 없겠다. 고양스튜디오의 경우도 한 달에 2~3회 정도 외국 큐레이터가 다녀간다고 한다.

또한 창작스튜디오에는 출신학교, 장르, 나이, 지역이 다른 여러 작가들이 함께 생활하므로 다채로운 정보와 의견을 서로 교환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신진작가는 출신학교 사람들만 알고 지내기 쉬운데, 레지던스 프로그램을 통해 인간관계를 크게 확대하기도 하는 것이다. 더불어 초기 레지던스 프로그램들이 단지 공간만 대여해 주던 것에 비해 다양한 작가 지원 프로그램을 마련하여 작가를 실질적으로 돕는 사례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소규모 전시를 열어주거나 작가와 비평가의 매칭 프로그램 등을 통해 이론적 도움을 주기도 하고, 오픈 스튜디오를 개최하여 사람들에게 작가를 소개시키기도 한다. 나아가 일부 작가를 외국의 레지던스 프로그램에 참가시키고, 외국 작가를 한국에 초대하는 등 국제교류도 시도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국내 레지던스 프로그램은 신진작가가 꼭 거쳐야할 통과의례로 자리매김하는 분위기이다.

  외국에서도 오픈 스튜디오가 유행이다      

그러나 짧은 기간 발전한 레지던스 프로그램에도 몇 가지 논란거리는 있다.

첫째, 레지던스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인력이다. 그나마 고양스튜디오에는 프로그래머(programmer), 에듀케이터(educator) 등이 고정적으로 근무하지만 아직 대다수의 창작스튜디오에는 상주하는 전문인력이 1명 이하인 상황이다. 따라서 창작활동을 지원할 수 있는 프로그램의 개발과 운영에 한계를 드러낼 수밖에 없다. 전문인력을 체계적으로 양성할 수 있는 기관이 없다는 것도 근본적인 문제 중 하나이다.

둘째, 작가의 입주기간이다. 대부분의 레지던스 프로그램은 장기입주를 1년, 단기입주를 3~6개월로 정하고 있다. 작가 입장에선 기간이 길면 길수록 좋겠지만 다른 작가들에게도 혜택이 돌아가야 하므로 무작정 길게만 줄 수는 없다. 문제는 6개월 미만의 입주는 너무 짧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번 고양스튜디오의 6개월 단기입주 프로그램은 지원자가 미달돼 재공고하기도 했다. 한 작가가 어떤 한 공간에 들어가 자신만의 프로젝트를 차분히 수행하기 위해서는 최소 1년의 기간은 보장되어야 한다. 

셋째, 레지던스 프로그램의 차별성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레지던스 프로그램의 성격을 가진 스튜디오는 공립 32개, 사립 22개에 이른다고 한다. 가히 폭발적으로 레지던스 프로그램이 늘어나고 있는 셈인데, 문제는 이곳들이 상당히 비슷비슷하다는 것이다. 대체로 수도권의 레지던스 프로그램은 신진작가 발굴기능에 치우쳐 있고 비수도권은 그 지역작가 위주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한국미술이 워낙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어 작가들이 지방에 가는 것을 꺼리는 경향도 있지만 지역마다 특화된 프로그램이 태부족인 것도 사실이다.

넷째, 외국작가의 수준이다. 외국작가를 입주시키는 것은 그들과 경험을 공유하며 국제적 감각을 키우겠다는 의도이다. 최근에는 국제화 추세에 따라 여러 나라의 레지던스 프로그램을 계속해서 옮겨 다니는 예술가들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 소위 ‘레지던시 호퍼(residency hopper)’라 불리는 이들은 세계 각국의 문화를 체험하며 하나의 독특한 문화를 형성하는 중이다. 만약 우리의 목표가 수준있는 ‘일반적’ 외국작가들과 교류함으로써 국제미술에 동참하고자 하는 것이라면, 그저 유랑하는 수준에만 머무르는 작가들의 입주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오상택작가 작업실 전경

레지던스 프로그램의 기본적 설립목적은 작가가 창작활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하는 것이다. 마땅히 그들에게 마음껏 작업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꾸준한 관심과 애정이 필요하며, 적절한 예산과 인력도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들은 설립기관을 홍보하기 위한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이 열심히 작업해서 훌륭한 작가가 되었을 때, 설립기관은 저절로 홍보가 될 것이니 보다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관점으로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하겠다.

이미지 제공_ 고양미술창작스튜디오

주)

1      대한민국 미술전람회(1949~1981), 대한민국 미술대전(1982~ ), 중앙미술대전(1978~ ), 동아미술제(1978~2000) 등. 작가가 공모에 응모하고, 심사위원들이 작품을 심사하여 작가에게 상을 주고 전시를 열어주는 방식.

柳翰承 1972년 서울생.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최근 저서로 『한국의 젊은미술가들: 45명과의 인터뷰』(공저) 등.

outskirt@president.go.kr 인천화교 100년의 부침,        

그 편린을 담아

<인천화교100년사 자료특별展>(인천화교협회 별관, 2008.10.11∼1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