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올림픽은 도쿄(1964), 서울(1988)에 이은 아시아의 세번째 올림픽이다. 아시아의 올림픽들은 역경의 드라마를 국내외에 전시하는 신고식이자 경제적 도약과 수도 집중의 계기이며, 민족을 위한 몸만들기이자 속도경쟁이다. 한중일 세 나라는 모두 역경을 딛고 경제적 기적을 이룬 나라들이다. 일본은 태평양전쟁(1941∼1945) 후반에 제공권을 뺏겨 본토 전역에 걸친 미군의 융단폭격을 허용했다. 도쿄 한복판이 네이팜(napalm)탄으로 불바다가 되는 등, 1945년 8월 종전 당시 일본의 거의 모든 곳이 파괴되었다. 한국전쟁(1950∼1953)을 겪은 뒤의 한반도도 잿더미였다. 1950년대 한국은 서방과 UN의 시각에서 경제발전도, 민주주의 발전도 기약할 수 없는 비참한 나라였다. 20세기 전반까지 주요 지역들을 서양제국주의에 유린당했던 중국은 20년 넘게 국민당, 공산당 세력 간의 내전에 시달렸다. 1949년 수립된 신중국중화인민공화국에 거는 국민들의 기대와 정열은 머잖아 수백, 수천만 명의 아사(餓死)를 수반한 대약진운동(大躍進運動, 1958∼1960)의 실패와 극단적인 사회주의 실험인 문화대혁명으로 흔들거렸다.

1945년 태평양전쟁 직후의 일본과 1950년대 한국, 그리고 1960년대 초 중국은 세계 최빈국이었다. 올림픽은 무엇보다 이 역경을 딛고 경제적 실력자로 탈바꿈한 이 나라들이 세계를 향해 자신들의 성취를 선전하는 장이다. 아직 돈쓸 곳이 많은 이 나라들에게는 경비부담이 상당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올림픽은 경제적으로도 수지가 맞는 장사다. 특히 1984년 LA올림픽 이후로 올림픽은 흑자도 볼 수 있는 대형 이벤트사업이 되었다. 서울올림픽은 순수경비가 4억6천만 불 정도로 추산되었으나, TV 중계료, 관광 수입, 입장료 수입 등으로 적자를 면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올림픽은 한국과 일본이 경제적으로 도약하는 계기가 되었다. 올림픽 이후 10년간 일본경제는 세계 경제성장률의 2배, 세계 수출증가율의 3배를 실현, 고도성장의 패턴을 시현했다. 이 10년간의 고도성장에는 베트남전쟁 특수와 이른바 올림픽 특수 등이 밑거름으로 작용했다. 올림픽 이후 10년간의 한국경제도 일본의 경우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무역환경은 불리했으나 국제금융시장은 상대적으로 유리했다. 한국도 이 기간 안정된 성장과 국제수지 흑자를 누렸다. 기계, 전자, 자동차 부문에서 괄목할 만한 발전이 있었다. 중국은 2001년 WTO세계무역기구 가입으로 관세를 인하하고 농산물, 공산물, 무역, 유통, 금융, 통신서비스 시장의 개방을 본격화했다. 올림픽은 이 패턴을 가속시킬 것이다.

올림픽은 공항, 고가 고속도로, 지하철, 선수촌, 경기장 확충으로 세 나라의 수도를 더욱 비대하게 만들었다. 베이징에선 수십억 불 이상을 쏟아 부은 대형공사들이 줄을 이었다. 수용 보상금을 받은 사람들도 있지만, 못받고 쫓겨난 사람들도 있다. 서울과 도쿄의 확장은 국내 1, 2위 도시간의 차이를 심각한 수준으로 벌려 놓았다. 서울과 부산의 차이는 1, 2위 도시 간의 비교라기보다는 1위와 대부분의 잔챙이 지방도시 간의 비교 수준이 되었다. 전통적으로 복수의 센터를 보유한 일본의 경우도 이제 상황이 달라졌다. 도쿠가와바쿠후(德川幕府, 1603∼1867) 이전 약 1천 년간 일본의 중심은 칸사이(關西)지역교토, 오오사카 일원이어서 현대일본에는 동서지역주의 혹은 정치수도 도쿄, 경제중심지 오오사카(大阪)라는 2원적 지역체계가 있었다. 그러나 도쿄와 2대 도시 오오사카의 격차는 이제 회복 불가능한 것이 되었다. 1960년대 도쿄의 팽창은 뒷날 1990년대 세계화 담론의 출현과 더불어 사회학자 사스키아 사센(Saskia Sassen)이 글로벌 시티1라고 부르는 존재의 전조가 되었다. 그런데 성장과 집중이 지나치면 경쟁 지상주의로 향한다. 올림픽은 후발국들에게 국제경쟁의 축소판이었다.

                        
                                                              일본요요기올림픽경기장

지난 6월 1일 미국에서 열린 국제육상경기에서 자메이카(Jamaica)의 우사인 볼트(Usain Bolt) 선수는 100미터를 9.72초에 달려 세계신기록을 세웠다. 그런데 베이징올림픽 100미터 결승에서는 9.69초로 자신이 세운 세계신기록을 스스로 깼다. 100미터를 9.69초에 뛴다는 것은 1초에 10미터 이상을 내지른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런 충격은 1964년 도쿄올림픽에서 먼저 시작되었다. 미국의 밥 헤이즈(Bob Hayes, 1942∼2002)는 비록 비공인 기록이지만 100미터 준결승에서 9.9초로 마의 10초대를 뚫었다. 이때 세계는 인간의 가능성에 경악했다. 친선과 무보상의 아마추어정신으로 칭송받았던 올림픽은 사실 속도의 경쟁이었다. 그것도 목숨이 걸린 것이었다. 도쿄올림픽은 비킬라 아베베(Bikila Abebe, 1932∼1973)라는 마라톤 영웅을 탄생시켰다. 그러나 그 뒤를 이어 스타디움에 들어서면서 일본 관객들을 환호하게 만들었다가, 곧장 영국 선수에게 추월당했던 비운의 인물 츠부라야 코오키치(円谷幸吉, 1940∼1968)가 있다. 츠부라야는 1968년 멕시코올림픽을 앞두고 자살, 선수생활을 마감했다. 그는 “이미 탈진해버렸다”는 유서를 남겼다.

194년 도쿄올림픽에서 바킬라 아베베가 골인하는모습

사실 현대올림픽은 무서운 발전과 변화의 강박을 지닌 근대성(modernity)의 축소판이다. 속도에 중독된 현대인들은 극한의 스펙터클을 구경하는 스피드광이 되었다. 육상, 조정, 수영 등 올림픽의 대부분이 속도경쟁 종목들이다. 유도, 복싱 등 외관상 속도와 무관한 것들도 짧고 규격화된 시간 안에서 이루어진다. 나아가 올림픽 경기를 중계하는 미국의 방송사와 관객들을 위해 미국의 시청 시간대에 따라서 해당 경기장에서는 새벽이나 밤일지도 모르는 이상한 시각에 경기가 진행되기도 한다. 궁극적으로 이 속도들은 신속한 임무수행을 명령하거나 명령받는 군사형 인간 혹은 파시스트(fascist)형 인간의 양성과 친화력이 있다. 발전에 대한 강박은 ‘위대한’ 지도자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1970년대의 한국이나 칠레의 중산층은 빠른 경제발전을 위해서라면 민주주의 정도는 적당히 포기할 각오가 되어 있었다.

20세기의 스포츠세계는 경쟁의 강박으로 거의 반인반수(半人半獸)와 같이 특별한 종류의 인간을 낳게 했다. 100미터 달리기의 혜성 볼트는 196센티의 키에, 우람한 허벅지 근육을 자랑하는 거인이며, 미국의 수영 8관왕인 펠프스(Michael Phelps)의 양팔 길이는 2미터 3센티이다. 현재 지구상에서 가장 빠른 사람들의 체격이 이렇다. 아베베는 로마올림픽(1960)에서 맨발로 달려 우승했다. 마라톤의 기원에서는 42킬로미터를 하루 종일 달려온 병사가 승리를 고하고 쓰러져 죽었지만, 아베베는 도쿄올림픽에서 2시간 12분의 세계신기록으로 가볍게 우승, 2연패를 달성했다. 마르고 길쭉한 아베베는 달린 뒤에도 전혀 피곤한 기색이 없이 바닥에 누운 채 허공을 향해 달리기 동작을 반복하며 정리 체조를 했던 준마(駿馬)였다. 어떤 의미에서 몸은 거대한 권력이 침윤된 물신(物神, fetish)이다. 예컨대, 1930∼1940년대 일본정부는 전쟁자원으로 강건한 남아의 생산을 장려, 해마다 우량아 대회를 열었다. 그들의 몸은 제국을 위한 것이었다. 한국의 경우, 정부의 강력한 스포츠 지원책 하에서 국가대표 선수들의 몸은 한국의 산업화 제단에 바쳐진 공물이었다. 특히 피범벅의 얼굴로 투혼을 발휘했던 복싱선수의 몸은 민족주의의 은유였다. 한국 복싱의 전성기는 민족중흥, 조국근대화, 산업전사 등을 외치며 세계 자본주의체제의 상위권으로 힘겹게 오르고자 했던 한국호(韓國號)의 순항과 일치한다.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한국은 최초로 복싱 부문 금메달을 땄다.

현재 중국정부의 스포츠 육성은 가히 살인적인 수준이다. 중국인들에게 생소한, 그러나 금메달이 많이 걸려있는 조정경기 하나만을 위해 상하이 부근에 주변과 격리된 11층 규모의 훈련장을 짓고 세계적인 코치 10명을 초청하는 등 스포츠 지원에 수억 불 이상을 쏟아 부었다. 베이징올림픽에 올인한 것이다. 그 모델은 1970∼1980년대의 동독이다. 6세 정도부터 잠재력이 있는 선수들을 뽑아 격리, 육성한다. 부모들은 아이들을 3∼4년에 한 번 정도밖에 볼 수 없다. 어려서부터 올림픽 기계로 성장하는 것이다. 스트레스도 무섭다. 메달을 따면 장래가 보장되고 못 따면 인생은 끝난다. 2004년의 한 보고서에 의하면 중국 다이빙 선수들 중 24퍼센트가 망막을 다쳤다. 예전에는 중국선수들에게 약물복용 스캔들이 따라 다녔다.

위로부터  도쿄올림픽,서울올림픽,베이징올림픽 개막식모습    

올림픽에는 운동선수들의 오랜 준비와 성패, 보람과 눈물, 시합 자체의 아름다움이 있다. 일찍 열강의 위치에 올랐고 미국을 향해 운명의 대결을 펼쳤던 일본은 올림픽의 운영과 기록에서도 선두주자였다. 이치카와 콘(市川崑, 1915∼2008)에 의해 제작된 <도쿄올림픽(東京オリンピック)>(1965)은 레니 리펜슈탈(Leni Riefenstahl, 1902∼2003)이 1936년 베를린올림픽을 찍었던 전설적인 기록영화 <민족의 제전Fest der V쉕ker>(1938)에 버금가는 작품이다. 서울올림픽이 베를린올림픽에서 일장기를 달고 우승했던 손기정(孫基禎, 1912∼2002)에게 최종 성화주자를 맡겨 민족자존의 이미지에 매어 있었다면, 도쿄올림픽은 히로시마(廣島) 원폭투하 당시(1945) 태어난 사카이 요시노리(坂井義則)를 최종 주자로 택해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평화의 나라’ 이미지를 가미했다.

1936년 베를린올림픽 기록영화<민족의제전>포스터    

아시아의 올림픽들은 20세기 여느 올림픽처럼 스포츠 자체의 땀 외에도 정치적, 미학적, 경쟁적 차원을 갖고 있으나 경제적 후발주자들의 생리를 반영하듯 속도경쟁의 특성이 두드러진다. 중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숫자 8에 맞춘 베이징올림픽(2008년 8월 8일 개막)은 기대와 달리 티베트사태, 쓰촨(四川)대지진으로 이미 상당히 얼룩졌다. 하지만 만난을 극복하고 앞만 보고 달리는 것이 아시아 올림픽들의 특징 아닌가.

 

 

 

 

 

주)  1      정치, 경제, 소비 등 모든 것을 쥔 초대형도시들의 출현과 이들끼리의 연횡적 결합.

韓錫政 1953년 마산생. 동아대 사회학과 교수. 저서로 『개정판: 만주국 건국의 재해석』, 『주권과 순수성: 만주국과 동아시아적 근대』 등. sjhan@da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