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적인 입장을 접어놓고라도 한국사람에게 굿은 마을축제에 없어서는 안될 필수불가결한 것이었다. ‘굿도 보도 떡도 먹고, 님도 보고 뽕도 따고’라는 말처럼 굿판은 간절한 기원과 함께 마을잔치의 기능도 가지고 있었다. 이처럼 굿은 오랜 시간 전승되어 오면서 종교적인 관점 외에도 자연스럽게 민속예능으로서 한국의 독특한 문화로 자리잡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세월이 지나 그 겉모습은 퇴색할지라도 그것이 지닌 기억과 시간은 언제까지나 마음을 감동시킬 수 있을 것이다. 굿을 주도하는 무당은 민속예능인이면서 동시에 사제자(司祭者)였다. 사람들을 울리기도 웃기기도 하며 그들 마음속의 한을 풀어주고 복을 나누어주는 역할을 바로 무당이 담당한다. 무당의 원래 역할은 ‘무꾸리’라고 해서 미래를 점치는 일이기도 하지만, 그것보다는 인간사의 고달픔을 위로해주고 한을 풀어주며 복을 나누어주는 제사장이나 카운슬러(counselor)의 기능이 더욱 크다. 예전 시골동네에서 마을사람들과 함께했던 무당은 마을사람들이 고민을 털어놓고 상담을 구할 때 정성을 다해 그들 입장에서 같이 눈물 흘리고 위무하는 기능을 수행했다.  

무속이 하나의 문화를 형성하여 이어져 내려올 수 있었던 이유는 거기에 삶의 의지와 지혜가 깃들여져 있기 때문이 아닐까? 올해로 8회째를 맞는 소래포구축제의 현장에서 서해안풍어제를 만났다. ‘굿판’으로 벌어진 풍어제에는 무속의 예술적 아름다움과 종교적 경건성, 삶의 고뇌와 열심히 그리고 서럽게 살아가는 힘없는 사람들끼리의 사랑과 한의 눈물이 있으며 좌절하지 않는 용기와 웃음, 끝없는 신바람 등이 무당의 한마당 굿거리로, 신명과 능청스러움으로 펼쳐지는 장이라고 할 수 있다. 소래포구축제의 첫날 본격적인 개막식에 앞서서 마련된 서해안풍어제는 한편으로는 바다를 벗 삼아 살아가는 인천 소래포구의 주민들의 고단한 삶을 위로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소래포구축제 기간 내내 평안하기를 기원하는 의미로 해석된다.

이곳을 다니던 협궤열차는 서해안고속도로 개통 등으로 제 기능을 잃어 1995년 운행이 중단되었지만, 소래포구축제에는 오랜 세월 어민과 함께한 서해안풍어제와 함께 바닷물을 퍼올려 소금을 생산하던 염전이 옛 모습 그대로 남아있다. 갯벌 체험장과 맨발로 걷는 거리, 김치 만들기 체험 등의 행사도 시민의 발길을 잡았다. 개막식날 오후 1시부터 5시까지 진행된 서해안풍어제는 여타 지방자치단체에서 개최하는 차별성 없는 축제의 장이 아닌 인천만의 독창성이 깃든 마을축제로서 진정한 의미의 역사성을 담보하였다.

나라 만신(萬

神) 무녀를 높여부르는 말 김금화(金錦花, 중요무형문화재 82-2호)가 용왕에 풍어를 기원하는 서해안풍어제는 축제기간 동안 내내 공연되어 관광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서해안풍어제는 바다에서 발생할 수 있는 여러 사고를 막고 마을의 평안과 풍어를 기원하는 행사이다. 풍어제에는 마을의 평안을 기원하는 잔치와 서해를 둘러싸고 전개된 역사적 아픔을 풀어내는 의식이 함께 담겨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풍어제로는 해안선을 따라 형성된 동해안별신제, 서해안의 황해도 옹진과 해주지방을 중심으로 한 대동굿, 전라도 위도지방의 위도띠뱃놀이 등을 들 수 있다. 서해안의 황해도 옹진지방의 대동굿 마을의 신을 모시는 굿과 연결되면서 이루어지는 서해안의 배연신굿 뱃사람의 안전과 풍어를 기원하는 굿은 대표적인 풍어제이다. 김금화 만신은 서해안 배연신굿의 예능보유자로 1985년 중요무형문화재 82-2호로 지정되었다.

  소래축제 거리홍보    

김금화 명인(名人)은 1931년 황해도 연백에서 출생했고, 나라굿으로 유명한 큰무당이다. 강신무이면서도 철무리굿, 집안의 우환을 예방하는 굿 만수대탁굿, 노인들의 만수무강과 사후 극락천도를 기원하는 굿 배연신굿, 진오기굿 죽은이의 넋을 위로하고 극락천도를 기원하는 굿 등 모든 굿에 뛰어난 기량을 가지고 있다. 특히 날카로운 작두 위에서 춤을 추며 연평도 어장의 풍어를 기원하는 큰 굿이 일품이다. 월남한 뒤에는 고향에서부터 함께 무업에 종사하던 방수덕과 인천을 중심으로 활동하다 1972년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해주장군굿놀이>로 입상을 했다. 그 후 1983년 인천 화수부두에서 배연신굿을 공연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하여 무속예술가로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1982년 한미수교 100주년을 기념한 미국공연 이후에는 국제적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하며 이후 줄곧 ‘나라굿’을 주도해왔다. 백두산 천지에서의 대동굿, 독일 베를린에서의 윤이상(尹伊桑, 1917~1995) 진혼굿 등 국내외에서 수많은 굿 공연을 선보였다. 2005년 강화도에 건립한 서해안풍어굿전수관 ‘금화당’에서 서해안풍어굿의 명맥을 이으며 현재까지 왕성한 활동으로 후학 양성과 한국 무속문화 전수에 힘쓰고 있다. 2007년과 2008년에는 비디오아트의 거장 백남준의 추모행사에서 추모굿을 한바 있다. 

  소래포구축제 모습  

이번 소래포구축제의 첫날에 진행된 서해안 풍어제는 ‘신청울림-상(당)산맞이-초부정 초감흥굿-복잔내림-영정물림-칠석(소당)제석굿-뱃치기-성수거리-대감’의 순서로 진행되었다. 김금화 만신이 직접 주도한 부분은 ‘상(당)산맞이’이고 나머지는 김금화의 신딸과 신아들에 의해 진행되어 아쉬움이 있었지만, 이석우, 이정옥, 김혜경 등의 연희가 충분한 볼거리를 제공했다. 그러나 개막식 전 오후 내내 진행된 서해안풍어제는 그 굿이 담고 있는 의미나 예술성, 그리고 한국 전통예술계에서 인간문화재로 인정받고 있는 김금화 만신의 위치에도 불구하고 다소 송구스러운 면이 있었다. 앞쪽의 메인 객석은 저녁에 있을 개막식 준비를 위해 전체 객석 중 앞부분 3분의 1을 줄로 막아 출입을 통제한 채 귀빈석이라는 푯말을 부착하는 작업이 진행되었다. 이 때문에 굿판이 벌어진 무대와 객석이 너무 멀었다는 점이 문제였다. 무대에서 진행된 김금화 명인의 굿과 거리를 두고 자리한 시민들이 다소 어수선한 가운데 몰입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던 당일 주변상황에 아쉬움이 남는다.

玄璟彩 1960년 서울생. 음악평론가, 작곡가. 최근 저서로 『종횡무진 우리음악 10』, 『명인에게 길을 묻다 1, 2』 등. hyun677@hanmail.net머나먼 버마, 기나긴 싸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