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고상해 보이지만 그 내막을 쉽게 알 수 없는 사물이나 현상에 대해 좋게 말할 때는 ‘신비하다’고 하고, 비판적으로 말할 때는 ‘애매하다’고 한다. 오늘날 차에 대한 일반인의 인식이 그러하다.

책에는 전문가를 위한 전문서적이 있는가 하면, 대중에게 읽히기 위한 일반서적이 있다. 차에 관한 책이나 글은 제다인(製茶人) 차를 직접 만드는 사람이나 차인(茶人)1들을 위한 전문 다서(茶書)가 있고, 차가 대중화함에 따라 일반인들의 차에 대한 인식과 지식을 고양시켜 주기 위한 대중적 차책이 있다. 『세계의 차인』은 차인이라는 차의 스페셜리스트들을 다룬 차 전문서적이면서 마디마디에 차인들의 차문화 인식을 설명해 끼워 넣고 중국, 일본, 한국 등 동아시아 3국과 영국, 미국 등 서구의 차역사를 기술해 차에 접근하는 일반인들을 배려함으로써 차에 관한 대중서적의 성격도 띠고 있다.

하나의 책이 전문성과 대중성 두 가지 성격을 띠고 있다는 점은 전문가와 일반대중을 두루 포섭할 수 있다는 점에서 얼핏 상업적으로 좋은 전략일 수 있다. 그런데 이때는 전문가와 일반인이라는 질이 다른 독자를 동시에 만족시켜야 하므로 편집과 내용이 매우 치밀하고 함량이 높아야 한다. 『세계의 차인』은 차에 관한 궁금증을 안고 있는 일반인은 물론 자신이 ‘차인’ 반열에 들어있다고 자부하는 한국의 ‘차전문가’들조차 쉽게 만날 수 없는 중국, 일본, 타이완의 차인들을 직접 만나 그들의 육성을 전해준다는 점에서 신문으로 말하면 특종 상을 여럿 줄만하다. 그러나 편집과 내용의 치밀성에 있어서는 아쉬움을 많이 남긴다. 우선 이 책에 나온 ‘세계의 차인’의 선정기준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차문화에 대한 일정한 체계와 기준에 따라 차인들을 구분한 것이 아니라, 그저 ‘누구를 주목하라’는 식의 전언에 따라 무작위로 인터뷰를 한 듯한 인상을 준다. 이는 <차의 세계>라는 잡지에 실은 글을 재가공하여 옮겼기 때문일 것이다. <차의 세계>는 차인들을 위한 전문지이면서 차에 관심을 갖는 일반인들을 위한 대중지의 성격을 띠고 있다.

둘째, 무릇 차인이라 할 정도면 차나무의 재배, 제다, 음다에 도통한 사람이어야 할 것인 즉, 여기에 나오는 차인들은 중국 선다(仙茶)와 일본 다도(茶道)의 명인들에 그친다. 차란 자연의 일부인 차나무의 생육, 생리에서 자연의 고귀한 섭리를 얻고 제다에서 정성을 들이는 도를 쌓고 차를 마시는 마음에서 자연과 합일하는 정신을 얻는 일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나오는 차인들은 차를 마시는 일에서 얻는 마음의 평정, 검소, 화평, 예절, 그윽함―화경청적(和敬淸寂),2 청검중예(淸儉中禮),3 검청화정(儉淸和靜)4 등에 입을 모으고 있다. 그러나 이는 모두 차를 마시는 일에서 얻는 효과이다. 차는 마시는 것 못지않게 차나무를 가꾸고 차를 만드는 일에서 자연이 인간에게 주는 가르침이 많다. 다 만들어진 과실을 음미하는 ‘누리기’보다는 제다의 노역과 참여에서 얻는 수양이 많다는 것이다.

이 점에 있어서 한국의 차인 영광 불갑사(佛甲寺) 수산(壽山)스님백양사 방장의 구증구포(九蒸九曝) 찌고 말리기를 아홉 번씩 함 제다법(製茶法)에 대해 변죽만 울린 것은 가장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구증구포 제다법은 한국 제다계의 큰 논란거리인데, 그런 점을 잘 안다는 필자가 구증구포 제다를 목격하고도 그 내용을 전달하지 않은 것은 한국의 제다업계와 한국전통차의 전승 발전을 생각할 때 큰 실수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은 막간마다 차의 역사와 차문화의 내용을 실어 일반인을 이해를 넓히도록 배려했다. 예컨대 당대(唐代) 조주(趙州, 778∼897)선사가 던진 끽다거(喫茶去)라는 화두,5 송대(宋代) 원오극근(圓悟克勤, 1063~1135)선사의 다선일미(茶禪一味)6 진결(眞訣)과 다선일미의 뜻, 그것을 받아간 일본이 다선일미 정신을 다도(茶道)로 발전시킨 일 등이다. 그러나 이 책을 읽은 뒤에도 ‘끽다거’라는 말뜻의 애매함과 신비로움, 다선일미라는 말이 주는 헷갈림은 여전히 가시질 않는다. 그런 말의 뜻이 본래 애매하기도 하거니와 후대인들이 그 말들의 뜻을 주관적, 자의적으로 확대 전달한 탓이기도 한다. 그렇기에 흔치않은 기획력을 발휘한 이런 책은 차와 관련한 이런 말귀들을 명확하게 설명해주어야 한다.

이 책이 선사하는 최고의 미덕은 “오늘날 호들갑을 떨고 있는 우리 차계가 선가의 정신을 스님의 살림살이 속에서 배워간다면 진정한 차인의 품격을 갖출 것”(33면)이라는 구절에 있다. 이 책에 나오는 이른바 ‘세계의 차인’들의 차생활 태도와 정신이 모두 검소, 평상심, 이웃과의 화평 등 인간 본연의 자세 그것이다. 오늘날 정체성도 없이 상업주의에 매몰돼 ‘농약 차’를 고가에 내놓으며 매스컴의 질타를 받고 있는 한국 차의 모습을 반성해야 한다.

주)

1      음다(飮茶) 등 일상 가운데 차 마시기를 중시하는 등 ‘차살이’를 하는 사람.

2      중국에서 유래한 일본, 한국의 다도정신으로 화기애애한 가운데 공경을 잃지 않고 맑고 고요함을 의미.

3      한국다례 교육기관인 명원문화재단의 다도정신으로 맑고 검소하며 원만하고 예의바름을 뜻함.

4      중국의 다예정신으로 검(儉)은 검소함, 청(淸)은 청렴결백, 화(和)는 화목, 靜)은 고요한 경지를 의미함.

5      조주선사가 승려들에게 “여기 와본 적이 있느냐”고 물었는데 그렇다고 답하건 아니라고 답하건 “차 마시고 가게(喫茶去)”라고 하여 유래한 화두. 그 연유를 묻는 승려에게도 똑같이 말했다 함.

6      차 마시는 일과 선을 닦는 일이 같은 맛이라는 뜻.

崔星民 1954년 전남 신안생. KBS방송문화연구소 연구위원. 저서로 『차 만드는 사람들』, 『풍물기행 나를 찾아 떠난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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