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는 조선을 강제 병합한 지 5년째 되는 1915년에 흥미로운 대형 이벤트를 기획한다. 이름하여 조선물산공진회(朝鮮物産共進會)! 9월 11일부터 10월 30일까지 50일간 진행한 이 이벤트는 아이러니컬하게도 500년 조선왕조의 전통을 상징하는 경복궁에서 개최되었다. 전국의 각종 물산들을 수집 전시한 이 대형 박람회를 경복궁에서 개최함으로써, 그들은 한편으로는 일본에 병합된 이후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조선의 근대산업과 시정(施政)을 널리 알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패망한 조선 왕조를 여유롭게 비아냥거리는 기회를 얻고자 했을 것이다. 물론 지배자로서 일본인들은 조선 각 지역의 전통산업과 풍물, 그리고 습속들이 얼마나 후진적인 것인가를 한눈에 드러낸다거나 각 지역의 상세한 생활사정을 이 기회에 파악하려는 의도도 없지 않았을 것이다. 조선 각 지역의 산업, 교육, 위생, 토목, 교통, 경제 등에 관한 시설 및 통계를 망라한다는 전시 원칙의 행간에서 그런 의도를 읽어내는 것이 억측만은 아닐 듯하다.

그런데 이번에 인천대학교 인천학연구원에서 인천학자료총서로 발간한 『인천향토자료조사사항』(상·하)는 바로 그 조선물산공진회에 전시하기 위해 제출한 자료를 번역한 것이다. 그런 까닭에 자료가 제출된 1915년 7월 현재 인천의 통계연감, 혹은 인천백서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도시로서 인천을 구성하는 거의 모든 영역이 망라되어 있다. 분량만 해도 1,000쪽이 넘을 정도이다. 당시 인천의 자연환경을 비롯한 인문사회 환경이 분야별로 빠짐없이 정리되어 있다. 이를 위해 인천공립보통학교 교장 이마이 이노스케(今井猪之助) 외 8인의 교사가 자료수집과 편찬에 참여하였다. 그 중 여섯 명이 한국인 교사라는 점은 이채롭다.

그간 인천학연구원은 개항을 전후하여 해방이 될 무렵까지 인천의 현황을 다룬 책들을 지속적으로 발굴하여 출간해왔다. 1892년의 『인천사정(仁川事情)』, 1898년의 『신찬인천사정(新撰仁川事情』, 1903년의 『인천번창기(仁川繁昌記)』가 그것인데 이번 책도 이 기획의 연장선 위에 놓인 것이다. 이밖에도 인천문화발전연구원이 번역 출간한 1933년의 『인천부사(仁川府史)』, 계간 <황해문화> 2001년 봄호와 여름호에 나뉘어 전문이 소개된 일본인들의 인천 철수기록 『인천인양지(仁川引揚誌)』(1952)까지 합치면 일본인들에 의해 기록된 인천의 문헌은 어느 정도 정리되어 소개된 셈이다.

『인천인양지』를 제외하고 지금까지 소개된 책들이 인천의 발전을 대내외에 자랑스럽게 알리려는 제국주의 지배자들의 관점에 충실한 책이었다면, 『인천향토자료조사사항』은 현황 중심의 자료집에 가깝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이 책에는 인천의 위치와 면적, 지세(地勢)는 물론 인천의 산업, 토목, 운수와 교통, 재정, 교육, 종교, 군사, 풍속과 관습, 문예 관련 자료는 물론 전래자료까지 모두 수집, 소개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앞으로 인천을 연구할 때 빼놓아서는 안 될 책이기도 하다. 그런데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이 책 저변을 흐르고 있는 인천에 대한 관심이다. 개항장으로서의 자부심이 책 곳곳에서 배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특히 서울과 인천을 비교할 때 더욱 도드라지게 나타난다. 인천을 조선 제일류(第一流)라고 스스로 드높이면서 서울과 구별하고 있다. 저렴한 물가와 잘 갖추어진 사회기관, 경성(京城)보다 앞선 여러 문명시설과 교육 등에 대한 은근한 자부심이 통계수치를 통해 은연중에 표현되고 있다.

하지만 앞에서 언급했듯이 이 책을 편찬한 이유는 자명하다. 식민지 조선에 대한 효율적 통치를 위해 일제가 이 책을 기획하고 자료를 수집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번역에 참여한 임성호(林成虎) 교수도 말미에 실린 해제를 통해 자세하게 밝혀놓았듯 자신들의 편의에 따라 역사를 왜곡한 곳도 여기 저기 발견되고 있으며 제국주의 지배자로서의 시선이 노골적으로 드러난 부분도 적지 않다. 그 압권은 청일전쟁(1894~1895)과 러일전쟁(1904~1905) 등 전쟁에 관한 기록과 일본 황태자의 한국방문을 기록해 놓은 부분이다.(하권, 461~480면) 그런 점에서 이 책의 밑바탕을 흐르는 주요한 서술의 주체 역시 제국주의 지배자인 일본인들이다. 이 책에서 조선과 조선인은 대상화되어 있고 그래서 조선인은 단순한 타자(他者), 혹은 ‘그들’(‘우리’가 아닌!)로만 존재할 뿐이다. 우리가 이 책을 사료(史料)로서만 읽어서는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李賢植 1966년 인천생. 문학평론가, 인천문화재단 사무처장. 최근 글로 「<디워>의 문제성」, 「개항도시 인천이 꿈꾸는 문학관」 등. agiko3@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