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러리 퀸(Ellery Queen)1의 소설 중 라이츠빌(Wrightsville) 시리즈가 있다. 이것은 세상의 축소판이라 할 가공의 마을 라이츠빌 안에서 벌어지는 갖가지 사건을 토대로 구성한 추리소설시리즈이다. 엘러리 퀸은 이 라이츠빌 시리즈를 통해 인간성에 대한 탐구와 성찰에 대한 그의 재능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라이츠빌시리즈가 갖는 의미는 그 이상이라 생각한다.
ⓒ동서문화사│2003
현재 추리문학계의 대세는 과거로의 회귀, 혹은 팩션과의 결합이다. 해외는 물론이거니와 한국에서도 대부분의 작가들이 이러한 추세를 따르고 있다. 최근 한국문학의 큰 흐름이 되어버린 역사추리소설이 이를 입증하고 있다. 내가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지난 1년 사이 과거를 배경으로 한 추리물이 열편 가까이 된다. 왜일까? 트릭, 범죄방식 그리고 해결책 등을 구성할 때 과학적 검증가능성을 배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미국에서는 <CSI>, <FBI실종수사대Without a trace> 등 과학수사를 바탕으로 한 추리물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더 이상 셜록 홈즈 시리즈나 <형사 콜롬보Columbo>와 같은 형사물이 빛을 발하기 어려워졌다. 따라서 과학수사를 통한 기발한 해결과정이 소설에서는 적절하게 구현될 수 없기에 추리소설은 과거로의 회귀가 어느덧 대세가 되었다. 이런 현실에서 제대로 된 추리물을 쓰기 위해서 작가들은 먼저 과거에 어떠한 일이 있었는지를 조사해야만 할 것이다. 그러나 언제까지 과거의 역사만을 들추어 낼 것인가?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나는 라이츠빌시리즈를 화두에 올리고 싶다. 과학수사를 통한 검증을 피하려면 제한된 장소가 해결책이 된다. 그렇다고 김전일(金田一)만화 <소년탐정 김전일> 주인공처럼 매일같이 사람들을 외딴 곳에 가두어 놓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 가상의 장소를 만들자는 거다. 모든 것이 똑같되 시간상, 공간상 일정한 제약을 두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라이츠빌이다.
여기에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얘기를 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 시대의 시대상, 가치관은 소설 속에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단지 재미만을 추구할 뿐 소설로서의 가치를 잃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하고 말이다. 물론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측면을 잃는 대신 라이츠빌시리즈에서 드러났던 인간의 심리, 성찰 이런 부분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지 않을까. 추리소설에서도 굳이 그런 의미를 찾아야 한다면 말이다. 안타깝게도 국내에선 아직까지 이런 형식을 본 적이 없다. 또 묻는다. 굳이 본격추리물이어야 하는가?
주)
1사촌지간이었던 두 명의 미국 작가 프레데릭 대니(Frederic Dannay, 1905~1982)와 맨프레드 리(Manfred Lee, 1905~ 1971)의 공동 필명이자 두 사람이 함께 집필한 추리 소설의 등장인물.
宋世奕 1981년 경남 마산생. 한국외대 경영대학원 석사과정. queaven@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