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추리소설 융성기가 몇 번 있었다. 요코미조 세에시(溝正史, 1902~1981)의 『본진살인사건(本陣殺人事件)』이나 사카구치 안고(坂口安吾, 1906~1955)의 『불연속살인사건(不連續殺人事件)』을 시작으로 수수께끼를 풀어가는 형식의 본격추리 역작들이 줄지어 등장한 2차대전 직후와 마쓰모토 세이쵸오(松本張, 1909~1992)를 중심으로 사회파 추리소설이 인기를 모았던 1950년대 후반이 그랬다. 그러던 중 1990년대에는 하드보일드,감정을 배제한 채 현실을 냉혹하고 간결한 문체로 묘사 본격추리소설, 사이코 서스펜스, 호러 등 추리소설 분야가 다양하게 분화하면서 각각의 인기작들이 등장했다. 따라서 ‘추리소설’이라고 하는 장르가 순문학 이외의 오락소설 전체를 가리키며 폭넓게 이용되었다. 또 같은 시기에 추리소설평론가, 애호가들의 투표로 연간 베스트를 결정하는 무크지 『이 미스테리가 최고!(このミステリ一がすごい！)』(1988년 창간)가 큰 영향력을 갖게 되었다. 서점들이 이 베스트 랭킹 결과에 따라 책을 정렬하고 있을 정도다.

2000년대 들어서도 이러한 경향은 부분적으로 지속되었다. 그러나 언제부터일까, 일본 출판계는 ‘추리소설의 퇴조’를 운운하기 시작했다. 인터넷, 휴대전화 같은 신흥 미디어와의 경쟁에서 서적과 잡지가 고전(苦戰)을 면치 못하고 있다. 소설시장도 한계에 다다랐고, 그 동향도 추리소설이 아직 주도권을 가지고 있었던 1990년대와는 상당히 달라져있다. 2000년대에는 연애소설의 인기가 눈에 띠었던 한편, 애니메이션과 게임의 영향이 강한 라이트노벨, 젊은 세대의 연애 등을 짧은 글로 쓴 휴대전화소설(ケ-タイ小)휴대전화 사이트에 발표한 작품을 엮어서 낸 책 등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분야가 주목을 끌었다. 이러한 변화로 일본 출판계에서 추리소설의 지위는 상대적으로 약해졌다. 그것은 추리소설 분야가 1990년대에 과도한 기대를 모으면서 출판량이 지나치게 늘어나 고루해지자 추리소설이라는 레테르의 수명이 다한 때문일 수도 있다. 이 가운데서도 특기할 만한 변화는 번역추리소설의 부진이다. 근래 『쟈로Giallo』라고 하는 추리소설 전문잡지가 개편되었다. 해외추리소설을 번역하거나 소개하는 비중을 줄여 일본추리소설 중심으로 지면을 구성하고 있는 것이다. 일반대중을 너머 마니아층까지 대상으로 하는 추리소설 전문잡지임에도 불구하고 해외작품과 점점 멀어져 가고 있는 것은 아이러니다.

두말할 것도 없이 추리소설은 서구에서 만들어져 발달한 장르다. 에도가와 란포(, 1894~1965)와 같은 일본추리소설의 개척자들은 서구작품들을 의욕적으로 소개하고 받아들이면서 자신의 집필활동에 힘을 쏟았다. 그러면서 점차 일본 사회상황이나 미의식을 반영한 일본형 추리소설이 완성되었지만, 서구작품을 도달해야 할 목표로 삼는 흐름은 1990년대까지도 일정한 힘을 발휘하고 있었다. 일본 국내독자뿐만 아니라 해외까지 겨냥한다는 점에서 일반인들은 추리소설을 문턱 높은 마니아 장르로 인식했다. 그러나 앞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작품수가 증가하고 내용도 다양해지면서 독자들 사이에서는 해외작품을 읽지 않고 국내작품을 읽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분위기가 퍼져갔다. 거기에는 일본추리소설의 수준이 서구와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향상되었다는 자부심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다 2000년대 들어 추리소설 시장이 퇴조함에 따라 번역추리소설이 가장 먼저 영향 받게 된 것은 아닐까.

일본추리소설 시장의 이러한 발자취는 일본의 대중음악 시장에서도 나타났던 현상이다. 서구의 팝, 록음악을 전범으로 삼아 발달한 일본음악계는 과거에는 해외동향을 받아들이며 힘을 얻었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일본 국내작품이 다양화하고 수준이 향상됨에 따라 해외작품에 대한 관심이 상대적으로 낮아지는 경향이 눈에 띠기 시작했다. 음악 소비자들 사이에서 일본 국내음악만 들어도 충분하다는 감각이 퍼져갔던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추리소설이든 대중음악이든 일본에서 말하는 해외작품이란 주로 서구작품, 특히 영미작품을 의미해 왔다는 사실이다. 일본 추리소설계, 음악계가 1990년대 이후 국내작품을 중시하고 서구작품을 경시하는 경향으로 기울었지만 아시아 동향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기회는 오히려 늘어났다. 음악 쪽에서는 일본의 밴드나 아이돌스타가 타이완, 한국 등에서 인기를 얻고 매스컴을 탔다. 또한 2000년대 한류(韓流) 붐에서 확인한 바 있듯 아시아지역의 드라마, 영화, 음악이 이전보다 많이 소개되었다. 이러한 변화의 배경으로 한국, 타이완, 중국의 경제수준이 향상됨에 따라 이 지역의 문화가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그런데 일본인들이 아시아 각국과 일본 간의 문화교류를 받아들이는 양상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일본이 서구문화를 수용하고 발전시키는 데에 앞서 있다는 우월감과 자부심. 다른 하나는 이제야말로 아시아가 서구에 대항할 수 있는 문화수준이 되었다고 느끼는, 이들 국가에 대한 동류의식이다. 소위 대동아전쟁(大東亞戰爭)이라는 역사적 배경도 있기 때문에, 일본인들의 의식은 그런 복잡한 것이 될 수밖에 없다. 또한 드라마나 음악 등의 분야에서 보이는 일본의 아시아에 대한 관심은 추리소설에서도 작지만 점점 높아지고 있다.

서구 추리소설계에서는 수수께끼 풀이에 중점을 두는 본격추리소설이 장르의 주류에서 내려온 지 오래다. 일본에서도 이 장르는 한 때 퇴조했었다. 그러나 1980년대 후반부터 신세대 본격추리소설 작가들이 줄지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러한 움직임은 ‘신본격(新本格)’이라 일컬어졌다. 근래 이 분야의 작품이 타이완에서 번역돼 인기를 얻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일본추리소설 팬들을 놀라게 만들기도 했다. 하드보일드나 사이코 서스펜스 같은 추리소설의 하위장르가 서구에서 많이 나오고 있어, 국내작품으론 이에 대항하기 어렵다는 인식이 일본추리소설 관계자들에게 있었다. 그러나 ‘신본격’에 관해서는 서구에도 대적할 만한 상대가(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다지 없었다. 그래서 지금도 본격추리소설 작품을 생산하고 있다는 것이 서구에 대한 일본의 후진성을 보여주는 것인지, 일본의 자랑할 만한 독자성을 보여주고 있는 것인지에 대한 견해가 엇갈리고 있다. 이런 상황 하에 일본 바깥인 타이완에서 ‘신본격’이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사실은 일본의 본격추리소설 애호가들에게 환영받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사실 여기에는 특별한 사정이 있다. 일본에서는 1970년대에 요코미조 세에시의 작품 같은 기괴한 색채의 구식 추리소설이 재평가되어 다시 인기를 얻은 적이 있었다. 이러한 시류를 타고 『겐에에죠오(幻影城)』(1975~ 1979)라는 본격 추리소설 잡지가 창간되었는데 이 잡지를 읽으며 자란 마니아들이 후에 ‘신본격’ 작가가 된 것이다. 또한 『겐에에죠오』의 편집장이었던 시마자키 히로시(島崎博)가 잡지 휴간 후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타이완에 돌아가 일본추리소설을 소개했던 것이 오늘날 타이완에 ‘신본격’ 바람을 몰고 왔다. 이를 계기로 일본과 타이완에서 추리소설을 매개로 한 교류가 추진되어 올해 시마자키씨가 일본을 방문했고, 타이완에서는 일본의 본격추리소설 인기작가인 시마다 소오지(島田司)의 이름을 딴 ‘시마다 소오지 추리소설상’이 만들어져 작품 모집을 시작했다. 수상작은 타이완뿐만 아니라 중국, 태국, 일본에서도 동시에 출간할 예정이라고 한다. 각종 문학상이 난립하고 있는 일본에서는 고액의 상금을 내세우며 영화화까지 염두에 두고 운영하는 추리소설 신인상도 있지만, 국경을 넘어 출판을 약속한 예는 없었다. 따라서 처음으로 아시아 시장을 인식한 ‘시마다 소오지 추리소설상’의 시도가 어떤 성과를 올릴 것인지에 많은 관심이 모이고 있다.

그밖에도 최근에는 ‘신본격’과 라이트노벨 붐의 영향으로 창간된 일본 소설잡지 『파우스트(ファウスト)』가 타이완판, 한국판을 만든다고 한다. 거꾸로 타이완이나 중국의 추리소설이나 젊은이들의 오락소설을 일본잡지에 소개하는 기회도 조금씩 늘어가고 있다.

일본으로 들어오는 아시아 추리소설, 오락소설은 지금으로서는 타이완, 중국이 앞장서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도 일본추리소설이 번역 소개되고 있고, 미야베 미유키(宮部みゆき), 히가시노 게에고(東野圭吾) 같은 일본작가가 인기를 얻고 있다. 그렇다면 드라마, 영화, 음악 등이 그랬던 것과 같이 이후 한국의 추리소설이 일본에 소개되어 주목받을 날이 멀지 않았다. 지금까지 일본추리소설은 서구와 비교되어 왔다. 그러나 최근 동향을 보면, 아시아라고 하는 관점에서 생각해야할 시대가 왔다고 실감하고 있다. 이런 문화교류가 어떤 작품을 만들어 낼 것인지, 기대된다.

번역_ 康惠林 인천문화재단 전문위원

円堂都司昭 1963년 일본 치바(千葉)생. 문예·음악평론가. 저서로 『YMO컴플렉스』, 『수수께끼의 해상도』 등. endingendless@nift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