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오십을 한참 넘긴 우리 세대는 한때 거의 모두 영미추리소설의 애독자였다. 지금도 영문학에서는 추리소설의 형식을 빈 대중문학작품이 쏟아져 나오지만 요즘 한국의 젊은 독자들이 우리 세대만큼 추리소설에 탐닉하지 않을 거라는 느낌을 갖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주위에서 추리소설을 찾아 읽는 내 나이 또래 독자를 볼 때마다 나는 그들이 지닌 싱싱한 정신이 늘 부럽다. 확실히, 코난 도일(Arthur Conan Doyle, 1859~1930)의 『셜록 홈즈의 모험』(1891~1892)이나 아가사 크리스티(Agatha Christie, 1890~1976)의 『오리엔트특급 살인』(1934)을 읽을 때의 경험은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도스토예프스키)나 『마담 보바리』(플로베르)을 읽었던 것과 아주 다르다. 이들 추리소설은 격렬한 신체적 반응을 유발하지는 않지만 텍스트가 만들어내는 전혀 다른 세계와 분위기 속에 은근히 녹아들면서 독자들이 자신의 존재를 잊고 텍스트가 유도하는 논리를 따라 가게 된다. 자신의 예측이 배반당하고 전혀 엉뚱하게 해결되었을 때의 느낌도 묘하게 상쾌한 것이지만, 무엇보다 끝까지 읽었을 때 하나의 체험이 확실히 끝났다는 후련한 느낌으로 책을 내려놓을 수 있어 좋았다. 이에 비하면 『마담 보바리』는 영어판으로 읽으면서도 읽는 과정이 지겨웠다는 느낌만 남아있다. 『파우스트 박사』(토마스 만)를 읽었을 때도 이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열패감이 주는 불안 때문에 지겨운 가운데 억지로 읽었던 실패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 무엇보다, 이런 작품을 읽을 때 고전이 주는 압박감 때문에 가끔 책을 놓고 책을 읽는 내 자신을 정신분석 해야 하는 부담이 없는 것도 좋았다.

그런데 추리소설에 대해 즐거운 기억을 가진 독자들은 바로 그 점 때문에 영미추리소설이 비평가들로부터 거친 비판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상당히 실망할 것이다. 현대비평에서 추리소설은, 알튀세(Louis Althusser, 1918~1990)의 말을 빌려 말한다면, 대중의 이성적 현실인식과 창조적 사고를 마비시키는 ‘이데올로기 국가장치(ideological state apparatus)’일 따름이다. 그 기원이 윌키 콜린스(William Wilkie Collins, 1824~1889)의 『월장석The Moonstone』(1868)이든 에드거 앨런 포우(Edgar Allan Poe, 1809~1849)의 「모르그가의 살인」(1841)이든, 영미추리소설은 19세기 말 런던을 다룬 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 단편연작에서 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 원래는 단편이 주류였지만 E. C. 벤틀리(E. C. Bentley, 1875~1956)를 통해 장편소설의 형식으로 발전하게 된다.

코난 도일과 함께 도로시 L. 세이어즈(Dorothy L. Sayers, 1893~ 1957), H. C. 베일리(Henry C. Bailey, 1878~1961), 앤써니 버클리(Anthony Berkeley Cox, 1893~1971), 그리고 누구보다 아가사 크리스티의 등장으로 고전추리소설 장르는 전성기를 구가한다. 이 시기 작품들은 이제 본격적으로 등장하게 되는 전문직이나 경영관리자 계층을 대상으로 쓰였다. 주로 지적인 인물이 과학적이고 논리적 추리를 통해 사건을 전개를 풀어내는데, 정교한 플롯과 의표를 찌르는 결말을 통해 독자들을 매료시켰다.

하지만 중산층 사회를 배경으로 하는 이들은 기성질서의 병리들을 지나치게 말끔한 방식으로 해소함으로써 일시적으로 흐트러졌던 사회질서를 회복한다는 이념적 메시지가 너무 강했다. 요컨대, 영국사회는 계급적으로 안정된 유기체적 사회에 이미 도달했다는 것, 가끔 이를 흔드는 사건이 일어나지만 이는 언제나 명민한 경찰이나 탐정(이 경우, 탐정은 국가의 대리자이다)에 의해 반드시 밝혀지고 사회는 다시 안정을 회복한다는 믿음을 당대의 독자에게 심어준다는 것이다. 한발 더 나아가, 비평가들은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추리소설 장르가 부상하게 된 배경으로 대도시를 중심으로 한 금융자본주의의 새로운 전개를 이야기한다. 예컨대 인구 100만에 도달한 19세기 런던에서는 부유한 사람들이 사는 서부와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동부 사이의 이질성이 심각했다. 또한, 금융자본주의가 추동하는 현실은 개인적 체험만으로는 결코 파악할 수 없는 단계에 이르러, 추상적 통계의 도움을 얻을 때에야 비로소 전체적 모습을 드러냈다. 현대비평가들에 따르면, 탐정소설은 이러한 변화와 불투명한 현실전개에 대한 당대인의 두려움을 덜어주는 장치이다. 범인이 탄 마차가 런던의 안개 속으로 사라지는 장면이 미로처럼 복잡하고 불투명한 현실에 대한 비유라고 한다면, 논리적 추리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당대인들이 가장 신봉하는 ‘과학’을 통한다는 점에서, 아주 믿음직한 해결이 된다. 물론 이 과정의 핵심은 범인이다. 질서가 흔들리는 것은 사회의 구조적 문제가 아니라, 딸의 재산을 뺏으려는 홈즈 시리즈의 양아버지처럼, 정통과 주류에서 비켜난 이질적 존재로 인한 것이다.

고전적 추리소설은 1930년대를 기점으로 몰락한다. 경제공황으로 세계경제가 크게 흔들렸고 위기에 맞서 등장한 파시즘과 사회주의가 자유민주주의를 대체했던 시기였다. 작가들 또한 이러한 시대적 요구에 부응할 수밖에 없었음을 감안한다면, 고전적 추리소설이 세칭 하드보일드비정한 현실을 무감정의 냉혹한 문체로 다루는 기법 추리소설로 변모하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레이먼드 챈들러(Raymond T. Chandler, 1888~1959)의 작품에서처럼 이제 일상의 세계와 범죄의 세계도 과거처럼 딱 구분되지 않기 때문에 사회지도층 인사들조차 범죄에 연루되곤 한다. 특이한 인물들인 홈즈나 마플 여사아가사 크리스티 소설에 등장하는 탐정는 귀족들의 응접실에서 역시 특이한 범인들과 개인적으로 우아하게 두뇌싸움을 벌이지만, 챈들러 작품의 탐정 말로우는 조직적 범죄에 맞서 거칠게 싸운다. 말로우는 겉으로만 선을 위해 싸울 뿐 자신이 돕고 있는 사회의 정당성을 거의 믿지 않는다. 그는 사회와 동화할 수 없는 고독한 부적응자일 따름이다. 추리소설 장르는 물론 그 이후도 계속 변화한다. 최근의 인기작가라 할 수 있는 폴 오스터(Paul B. Auster)에 이르러서는 추리소설의 기본장치라 할 인과율마저 깨어진다. 사건의 발생과 해결이 합리적 추리에 의해 연결되는 것 자체를 거부하는 우연성과 비합리의 세계만이 눈앞에 펼쳐진다.

그렇다면 1930년대 이후에는 고전적 추리소설이 지닌 이데올로기적 장치가 허물어진 것일까? 현대비평가들은 여기에 대해서도 의구심을 감추지 않는다. 그들은 단지 이데올로기를 감추는 방법이 정교해진 것일 뿐 그 함의는 지속되고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추리소설은 무가치한 것일까? 현대비평가들이 보기에, 추리소설이 지닌 가치는 이데올로기의 이면에서 진실을 함께 담는다는 데 있다. 이데올로기를 담기 위해서는 그 이데올로기가 억압하는 진실이 따라 들어오게 마련이다. 다시 말해 탐정소설은 진실을 보이지 않게 만듦으로써 오히려 왜곡된 형태로나마 진실을 드러낸다. 따라서 비평가들은 텍스트보다 텍스트비평을 중시한다. 문학비평은 정교한 해석학적 실천을 통해 이 억압된 진실을 복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현대비평가들에게 탐정소설은 진실이 아니라 진실이 억압된 흔적을  보여주는 장르일 수밖에 없다.

이 자리에서 아주 범박한 질문을 두 가지 하자. 과연 그렇기만 할까? 한때 추리소설에 탐닉한 사람들, 그리고 지금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작가 혹은 작가를 뒤에서 조종하는 자들이 설치한 덫에 걸려들어서, 그러니까 무의식적으로 체제를 옹호하면서 즐겁게 읽고 있는 걸까? 내가 현대비평에 대해 가진 불만 가운데 하나는 그들이 독자를 믿지 못하고 늘 가르치려 든다는 점이다. 독자들의 탐닉에 깃든 정신적 싱싱함에 대해 기본적인 예의를 갖출 수는 없는 걸까? 그렇다면 또 하나, 영미추리소설이 한국문학이나 한국독자들에게 어떤 긍정적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인가? 비평가 프랑코 모레티(Franco Moretti)의 작업은 이런 점에 대해서 불안과 희망을 동시에 주고 있다. 그 역시 추리소설은 과학의 외양을 띤 이데올로기에 불과하며 소설의 진정한 가치를 죽이는 장르라고 한다. 하지만 그런 동시에 다윈의 진화론에서처럼 추리소설 또한 형질분화와 자연선택의 개입을 통해 종의 확대와 우승열패의 과정을 반복한다고도 말했다. 레이먼드 윌리엄즈(Raymond Williams, 1921~ 1988)는 『지원자들The Volunteers』(1978)을 쓰면서 ‘자신의 의도와는 다르게’ 본격 리얼리즘과 스릴러 형식을 결합하였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는 노동자의 실제 체험과 과거의 산업투쟁이 지닌 간극을 표현하기 위해 전통적 리얼리즘 수법을 벗어났던 것이다. 노동계급의 현실에 충실한 가운데 초국적 기업의 움직임을 보려주려는 그의 의도가 본격문학 장르와 하위장르인 추리소설의 이질적 결합을 이끈 것이다.

宋承哲 1954년 부산생. 한림대 영문과 교수. 최근 글로 「진보의 영어론: 탈식민주의를 넘어서」 등. scsong@hallym.ac.kr한국추리소설사에 대한 변명

기원, 역사 그리고 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