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당시의 일본 사상계에 더욱 큰 영향을 미쳤던 사건은 가토 히로유키(加藤弘之, 1836~1916)의 전향이었다. 가토 히로유키는 적자생존의 논리를 그의 『인권신설』(1882)과 『강자의 권리 경쟁』에 대입했다. 이 무렵은 사회진화론 논쟁이 일어나기 시작한 시기였다. 또한 사회진화론은 일본이 어떻게 서구에 맞설지에 대한 ‘일본인론’ 일본인의 행동양식, 생활양식의 특질을 밝혀내는 것에 적용되었다. 메이지 초기에 가토 히로유키는 천부인권(天賦人權)의 입장을 견지했다. 하지만 영국, 프랑스의 자유민주주의 사조에 영향을 받은 자유민권운동가들과 달리, 가토 히로유키는 독일의 국가론자 블룬칠리(Johann Kaspar Bluntschli, 1808~1881)의 『민족국가론Lehre vom modernen Staat』(1875~1876) 번역에 착수했다.

사실 19세기 중반 독일에서 유행한 국가론의 배후에는 계몽전제주의 전제군주가 계몽사상을 정치에 적용하는 체제 가 있었다. 일본 독일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가토 히로유키는 이 체제에 호감을 가졌다. 1882년 가토 히로유키의 전향을 상징하는 『인권신설』이 출판되었다. 『인권신설』은 생존경쟁과 자연도태의 법칙을 통해 사회구성원 간의 우열이 있음을 증명하려고 했다. 따라서 모든 인간이 선천적으로 평등한 권리를 갖는다는 천부인권설은 망상이다. 한편, 국가의 권리 장악이 중요함을 강조했다. 거대 권력이 있어야만 국가가 개인의 권리를 보장할 수 있다는 논리다. 마루야마 마사오가 지적한 것처럼 가토 히로유키의 진화론은 헤켈(Heinrich Haeckel, 1834~1919)의 영향 아래 있었다. 이들의 진화론은 확실히 권위주의적 정치체제를 지향하는 것이었다. 사회진화론이 점차 일본사상의 주류를 점하면서, 우승열패의 논리가 국제정치에 끼어들기 시작했다. 후쿠자와 유키치의 탈아론(脫亞論) 아시아를 넘어 서구를 지향함 은 이러한 배경의 산물이다. 1880년대에는 후쿠자와 유키치도 사상변화를 경험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서양 문명국가에 맞서려면 당연히 일본은 이웃나라 중국, 조선과 단결해야 한다. 비록 중국과 조선은 느리고 굼떠 서양을 막을 힘이 없지만 일본은 이들을 무력으로 보호하고 문화로 유도해야 한다.” 한때 조선의 개혁파를 지지했던 후쿠자와는 갑신정변3 실패 이후 일본이 조선에 개입할 기회를 놓치게 되자, “이웃나라가 개화하여 아시아가 함께 흥하기를 기다리는 것은, 그들에게서 벗어나는 것만 못하다”, “나쁜 친구를 가까이 하면 그들과 오명을 나누게 된다. 우리들은 동아시아의 나쁜 친구들과 교제를 끊어야 한다”고 말을 바꾸었다.

진화론이 중국에 들어온 것은 옌 푸(嚴福, 1854~1927)가 번역한 『천연론(天然論)』(1898)을 처음으로 꼽을 수 있다. 옌 푸는 1877년 영국으로 건너가 해군학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옌 푸의 유학기간 중 영국을 방문한 궈 쏭다오 (郭嵩燾, 1818~1891)는 그와 나이를 초월한 우정을 맺었다. 두 사람은 서양이 부강한 이유에 대해 같은 견해를 가졌다. 서양은 튼튼한 배와 뛰어난 무기뿐만 아니라 훌륭한 사상과 정치사회제도를 갖췄다는 것이다. 1895년 청일전쟁의 패배는 옌 푸를 개혁운동에 투신하도록 이끌었다. 그러나 그는 서구사상을 번역하고 소개하는 일에 남달랐다. 톈진의 <궈원바오(國聞報)>는 1896년부터 옌 푸가 번역한 헉슬리(Julian Huxley, 1887~1975)의 『천연론』을 연재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옌 푸는 노장사상 등 중국철학의 개념으로 사회진화론을 번역하는 한편, 훗날 널리 사용될 번역어 ‘물경(생존경쟁)’과 ‘천택(자연도태)’을 창안하기도 했다. 『천연론』 이후 그는 스펜서의 『군학이언(群學肄言)』을 내놓았는데, 사회학을 ‘군학’무리에 관한 학문이라고 번역한 것도 매우 독창적이었다.

정치적 실천과 이념전파의 측면에서 보면, 중국의 사회진화론에서 량 치차오(梁啓超, 1873~1929)는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했다. 변법자강운동4이 실패하자 량 치차오는 일본으로 건너갔다. 일본에선 사회진화론의 영향이 이미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였다. 또 국민성 토론에 관련한 ‘일본인론’이 있었다. 사실, 정변이 일어나기 전부터 량 치차오는 이미 옌 푸의 번역을 통해 사회진화론을 접촉했었고 깊은 감동을 받았다. 일본 망명시기에 량 치차오는 서양번역서와 일본서적을 열독했다. 그 과정은 그가 쓴 『일본어를 배우는 이익을 논함(論學日文之益)』(1899)에 상세하게 나와 있다. 사실 『진화론혁명가 키드의 학설(進化論革命 者德之學說)』(1902)은 일역본을 참고한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량 치차오가 사회진화론을 받아들이고 전파하는 데에 일본의 정론가인 타카야마 쵸오규우(高山樗牛, 1871~1902)와 우키다 카즈타미(浮田和民, 1860~1946)의 영향이 컸다는 사실이다. 사회진화론을 받아들인 뒤 량 치차오의 생각은 달라졌다.

[후쿠자와 유키치 초상]

타카야마 쵸오규우와 우키다 카즈타미 이 두 학자는 잡지 <태양>의 편집장을 번갈아 맡았으면서 많은 글을 발표한 정론가였고 일본제국주의의 고취자였다. 그러나 두 사람의 이론구조는 달랐다. 다카야마 쵸오규우는 국가주의의 관점에서 일본제국을 구상한 반면, 우키다 카즈타미는 후쿠자와 유키치의 “하나의 몸이 독립하는 것이 바로 하나의 국가가 독립하는 것”이라는 논점을 이어 장차 입헌주의와 제국주의를 결합시키고자 했다. 「역사와 인종의 관계」를 쓸 무렵 량 치차오에게 영향을 미친 것은 우키다 카즈타미의 『사학통론』, 『서양상고사』와 다카야마 쵸오규우의 『세계문명사』였다. 우키다 카즈타미로부터 량 치차오는 ‘역사적 인종’이라는 개념을 차용했다. 사실 우키다가 말한 ‘역사적 인종’은 언어, 문화 등 후천적 요소로 인해 형성된 인종을 지칭한다. 그러나 량 치차오는 자아단결과 대외확장능력이 있는지 여부에 따라 ‘역사적 인종’과 ‘비역사적 인종’을 구분하였다.

다카야마 쵸오규우의 영향은 『세계문명사』라는 책을 통해 분명히 드러난다. 이 책은 프랑스 작가 고비노(Joseph Arthur de Gobineau, 1816~1882)의 『인종불평등기원론』(1853)의 영향을 받았다. 고비노는 극단적인 백인우월주의의 관점으로 인종의 기원을 논했다. 타카야마의 일본주의 계보도 황인종과 백인종의 경쟁구도를 바탕으로 세운 것이다. 타카야마의 이 설명법은 량 치차오가 「역사와 인종의 관계」에서 역사의 유무를 판별하는 기준과 서로 호응한다. 이밖에도 량 치차오는 『신민설(新民說)』5 에서, ‘우승열패의 논리로 신민을 증명한 결과 신민을 취해야 하는 이유’를 제목으로 삼았고, 각국의 인구통계 등을 통해 서구 문명국 사이의 각축 정황을 설명함으로써 우승열패의 원리를 설명했다. 주목할 만한 것은 이 글이 단순히 인족의 천부적 특성만으로 우열을 논하지 않고 후천적 조건의 누적이 경쟁에 유리한 배경이 되기도 한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엄복]

그밖에 흥미로운 글로 『진화론혁명가 키드의 학설』이 있다. 재미있는 것은 사회적 배경이 달랐음에도 불구하고 량 치차오가 키드의 사회진화론이 필요로 하는 긍정적 국민 상을 상세하게 서술했다는 것이다. 키드는 확실히 이타주의를 주장했다. 그의 저술에는 “타자를 돕는 것은 민족을 이롭게 한다”는 내용이 있는데, 량 치차오가 자주 인용한 대목이다. 키드가 이타주의를 주장한 근거는 자유경쟁이 극단화할 경우 오히려 경쟁에 유리한 자원을 자기 가족들에게 분배하는 봉건주의를 초래하는데, 이것이 자유경쟁의 원리에 위배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당시의 키드는 영국의 극단적인 개인주의를 이타주의로 수정하여 불공평한 경쟁이 출현하는 것을 막으려고 했다. 그렇지만 량 치차오는 이를 민족발전을 위한 집체주의의 필요성으로 ‘번역’했다. 학계가 널리 인정하는 것처럼, 량 치차오는 민족주의나 국민성과 같은 현대국가의 개념을 최초로 갖고 왔다. 하지만 량 치차오의 사회진화론에 대한 관점은 새로운 토론대상이다. 그는 사회진화론의 우승열패 경쟁논리를 구국운동의 상황 아래 민족주의와 국민성 개종 문제로 제창했던 것이다.

견미사절단 시절의 유길준

사회진화론의 동아시아적 여정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19세기 말 조선은 내부로는 개혁파와 보수파의 권력투쟁을, 바깥으로는 일본의 침략에 직면해 있었다. 조선 최초의 미국유학생이었던 유길준(兪吉濬, 1856~1914)의 비극적인 일생은 그 자체로 사회진화론의 동아시아적 여정의 한 양상을 보여준다. 개혁파 유길준은 25세에 시찰단을 따라 일본에 갈 기회를 얻었다. 그때 후쿠자와 유키치가 설립한 게이오의숙(慶應義塾) 지금의 게이오대학에 입학하여 가르침을 받았다. 이어서 27세에는 조선 최초로 사절단과 함께 미국으로 갔는데, 미국에 머문 내내 박물관에서 미국역사를 공부했다. 1885년 유럽을 여행하고 조선에 돌아온 후, 보수파에 의해 5년간 구금되었다. 감옥에서 그는 『서유견문(西遊見聞)』(1895)을 집필했다. 사실 이 작품에는 후쿠자와 유키치의 『서양사정(西洋事情)』(1866) 번역문도 포함되어 있다. 유길준은 서구 선진국의 사회제도 등을 조선 백성들에게 소개하고 싶었다. 주목할 만한 것은 『서유견문』이 인류역사를 미개화, 반개화, 개화 등 3등급으로 나누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확실히 사회진화론의 영향 탓이다. 20세기 초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가 되자, 일본을 배워 조국을 개조하고자 했던 유길준은 자신의 사회진화론적 입장을 되돌려, 침통한 심정으로 약자의 권리를 주장했다. 그는 후쿠자와 유키치의 『학문을 권함(勸學問)』(1866) 첫머리 “하늘은 사람 위에 사람을 낳지 않고, 또 사람 아래 사람을 낳지 않는다”를 “나라 위에 나라 없고, 또 나라 아래 나라 없다”라고 바꿔 썼다. 나라를 잃은 비통함이 사회진화론을 반성하게 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양계초]

사회진화론은 동아시아에서 지속적으로 뻗어나갔다. 가토 히로유키와 후쿠자와 유키치 이후, 일본의 사회진화론은 서구에 대한 인종경쟁의 중요한 사상 자원으로 내화하였다. 2차세계대전 말기까지 일본은 ‘이 전쟁이 어떻게 비서구 문명을 건립할 것인가?’라는 ‘근대의 초극’ 문제를 토론했다. 중국에서는 량 치차오가 사회진화론을 빌어 강조한 민족주의와 국민성 개조 문제 등을 부단히 토론했고 그것은 우생학 범주로도 뻗어나갔다. 청말에서 민국시기(1911~1949)까지 사회진화론은 끊임없이 증식했다. 그렇지만 지식인사회는 사회진화론을 ‘문명 따라잡기’로만 받아들였다. 루 쉰(魯迅, 1881~1936)은 예외였다. 젊은 시절 일본에서 유학하던 루 쉰은 그의 일기에 진화론에 대한 호감을 적었다. 그러나 귀국 후에는 반성적인 입장을 택했다.

사회진화론의 동아시아적 여정은 마치 역사의 일면을 보여주는 거울과 같다. ‘문명’은 동아시아 공동의 열렬한 추구대상이었다. 그러나 여기에 대한 입장이야 어떻든 동아시아 지식인들에게 나타난 극단주의적 면모는 공통적인 것이었다. 서구문명을 추종하면서도 저항했던 일본은 2차세계대전 후에야 ‘회한공동체(悔恨共同體)’ 6를 가졌다. 마루야마 마사오는 일본의 서구 추종을 비판했다. 현대문명에 대한 루 쉰의 고독한 성찰은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동아시아의 시각에서 그의 진보성을 이해하게 만들지 않는가? 옛것을 통해 오늘을 풍자하는 일이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다. 왜냐하면 역사적 맥락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지구화나 국가경쟁력과 같은 말들이 동아시아에서 다시 유행하고 있는 이때에, 루 쉰의 조숙한 통찰 혹은 마루야마 마사오의 깊이 있는 반성은 아니더라도, 우리는 자신의 뚜렷한 입장을 늘 역사의 거울로부터 찾아야 한다. 

번역_ 柳多珍 인천문화재단 전문위원

출처_ 「社會進化論的東亞之旅」<讀書>(2008年4期)

주)

1      1868년 이후 메이지 천황 때, 에도 바쿠후(江戶幕府)를 무너뜨리고 중앙집권통일국가를 이루어 일본 자본주의 형성의 기점이 된 변혁의 과정.

2      1870년대 일본 정부의 전제적이고 독단적인 개혁에 반대하여 국회의 개설, 헌법 제정, 언론, 집회의 자유 등 민주주의적 정치개혁을 요구하며 전국적으로 전개된 정치운동.

3      1884년 김옥균(金玉均, 1851~1894)을 비롯한 급진개화파가 개화사상을 바탕으로 조선의 자주독립과 근대화를 목표로 일으킨 정변.

4      량 치차오 등 젊은 지식인들이 전통적인 정치체제, 교육제도 개혁으로 부국강병을 실현하고자 한 운동, 조선의 갑신정변과 비슷한 성격의 개혁운동.

5      신민은 근대 국가의 국민으로서 자질을 갖춘 사람으로, 『신민설』은 국민으로서 갖추어야 할 덕목을 논한 책임.

6      1950년 1월 발표한 제2성명을 통해 ‘철조각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으로 검극(劍戟)의 수풀 속을 헤쳐간다’는 절대평화주의 사상 채택, 일본의 전후평화주주의 근간.

李政亮 1969년 타이완 신주(新竹)생. 난카이(南開)대 신방과 조교수. 최근 글로 「‘대중’ 투쟁 하에서의 영화적 상상과 실천」 등. aliang1229@263.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