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조, 방정환, 김동인, 채만식, 박태원, 김내성, 김유정, 안회남, 양주동, 방인근. 한국문학에 대한 애정만 있다면, 누구나 다 알 법한 작가들이다. 얼핏 장황하고 무의미한 나열처럼 보이지만, 무관(無關)이야말로 가장 큰 유관(有關)이며, 사소하고 무의미한 것들이 가장 중대하고 의미 있는 것들이라는 셜록 홈즈의 말처럼 이들에게는 중요한 공통점이 하나 있다. 바로 추리소설을 썼거나 번역했다는 사실이다.

[좌 김탁환,이인화                  /                       우 김성종]            

조용하게 그 명맥을 이어온 침묵의 스테디셀러 한국추리소설이 올해로 탄생 100주년을 맞이했다. 근대문학 건설, 국권회복, 민주화투쟁 등 드높고 굵직한 대의명분들 앞에서 평가 한번 제대로 받지 못했지만 마니아 독자들의 변함없는 성원에 힘입어 한국창작추리소설이 마침내 100년의 역사를 채운 것이다. 한국에서 추리소설이 다른 장르문학들과 달리 이렇다 할 대표작을 만들어내지 못했으면서도 주류문학으로부터 멸시당하지 않고 100년의 세월을 이어올 수 있었던 비결은 오직 그 자신의 장르적 특성, 즉 논리의 아름다움과 지적 카타르시스 그리고 대중성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 경이로운 문학사적 사건은 어쩐지 불편하다. 그것은 우리 추리소설이 내세울만한 대표작을 아직 생산해내지 못했다는 아쉬움과 토종추리소설의 기원에 대한 이견들을 말끔하게 정리하지 못한 찜찜함 때문이다. 그것은 추리소설에 대한 우호적 태도들이 내발적인 것이 아니라 국외의 걸작들 덕택이라는 점에서, 또 추리소설의 기원 문제가 한국문학의 특수성 내지 근대문학 기점문제와도 무관치 않은 매우 복잡한 사안이라는 사실에서 기인한다.

이해조(李海朝, 1869∼1927)의 『쌍옥적(雙玉笛)』(1908∼1909)과 김내성(金來成, 1909∼1957)의 「타원형의 거울」(1935)이 언제나 중요한 쟁점으로 부상할 수밖에 없는 사정은 예서 연유한다. <제국신문>에 1908년 12월 4일부터 1909년 2월 12일까지 총 49회에 걸쳐 연재했고 1911년 보급서관에서 단행본으로 출판한 이해조의 『쌍옥적』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한국창작추리소설의 출발점으로 인정되고 있다는 점에서, 1935년 3월 일본의 탐정소설 전문지 〈프로필〉에 당선된 김내성의 「타원형의 거울」은 가독성(可讀性)을 기준으로 볼 때 진정한 의미에서 한국 최초의 본격추리소설이라 할 수 있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쌍옥적』은 ‘뎡탐소설(偵探小說)’이란 분명한 장르의식을 가지고 씌어진 ‘근대적인’ 소설이면서도 근대계몽기의 다른 신소설들처럼 우연의 남발과 권선징악이라는 전근대적 로망스의 흔적이 뚜렷하다.

그런가 하면 「타원형의 거울」은 장르규범이나 완성도 면에서 대단히 뛰어나지만 일어창작이라는 결함―「살인예술가」란 제목으로 개작하여 잡지 <조광(朝光)>(1938)에 수록한 바 있다(한국어)―이 한국현대추리소설의 아버지로 삼기에는 너무나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몇몇 연구자들은 『쌍옥적』과 「타원형의 거울」 사이에 낀 작품들, 예컨대 박병호의 『혈가사(血袈裟)』(1926)를 비롯하여 방정환이 북극성이란 이름으로 발표한 『동생을 찾으러』(<어린이>, 1925)와 『칠칠단의 비밀』(<어린이>, 1926), 채만식이 서동산이란 필명으로 〈조선일보>(1934. 5. 16∼11. 5) 에 연재한 『염마(艶魔)』, 역시 김동인이 <매일신보> (1934. 7. 10∼12. 19)에 연재한 『수평선 너머로』 등에 주목했지만, 이들 모두 완성도가 떨어져 신통한 결과를 기대하기가 어렵다.

우리가 이해조의 『쌍옥적』에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세 가지 이유에서다. 첫째, 『쌍옥적』이 지닌 획기성 때문이다. 이 작품에서는 송사소설(訟事小說) 송사사건을 소재로 한 고대소설 같은 전근대적 로망스들과는 달리 사건의 해결이 초자연적인 방식이 아니라 자연적(이성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지며, 사건 해결의 주체가 근대적 경찰의 맹아라 할 순검(巡檢)들에 의해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둘째, 추리소설의 기원 문제에 있어서는 작품과 함께 독자들의 수용양상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안회남(安懷南, 1910∼?)이 문학소년 시절 부친 안국선(安國善, 1878∼1926)의 서재에 있는 탐정소설을 읽다가 소설가의 길을 걷게 되었다는 회고<조선일보>(1937. 7. 13) 등에 비추어 이해조가 ‘정탐소설’을 쓸 1908년 당시 이미 많은 작가들 사이에 추리소설이 널리 퍼져 있었고, 실제로 『지환당(指環黨)』(1908) 같은 국적불명의 번안소설이 출판되고 있었다는 점이다. 또 19세기에서 20세기 초엽은 100여권 이상 서양 탐정소설을 번역한 일본추리문학의 개척자 쿠로이와 루이코오(黑岩淚香, 1862∼1920)의 시대였으며, 그의 작품이 국내 작가들에게 어떤 형식으로든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는 점도 함께 고려해야 할 것이다. 셋째, 시대적 한계와 작가의 한계로 인해 높은 완성도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쌍옥적』은 ‘정탐소설’이란 근대적인 장르의식을 분명히했다.

한국추리소설이 아마추어리즘 내지 ‘정탐소설’의 단계에서 벗어나 탐정소설 시대로 확실하게 이행한 것은 역시 김내성에 의해서인데, 이를 전후하여 김동성, 이하윤, 양주동, 김유정, 김광섭, 안회남, 방인근 등 근대작가들이 서양의 유명 작품 번역에 가세했을 정도로 추리소설은 한국문단과 출판계의 핵심 콘텐츠로 자리를 굳히게 된다.

문제는 해방 이후의 한국추리문학사이다. 좌우대립, 분단, 전쟁 등 역사적 격변 속에서 창작추리소설은 한동안 적막강산이었던 것이다. 1960년대 접어들어 허문녕, 백일완, 방인근 등에 의해 겨우겨우 그 명맥을 유지하더니, 『최후의 증인』(1974)이 나오면서 김성종(金聖鍾) 시대가 열린다. 한국추리소설은 그러나, 서양의 고전으로 인해 작품을 보는 심미안이 높아질 대로 높아진 주류문단을 설득하지 못한 채 ‘한국추리소설에는 정작 추리는 없고 연애와 치정만 있다’는 싸늘한 무관심과 대면한다. 김성종은 농도 짙은 사회성에 연애와 범죄를 혼합하는 작품들을 즐겨 쓰고 발표하였는데, 불모의 한국추리문학 풍토에서 그의 등장은 김내성의 출현만큼 경이로운 것이었다. 따라서 김성종의 성과와 한계는 고스란히 한국추리소설의 성과와 한계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한편, 최근 10여 년을 전후로 해서 발표된 주요 작품으로는 이인화의 『영원한 제국』(1993), 『하비로』(2004), 김탁환의 『방각본 살인사건』(2003), 『열녀문의 비밀』(2005), 『열하광인』(2007) 그리고 유광수의 『진시황 프로젝트』(2008) 등을 꼽을 수 있다. 이와 같이 현재 한국창작추리소설은 주로 팩션(faction)과 역사추리소설의 중간 지점에 놓인 절충형 장르가 선전하며 대세를 이루고 있다.

일찍이 방인근(方仁根, 1899∼1975)은 「탐정소설론」(1958)에서 작가의 역량과 문화적 여건상 “우리나라는 탐정소설을 쓰기에 가장 어려운 조건에” 놓여있다고 토로한 적이 있다. 말하자면 서양의 유명 작품들과 경쟁해야 하는 데다 언제나 리얼리티의 문제가 장애가 되며, 다양하고 복잡하게 분화한 현대추리소설 장르 속에서 새로운 형식과 스토리를 창안해내야 하는 삼중고에 처해 있다는 것이다. 요즘 역사추리가 한국형 추리소설의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는 것은 리얼리티의 간섭 같은 어려운 창작 여건들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역사추리소설의 번성을 무조건 반길 수만 없다.

만델(Ernest Mandel, 1923∼1995)이 『즐거운 살인―범죄소설의 사회사』(1984)를 통해 논증했듯 본래 추리소설은 사회질서를 위협하는 범죄(자)와 이를 지켜내려는 질서의 수호자 탐정 사이의 끝없는 지적, 물리적 대결을 다룸으로써 부르주아 사회의 일반구조와 병리현상을 반영하는 사회학적 텍스트가 될 수밖에 없었던 장르이다. 개인의 범죄를 다룬 고전파 추리소설, 폭력조직의 범죄를 그려낸 하드보일드, 국가 간의 범죄와 냉전시대의 소산이었던 스파이소설 등 추리소설 장르의 분화와 변천은 유명하다. 갈수록 고도화하는 범죄와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변천을 담아내고 있는 추리소설의 상상력과 사회성은 부르주아 사회가 범죄사회임을 보여주는 증거들이라 할 것이다. 바로 이 점에서 리얼리티의 강박으로부터 이탈하여 과거로 퇴행한 역사추리물들을 새로운 가능성이라면서 마냥 반길 수만은 없다. 따라서 새로운 100년을 향해 나아갈 한국추리소설의 향후 과제는 높은 완성도를 가진 작품을 생산해야할 심미적 소명과 함께 현실과 대결하는 사회학적 상상력, 즉 추리소설의 본령을 복원하는 데서 다시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趙城勉 1965년생. 문학평론가, 인하대 강의전담교수. 최근 글로 「폭주하는 서사」, 저서로 『대중문학과 정전에 대한 반역』 등. csm1965@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