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는 시대를 반영한다고?

누난 너무 예뻐서 남자들이 가만 안 둬, …그녀에게 사랑은 한순간의 느낌일 뿐, 아마 그녀는 어린 내가 부담스러운가봐, …누가 뭐래도 누난 너무 예뻐 그녀를 보는 나는 미쳐

― 샤이니, <누난 너무 이뻐>(2008)

누님들에 대한 헌사를 시작한 건 이승기였다. “누난 내 여자니까” <누난 내 여자니까>(2004)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던 이승기는 허당이라는 의미를 아이들이 순수하다는 의미로 착각하게 만들 만큼 지고지순한 사랑을 주장했다. 사랑하려고 해서 그런 건 아니었지만 누님이라는 걸로 더는 망설이지 않겠다는 정도? 그러던 것이 이제 시간이 흘러 샤이니의 <누난 너무 이뻐>에 오면 미소년 다섯 명이 아주 노골적으로 추파를 던지기 시작한다. 시대의 요구를 그 누구보다도 감각적으로 실천하는 기획사 SM이 결코 누님들의 아이돌(idol) 사랑을 간과할 리가 없다. “누나가 너무 이뻐서 미치고, 그래서 당신의 진실한 사랑을 갈구하다 지친 나에게 누난 MVP”라는데 어느 누님이 지갑을 열지 않겠는가. 아니 노래만이 아니다. 아이돌 그룹의 멤버들은 쇼 프로그램에서도 누님 대접에 소홀하지 않다. <우리 결혼 했어요> MBC 방영 중에서 SS501 김현중의 상대는 한참 연상인 황보고, <패밀리가 떴다>SBS 방영 중에서 서른 줄을 넘긴 이효리는 이모라며 대놓고 아이돌 빅뱅 멤버에게 들이댄다.

연하남을 좋아하는 연상녀 정도가 아니라, 아이돌로 지칭되는 꽃돌이들에 대한 누님들의 사랑은 구체적인 문화적 아이콘으로 등장했다. 사회적으로는 두툼한 지갑을 가진 이들을 ‘골드 미스’라 부르던가. 실질적으로 골드하건, 아니면 골드는 아니지만 골드를 지향하건, 이제 이 계층은 문화적 소비의 한 축으로 등장했다. 자신의 지갑을 가진 이들은 적극적이다. 아이돌을 흠모하고 좋아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적극적으로 그들을 키우려고 나선다. 게다가 국내 꽃돌이들을 섭렵하신 누님들은 세계로 눈을 돌려 중화권 배우 겸 가수 천 관시(陳冠希), 옌 청쉬(言承旭)를 흠모하고, 일본의 마츠모토 준(松本潤)이 소속되어 있는 꽃돌이 그룹 아라시(Arashi)의 공연을 보기 위해 휴가를 쓴다.

아이돌 그룹 샤이니  

왜 아이돌인가?

“비전 때문이지. 난 아침마다 거울을 보면서 스스로에게 물어. 왜 일하느냐고. 내게는 반드시 도달해야 할 지점이 있어. 도무지 포기가 안 돼. 그리고 그곳으로 달려가기 위해 내가 포기한 것들을 떠올리곤 하는데, 그럼 더 악착같이 일하게 돼.”

-박민희, 『여자, 남자의 야망을 질투하라』(리더스북, 2008)

온라인 백과사전 위키디피아(wikipedia)에서 아이돌을 찾아보면, 원래 연예계의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면서 청소년들에게 인기가 있는 연예인을 통칭해 부르는 의미였으나, 우리나라에서는 1990년대 이후 가수로부터 시작해 다양한 분야로 활동 영역을 넓혀가는 일군의 연예인을 지칭하는 말로 쓰인다고 한다.

아이돌은 이제 막 피기 시작한 꽃이다. 새싹도 아니고, 만개한 것도 아닌, 이제 막 피기 시작한. 누님들은 그 활짝 핀 꽃을 보며 환호한다. 그리고 그 지점은 바로 누님들이 이 사회에서 서고 싶은 지점이다. 시집갈 때도 놓친 노처녀들 아니냐고? 오우, 노(no)! 놓친 것이 아니라 당당히 차버린 것이다. 아직까지 대한민국 사회에서 결혼한 여성에게 주어지는 짐이란 뻔하다. 자유롭다 해도 가사와 육아, 거기에 얼기설기한 시댁과의 관계까지 그걸 감수하고라도 사랑이란 늪에 빠져 결혼을 선택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설령 결혼을 했다 하더라도 그들의 정신은 여전히 자유롭고 싶은 것이다.

그 정신을 배양시킨 건 그녀들의 어머니이다. 결혼만이 삶의 유일한 혹은 불가피한 목표였던 자신의 삶을 후회하면서 자신의 자식은 절대 그렇게 살도록 하지 않겠다고 맹세한 어머니들은 가사 대신 공부를 강요했고, 결혼 대신 사회적 성취를 선택하도록 했다. 그것을 위해 물심양면의 끝없는 희생을 마다하지 않고.

따라서 결혼 적령기에 이른 누님들에게는 결혼보다는 사회적 성취가 우선인 것이 당연하고, 그런 자신의 발전 지향적 삶은 연예계의 꽃돌이들, 즉 아이돌의 화사한 이미지에 투영된다. 굳이 주변의 마더 콤플렉스(mother complex)를 벗어나지 못한, 아니면 남성 이데올로기의 냄새를 푹푹 풍기는 남성들에게 빠질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일찍이 어린 시절에 독립하여 무모한 듯 보이는 자신의 꿈을 향해 날개를 핀 이카로스(Icarus)1를 닮은 그들에게서 누님들은 또 다른 자신을 발견하고, 그들의 날개가 자신들의 사랑으로 지탱되기를 간절하게 소망한다. 자신이 이 사회에서 성공이라는 꽃을 쟁취하고픈 것처럼.

모성의 돌파구?

현대 사회에서 여성다움은 부담스럽게 여겨진다. …결혼은 해로운 것으로 여겨졌으며 가족 중심 문화가 내팽개쳐 졌다.

― 마이클 길버트, 『일회용 남자』(일리, 2008)

진화론적 관점에서 본 남녀 관계는 대를 이을 자손을 생성하기 위한 본능적 갈구이다. 그런데 현대에 와서 여성들의 사회활동은 의식적이든, 그렇지 않든 정상적 생식 활동에 장애를 가져왔다(특히 살기 힘들다 소문난 대한민국에서 잠시 반짝하고 마는 출산율을 보라). 하지만 여전히 매달 반복되는 생리현상처럼 그들의 몸속에서 어머니로서의 본능은 꿈틀거린다. 때론 사회적 안정을 얻은 용감한 여성들은 맘에 드는 정자를 선택해 아이를 갖기도 하지만, 치열한 생존 경쟁 속에 한 치 앞을 보장받을 수 없는 여성들에게 그런 꿈은 요원하다. 아니 양육이 두려워 결혼을 해도 아이 갖기를 저어하는 사회에서 그런 결단이란 또 하나의 판타지일지도 모른다.

그럴 때 자라나는 꽃돌이들은 때론 모성의 도피처 아니 발산처가 되기도 한다. 소녀 팬들처럼 적극적으로 댓글을 달고, 시디를 사주는 것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이제 기획사 못지않은 능력을 팬질좋아하는 연예인을 위한 지출에 거리낌이 없는 행위로 승화시킨다.

여장을 하고 나온 영화로 뜬 젊은 배우는 누님 팬들로부터 레포트 용지로 된 평가서를 수북히 받는 소문이 돌고, 그의 엄한 사진이 돌아다니면 경찰 못지않은 기동력으로 각 사이트를 돌아다니며 엄단을 해 다른 팬들의 고개를 절레절레하게 만든다고 한다. 심지어 부실한 기획력을 내보이는 기획사에 입김을 넣고자 그 기획사 주식 사모으기 운동을 할 정도니 부모님의 용돈이나 받아쓰는 소녀 팬들의 열정만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시도가 아닌가.

이제 누구누구의 팬이라는 것이 좋아한다는 마음을 가지거나 그걸 표현하는 정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그의 행보를 기획하고, 밀어주는 단계까지 이르렀다. 그 결과 얻어지는 성과물들에 대해 마치 자신의 일인 양 기뻐하고, 그러면서 좀 더 열심히 활동할 것을 스스로에게 다짐하는 것으로, 자신의 모성성을 풀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팬덤(fandom) 특정한 인물이나 분야를 열성적으로 좋아하는 사람들 또는 그러한 문화현상이라 손가락질을 받고, 야유를 받는 것은 이미 극복했다. 왜? 이미 그 꽃돌이들은 남과 같지 않은 관계이니까.

또한 대한민국에서 모성의 완성이 자식의 입신양명인 것처럼 그들은 자신의 꽃돌이들을 채근하기 시작한다. 마치 올림픽 메달을 따기 위해 피땀을 흘리듯 내 꽃돌이가 남보다 더 빠르게, 그리고 능숙하게 연예계의 우위를 점하도록 독려하고 심지어 쓴 소리도 마다치 않는다. 다 너 잘 되라고 하는 말이야 하면서. 이거 많이 듣던 익숙한 표현 아닌가.

유리 지붕을 깨고 하늘 높이 날아라

저도 끝내 버텼기 때문에 나중에 주필도 되고 사장도 될 수 있었지요. 지금은 전반적으로 일하는 여자들의 상황이 많이 좋아졌지만 아직도 유리지붕이 완강하죠. 여자들이 유리지붕을 깨고 올라가려면 실력과 함께 역경을 이겨낼 수 있는 인내심을 키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장명수, <한국일보>(2008. 6. 9) 인터뷰

이제는 각종 국가고시에서 여성이 1등을 하거나 상위권을 차지하는 것이 낯설지 않은 세상이다. 남녀 공학인 학교만 봐도 상위 그룹은 여자인 경우가 많다. 심지어 여성이랑 경쟁이 안된다 하여 남고로 전학을 가고, 교사임용고시에서 남성의 역차별이 운운되는 세상이니 새삼 남녀평등을 논할 계제가 안된다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고 그 안에서 경쟁하는 여성들은 말한다. 다 주어진 것 같지만, 결국은 보이지 않는 한계가 그들을 내리누르고 있다고 항변한다. 이른바 보이지 않는 ‘유리지붕’이 여전히 ‘이 세상 절반인’ 여성의 지위를 위협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아이돌의 운명도 마찬가지다. 지금은 꽃 같은 모습으로 텔레비전을 장악하고 있지만, 과연 그런 아이돌 출신의 연예인들 중 그 성공을 이어가는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브라운관에 비춰지기 전에 완벽을 기하기 위해 어린 나이에 서슴없이 얼굴에 칼을 대고, 자신의 영혼이나 의식 따위는 상관없이 카메라를 향해 자신만만한 웃음을 지어보이는 이들의 미래는 생각보다 밝지 않다. 세상은 잔인하게도 시들어가는 꽃에게 인정을 베풀지 않는다. 끊임없이 자기 복제를 하든지, 변신을 하면서 치열하게 노력하는 수밖에.

최고의 트렌드 세터(trend setter) 유행을 만들고 이끄는 사람로 등장한 20대 초반의 장근석은 말한다.

“트렌드가 바뀌고 있잖아요. 다 잘해야 해요, 요즘엔. 연기도, 스타일도, 노래도, 예능도, 춤도 다 잘해야 해요. 우리 또래는 만능이 되어야 해요. 완벽한 성적으로 대학을 졸업해도 취업이 어려워요. 얼마나 치열하게 사는데요. 배우 장근석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전 작품에서도 심지어 예능 프로그램에 나가서도 치열하게 해요. 전투에요, 이건.” 〈동아일보>(2008. 8. 8) 기사

비록 그의 나이 이십대 초반에 불과하지만 생존경쟁이 치열한 밀림을 실감케 하는 이런 말 속에 담긴 감정은 보이지 않는 유리 지붕을 뚫고 나가고자 발버둥치는 누나들의 마음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성공을 위해 결혼도, 가정도 포기한 누님들에게 꽃돌이의 솔직한 자기 고백이 동병상련의 처절한 감동으로 다가오지 않겠는가?

때론 잔인할 정도로 쿨하게

짝사랑만의 도저한 쾌감에 중독되다 보니 처음부터 끝까지 짝사랑만 가능한 대상을 물색하여 거기에 전념하게 되었다. 아이돌 댄스그룹 멤버에게 몰두하거나 내 평생 영원히 만나게 될 것 같지 않은 타이완 남자배우를 남몰래 흠모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서른이 되어 있었다.

― 김영하, 『여행자 도쿄』(아트북스, 2008)

선택한 꽃돌이의 금의환향이 시원치 않을 수도 있다. 그럴 때는 그가 성공의 길에서 멀어지지 않도록 자신이 밟아온 이른바 이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성공 모듈에 맞춰 닦달한다(그 모습이 강남 엄마 저리 가랄 정도로). ‘네가 아직 세상을 몰라! 넌 어리숙해! 세상은 잔인한 거야! 좀 더 치열하게 노력하고 발전해야 하는 거야’라며. 하지만 싹수가 안 보인다 싶으면 냉정하게 더 활짝 필 가능성이 있는 놈한테로 갈아타기도 한다. ‘알고 보니 넌 내 취향이 아냐.’라며. 살던 부부도 갈라서기를 밥 먹듯 하는 세상에(이혼율도 세계 최고를 자랑하고픈 나라인데) 좋아하던 꽃돌이 하나 차버리는 게 무슨 도덕적 흠이 되겠는가 말이다. 서슴없이 사랑의 부족한 점, 혹은 자신이 잘못 짚었던 점을 꽃돌이에게 옴팍 뒤집어씌우고, 나비처럼 좀 더 자신에게 걸맞은 꽃으로 날아가는 것이다. 자신이 성공을 향해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 날마다 새롭게 자신을 갈고 닦음하는 것처럼 사랑도 늘 새로운 가능성을 향해 나아갈 뿐인 것이다. 그 녀석으로 도배된 블로그 간판? 가볍게 리뉴얼하고. 헌신적으로 함께 했던 카페? 탈퇴 버튼 하나로 해결된다니까. 허전하지 않느냐고? 세상은 넓고, 꽃돌이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누님들의 사랑을 바라며 곳곳에서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니깐!

현대 사회의 삶의 기준 중 하나가 바로 쿨함이다. 삶의 현장에서 치고받는 전투도 힘들고 고달픈데, 이데아(idea)의 세계에서까지 꽃돌이의 구질구질함을 자기 것으로 껴안고 살고 싶지 않은 거다. 아니, 좀 더 솔직히 자신이 혹시나 그의 좌절과 고통으로 인해 상처받고 고달파질까 두려워 일찍이 도망가 버리는 것이다. 적당히 즐기고, 적당히 소비하는 것, 그건 꽃돌이라는 대상도 예외가 될 수 없다.

누님들의 사랑을 누가 뭐라고 할 수 있겠는가? 불황의 연예계에서 안정적 기반을 제공하는 누님들을 마다할 리 있겠는가? 오히려 적극적으로 그것을 이용하고, 재창조하기에 열을 낼 뿐이지. 또 그런 누님들의 사랑을 누가 탓할 수 있겠는가? 성공과 생존이 가장 우선시 되는 사회에서 살아나기도 급급한 세상에서 그나마 오히려 긍정적 에너지의 발산이 아닐까? “사랑은 움직이는 거야”라고 사랑의 유동성을 간파한 지도 아주 오랜 시간이 흘렀거늘, 누님들의 변덕스런 사랑을 누가 탓할 수 있겠는가. 오히려 누님들의 질타어린 지적도 사랑의 매라 감수하며 그들이 서늘한 변덕을 피지 않도록 연예계의 정상을 향해 오늘도 열심히 달려갈 수밖에.

주)

1      백랍(白蠟)으로 만든 날개를 달고 미궁을 탈출하다가 태양에 너무 접근하는 바람에 날개가 녹아 바다에 떨어져 죽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인물.

李定禧 1964년 경기도 수원생. 프리랜서. 최근 글로 「삶을 바라보는 서늘한 눈길에 동화되다」, 「당신을 사랑하는 까닭은」 등. 5252-jh@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