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10월은 ‘문화의 달’이다. 문화예술진흥법 시행령 3장 10조는 이와 함께 같은 달 셋째 주 토요일을 ‘문화의 날’로 지정하고 그 행사에 관한 사항을 대통령령으로 정하고 있다. 1972년 이래 시상식을 중심으로 진행하던 <문화의 달> 행사는 2003년부터 지역순회를 시작해 대구, 광주, 전주, 제주, 부산을 거쳐 올해는 청주에서 개최되었다. 청주는 교육도시로 유명하고 2001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금속활자본 『직지(直指)』(1377)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白雲和尙抄錄佛祖直指心體要節)』의 약칭의 고장이기도 하지만 이번 <문화의 달> 행사로 세간의 이목을 더욱 집중시키고 있다.

10월 17일, 인천에서 2시간 30분 남짓 내달아 도착한 청주예술의전당. 도자기 액세서리를 만드는 사람들, 부모와 함께 전통 탈을 만들고 다례(茶禮)체험을 하는 아이들이 이미 광장 곳곳을 차지하고 있었다. 주변의 문화체험 부스들은 참여자의 눈과 발을 묶어둘 수 있을 만큼 다양했다. 둘째날엔 <충북근현대작고예술인특별展>을 관람했다. 소설가 홍명희(洪命熹, 1888 ~1968), 시인 정지용(鄭芝溶, 1902~?), 화가 윤형근(尹亨根, 1928~2007) 등 충북지역 작고예술인의 생애와 작품세계를 조명한 이 특별전은 도민들의 긍지와 자부심을 불러일으키기에 부족하지 않았다. 전시장을 나와 주변을 한 바퀴 둘러보고 나니 예술의전당 입구 계단에 레드카펫이 깔려있고 사람들이 웅성거리고 있었다. 행사는 문화체육관광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공동주최의 문화훈장과 예술상 시상식이었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지방자치단체 최초로 제정한 ‘충청북도문화헌장’ 선포였다. 이는 창조적 참여, 문화민주주의, 표현의 자유, 문화다양성 및 문화예술진흥과 충북문화계승 등 11개 조항을 통해 충청북도민이 문화주체로서 권리와 의무를 다하고 성숙한 문화사회로의 발전을 고취하고자 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언론의 주목 외에도 타지방자치단체의 문의가 끊이지 않았다니 의미 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셋째날의 대미는 ‘청주줄다리기’가 장식했다. 일제 때 명맥이 끊긴 청주줄다리기를 수십 년 만에 재현했다고 한다. 차기 <문화의 달> 행사 개최지인 인천을 소개하는 영상물 상영과 <충북문화예술동아리축제> 한마당으로 2박 3일간의 일정이 모두 끝났다.

<청주문화의 달>의 주제는 ‘소통-문화의 길 열다’였다. 그래서일까. 서영은, 이은미 등 유명 대중가수들이 출연한 첫째날 전야행사 때부터 한 단어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것은 바로 ‘소통’이었다. 시끌벅적한 공연무대와 달리 청중석은 팔짱을 낀 관객들로 썰렁했던 것이다. 우리는 ‘소통’이 범람하는 시대를 살고 있지만 과연 올 <문화의 달> 행사가 그것을 충분히 배려했는지는 생각해볼 일이다. 소통의 핵심은 참여다. 기념식장의 관람석이 부족해 시민들의 입장을 제지하면서도 한류스타를 보러온 일본관광객을 위해 억지로 문을 열어주는 상황은 어떻게 보아야 할까. 이 행사의 참여주체는 <문화의 달>추진위원회도 아니고 한류스타들도 아니며, 이들을 보기위해 건너온 외국인들도 아니다. 그것은 누구보다도 청주시민이어야 한다. 한류 팬들을 배려하느라 청주시민들을 소외시다면 문화헌장의 취지와도 모순이 아닐까. 시상식장 곳곳의 연예인들과 화려한 기념식에 위축되어 마치 몸에 맞지 않는 옷을 걸친 듯 어색했던 것이 단지 필자의 착각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대중음악 공연에 무심했던 이들이 ‘청주줄다리기’와 <충북근현대작고예술인특별展>, <2008아트페스티벌 청주>, <광장문화제> 등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지 않은가.

<문화의 달>이 2003년부터 지역순회를 시작한 배경에는 지역문화 활성화라는 목적이 놓여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3일 동안 청주에서 만난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연예인들과, 청주의 자랑인 「직지」였다. 어디를 가나 연예인들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여기저기 만나서 건네받는 명함에도 숙소 벽에도 온통 「직지」뿐이다. 오히려 〈충북근현대작고예술인특별展>을 특화했으면 어땠을까? 내년 <문화의 달>행사 개최지는 인천이다. 뿐만 아니라 ‘2009인천세계도시축전’과 ‘2009인천방문의 해’ 행사를 함께 준비 중이다. 아무래도 2009년은 시끌벅적한 한 해가 될 것 같다. 하지만 꼭 기억해야 할 것은 인천이 문화소통의 장으로 되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3일간의 ‘열렬한’ 소통이 아니라 ‘문화의 달’을 앞뒤로 한 ‘일상적’ 소통이어야 할 것이다. 청주가 올 해 재현했던 ‘청주줄다리기’를 지속행사로 만들 계획이라고 한다. 단발성 행사에 그치곤 했던 그간의 지역 <문화의 달>행사를 생각할 때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인천은 이제 무엇을 준비할 것인가?

李洙旼 1980년 서울생. 인천문화재단 문화사업팀. 논문으로 「신라 화랑도의 교육체계 연구」 등. soomin@ifac.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