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 1564~1616)의 대표적인 비극 4편이라면 두말할 나위 없이 『햄릿Hamlet』(1601), 『리어왕King Lear』(1608), 『오셀로Othello』(1604), 그리고 『맥베스Macbeth』(1605~1606)이다. 『맥베스』가 왜 비극인가? 연출 이종훈의 표현대로 <맥베스>가 자기 분수에 넘치는 야심은 인간 파멸의 원인이 된다는 평범한 진리를 확인하게 하는 작품이라면, “악당 ‘맥베스’는 죽었다! 국왕폐하 만세! 사회정의 만세! 해피엔딩 만세!”다. 도대체 뭐가 비극이란 말인가? 맥베스가 살해한 덩컨왕과 뱅코우, 맥더프의 처자식의 비극이란 말인가? 그렇다면 제목이 ‘덩컨왕과 뱅코우, 맥더프 처자식’이어야 하는 것 아닌가.

연극<막베스>의 한장면

왕과 제후, 장수와 재상의 씨가 어찌 따로 있을까?王侯將相寧有種乎 태생으로 귀천(貴賤)이 결정되고 왕이 될 수 있는 고귀한 혈통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맥베스는 조숙하게도 바로 그 신분과 태생의 벽을 넘어서고자 했고, 오늘날 우리가 자신의 갈망과 목표에서 좌절하듯 고통스럽게 파멸하였다. 그러나 당장 불가능해 보이는 욕망이라 하여도 이를 성취하고자 하는 도전이 없었다면 어떻게 오늘날의 민주주의가 가능했을까? 분수를 넘어서고자 하는 자기 존엄을 위한 고통스러운 결단의 역사가 없었다면 지금도 여전히 신분과 태생에 따라 인생이 결정되는 사회였을 것이다. <맥베스>는 바로 이 같은 위대한 인간 발견의 한 지점을 보여준다. 고귀한 영웅과 왕족의 생득적 존엄성과 운명의 한 판 대결에서 고전비극이 만들어진다면, 셰익스피어는 비천한 신분에도 불구하고 이를 넘어서고자 하는 근대인의 욕망을 일찌감치 포착해냈다. 그리고 그 같은 인물은 여전히 우리 안에서 현재진행 중이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이 고전이고 명작인 이유다. 

그러나 인천시립극단의 제50회 정기공연 <맥베스>는 이러한 문제 지점을 발견하고 이와 대결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무대의 첫인상은 좋았다. 무대를 전체적으로 사선으로 구획하여 인물들의 불안한 내면과 행동을 암시하고 관객을 불안하게 만든 시도는 매우 참신하였다. 그러나 여기에 어울리지 않는 고색창연하기 짝이 없는 의상과 작위적인 발성은 결국 무대와 연기, 의상 등이 종합적으로 고려되지 못했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을 뿐이다. 연출의도가 정통 셰익스피어의 형상화에 있었다고 한다면 오히려 무대가 적절치 못했다고 할 수 있다.

  연극<막베스>의 한장면

특별 발성훈련을 받았다는 전언에도 불구하고 배우들의 호흡은 시적인 긴 대사를 소화하기에는 무리였다. 사실 번역극의 대사를 자연스러운 우리말처럼 구사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엘리자베스 시대16세기의 연극은 본질적으로 시극(詩劇)이라 정의될 만큼 낭만적이고 길고 과장된 대사가 특징이다. 특히 동시대의 작가들이 직접 시를 삽입하는 방식을 자주 사용했던 데 비해 셰익스피어는 인물의 대사 자체를 시적으로 표현하는 데도 탁월하여, 오늘날의 시각으로 보면 과장된 수사와 낭만적인 격정이 풍부하게 드러난다. 즉 셰익스피어의 대사는 한 편의 장시를 낭송하여 전달하듯 긴 호흡과 신중한 발성으로 구사될 때 비로소 그 묘미와 품격이 살아나는 것이다. 2시간의 상연시간으로 이 같은 셰익스피어 대사의 특징을 살릴 수는 없었을 것이다. 또한 인간의 내면을 상징하며 불안한 예언으로 극의 기본적 갈등을 구성하는 마녀들도 개연성 없이 확대되어 어수선하였다.

연극<막베스>의 한장면    

결론을 내리자면, 유감스럽게도 이번 인천시립극단의 <맥베스>는 안이한 해석에 열정 없고 의례적인 연기와 과장된 의상, 참신했으나 적절하지 못한 무대 등 전체적으로 부조화 속에 표류한 태작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평소 셰익스피어 비극 중 가장 좋아했던 <맥베스>에, 연전에 아서 밀러(Arthur Asher Miller, 1915~2005)의 <시련The Crucible> 인천시립극단이 2006년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에서 상연한 바 있음에서 보여주었던 열정을 기대했던 필자로서는 어처구니가 없는 무대였다. 언론이나 세간의 의례적인 칭찬에 익숙해져 왔다면 이 같은 평가가 근거 없는 혹평이라고 생각되어 억울하고 화가 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 의례적인 칭찬들이 오히려 우리의 소중한 시립극단을 망치고 있다. 인천시립극단과 연출 이종훈은 초심을 점검해야 할 때인 듯하다.

이미지 제공_ 인천시립극단

尹振賢 1968년 경기 시흥생. 연극평론가. 최근 저서로 『풍경, 함세덕』, 『행복한 인천연극』 등. wb424@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