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는 김춘수의 시처럼, 다섯 살 소년 소스케가 물고기 브륀힐데에게 새로운 이름을 불러 주자 브륀힐데는 빨간머리 다섯 살 소녀 포뇨가 되어 소스케에게로 왔다. 떠내려 온 물고기에게 이름을 붙인 소년 그리고 그 소년을 사랑해 인간이 되고 싶어진 물고기의 깜찍하고 아름다운 사랑이야기가 바로 미야자키 하야오(宮崎駿)가 4년 만에 선보인 신작 <벼랑 위의 포뇨(崖の上のポニョ)>다. 물론 미야자키 하야오표 애니메이션이 그렇듯 결코 단순하지만은 않은 메시지를 품고.
애니메이션<벼랑위의포툐>포스터 /애니메이션<벼랑위의포툐>한장면
포뇨, 정확히 말하자면 브륀힐데의 가족은 여러 가지 면에서 인간과 대척점에 서 있다. 한때 인간이었지만 인간의 바다 파괴를 보다 못해 스스로 바다의 신이 되어 인간을 응징하고 깨끗한 바다로 되돌리고자 일을 도모하는 아버지 후지모토. 인간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나날이 파괴하고 있는, 무수한 생명을 품어 안은 바다 그 자체이자 바다의 여신인 어머니 그란 만마레. 호기심에 육지로 놀러갔다가 인간이 버린 쓰레기와 청소 그물 때문에 목숨을 잃을 만큼 큰 위험에 처하게 되는 브륀힐데. 이런 설정은 미야자키 하야오가 데뷔작인 <미래소년 코난(未來少年 コナン)>(1978)부터 줄기차게 일깨워 온 인간의 환경파괴에 대한 경각심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그리고 이 작품에는 인간의 선한 본성에 대한 무한한 신뢰와 애정도 담겨 있다. 사랑하는 딸이 물거품이 되어 사라질지도 모르지만 결국 인간의 선한 본성에 딸의 생명과 세계의 구원을 맡기는 후지모토와 그란 만마레의 선택은 인간에 대한 미야자키 하야오의 마음을 반영하고 있다. 그리고 “물고기인 포뇨도, 인어인 포뇨도, 사람인 포뇨도 좋아”라며 그 믿음을 배반하지 않는 소스케의 책임감과 선한 심성, 해일과 폭풍 때문에 마을 대부분이 물에 잠긴 상황에서도 타인에 대한 배려와 웃음을 잃지 않는 마을 사람들의 따뜻한 심성은 이야기를 해피엔딩으로 이끄는 동시에, 수없이 많은 잘못을 저지르고 있지만 결국 그 선한 심성 때문에 미래도 분명 해피엔딩일 것이라는 인간에 대한 미야자키 하야오의 따뜻한 시선과 동일시된다.
미야자키 하야오만의 스타일을 느낄 수 있는 것이 비단 주제만은 아니다. 코난처럼 내달리는 포뇨, 소피 <하울의 움직이는 성>(2004)의 주인공처럼 바람에 옷자락을 날리는 도키 할머니, 검댕이 먼지요정 마쿠로 쿠로스케나 고양이 버스 <이웃집 토토로>(1988)의 캐릭터를 떠올리게 하는 파도 등의 캐릭터, 화면과 절묘하게 어울리는 히사이시 조(久石讓)의 아름다운 음악, 그리고 17만 장의 셀화 애니메이션 작화방법 중 셀룰로이드에 그려서 배경에 얹는 그림를 일일이 손으로 그려 완성한 아날로그 그림의 온기 등은 <벼랑 위의 포뇨>가 미야자키 하야오 스타일의 집대성이라 해도 무방할 정도다.
반면 이러한 주제와 스타일의 집대성이 ‘진보하지 않는 미야자키 하야오’라는 평을 이끌어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개인적으로는 작품 전체에 일관되게 적용되는 인간중심적 철학과 어떤 상황에서도 강인한 어머니라는 사회화된 모성 혹은 그래야만 한다고 요구되는 여성성을 더욱 고착시키는 전형적 여성 캐릭터도 아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벼랑 위의 포뇨>는 사랑 받기에 충분한 장점을 지니고 있다. 바그너(Wilhelm Richard Wagner, 1813∼1883)의 오페라 <니벨룽의 반지Der Ring des Nibelungen〉(1848~1874) 속 지그프리트와 브륀힐데의 사랑이야기에 안데르센(Hans Christian Andersen, 1805∼1875) 의 『인어공주Den lille Havfrue』(1837) 이야기를 해피엔드로 엮어 내는 재치, 살아 움직이는 데본기(Devonian period) 고생대를 여섯으로 나눌 때, 네 번째 시기. 3억 9500만 년 전부터 3억 4500만 년 전까지의 바다생물과의 만남, 마음을 전하는 모스 부호 등 소소한 재미들이 가득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사랑, 약속, 신뢰, 책임과 같은, 진부하지만 사람이 지켜야 할 가치를 밝고 경쾌하게 이야기하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 아닌가 한다. 특히 소스케를 만나기 위해 시종일관 웃으며 파도 위를 뛰어가던 포뇨가 벼랑 근처에서 소스케를 발견하고 껴안는 장면은 정말 인상적이다. 그 순간이 자아내는 따뜻함과 순진무구함의 감수성은 미야자키 하야오가 빚어낸 여러 아름다운 장면 중에서도 단연 백미다.
비주얼 과잉의 시대, 비장함과 쿨함이 대세인 시대에 편승하듯 마구잡이로 쏟아져 나오는 시각적 쾌락 중심의 호전적이고 비관적이며 비인간적인 콘텐츠의 홍수 속을 살아내고 있는 우리들. 이런 우리들에게 진부하지만 교훈적인 주제를 애니메이션만이 표현할 수 있는 상상력에 녹여 꾸준히 뚝심 있게 발언하고 있는 미야자키 하야오가 있어 참 다행이라는 생각을 다시 한번 확인한 작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