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전시는 전체적으로 인간 정체성을 다룬 작업들로 구성되어 있다. <모던타임즈2008>이라는 전시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산업사회에서 인간은 소외되었다는 가치판단이 전제된 것이며, 나아가 이를 극복하는 방법으로 인간 정체성에 대한 사고를 현재에 재생하고자 한 것이다. 그러기에 이번 전시는 개별 작가들이 표현하고 있는 인간 정체성의 실체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들이 현대사회의 제문제와 어떻게 접맥하고 있는지의 관점에서 파악해야 한다. 이를 고려할 때, 이번 전시에서 주목할 만한 작가는 쟝 동량, 막스 뉴만, 와타나베 타미코이다.

장 동량의 <당신은 무엇을 찾으십니까 What Are You Looking for?>는 단색으로 채색된 분절된 캔버스에 인물을 형상화한다. 이들은 거대하지도 그리고 화려하지도 않다. 이러한 인물묘사는 그간 중국작가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보였던 인물묘사 방법과는 상이하다. 그간 중국작가들은 사회적 모순에 놓인 인간을 묘사하기 위해 인물을 과장된 혹은 초현실적인 상황에 놓인 형상으로 묘사했다. 그리고 이를 극대화하기 위해 화려한 색상으로 인물과 배경을 채색했다. 그러나 장 동량은 화면의 배경을 단색으로 처리해 주변 이야기 자체를 차단한다. 넓은 화면에서 일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인물은 마치 거대하고 급변하는 현대사회에서 무존재에 가까운 현대인을 표상한다. 또 배경을 단색으로 처리하여 거대한 사회 속의 미약한 존재인 작은 인물을 부각시키며, 그들의 소소한 행동변화에 주목한다. 장 동량의 작업에 등장하는 인물은 옷을 벗거나 턱을 괴고 사색에 잠기거나 주위를 둘러보면서 무엇인가를 찾고 있다.

             최나리<대화가 필요해>(2008)              와타나베 타미코<융화를 위한 보디수트>(2006)  

막스 뉴만은 이와는 반대로 개인의 모습을 삭제한다. <무제Untitled>의 화면은 한 사람의 얼굴(혹은 상반신)이 가득 메우고 있지만, 그들은 감정을 표출하지 않는다. 어두운 색으로 채색한 얼굴은 눈, 코, 입 등이 생략되면서 고통, 불안감, 두려움이 가득한 모습이다. 막스 뉴만이 제시하고 있는 익명화된 인간은 인간 존재의 본질적 문제를 거론하고 있다. 막스 뉴만이 추상화된 인물을 통해 인간의 본질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다면, 와타나베 타미코의 <융화를 위한 보디수트Bodysuit for Assimilation>는 인간의 ‘신체’라는 구체적 대상의 융화(사라짐)를 통해 인간 정체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그는 백여 개의 철판으로 제작한 옷을 입고 거리를 활보한다. 이 철판은 주변을 있는 그대로 흡수하여 반사하는 거울이다. 자신은 거리를 움직이고 있지만, 자신의 신체는 거리를 표현하고 있다. 즉,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시켜줄 수 있는 신체는 ‘융화를 위한 보디수트’를 통해 역으로 자신을 지우는 기제로 작동하는 것이다. 신체는 단지 자신이 서 있는 주변 풍경을 담아내고 있을 뿐 그곳에 자신은 없다. 이렇듯 와타나베 타미코는 자신을 지우면서 자신의 존재를 그리고 인간의 존재를 규정한다.

  추이슈원,<천사>(2006)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이번 전시가 인간 정체성에 대한 탐구의 다양한 지점을 보여준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아쉬운 점은 이번 전시가 수평적으로만 확대되었다는 점이다. 인간 정체성에 대한 주제는 끊임없이 있어 왔다. 그렇다면 이 시점에서 인간의 정체성을 논하는 이유는 당대 현실과 어떻게 접목하고 있는가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이미지 제공_ 한길갤러리

李大範 1974년 서울생. 미술평론가. 최근 쓴 글로 「’어느 좋은 날’에 숨겨진 ‘불안’」, 「발견하여 마주봄: 염중호展」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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