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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플랫폼』 8년의 회고
통권 : 50 / 년월 : 2015년 3,4월 / 조회수 : 2957
문화의 시선, 비평의 시각, 그리고 다시 시작

문화예술 비평잡지 플랫폼2007년 인천에서 탄생하였다. 문화, 아시아, 비평 세 축을 꿰어 문화의 힘을 가진 사회를 이루는 데 일조하겠다는 이상을 품었다. 그로부터 8년이 지났다. 무엇을 보고, 기록했는가. 플랫폼탄생의 배경을 바탕으로 지금까지의 발자취를 살펴본다.

 

자욱한 안개가 뒤덮인 바위산에 한 나그네가 서 있다. 그는 오른손에 지팡이를 짚고 하늘에 닿을 듯 높은 산꼭대기에 홀로 서 광활한 대자연을 마주하고 있다. 고독한 그의 뒷모습은 인간이 가진 내재적 고뇌, 본질적 외로움을 담고 있다. 카스파르 프리드리히가 그린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라는 그림이다. 익히 알려진 대로 이 작품은 어머니와 누이, 남동생을 모두 잃은 작가의 불우한 유년 시절이 담겨 있다. 하지만 올해로 여덟 살이 된 <플랫폼>을 생각하며 문득 이 그림을 호명한 필자는 분명 바위산에 뿌리내린 듯 흔들림 없이 선 인간의 모습을 먼저 상기했다.

안개로 뒤덮인 첩첩산중에 홀로 선 인간의 어깨를 외로움과 막막함이 감싸고 있지만, 한편 앞모습을 상상할 때에는 안개 너머 먼 곳을 내다보는 그의 비장한 표정과 새로운 세상과 맞서는 당당한 의지를 떠올리게 된다. 이 지점에서 자연에 대한 인간의 자세를 문화예술에 대한 우리의 시각으로 치환하고자 한다. 그러니까 자연을 대하는 인간의 경외는 문화예술을 대하는 우리의 비평과 등가의 가치를 지닌 것이다. 카스파르 프리드리히는 화가는 자기 앞에 있는 것뿐만 아니라 자기 내면에서 본 것도 그려야 한다. 내면에서 아무 것도 볼 수 없다면 앞에 있는 것도 그리지 말아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니 오늘 플랫폼은 앞으로 자기 앞에 있는 것을 그리기 위해 기꺼이 자기 내면의 발자취를 더듬어야 할 것이다.

 

플랫폼탄생, 문화비평의 지형 확장에 기여하다

2007년은 노무현 정권에서 이명박 정권으로 바뀐 해이다. 정치적으로 진보의 수레바퀴가 보수의 수레바퀴로 바뀌었고, 사회적으로 실험과 도전을 즐기던 사람들의 목소리는 전통을 옹호하고 기존 질서의 안녕을 추구하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하였다. 분주한 급변의 무드 속에는 읽어야 할 많은 행간이 도시를 삼키는 거대한 구멍인 싱크홀처럼 여기저기에서 출몰했다. 시대의 흐름과 사회의 변화 안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야 하는 비평지의 당위를 생각한다면, 또 시류를 이야기하되 그 안에서 나의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일이 반드시 지켜져야 할 비평적 가치라면 그러한 사회적 맥락 안에서 창간된 플랫폼은 분명 때맞춘 태동이었다.

플랫폼창간호부터 49호까지를 살펴보면 음악, 미술, 연극, 미디어 등 기본적인 장르 비평을 토대로 분기별 이슈를 다루었고, ‘특집 기사기획 논단’, ‘커버스토리를 통해 한 가지 주제에 보다 심층적으로 몰입했으며, ‘지방문화통신을 통해 하나의 중심이 아닌 다수의 주변에 관심과 이목을 이끌어 냈다. 독자의 글을 통해 소통의 창구를 열어두었고 문화비평상개최를 통해 젊은 연구자에게 새로운 비평의 길을 열어주었다.

한 발 더 들어가 플랫폼의 특집 주제를 살펴보면 첫째, 비평의 대상을 문학, 도서, 미술, 전시, 음악, 공연, 영화, 게임, 만화, 인터넷 등 다양한 장르와 매체로 삼았고 둘째, 문화의 영역을 지역 문화, 한일 문화, 한류, 국제관계, 올림픽, 노년문화, 예술복지, 사회적 기업 등으로 다층화했으며 셋째, 국내에만 머무르지 않고 아시아 여러 나라인 일본, 북한, 중국, 대만, 싱가포르, 러시아 등과 각국의 도시를 다룸으로써 비평의 영토를 확장해 나갔다. 그리고 서서히 플랫폼8년이라는 누적된 시간과 49호 발간이라는 축척된 경험의 산물로서 보다 선명하게 지향하는 바를 내세우게 되었다. 그것이 바로 지역(locality), 지방(region), 문화(culture)라는 표제어이자 실천적 명제이다.

창간호에서 김소영 교수(한국예술종합학교)지역 문화 연구의 동향과 전망이라는 칼럼을 통해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했다. “영화나 미디어를 통한 아시아 상호 간의 교류는 이제까지 지리적, 인식적 미지의 지역으로 남아 있던 아시아의 어떤 곳(elsewhere)을 구체적으로 스크린 위에 가져온다는 의미에서, 새로운 지정학적 서사와 이미지, 판타지로 아시아를 구성하게 하는 자원이었다. 일국을 넘어 아시아가 네트워킹되기 위해서는 트랜스적 사유가 필요하다고 본다. 그리고 국민국가라는 상상의 공동체를 넘어 설 수 있는 비판적, 지정학적 판타지가 필요하다. 할리우드로 대표되는 영화산업의 초국적 성격상 영화는 번번이 국경을 넘어간다. 비 할리우드의 저예산 독립영화들도 각종 영화제 등을 통해 국경을 이동한다. 영화의 이러한 월경은 한편으로는 초국적이며 다른 한편으로 지역적(local)이고 방언적(vernacular)인 이중성을 갖게 된다. 문화 실천의 영역에서 이러한 초국적 자본의 운동을 지양하는 트랜스적인 실천이 필요하다.” 그의 발언을 통해 다시 한 번 플랫폼이 행해야 할 트랜스적 실천에 주목하게 된다. 앞서 서술한 그간의 행보에서도 알 수 있듯 플랫폼은 문화, 아시아, 비평의 세 축을 기반으로 성장해왔다. 지역을 넘고 생각을 모아 문화예술에 관한 자유로운 이야기가 꽃피는 그 시발역()플랫폼인 것이며, 저마다의 생각과 생각이 교차하고 교류해 널리 퍼져나가는 환승역()이 바로 플랫폼인 것이다.

 

인천을 넘어, 문화의 다양성을 품다

플랫폼의 고향은 인천이다. 그럼에도 인천이라는 지역을 넘어 아시아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실천의 시작이길 바라는 마음은 곳곳에서 발견된다. 문학평론가 최원식 교수의 플랫폼 5주년 기념강연에서도 플랫폼이 아시아의 눈을 가진 비평지임을 밝히고 있다. “플랫폼의 키워드는 아시아입니다. 인천사람을 폐쇄적으로 정의해서 인천문화의 토박이적 성격을 강조하는 향토주의는 인천은 없다식의 오만함으로 인천을 대하는 서울주의 또는 중앙주의만큼이나 곤란한 시각입니다. 이 두 편향을 함께 넘어서기 위한 제3의 선택으로서 아시아를 키워드로 세운 것입니다. 인천에서 아시아를 보고, 아시아에서 인천을 보는 쌍방향성을 통해 남북의 축이요 아시아로 난 창이라는 인천의 특성을 발양한다는 주지인데, 구경은 인천을 아시아의 허브로 재창안함으로써 인천을 문화도시로 나아가고자 한 것입니다.”

실제 오천 년 역사를 지닌 인천은 고대국가 때부터 세계와 네트워킹을 했던 트랜스도시였다. 고대국가 최초로 중국과 해상교류를 했고, 근대에 와서는 자본주의 체제와 문물이 인천항을 통해 유입되었다. 백지운 연구원은 플랫폼7호에서 인천지역의 문화는 넓게는 세계, 좁게는 아시아 각국과의 관계 속에서 형성되었다고 말한다. “끊임없이 주변의 이질적인 것과 혼혈(混血)함으로써 도태 / 변형 / 모방 / 창조되는 것이 문화의 본성이다. 따라서 지방의 문화정체성은 고유의 혈통 속에서 정의될 수 없으며, 타문화, 타지역, 타영역들과의 관계 속에서 부단히 재규정됨으로써 새로 태어난다. 특히 개항도시로서 한반도의 근대를 연 창구였던 인천은 넓게는 세계, 좁게는 아시아 각국과의 관계 속에서 도시를 진화시켜 왔고, 바로 그 힘을 바탕으로 오늘날 동북아 문화 허브로서 도약을 기약할 수 있게 되었다.”

또 인천은 차이나타운으로 유명하다. 김윤식은 플랫폼12호에 인천화교 100년사 자료 특별전을 소개했고 견수찬은 플랫폼33호에 짜장면박물관을 소개하며, 인천화교 100여 년의 역사가 낳은 가장 유명한 산물인 공화춘 짜장면에 관해 이야기한 바 있다. 치열하게 영토 경쟁을 했던 제국주의 시절부터 이데올로기가 지배했던 근대국가를 지나 세계화가 진전되고 있는 오늘날까지 우리 사회 속에서 유랑하며 디아스포라가 되어야 했던 화교들의 삶이 인천에 스미어 있었다. 여기서 더하자면 플랫폼5호에는 하오 쥔펑이 소개한 인천과 왕희지 이야기가 있다. 산동성 린이시와 인천이 지리적으로 인접해 1,000년 전 신라시대 당나라 유학생들이 한국에 왕희지 서예를 소개했다고 한다. 이처럼 아시아 곳곳에는 인천과 교류한 생생한 문화교류 흔적이 남아있다.

플랫폼42호에서 이경림은 인천에 개관한 한국근대문학관소식을 전하며 문학 속에서 인천이 어떻게 그려졌는지 전하고 있다. “근대의 문인들이 가장 즐겨 그렸던 인천은 노동자들이 항구였다. 가진 것은 제 몸뚱이 하나뿐인 자들의 땀과 피와 눈물과 기름이 흘러 넘치고, 바다는 그처럼 역사의 격랑에 휩싸여 있는 도시를 바라보며 무심하게 넘실대었다. 한국 근대문학에서 인천은 오욕과 영광이 번갈아 드나드는 역사의 축도, 식민지가 내보이는 복잡다단한 얼굴들 각각의 어떤 결정적 순간을 포착한 한 장의 초상 사진과도 같은 도시로서 사랑받았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인천은 문화예술의 복합도시이다. 2009년 구도심 재생사업의 일환으로 중구 해안동의 개항기 근대 건축물을 매입해 복합문화예술 공간 인천아트플랫폼으로 만들었다. 이곳에서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와 연구자들이 창작과 연구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이보다 1년 앞선 2008년에는 송도에 디오아트센터를 개관해 다양한 예술 장르를 지원하고 있다. 미술평론가 이대범은 송도에 들어선 디오아트센터 개관을 두고 인천지역의 문화예술 활동에 활력을 불어넣을 것이라 기대했다. 플랫폼11호에 김미옥 역시 디오아트센터의 개관 소식을 전하며 글의 말미에 이렇게 썼다. “송도국제도시를 내려다보며 디오아트센터라는 세련되고 멋진 공간이 생겼다. 인천의 미래를 믿고 생겨난 곳이기에 송도(인천)는 그 공간에 일정 정도 책임이 있다 하겠다. 송도국제도시의 드높은 마천루가 인천의 국제성을 대변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인천이 세계와 대화할 수 있는 접점, 인천시민이 세계와 함께 문화와 예술을 나눌 수 있는 접점으로서 빛나길 바란다. 아무쪼록 디오아트센터 개관이 그 불씨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렇다. 해납백천(海納百川)이라는 말이 있다. 바다는 모든 강을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예로부터 인천은 산업화의 전진기지이자 수도권의 대규모 인구를 배후로 하고 있는 공업도시였다. 그만큼 근대도시 문명을 빠르게 받아들이면서 여러 문화권의 사람들이 모여들었던 해납백천의 열린 도시였다. 우여곡절 많은 질곡의 역사는 인천에 수많은 이야기를 뿌리내렸다. 이제는 이것을 다양성이라는 그릇에 담아 공존의 문화로 써내려가야 할 터, 그러한 토양 위에서 플랫폼이 탄생한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었다.

 

2007년 탄생해 지난 8년 동안 플랫폼은 인천이라는 지역에 두 발을 딛고 있으나, 그 두 눈만은 나라와 지역의 경계를 넘고, 문화예술의 장르와 매체 사이에 놓인 벽을 넘어서고 있었다. 우리 안에 잠재되어 있던 수많은 이상 징후를 들추어내고 우리 눈앞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문화현상을 면밀히 살폈다. 과오를 바로잡고, 부족한 부분을 채워나가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으며, 새로운 정의를 내리는 것에 주저하지 않았다. 이러한 근본적인 지향점과 방향성이 변치 않으리라는 지금의 믿음이 결코 섣부른 판단은 아닐 것이다. 본연의 건강한 비평을 쏟아내고자 애쓴 이들의 흔적이 그 증거로서 플랫폼페이지 곳곳에 자리하고 있으니 말이다.

다만 2014년도 문화비평상 공모를 진행하지 않은 점을 미루어 짐작할 때 플랫폼문화비평상의 존폐가 심히 우려된다. 새로운 비평가를 탄생시키고 그의 모지로서 영예롭게 존재하는 플랫폼의 행보가 계속되길 바란다. 또 한 가지, 더 이상 종이잡지 플랫폼을 만날 수 없다는 점도 매우 애석한 일이다. 사회 변화의 흐름에 부합해 독자에게 더 가까운 매체가 되고자 웹진을 더한다면 모를까, 경제적인 이유로 종이잡지 발간이 어려워 이를 대신해 웹진만을 발간하게 된 지금의 현실은 선뜻 받아들이기 어렵다. 이러한 몇 가지 문제는 앞으로 플랫폼을 만드는 사람과 함께하는 비평가들이 힘을 모아 해결해 나가야 할 것이다.

끝으로 기우의 당부를 더하고자 한다. 괴테는파우스트󰡕의 마지막에 이런 문장을 남겼다. “영원히 여성적인 것이 우리를 끌어올리리라.” 끌어올린다는 것은 구원을 의미한다.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 것은 여성적인 것이다. 여성적이라는 말의 사전적 의미는 여성의 성질을 지닌 또는 그러한 것이다. 감성적이고, 부드럽고, 평화로운 존재. 아무리 사나운 사람도 품어 잠재울 수 있는 존재. 격한 대립을 평화롭게 만들 수 있는 존재가 여성이다. 오늘날 격한 대립으로 치닫는 국제사회에서 갈등을 풀 수 있는 열쇠는 문화에 있다. 우리 생활 깊숙이 문화가 전달되기 위해서는 문화의 다양성을 지켜내고 일상생활 속에 문화가 자리 잡을 수 있어야 한다. 플랫폼이 그러한 매개가 되길 바란다.

 

 




#저자 약력
李根旭, 1972년생. 성공회대학교 문화대학원 겸임교수. 중앙대학교 공연영상창작학부 출강. 문화콘텐츠와 스토리텔링 프로젝트 그룹 다랑어스토리 기획이사로 활동하며 전시, 출판, 잡지 기획과 다양한 영역에 이야기 입히기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2013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 스토리텔링 개발, 『이어령 생명 동행전』(영인문학관) 등 전시 기획, 『이어령의 80초 생각나누기』 3권 시리즈 출판 기획, 월간 『노블리제』 편집장, 월간 『다른내일』 기획 및 편집 등 다양한 영역에서 문화기획 일을 하고 있다. masilbogi@empal.com
글쓴이 : 이근욱
작성일 : 2015/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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