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한국의 대중문화에는 복고의 열풍이 거세다. 지난해 말 개봉한 영화 <국제시장>은 아버지 세대의 시선으로 한국의 현대사를 관통하는 한 단면을 들여다보는 작품이다. 2015년 2월 말 현재, 여전히 영화는 극장에서 상영 중이며 1400만 명 이상이 이 영화를 보았다. 그런가 하면 텔레비전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의 <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토토가)> 특집에 불려나온 1990년대 가수들의 지나간 노래들은 말 그대로 신드롬을 일으키며 거리 곳곳에서 울려퍼지고 있다. 대략 10년 전부터 복고는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대중문화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주력 아이템인 것처럼 여겨져 온 듯하다. 예컨대 대중음악계에서는 젊은 가수들이 선배 가수의 노래를 리메이크하는 경우가 점점 더 흔해졌고, 영화 <건축학개론>(2012)이나 텔레비전 드라마 <응답하라>(2012, 2013) 시리즈는 노골적으로 1990년대라는 과거의 특정 시기를 추억하는 작품들이었다.

이 흐름을 주도하는 정서는 아마도 과거에 대한 향수일 것이다. 현재보다 찬란한 과거, 현재보다 숭고한 과거, 현재보다 순수한 과거, 즉 이상적 과거에 대한 향수 말이다. <건축학개론>과 <응답하라> 시리즈가 모두 순수한 첫사랑의 모티프에서 출발한 이야기인 것도 우연은 아닐 것이다. 또한 <토토가>에 나온 대부분의 가수들은 관객과 시청자에게 무대 위에서만이라도 지금 현재의 모습이 아니라 과거 전성기 시절의 가창력과 댄스 실력을 보여주고자 안간힘을 쓴다. 그들은 이상적 과거의 모습을 재연하고자 현재의 모습을 기꺼이 감추고 모른 체한다(그러나 그것은 이미 지나간 ‘이상’인 탓에 결코 ‘현실’ 속에 완벽하게 깃들 수 없다). 이런 식으로 과거의 한 시기를 이상화하게 되면 상대적으로 현재의 모습은 열등한 것으로 부정되거나, 타락한 것으로 단죄되거나, 왜소한 것으로 무시되기 십상이다. 이것이 요즘 목격되는 복고의 첫 번째 모습, 즉 향수에 기반을 둔 복고의 모습이다. 향수는 과거를 아름답게 만들지만 현재를 비루한 것으로 만든다.

복고의 두 번째 모습은 국내외 미술계에서 찾아낸 것이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최근 복고와 관련된 중요한 전시가 몇 개 열렸다. 이 전시들이 특이한 이유는 주목할 만한 과거의 작품들을 재조명하는 의미에서의 복고가 아니라 기념비적인 과거의 전시를 재현해 보여준다는 의미에서의 복고를 실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작품의 복고가 아니라 전시의 복고인 셈이다.

먼저 가장 최근에 열린 국내의 전시 <Retro_’86-’88: 한국 다원주의 미술의 기원>(소마미술관, 2014년 11월 14일~2015년 1월 11일)은 1986년부터 1988년까지 동산방, 토탈미술관, 관훈미술관, 그림마당민, 서울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열린 6개의 전시와 1개의 이벤트를 복원한 전시이다. 전시를 기획한 양정무에 따르면 시기를 1986년부터 1988년으로 잡은 까닭은 “1980년대가 오늘날의 미술의 시작”이며, 특히 이 3년의 시간이 “권위주의 정부의 해체와 함께 탈이념화와 탈경계화가 본격화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즉 기획자는 미술뿐만 아니라 정치, 사회, 문화 전반의 탈이념화와 탈경계화에서 비롯된 다원주의의 기원을 1980년대로 상정하고 한국 현대미술의 태동을 알린 주요 전시를 오늘날 다시 되새겨 보는 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이런 취지로 여성주의 미술, 퍼포먼스아트, 비디오아트, 현대조각 등에 관련된 기념비적 전시들이 아카이브 자료들과 함께 전시되어 있다.

해외에서 발견되는 유사한 성격의 전시는 베니스와 파리에서 열렸다. <태도가 형식이 될 때: 베른 1969/베니스 2013>(베니스 프라다재단, 2013년 6월 1일~11월 3일)과 <대지의 마술사들, 한 전설적인 전시로의 회귀>(파리 조르주퐁피두센터, 2014년 3월 27일~9월 8일)가 그것이다. 전자는 1969년 스위스 베른에서 전시기획자 하랄트 제만이 기획했던 전시 <태도가 형식이 될 때>를 2013년 베니스에 재현한 전시이다. 1969년의 전시는 팝아트와 미니멀리즘 이후의 미술적 실험들을 한자리에 모은 기념비적 전시였다. 전통적인 의미의 미술과 완전히 단절한 결정적인 사건으로 평가받는 이 전시는 좌대 없는 조각, 개념적 프로세스, 퍼포먼스, 이탈리아의 아르테포베라 등 과정이 중시되는 현대미술의 특성을 전면에 내세워 현대미술사에서 가장 중요한 전시 중 하나로 여겨지고 있다. 2013년의 베니스 전시는 과거의 전시를 그대로 옮겨와 베니스를 일종의 현대미술의 고고학적 발굴 현장으로 만들어 현대미술의 흔적과 기원을 들여다보는 기회를 마련했다. 다른 한편, 파리의 전시 역시 1989년 파리 퐁피두센터와 라빌레트에서 열렸던 전시 <대지의 마술사들>을 25년 후에 아카이브 자료들을 통해 되돌아보는 성격의 전시다. 1989년 전시는 유럽과 북미뿐만 아니라 아시아, 오세아니아, 아프리카 등 세계 전역의 동시대 미술작품을 끌어모아 현대미술의 전지구화를 본격화한 출발점이 되는 전시였다. 이를 계기로 미술에서의 탈식민주의를 비롯한 수많은 담론과 논쟁이 촉발될 수 있었다. 전지구적 차원의 현대미술이 전혀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 오늘날, 이 익숙한 풍경의 기원을 다시금 되짚어보는 것이 2014년 아카이브 전시의 취지라고 말할 수 있다.

지금까지 열거한 국내외의 세 전시는 과거의 전시를 현재의 장소에 재구성하고 있지만 그 과거를 이상화하지 않는다. 여기서 복원된 과거의 전시들은 어떤 향수의 대상, 아무리 재연하려고 해도 끝내 우스꽝스럽게 실패하고야 마는 잃어버린 고향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들은 현재성을 열어젖힌 사건으로 다시금 자리매김되며, 따라서 여전히 동시대적인 그 무엇으로서 현재와 만나는, 아니 차라리 현재의 진정한 기원으로서 회귀한다. 고고학(archeology)의 어원이 기원(arche)에 대한 학문(logos)이라는 의미에서 이 두 번째 종류의 복고는 ‘현재의 고고학’이라 할 만하다. 이 복고는 망각에 저항하며 끊임없이 과거를 (재)발굴하여 현재의 기원을 밝혀내기 때문이다. 이처럼 과거가 현재와 유리된 채 이상화되지 않는다면, 마찬가지로 현재도 빈약하고 비루한 것으로 치부되지 않는다. 그러기는커녕 과거가 끊임없이 현재의 기원으로 편입됨으로써 현재의 지층은 점점 더 두터워진다. 이 전시들은 현대미술의 지표면에서 벌어지는 사태에만 주의를 기울이는 근시안적 태도를 넘어서서 그것과 맞닿아 있는 미술사적 지층까지 파고들어가는 발굴 현장이다. 덕분에 우리는 더욱 두터운 깊이를 지닌 현대미술을 (되)찾는다. 이 두 번째 의미의 복고를 지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