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상수 감독에게 가장 큰 무기는 바로 삐딱한 시선이다. 데뷔작 <처녀들의 저녁식사>(1998)에서부터 그 시선은 드러났다. 중요한 것은 그 삐딱한 시선을 보여주는 방식이 매우 노골적이며 과감하다는 사실이다. <바람난 가족>(2003), <오래된 정원>(2007) 그리고 <하녀>(2010)에 이르기까지 임상수는 우리 사회의 불편한 진실을 그 삐딱한 시선을 통해 과감히 재현해냈다.

 <돈의 맛>에 대한 기대감도 여기에 있다. <돈의 맛>은 아예 대한민국 상위 1퍼센트의 삶을 보여준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재벌이라고 부르는, 한국에 존재하는 매우 특이한 경제현상의 속살을 보여주리라는 점에서 관객들은 흥분했다. 말하자면 TV 드라마에서 보던 재벌에 대한 묘사 방식과는 좀 다른 임상수만의 독하고 노골적 시선이 있을 것이라 기대했던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돈의 맛>은 이주여성판 하녀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상위 1퍼센트의 부도덕이나 패륜은 <하녀>에서 이미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다. 집 안에서 아이를 돌봐주는 도우미에게 성적 폭력의 손을 미치는 주인이나 아이를 가진 그녀를 대하는 도착적 가부장제의 안주인들의 모습 말이다.

 <돈의 맛>을 이주여성판 하녀라고 부르는 이유는 <돈의 맛>의 주요갈등 역시 ‘에바’라는 이름의 필리핀 하녀와 주인과의 부적절한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회장이기는 하지만 처가에 기반을 둔 회사에서 별 역할을 한 바 없는 남편 윤회장^{백윤식 분}은 자신의 손녀를 돌봐주는 하녀 에바^{마우이 테일러(Maui Taylor) 분}와 불륜을 즐긴다. 문제는 윤회장이 불륜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그녀와 아예 새로운 삶을 살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사실상 이 집안의 실권은 아내 백금옥^{윤여정 분} 여사에게 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그녀는 여전히 그림자 권력을 행사하는 아버지의 그늘에서 원하는 것은 뭐든 얻으려 한다. 아들은 힘 있는 백금옥 밑에서 어떻게든 더 많은 것을 가지려 한다. 반면, 딸 나미김효진 분는 자신의 집안에 흐르는 도착적이면서도 변태적인 욕망을 불편해 한다. 이 집안에 유일하게 “윤리적인 인물”이 있다면 그가 바로 딸 나미일 것이다.

 <돈의 맛>의 주인공은 이 집안에서 귀찮은 일들을 해결해주는 주영작^{김강우 분}이라는 인물이다. 회사에서 꽤나 높은 직위를 갖고 있지만 그가 하는 일이라곤 돈 뒷거래나 회장의 여자 처리하기 같은 일이다. 영화의 첫 장면에서 윤회장은 주영작을 비밀창고에 데려가 “너도 얼마 좀 챙겨”라고 말한다. 하지만 영작은 돈의 냄새만 맡고 그냥 돌려놓는다. 말하자면 <돈의 맛>은 이처럼 돈에 대해 비교적 자유로웠던 영작이 돈에 묶이고, 빠져들었다가 다시 헤어나오는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의 맛>에 전작의 그림자가 너무 짙다는 것이다. 우선 인물들의 이름만 해도 그렇다. 주영작은 <바람난 가족>에서 황정민이 연기했던 변호사의 이름이다. 나미는 <하녀>에 등장했던 딸아이의 이름이기도 하다. 영화는 아예 직접적으로 나미의 입을 통해 “어린 시절 우리 집에 찾아와 죽었던 그 언니”라며 전작 <하녀>를 언급한다. 가족들이 가족 영사실에 모여 보는 스크린 속 작품 역시도 임상수의 <하녀>이다. 사실, 이쯤 되면 작가의 자기반영적 시도라기보다는 과도한 나르시시즘이나 소아병적 취향처럼 비칠 정도다.

 미술적 시도 역시 <하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마티스(Henri Matisse) 의 <이카루스Icare>로 상징되고 환유되던 이미지들, 대리석 바닥의 차가운 미장센들이 <돈의 맛>에서도 반복된다. 차이점이 있다면 <하녀>에서 “불”이 중요한 이미지였다면 <돈의 맛>에서 중요한 이미지는 바로 “물”이라는 것이다.

 <하녀>에서 가장 빛났던 인물은 “아더매치”를 외치며 상류층도 그렇다고 노동자계층도 아닌 어정쩡한 위치에서 자기 이익만 챙겼던 윤여정의 캐릭터였다. 이번 <돈의 맛>에서도 그녀는 뻔뻔한 상류층 여성 역할을 잘 소화해낸다. 하룻밤 욕망을 버리기 위해 주영작을 침실에 불러들인다거나 남편의 정부를 살해하는 장면에서 백금옥의 표독스러움은 절정을 이룬다.

 영화는 마지막 장면 도저히 화해할 수 없을 것처럼 보였던 이 상위 1퍼센트의 삶에 화해의 손을 내민다. 비록 가장 윤리적인 인물 나미와 유약했지만 다시 그 도덕성을 찾은 영작의 결합이지만 어쩐지 독하고 노골적인 임상수 감독의 시선이 부서진 느낌이다. 게다가, 필리핀까지 시신을 후송한다거나 관 속의 돈을 보고 놀라 눈을 뜨는 죽은 에바의 의미는 지나치다 못해 우스꽝스럽기도 하다. 너무 많은 메시지는 영화의 적이 될 수도 있다. 무릇 새로운 시도는 단순한 메시지의 깊이 있는 재현이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