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9년 1월 도쿄(東京)대학 야스다(安田)강당을 둘러싼 데모대와 경찰기동대의 공방전은 보통 일본에서 “70년 안보”라 불리는, 미국과 일본의 안보보장조약체결에 반대한 1960년대 안보투쟁(安保鬪爭)에 이은, 1970년대의 안보투쟁을 대표하는 사건이다. 영화 <마이 백 페이지(マイ·バック·ペ一ジ)>는 야스다강당이 경찰기동대에 의해 ‘함락’된 이후부터 시작한다. ‘함락’이란 단어가 상징하듯이 일본 사회는 국내의 정치투쟁보다도, 그리고 아시아에서 벌어지고 있는 베트남전쟁보다도, 같은 해에 쏘아 올려진 미국의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 여부에 관심을 쏟는다. 이러한 ‘폐색’적인 일본 사회의 분위기에 괴로워하던 도쿄대학 출신인 주간지 기자 사와다(澤田)^{츠마부키 사토시(妻夫木聰) 분}는 과격한 폭력혁명을 꿈꾸는 운동가 우메야마(梅山)^{마츠야마 켄이치(松山ケンイチ) 분}를 만나게 된다. 우메야마는 자신이 이름이 잘 알려진 조직의 하부 단체에 소속되어 있다고 말하며, 무기를 훔쳐내어 도쿄에서 산발적으로 사고를 일으키고, 그런 혼란을 틈타 국회로 돌진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밝힌다. 사와다는 이러한 우메야마의 혁명론에 빠져들어, 그를 도와주기도 하며 독점적으로 취재해나간다. 과연 우메야마의 ‘혁명’은 실행될 것인가, 그리고 기자와 혁명가의 ‘위험한’ 친분관계는 어떤 결과를 낳을 것인가.

 <마이 백 페이지>는 최근에는 영화평론가로 활동을 많이 하는 가와모토 사부로(川本三郞)의 동명의 책을 원작으로 한다. 이 책은 제목 그대로, 아사히(朝日)신문사가 발행하는 주간지의 기자였던 가와모토가 자신이 걸어온 인생의 뒷장들을 되돌아보는 회상록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고, 그리고 제목 또한 회고적인 분위기가 강하지만, 그 시대를 바라보는 영화의 시각, 다시 말하면 감독의 시각은 너무나도 날카롭다. 감독은 <린다 린다 린다(リンダリンダリンダ)>(2005)라는 영화에서 한국 배우 배두나를 주연으로 하여 고등학교 밴드 이야기를 만든 야마시타 노부히로(山下敦弘)이고, 각색 또한 야마시타 감독과 공동으로 작업을 하는 무카이 고스케(向井康介)가 맡았다. 이 둘에겐 오사카(大阪)예술대학 동기라는 공통점도 있지만, ‘70년 안보’ 이후에 출생한 세대라는 점이 더욱 중요할 터이다. 그래서인지 영화는 ‘그땐 그랬지’라는 회고나 아쉬움보다는, ‘무엇을 위해서 그랬을까’ 아니면 ‘왜 그랬을까’라는 이후 세대의 궁금증과 비판이 회고적 내러티브 속에서 돌출한다. 이는 혁명가 우메야마가 등장하는 장면에서 드러난다. 대학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대학해체’라는 급진적 주장을 외치던 우메야마는, 도대체 무엇을 하고 싶으냐고 묻는 토론자의 질문을 받자, 답을 못하고 주저하다가 “너는 적이냐?”라고 두서없는 질문을 내던지며 토론회를 끝내고 만다. 우메야마를 따르는 조직원들이 숨어사는 골방에서, 도대체 무엇과 싸우는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여성을 임신시키고 이를 빌미로 생활비를 가져오라고 우메야마는 명령하기도 한다. 이밖에도 그는 협조자를 만들기 위해 공금횡령죄를 뒤집어씌워 조직원의 처형장면을 가짜로 연출하기도 한다. 사와다는 우메야마가 본명이 아니고 원래는 가타기리(片棟)임을 알게 되고, 그리고 그가 이끄는 조직 또한 큰 조직의 하부단체가 아님을 안다. 하지만 조직의 내부사정을 ‘체제’ 쪽에 있는 저널리스트가 알 리 없다고 강변하는 우메야마에게 다시 한 번 동조하며, 사와다는 최후의 사건, 즉 자위대(自衛隊) 부대에 무기 탈취를 위해 잠입하는 사건의 전모를 취재하게 된다. 과연 우메야마의 무기 탈취는 성공할 것인지, 그리고 사와다의 행위는 어디까지 취재로 인정받을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혹시라도 영화를 볼 독자를 위해 남겨놓도록 하겠다.

 이상으로 줄거리를 조금 ‘극적(劇的)’으로 정리해보았으나, 스크린에서 접하게 되는 <마이 백 페이지>의 영상은 그다지 극적이지는 않다. 책상들만 쭉 놓여있는 사와다의 신문사, 달 착륙 장면을 보여주는 텔레비전 방송을 받아 적는 칙칙한 숙직실, 몇 번이고 등장하는 사와다가 영화를 보러 가는 컴컴한 극장, 선배 기자와 불만을 토론하는 선술집, 그리고 우메야마가 숨어사는 골방 등이 번갈아가며 나오기에 화면은 답답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시대적 답답함을 느끼게 하는 것도 감독의 의도일 터이니, 이야기 전달에는 효과적인 연출이다. <마이 백 페이지>는 정치투쟁으로 뜨거웠던 일본의 1970년대를 되돌아보게 하면서, 언론의 역할과 한계는 어디까지인지, 그리고 혁명가에는 진짜와 가짜가 있는 것인지 등등 영화를 본 관객의 뇌리에 각자의 ‘백 페이지’를 새로이 구성하게 만드는 수작이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지난 3월 특별상영회라는 형식으로 짧게 개봉되었을 뿐이라, 많은 이들이 보지는 못했을 것이다. 동일본대지진이 있었던 지난해에도 일본에서는 440여 편의 영화가 만들어졌다. 그중에서 <마이 백 페이지>와 같이, 한국관객들에게도 적지 않은 감동과 공감을 줄 수 있는 작품은 좀 더 있을 터이니, 보다 많은 관심이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