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코와 리타에게 궁금한 것 한 가지. 왜 두 사람은 서로를 향해 좀 더 용감하게 손을 뻗지 못했을까. 깊은 그리움을 앓으면서도 어째서 내면에서부터 이미 이별을 받아들이고 있는 연인처럼 굴었을까. 마음에는 분명한 이유를 달수 없는 것이지만…….

몇몇 매체의 소개에서처럼, 만약 이것이 ‘통속적인 연애담이지만’ 라틴음악 대가들의 기념비적인 ‘연주를 들을 수 있어’ 흥미로운 작품이라면, 이 영화만의 가치는 말라붙고 말 거다. 러브어페어(loveaffair). 그들은 열렬히 사랑하지만 맺어지지 못한다―그러니까 서구의 사랑이야기가 라틴드라마로 화(化)하다? 그렇지만 나는 정형화된 멜로드라마가 아닌 치코와 리타의 노래를 들어야 한다고 믿는다. 이 인물들과 음악들, 장면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신체와 정서에 뿜어놓은 것 말이다.

 1948년 미국이 제멋대로 점령한 군사와 향락의 도시 아바나. 영화는 처음과 마지막, 일화 간의 연결점에 도시 전경을 극의 필수적인 요소로 다루어 고증자료처럼 그려놓았다. 애니메이션으로 표정의 미묘한 변화까지 섬세하게 연출하다니. 어쩐지 미국백인들의 생김은 영혼이 달아난 모습 같다. 평면적이고 창백하다. 피아노 연주자 치코는, 나이트클럽 무대 위에서 <베사메 무초Besame Mucho>1)를 부르는 리타의 미려한 음색에 빠진다. 마감 직전의 작은 바. 치코가 피아노를 치자(그는 “비밥(bebop)”2) 이라고 말한다), 리타는 스캣(scat)처럼 흥얼거리다 관능을 뽐내며 룸바(rumba)아프리카와 라틴아메리카의 특징적인 리듬이 합쳐진 쿠바의 대표적 댄스음악를 추고, 늙은 바텐더는 가느다란 스틱으로 빈 유리병을 두드려 쿠바의 리듬을 구사한다. 그를 불신하는 그녀를 설득하려 뒤를 밟은 치코. 리타는 모르는 체하며 그를 원하는 곳으로 이끈다. 그곳은 정령을 모신 영매가 동굴처럼 방을 꾸며놓고 살기도 하는 별별 사람들의 공동주택. 마당에는 남자들이 병과 나무상자, 스틱, 아프리카의 정수를 담은 악기 콩가 등으로 합주를 한다. 리타는 능숙한 춤사위로 치코를 놀린다. 이후 연주에 맞추기라도 한 듯 팽팽하게 주고받는 대화. 우리는 순식간에 그 시기 아바나로 빨려든다. 그러나 커플의 합작품은 토속음악이 아닌 볼레로(bolero)3)의 감성, 룸바의 감각으로 녹여낸 재즈 칵테일이다. 때론 가곡처럼, 때론 옛 가요처럼. 손(son)4)의 정취도 묻어난다. 피아노조차 음색이 높은 타악기를 흉내 내는 듯한 트랙들. 주제곡 <릴리Lily>는 아름다운 선율이 느릿한 라틴리듬을 실어 나른다.

 미국인 쇼비지니스맨이 리타에게 품은 소유욕이 갈등을 낳는다. 떠난 리타를 잊지 못해 음악적 야망 하나 달랑 품고 뉴욕의 클럽가로 찾아간 치코. 그곳은 화려하고 냉혹한, 모순된 활력의 공간이었다. 이때는 아프로아메리카 연주자들과 이주해온 아프로쿠바 뮤지션들이 밴드를 만들어 재즈의 반란을 준비하던 역사적인 시기다. 그러나 무대 뒤편의 삶에서 그들은 좌절한다. 리타는 이색적인 쇼 상품으로 소모되고, 쿠바로 쫓겨난 치코는 조국이 혁명으로 인해 서구적인 요소가 섞인 재즈를 거부한다는 것을, 그래서 그 자신의 음악적 색채도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실제로 쿠바혁명 이후 푸에르토리코인 등의 다양한 라틴계 이주민들에 의해 쿠밥(cu-bop)쿠바의 손과 재즈의 비밥을 섞은 것이며 라틴재즈의 초기 모델 격은 라틴재즈로 확장되었고, 쿠바 내의 재즈는 더욱 아프리카에 집중하여 성스럽고도 열정적인 호흡으로 또 다른 꽃을 피워냈다.

 영화 <치코와 리타Chico & Rita>는 쿠바의 식민시대와 월드뮤직이 새롭게 조명 받는 현재, 양쪽 끝을 강조한 이야기다. 치코와 리타의 사랑은, 시대의 운명에 연정을 바치는 통속적인 노랫가락을 몇 번이고 다르게 연주했다. 연인에게 사랑은 멜로디였는데, 그것은 그들이 미국이라는 패권과 조국독립의 필요라는 두 가지 힘에 둘러싸였기 때문이다. 세계사에서 쿠바리듬은 생의 몸짓을 넘어 점차 의미심장한 집단 언어가 되었으므로, 고유한 사랑의 리듬을 머금은 멜로디가 오히려 그들을 이어주었던 것이다. 치코와 리타는 그래서 하나의 음악이다. 두 사람은 문화적 자부심을 갖고 있었지만 그들의 야심은 쿠바와 재즈의 ‘이음매 없는’ 절묘한 결합에 있었다. 회상은 각자의 몫이지만 이별의 슬픔은 달래져야 한다. 오래된 정서와 다채로운 당김음, 엇박자의 일렁임이 쿠바춤곡과 현대적 연주 사이에 보이지 않는 다리를 놓았다. 추억과 재발견(재회)이라는 인연으로.

 독재와 전쟁을 겪고 도시문화가 미친 듯이 변화하던 시기에 그들은 새로움과 기회를 찾던 젊은이들이었다. 그러나 뉴욕에서의 한 장면. 앞날에 대한 계획은 없냐는 치코의 물음에 리타는 “내가 원하는 건 모두 과거에 있다.”고 답한다. 여기서 과거란 태고(太古)가 아니라, 하모니의 순간이다. 매일같이 꿈을 꾸었던 인생의 짧은 한 때. 그들은 음악으로 사랑을 실현하려 했지만 시작되기 무섭게 변형되고, 갈라졌다. 아니 애초부터 지켜내리라는 확신이 없었다는 듯이, 그들은 사랑의 투사처럼 구는 짓은 하지 않았다. 다만 그리움이나마 빼앗기지 않기만을 바랐을 것이다. 세월은 이 사랑을 에로틱한 이성애에서, 시간의 더께를 입힌 향기로 바꿔놓았다.

영원한 사랑이 존재하는지 몰라도

그곳에서도 지금처럼 입안에 머금을 거예요.

나만의 향기를.

(리타의 주제가 <나의 향기(Sabor A Mi)>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