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어린아이의 눈을 통해 천국과 지옥을 본다. 아름다운 동심의 세계와 그들에게마저도 잔혹한 현실의 세계를. <악마의 등뼈El Espinazo Del Diablo>(2001), <판의 미로El Laberinto Del Fauno>(2006)를 통해 잔인한 현실을 아이들의 시선으로 바라보았던 감독 길예르모 델 토로(Guillermo del Toro)는 영화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진실은 보려는 자의 눈에만 보인다.” ‘진실’이라고 거창하게 말하기는 어렵지만, 여기 상영하는 영화관을 찾아내서 감상하려 노력하는 자의 눈에만 찾아지는 영화가 있다. 8년 만에 힘겹게 관객들과 조우했으며, 이마저도 이른바 ‘퐁당 상영’으로 어려움을 겪는 작은 영화 <량강도 아이들>이다.
<량강도 아이들>은 남한에서 보낸 장난감 로봇을 북한 량강도 보천보리의 소년 종수가 줍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평양에 가지 못해 낙망한 종수는 우연히 남한에서 보낸 크리스마스 선물을 발견하고, 이를 구경하고자 하는 아이들에게 받은 음식으로 영양실조에 걸린 동생 종성을 차차 회복시킨다. 앉아있기도 어려웠던 종성은 종수와 로봇의 활약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앉게까지 되지만 고위직 아버지를 둔 도식의 욕심은 종수와 아이들에게 가장 큰 위협이다. 종수와 아이들은 종성을 큰 병원에 데려가기 위해 산타 복장으로 노래를 부르거나, 로봇을 활용하여 휘발유를 모은다.
영화는 이러한 아이들의 노력과 순수한 마음을 따스한 시선으로 그려낸다. 몰래 잘라낸 탄피와 아버지의 유품인 시계를 팔아 산 고철로 할당량을 채우는 파동 활동과 “겉보기”가 좋지 않다는 이유로 평양에 가지 못하는 현실, 휘발유가 없어서 병원으로 이송될 수 없는 동생 종성 등의 모습은 북한의 부조리한 현실에 대한 디테일한 재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영화는 실제는 훨씬 처참할 북한의 현실을 직접적으로 폭로하기보다는 순수하게 살아가는 아이들에게 초점을 맞춤으로써 관객들을 영화의 세계에 몰입시킨다.
우리는 이미 가난 속에서도 서로를 아끼고 배려하며 살아가는 아이들의 세계를 영화를 통해 만난 적이 있다. 바로 압바스 키아로스타미(Abbas Kiarostami)로 대표되는 일군의 이란 영화, 그중에서도 <천국의 아이들Bacheha-Ye aseman>(1997)이다. 운동화 한 켤레로 학교를 다녀야 하는 남매의 이야기를 잔잔하게 그려내었던 <천국의 아이들>은 아이들의 시선으로 세계를 조망함으로써, 가난은 결코 불행이 아님을 역설한다. 천사처럼 서로를 아끼는 가족과 사람들이 사는 한, 테헤란의 산동네는 천국인 것이다. 그리고 지난한 삶을 살면서도 ‘순수’를 잃지 않는 테헤란과 량강도의 아이들을 보면서 우리는 그간 잊고 있었던 것들을 떠올린다. 가난한 시절과 그 속에서도 서로를 사랑했던 따스한 마음들, 힘들었기 때문에 소중함을 느낄 수 있었던 아주 ‘작은’ 가치들을.
이 영화들은 아이들의 ‘순수한’ 시선으로 우리가 가보지 못한 먼 곳을 그려냄으로써 관객들로 하여금 향수에 젖도록 만든다. 동시에 알 수 없는, 그저 들려오는 이야기만으로 구성할 수 있을 뿐인 세계를 ‘가난하지만 순수한 아이들이 사는 세계’로 상상하게 한다. 이는 현재의 우리가 잃었다고 여겨지는 ‘순수’와도 같은 가치를 그들에게 덧씌우고, 한편으로는 우리의 현재를 ‘다행스러운’ 것으로 만드는 결코 ‘순수하지 않은’ 상상이다.
그러나 아이의 ‘순수한’ 시선을 통한 세계의 조명이 그들의 세계를 ‘순진한’ 타자의 세계로 그려낸다는 비판의 필터를 통해 바라보더라도 <량강도 아이들>은 여전히 사랑스럽다. 그것은 어찌할 수 없는 감정적 진실, 아이의 웃음과 눈물이 전달하는 진심 때문일 터이다. 동생을 살리려 지난한 과정을 거쳐 마침내 크리스마스를 만들어내는 종수와 아이들의 모습은, 설령 그 세계가 우리의 시각에 의해 왜곡된, 어쩌면 결코 순수하지 않은 세계임에도 불구하고 관객의 마음을 적시기에 충분하다.
모든 사건의 발단이 된 로봇은, 일견 영화     <부시맨The Gods Must Be Crazy>(1980)을 연상시키는 점에서 의심의 눈초리를 모으기에 충분하나, 도리어 결코 이 영화를 타자에 대한 전형적인 시각으로만 읽어낼 수 없는 또 하나의 장치로 기능한다. 종수의 장난감 로봇은 영화 내에서 여러 가지의 의미가 덧씌워지며 변화한다. 친척이 보낸 선물에서 자본주의의 상징물로, 그리고 ‘그저 애들 장난감’으로 변화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되물을 수밖에 없다. 이 로봇은 정말 ‘그저 애들 장난감’인가? 도식의 아버지가 말한 대로 “애들 장난감에 사상이 있다면 얼마나 있으며”, 이 아이들은 “아직 열살”일 뿐인가. 로봇을 줍고 난 뒤의 종수의 행보를 상기해보자.
종수는 로봇을 보여주는 대가로 아이들에게 음식을 받았으며, 휘발유를 얻기 위해 물건을 팔았고, 산타 옷을 입고 공연을 했다. ‘애들 장난감’일 뿐인 로봇은 사실상 아이들에게 이른바 ‘자본주의의 황색 열풍’의 경제 방식을 체득하게 한다. 결국 도식 아버지의 외침, “애들 장난감에 사상이 있다면 얼마나 있다고!”라는 외침은 역으로 이른바 “황색 자본주의 열풍”이 잠식한 북한의 현실과 북한이 주장해온 정신력 주의가 물질의 힘 아래 스러지고 있음을 증명한다. 이제 아이들의 세계는 서로를 아끼는 마음만으로는 결코 행복할 수 없는, 이미 붕괴하고 있는, 천국이다. 무너진 천국의 아이들을 그려내는 이 영화의 운명이 아이들의 운명과 닮아가지 않기를 조심스레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