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페이 카페 스토리(第36個故事)>는 운명적으로 허우샤오셴(侯孝賢)이라는 이름에 기댈 수밖에 없는 작품이다. 이 영화를 기획하고 제작한 이가 허우샤오셴이며, 그 조감독인 샤오야췐(蕭雅全)이 메가폰을 잡은 작품이기 때문이다. 애초 영화의 마케팅 포인트를 영화와 허우샤오셴을 연결짓는 것으로 출발했고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전세계 아트하우스 시장을 돌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이 영화에 드리운 허우샤오셴의 그림자를 완전히 지운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사실 이 영화는 그의 영화적 스타일과 별 관계가 없다. 오히려 이 영화는 전적으로 샤오야췐의 영화라 보는 것이 타당하다.
팬시하고 트렌디한 영화의 분위기는 유장한 호흡 속에 개인의 역사와 타이완 근대사를 중첩해온 허우샤오셴의 작품 스타일과 전혀 다르다. <밀레니엄 맘보(千禧蔓波)>(2001) 이후 타이완의 과거에서 현재로 관심을 돌리면서 허우샤오셴의 스타일이 변했다 한들 허우샤오셴이 어디로 가겠는가? 특유의 느리고 거리를 둔 화면 속에 서서히 떠오르는 유장한 시간과 공간의 감각을 새겨 넣는 자신의 고유한 스타일 대신 <밀레니엄 맘보>에서 타이완 젊은이들의 무기력한 얼굴을 클로즈업으로 포착했다 해도 허우샤오셴의 카메라가 왕자웨이(王家?)의 그것이 될 수는 없는 법이다. 그의 카메라에 포착된 젊은이들의 얼굴에는 여전히 타이완 역사의 잔영을 벗어나지 못한 청춘들의 출구 없는 절망과 폐소공포증적 고통이 묻어있으며, 젊은이들은 좀처럼 타이완 내부에서 희망을 찾지 못한다.
반면 지극히 감각적이고 매혹적인 영상으로 젊은이들의 일상공간인 카페와 거리를 담아내는 <타이페이 카페 스토리>는 출구 없는 절망의 감각보다는 희망과 매력을 담고 싶어 한다. 2001년에 만들어진 <밀레니엄 맘보>가 2011년 시점에서 2001년을 회고하는 형식의 영화였다는 점을 기억한다면, 2010년에 완성된 <타이페이 카페 스토리>는 어쩌면 <밀레니엄 맘보>가 상상했던 2011년이 현실이 된 시점의 영화라 할 수 있다. 허우샤오셴이 영화 속에서 상상했던 2011년이라는 시점을 그의 제자 샤오야췐은 어떻게 해석하고 있을까? 타이페이(臺北) 시의 홍보영화 제작 프로젝트로 출발한 태생적 한계 상 이 영화에는 타이완의 구석구석을 관광상품화하고 예쁘게 포장하려는 듯한 엽서 이미지들이 적잖이 보인다. 그러나 감독은 자신에게 주어진 기획의 제약을 넘어서 이 영화를, 타이완의 현재를 충실히 기록하는 민속지 영화로 승화시키려는 예술적 의지를 명백히 드러낸다.
그러한 의지는 픽션과 다큐멘터리를 혼합한 영화적 형식을 통해 드러난다. 영화는 크게 두 축으로 이루어진다. 새로 개업한 카페에서 물물교환을 통해 평범한 사람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모으는 자매의 이야기픽션부분와, 허구 이야기가 전개되는 와중에 수시로 거리에 나가 시민에게 픽션과 동일한 내용의 질문을 던지고 대답을 듣는 다큐멘터리 부분거리씬이 그것이다. 카페에서 전개되는 자매의 허구 이야기와 실제 타이완의 거리에서 진행되는 시민들의 진솔한 인터뷰는 씨줄과 날줄처럼 엮이며 하나의 이야기로 통합된다. 이러한 장치는 타이완 사람들의 현재 삶과 생각, 현재를 충실히 기록하려는 민속지적 충동을 반영하는데 이러한 욕망은 픽션부분에서 네 번에 걸쳐 반복되는 엄마와 딸들(두얼귀린메이(桂綸?) 분과 창얼린첸시(林辰?) 분)의 대화장면에서도 다시 한 번 드러난다. 발마사지실, 미용실, 택시 안, 시장통 등 사람들의 일상이 영위되는 장소에서 엄마는 딸들에게 무심코 질문을 던지는데 그때마다 주변 사람들은 그것이 자신에게 하는 질문이라 생각하고 대답한다. 그러면 엄마는 “우리 딸들에게 한 말”이라며 이내 픽션 속으로 돌아온다. 모녀의 대화를 둘러싼 인물들의 이러한 의도된 오해는 엄마의 질문이 단순히 극적전개를 위한 것이 아니라 거리에서 일반시민들을 대상으로 한 인터뷰와 동일한 목적에서 고안된 장치라는 것을 드러낸다.

이러한 장치들을 통해 영화는 다큐멘터리와 픽션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타이완의 현재에 대한 의미 있는 기록이 되어간다. 샤오야췐이 자신의 스승과 차이가 있다면 스승이 짊어진 과거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한결 가벼워진 걸음으로 낙관과 자기긍정의 길로 나아간다는 점이다. 그것은 영화 내내 카페 안에 머무르던 두얼이 마침내 자신의 이야기를 찾기 위해 바깥세상으로 나가는 엔딩부를 통해 상징적으로 드러난다. 이러한 결말이 조금은 손쉬운 것으로 보일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의 이야기를 찾아 나선 그녀의 여행이 성공하기를 바라는 관객의 마음까지 줄어들지는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