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스완Black Swan>의 나탈리 포트만(Natalie Portman)이 올해의 여우주연상 감이라는 사실에 굳이 이의를 제기할 생각은 없다. ‘니나’라는 인물이 여배우의 육체와 정신을 한계치까지 밀어 올려야 하는 역할임은 분명한데, 그건 파토스(pathos)를 잔뜩 뿜어내면서도 결코 그 파토스에 함몰되거나 무너지지 않을 배우가 필요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온갖 유혹에 노출된 할리우드의 아역배우로 출발했지만 언제나 감정보다는 이성적 선택을 우선시하는 것처럼 보였던 나탈리 포트만은 적절한 캐스팅이었던 것 같다. 그녀의 연기력이 다른 어떤 배우보다 뛰어나서가 아니라, 배역에 대한 몰입과 영화 밖 현실의 삶을 철저히 구별하며 ‘니나’를 감내해낼 수 있을 정도의 강함과 꼿꼿함이 그녀에게는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연배우에 대한 그런 평가와 별개로, 이 영화에 쏟아지는 호평에는 선뜻 동의하기가 어렵다. 말하자면 이 영화는 어느 여배우로 하여금 스스로 극단을 시험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여배우들의 욕망을 자극하는, 그러나 그녀들을 위한 최상의 영화들 중 하나일 수는 있어도 작품성으로만 따진다면 과대평가된 영화 리스트에 오를만하다는 것이다.
이 영화가 전면화하는 분열된 자아의 모티브는 그 자체로 이미 매혹적인 영화의 주제다. 우리 모두가 감추고 혹은 의식하지 못하고 있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인간의 보편적인 욕망, 그러니까 ‘비정상’으로 간주되는 또 다른 자아가 스크린 위에서 형상화되는 순간의 쾌감에 수많은 영화들은 의존해왔다. 대개의 경우 평범한 자아와 극단으로 돌출되는 자아 사이를 오가야 하는 이런 영화들의 운명은 별다른 장치 없이도 극적효과를 얻는 동시에, 유사한 함정에 빠질 위험이 있다. 선과 악, 흑과 백, 삶과 죽음 등을 한 인물에게서 끌어내어야 하는 이야기들은 이분법적이고 관념적인 도식 위에 서 있을 수밖에 없는데, 영화의 성패는 아이러니하게도 그 단순한 도식을 얼마나 잘 극복하는지에 달려있다. 이를테면 양 극단이 어떻게 서로에게 얽혀있는지, 도식의 어쩔 수 없는 추상성이 얼마나 물질적으로 구현되는지 등이 중요하다. 그렇다면 <블랙스완>은 어떤가? 흑조와 백조, 1인2역을 감당해야 하는, 천성적으로 백조인 줄 알았으나 흑조의 욕망이 일렁이고 있다는 걸 알게 된 발레리나의 이야기는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 도식성이 드라마틱하게 전면화 될 때의 효과에만 매달리는 영화이지 그것을 사유하는 영화는 아니다. 발레리나의 몸을 보여주고 그 몸에 의해 이야기가 전개되는 탓에 <블랙스완>은 쉽게 육체적인 영화로 여겨지지만 니나의 육체는 실은 흑과 백의 관념을 조립한, 그것을 전달하는 껍데기에 가깝다. 그녀의 존재가 설명 불가능한 잉여 없이 정신분석학적으로 완벽히 해부된다는 사실은 이 영화의 미덕이 아니라, 극단의 영화적 표출에 가려진 이 영화의 상투성을 증명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발레리나의 아름다움을 가능하게 하는 육체적 고통, 즉 미(美)와 추(醜)가 결국 한 몸이라는 것을 시각화하기 위한 그녀의 찢겨진 상처, 일그러진 형상, 잔혹하게 흐르는 피는 다분히 외설적으로 느껴진다. 영화는 그녀의 몸, 정확히 말하면 그 몸의 고통을 물신화하고 전시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고 있다. 영화가 발레리나의 몸을 서사의 일부로 끌어안으며, 그 몸의 도저한 물질성으로 위의 도식을 균열하는 대신, 고정된 도식 위에서 그 몸의 고통을 선정적으로 소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런 아로노프스키(Darren Aronofsky)는 전작인 <더 레슬러The Wrestler>(2009)에서도 육체를 영화의 중심에 두었다. 그리고 그때 괴물처럼 변한 레슬러, 아니 그 형체와 겹쳐진 실제로 망가져 버린 미키 루크(Mickey Rourke)의 얼굴은 외설적이었지만 그 외설성에는 이상하게도 보듬어 안고 싶어지는 감흥이 있었다. 퇴물 레슬러의 고통과 실제 미키 루크의 삶은 서로에게 작용하며 지극히 단순한 서사를 그 자체의 육체로 꽉 채웠다. 어떤 화려함도, 두뇌싸움도 없었지만 여기에는 말로 형언하기 어려운 몸의 역사가 있었다. 나는 많은 평자들이 <블랙스완>을 <더 레슬러>를 훨씬 뛰어넘는 걸작으로 칭송한다고 해도 망설임 없이 <더 레슬러>의 편을 들 것이다. 육체적인 고통을 전시하며 흑과 백 모두를 체현하려는 발레리나의 완벽함에 대한 동경보다는 젊음도, 생기도 사라졌으나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새겨진 레슬러의 처연하게 늘어진 육중한 몸뚱이를 기억하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