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회의 문화는 상호교류의 흔적이 쌓이면서 발전해가기 마련이다. 자폐적 시선이 아닌 끊임없는 ‘곁눈질’은 문화를 살찌우는 필수적인 과정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문화적 교류를 상품판매의 동의어로 인식하는 천박한 관점이 아니라, 서로의 문화를 나눌 수 있는 우정의 나눔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면에서 영화공간주안에서 열린 시네마프랑스인천은 작지만 소중한 우정을 쌓아가는 행사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영화를 통한 인천과 프랑스의 만남’이라는 모토 속에 2007년 11월 시작된 본 행사는 지난 3월 19일 열세 번째 만남의 자리를 가졌다. 이번 행사에는 <레인Parlez-Moi De La Pluie>(2008)아네스 자우이(Agnes Jaoui) 감독과 <수면의 과학La Science Des Reves>(2005)미셀 공드리(Michel Gondry) 감독이 상영되었지만, 단지 영화상영만이 본 행사의 모든 것은 아니다. 영화관람이 한 공간에서 집단적으로 이뤄진다 해도 관객과 영화의 만남은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것으로 머물면서 관객을 개별화시킨다는 한계가 있다. 시네마프랑스인천이 이러한 영화상영회의 단점을 상쇄할 수 있도록 다양한 주제의 전시회를 함께 구성하고 있는 것은 훌륭한 선택이다. 이번 행사에서는 <지구, S.O.S>라는 주제의 일러스트 전시회가 함께 했다. 동물과 인간, 식물과 미생물, 그리고 종과 생태환경 사이의 총합일 수밖에 없는 생물학적 다양성을 강조하는 이번 전시회는 아르헨티나의 아나 폰 르뤠르(Ana Von Rebeur), 캐나다의 귀 바도(Guy Badeaux), 콩고의 바르리 바뤼티(Baruti Kandolo Lilela), 스위스의 파트릭 샤파트(Patrick Chappatte), 프랑스의 쥘리앙 베르죠(Julien Berjeaut), 중국의 시아 리츄안(Xia Lichuan) 등 다국적 작가들이 참여하며 생물학적 다양성을 몸소 실천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전시된 일러스트는 대체로 지구 환경파괴의 심각성과 그 위험성을 경고하는 내용이 주를 이루었지만 그 전달 방식은 일러스트 특유의 위트와 재기를 잃지 않고 있다. 쓰레기가 흘러내려 목가적인 자연으로 바뀌는 모래시계 형상의 일러스트나, 쓰레기더미 위로 꽃이 만개하고 그 위로 나비가 날아드는 일러스트는 이번 전시회에 참여한 작가들의 성향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작품들이다. 전시장 역시 한국인과 프랑스인, 십대에서 노년층에 이르는 다양한 관람객이 함께 뒤섞이며, 함께 보고, 웃고, 떠드는 자리이기도 했다. 그것이 다양한 국가의 문화적 차이든, 한 국가 내 여러 세대의 문화적 차이든 간에 문화의 가로지르기란 그들이 함께 뒤섞여 시선을 나눌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전시회의 의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시네마프랑스인천이 선택한 두 편의 영화 <레인>과 <수면의 과학>은 프랑스 영화에 통념적인 선입견을 불식시키기에 충분한 작품이었던 것처럼 보인다. <레인>은 넉넉한 삶의 통찰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갑작스레 쏟아지는 비를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듯이 우리 모두는 나름의 아픔에 허덕이기 마련이다. <레인>은 바로 이러한 비극적 사실로부터 긍정과 낙관의 빛줄기를 발견하려는 영화다. 영화는 소나기가 그친 뒤 밝게 비추는 햇살만큼이나 청량하고 상쾌한 유머 속에, 비가 그치는 것이 자명한 이치인 것처럼 상처 역시도 그러할 것이라는 치유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슬픔에 비해 문화적 장벽이 높은 것이 웃음의 코드지만 <레인>이 상영되는 동안 프랑스식 웃음코드는 그 장벽을 넘어 한국관객에게도 적절히 전달된 것처럼 보였다. <수면의 과학>은 상상력의 마술사라 불러도 부족함이 없는 미셀 공드리의 작품이다. 영화는 전통적 드라마투르기(dramaturgie)극작법·희곡론 등, 드라마의 구성에 의존하기보다는 꿈과 현실을 넘나들며 사랑에 빠진 주인공의 ‘마음의 풍경’을 다채롭고 기발한 상상력의 힘으로 그려나간다. <수면의 과학>의 기발한 장면 하나하나는 문화적 편식으로 딱딱하게 굳어버린 뇌를 부드럽게 하기 위해서 우리는 더 많이 주위를 곁눈질해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수면의 과학>을 프랑스식 상상력의 전형이라 말할 수는 없겠지만 그럼에도 기존의 통념을 넘어서는 상상력의 향연은 시네마프랑스인천의 곁눈질이 계속되어야 하는 이유, 인천이 더 많은 주변을 두리번거려야 하는 충분한 이유를 보여주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