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는 뉴욕(New York)으로부터 시작된다. 뉴욕은 그 어느 도시보다도 경제, 정치, 문화적 권력이 집중되어 있는 공간이다. 반드시 ‘생산적인’ 시간을 보내야 하고 자기계발에 매진해야 하는 공간. 판치는 성공담론. 신자유주의적 질서의 형벌이 보이지 않게 그물을 치고 있는 근대의 감옥.

아니 뉴욕은 어쩌면 그것과는 다른 종류의 공간일지도 모른다. <섹스 앤 더 시티Sex and the City>를 비롯한 ‘뉴욕 시티즌(citizen)의 일상과 그들의 정체성 찾기’라는 서사들이 이토록 인기를 끄는 것을 보면. 적당히 절약하면 명품을 ‘지를’ 수도 있을 만큼 넉넉한 고료를 받는 뉴욕 자유기고가 여성들의 삶은, 어쩌면 전 지구적 자본주의 따위의 엄혹하고 칙칙한 말과 관계없이 행복한지도 모르겠다. 그것은 이른바 비문명화된 공간, 발리의 이혼녀와 그 딸에게나 적합한 말인 것일까.

하지만 줄리아 로버츠(Julia Roberts)가 분한 영화의 주인공 리즈영화의 원작자 엘리자베스 길버트를 모델로 한 인물가 그토록 떠나고 싶고 뜬구름 잡듯 막연하게 자아를 찾고 싶은 까닭은 뉴욕이라는 공간의 질서에 있다. 영화의 카피문구에서 주지하듯 그녀는 맨해튼(Manhattan)의 ‘잘나가는 저널리스트’이자 곁에는 한결같이 ‘멋지고 자상한 남편’이 있었다. 팔 년을 함께 산 남편이 어느 날 갑자기 천진난만하게 대학원에 가겠다고 말하자 리즈는 패닉(panic)에 빠진다. 그녀는 갑자기 신을 호출하며 눈물을 흘린다. 그녀의 말처럼-이제부터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그것이 그녀의 진실이다. 발리의 노인이 한 말대로 남편을 부양하느라 돈을 다 써버릴 것 같다. 힘들게 장만하고 공들여 꾸며놓은 집을 팔아야 할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자신이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을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 사회의 지배규범을 담지하고 있는 시선은 외부에서만 작동되는 것이 아니다. 대도시의 주체들은 그런 시선을 끊임없이 내면화하도록 단련되었기 때문에.

그래서 자신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 기존의 지배질서가 체현되지 않는 곳, 더불어 진지한 체험담을 표상할 낯선 공간으로 여행을 떠난다. 그녀는(영화의 서사가 원작자의 체험담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것을 고려할 때) 세 개의 테제(these)를 정하는데 그것이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기’다. 말한대로 이탈리아에서 먹고 인도에서 기도하고 발리에서 사랑한다. 그것은 특별한 행위가 아니다. 칼로리에 신경 쓰지 않고 마음껏 먹기, 외부요소들을 신경 쓰지 않고 기도하기,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사랑하기 등 갖가지 낭만적인 수사로 이루어져 있으나 기본행위는 리즈가 기존에도 해왔던 것들의 등속이다. ‘내가 원했던 삶이 이것인가’와 ‘어떻게 살아야 제대로 사는 것일까’에 대해 고민하는 이 건강한 주체는 경쟁과 속박이 필요 없는 제3의 공간(들)에서 뉴욕에서의 생활방식을 재의미화한다. 혼자 여행하는 주체들에게 여행, 그것도 의미화된 여행은 세련된 종류의 ‘일탈’이다. 그러나 그런 사소한 삐걱거림은 오히려 현실의 자리를 더욱 공고하게 만들어줄 뿐이다. 원작의 보다 디테일한 내면서술에서는 건강한 생활방식 뿐만 아니라 세계시민적 위치성과 타자들과의 연대에 관한 고민이 보이지만 영화의 시선은 기존 ‘뉴욕 시티즌의 일탈’에 머물러있다.


영화의 한 장면

왜 뉴욕인가. 그리고 왜 뉴욕 여성인가. ‘그녀들’의 클리셰(clicher)는 불편하다. 한국사회가 얼마나 미국화되었느냐에 대한 문제를 차치하고서라도 이런 클리셰가 추동하는, 낭만화된 일탈의 공간으로서 보다 문명화되지 않은 지역으로의 ‘혼자 여행’ 세태 역시 그렇다. 내가 누구인가 식의 질문보다 나는 권력의 어디쯤에 위치해있는가에 대해 질문할 수는 없을까. 정체성이란 고정되어있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가 욕망하는 바, 그것이 표출되는 방식이다. ‘유목하는’ 정체성이 그렇게 쉽게 찾아질 리 없다. 리즈는 자신이 속한 곳에서 버림받지도 않았으며, 무언가 버리지도 않았다. 부침의 과정 없는 자아찾기, 그리고 그런 서사를 보는 마음은 불편하다.   



영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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