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는 망각 속에 묻혀 버릴 수 있는 현실의 파편을 기억으로 재발견하여 그 역사적 의미를 밝혀내는 긴요한 매체이다. 2003년 재독학자이자 통일운동가인 송두율 교수는 37년 만에 가족과 함께 고국 땅을 밟는다. 그러나 환영의 꽃다발이 시들기도 전에, 그의 귀환은 곧 분단된 한국사회에서 지루하게 반복되는 이념적 충돌의 기폭제가 되고 만다. 홍형숙 감독의 <경계도시2>는 송두율 교수의 귀환이 촉발한 ‘스파이 논쟁’을 다시 소환하여 그 역사적 의미가 무엇이냐고 우리에게 질문한다. 진보가 주도했던 이른바 ‘잃어버린 10년’의 시간 동안 진보가 어떻게 보수를 닮아갔는지, 혹여 반공주의를 비판했던 한국사회의 진보진영이 반공주의에 어깨를 기대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는지 오늘에 와서 다시 묻고 있다.

1967년 독일로 유학한 송두율은 위르겐 하버마스(Jurgen Habermas)의 지도하에 철학을 전공하는 한편 한국사회의 민주화를 위한 반체제 투쟁에도 열정을 쏟았다. 자신을 ‘경계인’으로 규정한 송두율은 남과 북 양편을 넘나들며 소통과 만남, 그리고 화해의 매개자로 살고자 하는 자신의 철학을 실천에 옮긴다. 경계인으로서의 그의 활동은 북한 방문으로 이어지고, 그의 의지와 무관하게 북한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 김철수로 호명되기에 이른다. 북한 방문과 자신에게 명명된 김철수라는 이름으로 인해 송두율은 국가보안법 위반자가 되어 부모의 나라이자 자신이 태어난 국가로부터 배척되어 디아스포라의 삶을 살게 된다. 송두율은 왜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땅을 뒤로할 수밖에 없었을까? 유학길에 오르는 아들에게 “이제부터 지구인이 되라”던 아버지의 바람과 달리 국가에 대한 이적행위자로 낙인찍혀 살아온 송두율은 아버지의 묘소 앞에서 말한다. “지구인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민족을 먼저 생각할 수밖에 없었고, 그 이유를 아버지가 이해해 주실 것이라고 믿는다고…” 그렇다. 송두율은 민족의 화해와 통일을 위해 애쓰다, 민족의 국가로부터 경계인이 아닌 간첩으로 규정된 것이다.

영화 <경계도시2>의 장면들

디아스포라 송두율. 재일조선인으로 대변되는 근대의 디아스포라는 제국주의 국가들의 세계분할과 식민지 쟁탈전이라는 국가 ‘외부’의 강압적 요인에 의해 생산된 반면에, 송두율의 경우는 국가 ‘내부’의 통치논리에 따른 결과이다. 격동의 근현대사를 관통한 한국사회는 국가의 ‘밖’은 물론 ‘안’으로부터 끊임없이 고국과 모국이 분리된 분열된 개인을 양산했다. 조국과 고국은 한국이되 모국은 독일이었던 송두율은 한국사회의 통치논리에 따른 분열된 주체로서의 삶을 극복하기 위해 경계인으로서의 삶의 철학을 세운다. 그러나 외국에서의 힘겹고 외로웠던 37년 동안의 경계인으로서의 삶은 끝내 한국사회에서 용납되지 않았다. 그의 삶과 철학을 포용하기보다는 ‘전향’이라는 리트머스 시험지만이 준비되었을 뿐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경계도시2>는 한국사회의 보수와 진보가 둘이 아닌 하나였음에 주목한다. 2004년 17대 총선을 준비하며 진보의 굳히기와 보수의 뒤집기 대결이 정국을 요동치던 당시, 송두율 사건은 한국정치의 뇌관(雷管)이었다. 한국사회에 깊이 잔존하고 있던 레드 컴플레스에 대한 국민여론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가 보수와 진보 모두의 최우선 관심사였던 것이다. <경계도시2>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개인으로서의 송두율의 삶과 철학은 한국사회에서 송두리째 전복된다. 개인보다 집단이 우선시되는 사회, 아니 집단의 이익을 위해 개인의 희생을 과감히 요구하는 우리의 전체주의적 정치풍토. 바로 이러한 측면에서 당시의 보수와 진보는 하나였던 것이다.

홍형숙 감독이 망각 속으로 사라지고 있던 7년 전의 스파이 논쟁을 다시 소환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다큐멘터리 상영 후 관객과의 대화 시간에 그는 다큐멘터리의 가치가 현실의 의미를 발견하는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경계도시2>는 서로 양립할 수 없는 보수와 진보의 치열한 투쟁 속에서 두 진영의 같음을 목격했으며, 진보가 진정한 우리사회의 대안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보수와의 같음을 극복해야만 한다고 주문하고 있다. 이러한 주문이 긴절한 이유는 2003년 이후 7년의 세월 동안 우리사회가 송두율 교수를 잊어왔으며, 바로 그 망각의 시간 동안에 보수와 진보가 또 다시 하나였다는 사실에 있다.

영화 <경계도시2> 포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