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친구사이?>포스터

청년필름 대표이자 제작자인 김조광수가 연출한 퀴어 성장기 영화 <소년, 소년을 만나다>(2008)를 기억하시는지? <친구사이?>는 말하자면 <소년, 소년을 만나다>의 속편 격인 작품이다. 10대 소년들이 사랑에 빠지는 순간을 풋풋하게 그렸던 영화가 <소년, 소년을 만나다>라면, <친구사이?>는 20대 게이 청년들의 보다 성숙해진 고민을 담는다. 주인공들의 세대가 달라졌지만, 두 영화는 여러 가지 면에서 유사한 점이 많다. 우선 동성애를 주제로 삼는 영화들의 관습화된 선택들 혹은 그런 영화들에 대한 관객들의 전형적인 기대들을 의도적으로 밀어냈다는 인상이 있다. 사회적 편견에 상처받는 어두운 영혼들의 비극적인 사랑은 이 영화의 관심사가 아니다. 김조광수가 소년들(주인공이 아무리 20대가 되었어도, 여전히 그들에게서는 소년의 향이 묻어난다)의 사랑에서 보고 싶어 하는 것은 그들 사이를 오가는 간절한 눈빛과 섬세한 손길, 두근거리는 마음처럼 감성적인 순간들이다. 그래서 그의 영화에서 음악은 늘 중요한 요소이며, 인물들의 얼굴 혹은 신체 일부에 대한 클로즈업은 두드러진다.

물론 전작과 달라진 점은 있다. 대한민국 20대 남자들의 영원한 숙제인 군대문제가 영화의 중심에 들어선다. 그러나 영화가 군대 내에서 게이들이 겪는 부당한 현실을 보여주는 건 아니고, 다만 입대한 혹은 입대를 앞둔 게이 청년들이 어떻게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관계를 유지해 나가는지를 자연스럽게 보여주고 싶어 하는 것 같다. ‘대한민국의 남자-어른’으로 승인 받게 되는 상징적인 계기인 군 입대를 배경에 두고 영화는 게이 커플이 자신들의 성정체성을 이성애 중심적인 사회 속에서 어떻게 풀어갈 수 있을지에 대해 비교적 부드러운 방식으로 관찰하고 있다. <소년, 소년을 만나다>가 게이 소년들의 마음에 중심을 두었다면, <친구사이?>에서는 제도적 차원의 문제가 살짝 개입된다.

두 편의 영화에서 눈에 띄는 건 클라이맥스에 등장하는 뮤지컬 형식이다. 전작에서 큐피트예지원 분의 춤과 노래, 그리고 애니메이션의 적극적인 활용이 있었는데, 이번 영화에서도 역시 영화의 도입부와 끝, 무엇보다도 두 소년과 그들의 관계를 알게 된 엄마의 심정을 묘사하는 부분이 어김없이 뮤지컬로 채색된다. 두 영화 모두 갈등의 최고 국면, 즉 현실적인 충돌이 있을 때마다, 그 순간을 춤과 노래로 우회해서 판타지화해버린다는 비판이 제기될 수도 있을 것이다. 블라디미르 나보코프(Vladimir Nabokov, 1899~1977)는 『롤리타Lolita』(1955)에서 뮤지컬이 죽음과 진실이 금지된 영역, 본질적으로 근심이 스며들 여지가 없는 존재 영역이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다른 한편으로는 동성애를 그늘진 곳의 사랑으로 반복 재생하면서 오히려 동성애 멜로를 장르적으로 소비하는 자칭 ‘인권영화’에 대한 발랄한 전복이라고 두둔할 수도 있을 것이다. 더구나 두 영화 모두 단편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짧은 시간에 전형적인 눈물 코드를 답습하지 않고 최대한의 감정적 진폭을 끌어내기 위한 효과적인 선택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영화<친구사이?>의 두주인공

하지만 정작 짚고 넘어가고 싶은 부분은 따로 있다. 이 영화의 이야기가 끝나는 지점은 민수와 석이이제훈 분의 관계가 민수의 엄마이선주 분에게 밝혀지고 나서 휴가를 나온 민수서지후 분가 광화문광장에서 석이와 키스를 하는 장면이다. 그 장면 위로 민수가 “엄마, 석이 데리고 갈께요”라는 보이스 오버가 깔린다. 광화문광장과 군복을 입은 게이 군인의 키스는 영화 외적으로도 화제가 된 바 있다. 지금 한국사회의 신자유주의적 현실을 체현한 공간으로서의 광화문광장과 대한민국의 가부장성을 증명하는 상징으로서의 군대, 여기에 게이 커플의 키스가 더해지는 순간, 기존 체제에 대한 발칙한 조롱 혹은 욕망의 순수한 저항 같은 것을 읽을 수 있을지 모른다. 심지어 가족에게 커밍아웃을 하기 전에 두 게이가 세상 한 가운데서 치르는 결단의 의식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영화가 바로 이 지점, 순탄하지 못할 게 뻔한 미래를 코앞에 두고서 이야기를 닫았다는 것이 내심 마음에 걸린다. 감독은 <소년, 소년을 만나다>를 본 관객들이 소년들의 20대를 속편으로 만들어달라고 요구했고 그런 바람이 아마도 <친구사이?>를 만드는 동력이 되었을 거라고 말했는데, 이 영화를 보면서 그의 영화가 여전히 속편을 필요로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니까 뮤지컬도 빌리지 않고, 광화문광장 앞에서의 어떤 상징적인 제스추어도 취하지 않고, 게이 커플과 그들의 가족이 이 사실을 대면하는 그 순간부터 시작되는 현실의 이야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