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막 출소한 남자가 가족에게 향한다. 어머니는 이미 세상을 떠났고 두 동생은 남자가  부담스럽기만 하다. 동생은 어머니가 남긴 얼마간의 유산을 전하는 것으로 자신의 의무를 끝맺고자 한다. 남자는 어머니의 유산을 털어 재개발을 목전에 뒀다는 땅을 산다. 재개발만 이뤄지면 세상의 모든 문제는 깔끔하게 해결될 것이라고 믿으며.

화로 흥한 자 화로 망하나니
조규장 감독의 첫 장편영화인 <낙타는 말했다>는 전형적인 캐릭터 영화다. 주영광김낙형 분에게 어머니의 유산은 ‘주’께서 남긴 마지막 ‘영광’의 기회다. 집도 사고, 땅도 사고, 나무도 몇 그루 심고, 부인도 하나 구하고 보니 덤으로 딸까지 딸려온다. 준비는 끝났고, 재개발만 되면 세상만사 술술 풀리는 것은 시간문제다. 하지만 주께서 재개발 로또의 기회는 주셨으되 가슴에 ‘참을 인’(忍)자 새기는 요령은 가르쳐주지 않았으니 이 얼마나 잔혹한 일인가. 목판두부를 팔지 않는 가게 주인은 욕지거리 세례를 받고, 동네 가게에 갈치를 팔아 자신의 장사를 방해하는 외팔이 생선장수는 죽도록 맞아야 하며, 식후땡의 참맛을 금하는 식당은 장사할 자격이 없다. 세상은 주영광을 화나게 하는 일 천지이고, 그때마다 그는 화풀이로 세상을 뒤집어엎는다. 집에서는 다르겠는가. 찜질방 하나 없는 동네에 살며 찜질방을 핑계로 외박하는 아내의 얼굴이 성할 리 만무하다. 가뜩이나 재개발이 취소되며 치솟는 화를 감당하기 힘든 날에, 금족령을 내린 아내는 다시 집을 비웠고, 화를 삭이지 못한 그는 ‘보란듯이’ 제초제를 꿀꺽꿀꺽 삼킨다. ‘화’로 흥한 자 ‘화’로 망하리라. 주의 영광은 거기까지.

조규장 감독은 천하의 난봉꾼인 주영광을 이해해달라고 설득하지 않는다. 자기 주먹 탓에 앓아누운 갈치장수 아내에게 담배 한 갑을 툭 던지고 도망치고, 마누라는 차마 패지 못해 애꿎은 상다리만 분질러놓는 그를 무작정 미워할 수 없는 노릇이지만, 다음날이면 또 다시 악행의 일지를 써내려갈 그를 어찌 이해할 수 있단 말인가. 더구나 천하의 몹쓸 짓을 도맡아 하면서도 자신의 행동을 되돌아보려 하지 않는 그에게 관객이 감정이입한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다. 조규장 감독은 주영광에 대한 관객의 공감을 구하는 대신, 집착이 화가 되고 화가 다시 집착이 되는 악순환을 객관적인 거리 속에 지켜볼 것을 요구한다. 이러한 영화적 체험의 끝에 자기 성찰의 시선을 상실한 부조리한 인물과 재개발의 노예가 되어버린 한국 사회가 그리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주영광 그 놈은 아주 몹쓸 놈이라구요? 그런데 어떡하죠? 당신이 살고 있는 세상도 그리 다르진 않은데.

[영화 <낙타는말했다>의 주인공 주영광]

주영광이 자기성찰의 시선을 상실한 채 앞만 보고 달려가는 한국사회를 상기시킨다고 하더라도, <낙타는 말했다>를 두고 사회적 메시지가 두드러지는 작품이라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영화를 보고 난 뒤 잔상으로 남는 것은 감정이 표정으로 새겨지지 못할 만큼 딱딱하게 굳어버린 주영광의 얼굴뿐이다. 그는 감정과 표현이 어긋나며 발생하는 어색함을 ‘꾸미지않고’ 드러낸다. 영화는 사회의 치부를 툭하니 건드리지만, 어디까지나 캐릭터 영화로서의 매력을 침해하지 않는 한에서만 그렇게 한다. 영화의 캐릭터가 제아무리 사실적이라 해도, 이를 인물 바깥으로 확장하지 못할 때 영화의 치밀한 묘사는 동어반복의 쳇바퀴를 맴돌 뿐이다.

그래도 우리는 살아야 한다

감독의 세상에 대한 태도가 넌지시 드러나는 것은 영화의 엔딩에서이다. 취소된 줄만 알았던 재개발이 기적처럼 다시 추진된다. 몇 년 뒤면 성냥갑 아파트가 들어설 논을 가로지르는 모녀의 뒷모습이 롱숏으로 비추는데, 이때 화면이 조금씩 사막으로 변해간다. 이 엔딩은 김진경이 시 <낙타>의 한 구절을 인용한 것처럼 보인다. “낙타는 사막을 떠나지 않는다(A Camel Doesn’t Leave Desert)”라는 영문제목을 주목하도록 한다. 조규장 감독이 그 의미를 명확하게 드러내진 않는다 하더라도, 그럼에도 이 장면을 연출하는 감독의 바램만은 선명하게 느낄 수 있다. 벗어날 수 없을 그 황량한 사막에서 아무쪼록 잘 살아주었으면 하는 바램. ‘사막이 푸른 벌판으로 바뀔 때까지는.’ 그 때까지는.

[낙타는말했다_포스터]